잠언서 13장에서는 말과 재물과 성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웃을 통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말을 잘해야 합니다. 사람이 말 때문에 실수하고 사람과 멀어지게 됩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교만, 친구, 자녀 징계(잠 13:1-25)
1-4절, 지혜자, 바른 말, 근면
[1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다. ‘훈계’라는 원어(무사르)는 ‘교훈, 책망, 징계’라는 뜻을 가진다. ‘아버지의 훈계’라는 말은 우선 자녀 교육의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보인다. 자녀 교육의 책임은 국가나 학교에 있지 않고 심지어 교회에 있지도 않고 부모에게, 그것도 특히 아버지에게 있다. 지혜로운 아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겸손히 순종하는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다. 사람은 미완성된 인격이어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잠 22:6). 특히 경험 많은 경건한 어른들의 교훈은 유익이 많다. 그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실패와 승리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다. 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들이 얽혀 있고 부모의 징계의 매가 이를 멀리 쫓아낸다고 성경은 말한다(잠 22:15).
그러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한다.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는 ‘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이다. 교만한 자는 남을 비웃고 조롱한다. 거만한 아들은 아버지의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옳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그의 교훈과 책망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물론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이성적으로, 성경적으로 잘 확증한 후에 책망해야 유익한 책망이 되고 자녀를 노엽게 하거나 자녀의 반발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2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을 누린다. 입의 말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인격의 표현이다.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의 입술의 고백으로 표현된다.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37). 또 선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선한 사람은 선한 말, 이웃을 배려하는 덕스러운 말을 할 것이며 이런 선한 말은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한 말을 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실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한다. 우리말 성경은 마음이 궤사한 자가 자기가 사람들에게 강포를 행한 대로 자기도 당한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궤사한 자들’이라는 원어(네페쉬 보게딤)는 ‘반역자들 혹은 배신자들의 영혼’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영혼’은 ‘소원’(desire)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NASB).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반역자들의 소원은 강포함이다”이다. 본문은 반역자들이 강포를 행한다는 뜻 같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지만, 악한 사람은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한다. 반역자들은 악한 자들이며 강포한 일을 소원한다.
[3절]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한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입을 지키고 말을 조심하는 것은 죄를 안 짓는 길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하였다(약 3:2).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입을 지켜야 악하고 죄악된 말, 거짓된 말을 하지 않고 선한 말, 깨끗한 말, 덕스러운 말, 진실한 말만 할 수 있고 온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입을 지키면 그 생명을 보전한다는 말은 사람이 입을 지키면 죄를 안 짓게 될 것이므로 그 생명도 보전된다는 뜻이다. 잠언 21:23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하였다. 혀의 역할은 크고 그 열매는 중요하다. 그러므로 잠언 18:21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온다.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는 말이 헤픈 자, 말이 많은 자, 생각 없이, 조심 없이 말을 하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그런 자는 말로 실수하게 되고 범죄하게 되며 그 결과로 그는 결국 멸망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9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또 잠언 12:13은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말하였다.
[4절]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는다. 소원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누구나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지금의 처지보다 좀더 나아지기 원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육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렇다. 육신적으로,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경제적 안정과 물질적 여유를 누리기를 원하며 몸의 건강과, 자녀들의 평안과 건강과 출세, 또 사회적인 안정을 소원한다. 영적으로도, 우리는 믿음의 성장, 성화, 성령의 충만을 원하며, 또 바르고 좋은 교회를 원한다.
그런데 게으른 자들은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직 부지런한 자들만 그것들을 얻을 것이다. 물질적 여유도 게으른 자는 얻지 못할 것이다. 잠언 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 . .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몸의 건강도 게으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마음을 써서 부지런히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섭취해야 얻는다.
또 신앙 성장도 게으른 자에게는 기대하기 어렵고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 드리기를 힘쓰고 교제하며 봉사할 때 기대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벧후 1:5-11).
우리는 부모의 바른 교훈을 듣는 지혜로운 자녀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교훈을 듣고 순종하며 또 그의 책망을 달게 받는 자가 되고, 또 우리의 자녀들을 지혜로운 자로 바르게 양육해야 한다.
우리는 입의 열매로 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선한 자가 되고 선한 말만 하고 반역과 강포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악하고 거짓된 말이 아니고 바르고 선한 말을 할 때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려 하지 말고 또 말할 때 조심하여, 더러운 말을 버리고 정직하고 선한 말, 은혜롭고 덕스러운 말만 하자(엡 4:29; 5:4).
우리는 좋은 것을 얻도록 일상 생활에서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한 자가 되고 또 성경 읽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에서도 부지런하자.
5-8절, 의, 완전함, 자족
[5절]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데 이르느니라.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의인이다. 오늘날 의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모든 교훈에 순종하는 자이다.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한다. 왜 그런가? 거짓말은 하나님 앞에 큰 악이며 사람들의 모든 좋은 관계를 하루아침에 깨뜨리는 참으로 나쁜 악이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다(출 34:6). 둘째,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셋째,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신다(잠 6:16-19). 넷째, 거짓말은 십계명의 제9계명에 정죄된 죄악이다. 다섯째, 거짓말은 천국 들어가지 못할 죄악이다(계 21:27; 22:15). 여섯째, 거짓말은 지옥 갈 죄악이다(계 21:8).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명대로 살기를 원하는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데 이른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순종치 않는 자이다. ‘행위가 흉악하다’는 원어(바아쉬)는 ‘악취를 풍긴다’는 뜻이다(BDB). 악인의 악행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악취와 같다. 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다(롬 3:13). 그에게서는 불쾌한 말이 나온다. 또 악인은 부끄러운 데 이른다. 악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성경은 악인이 당할 수치에 대해 많이 말한다(보쉬 110회, 보쉣 29회, 켈림마 30회, 칼론 17회).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지 다른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6절] 의(義)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
의(義)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정직하다’는 원어(탐)는 ‘온전하다, 흠이나 책망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의(義)는 흠이나 책망할 것이 없이 온전한 자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인가? 세상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즉 질병이나 경제적 파탄이나 기타 불행한 일들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가 보호한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의인을 보호하신다는 뜻이다. 시편 91:3, 10은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도 환난과 어려운 일들이 오나 그는 그 환난에서 실패치 않는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그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마태복음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또 그러한 사람은 환난 중에도 결코 낙심하거나 변절하지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억눌림]을 당하여도 싸이지[눌리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고후 4:8-9).
본문은 그러나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이 악이다. 죄인은 이런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죄인이 멸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행하는 악 때문이다. 죄악이 그를 패망케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7절]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본문은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된다. 옛날 영어성경은 “자신을 부하게 만들어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어도 크게 부요한 자가 있느니라”고 번역했다(KJV, BDB, JFB주석). 그러면 이것은 이기적이지 말고 구제에 힘쓰라는 교훈이다. 잠언 11:24-25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사람이 이기적이게 움켜쥐고 살면 가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구제와 선행을 힘쓰면 물질적 여유를 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부유했으나 실상 영적으로 가난했고 서머나 교회는 반대로 외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했으나 영적으로는 부유하였다(계 2-3장).
본문은 또한 한글개역과 같이 번역되기도 한다(NASB, NIV). 그러면 이것은 허영과 외식을 경계한 말씀일 것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부한 체하는 사람은 허영심과 명예심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재물이 많이 있으면서 가난한 체하는 자는 겸손한 자일 것이다. 우리는 외식과 허영을 경계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가 구제나 기도할 때 외식하지 말라고 교훈하셨다(마 6:1-2, 5). 사도 바울은 헛된 영광을 추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고(갈 5:26)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빌 2:3)고 교훈하였다.
[8절]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게아라)[비난](BDB, KB, KJV, NASB)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그의 생명을 속(贖)할 수는 있다. 재물은 유익한 점이 많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좋은 것들을 살 수 있고, 또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 재물을 속전(贖錢) 즉 몸값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해적들에게 납치된 자들이 몸값을 주고 풀려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재물은 위험성도 있다. 재물이 있으면 사람은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고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마 19:23-24). 또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다(딤전 6:9-10).
그러나 가난한 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다. 돈의 여유가 없으면 꼭 필요할 때 쓸 돈이 없어서 마음의 고통을 느끼거나 환경적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가난의 유익도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 교만하거나 방탕에 떨어질 가능성이 적고 도적의 위험이나 강도의 협박을 받을 일이 없고, 또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거짓말과 악을 미워하는 의인으로 살자. 우리는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기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과 부끄러운 악을 미워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경 교훈대로 온전히 행함으로써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우리는 이기적이게 살지 말고 구제와 선행에 힘쓰자. 또 남에게 보이려는 외식으로나, 또 헛된 세상 영광을 구하는 허영으로 살지 말자.
우리는 부요하든지 가난하든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자족하며 살자(딤전 6:7-8). 탐심은 큰 죄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심을 믿고 내일 일을 염려치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만 구하며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마 6:31-33).
9-12절, 의인, 교만, 재산, 소망
[9절]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성경에서 빛 혹은 등불은, 지식과 도덕성 즉 의, 선, 진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또한 기쁨, 평안, 형통 등 행복을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은 후자의 뜻에 적절해 보이지만, 전자의 뜻에도 맞다. 의인은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환하게 빛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의인은 돋는 해이신(눅 1:78-79) 그리스도의 진리와 의를 받은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온 자들이다(요일 1:5-7; 2:9-10).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그러나 악인은 어두움에 사는 자이며 자신이 가진 양심의 등불조차도 꺼지는 자이다.
의인은 또한 기쁨, 평안, 형통 등 행복에 있어서도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이 가진, 현재 누리는 기쁨, 평안, 형통 등의 행복조차도 조만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슬픔과 불안과 낭패 등 불행을 당할 것이다.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기 11: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욥기 18:5-6,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잠언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언 24: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의인은 행복할 것이나 악인은 불행할 것이다.
[10절]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오직 교만으로 말미암아 다툼이 생기나](KJV).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이라는 원어(자돈)는 ‘오만함, 거만함, 건방짐’이라는 뜻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며,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일종의 욕심이다. 오직 교만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잠언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탐한다’는 원어(레카브)도 ‘교만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교만하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잠언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각종 욕심이 싸움의 원인이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겸손한 자는 자신의 부족을 알고 상대방의 부족도 이해하려 한다. 또 그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심, 즉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욕심을 버리거나 매우 자제한다. 그런 자들과는 다툼이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빌 2:2-3).
본문은 “[그러나]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교만한 자는 경건하고 도덕적인 바른 권면을 듣지 않지만, 겸손한 자는 바른 권면을 듣는다. 권면을 듣는 자 곧 권면을 듣고 무엇이든지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자가 지혜가 있다. 만일 그 권면이 자신에게 해당하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앞으로 참고하면 될 것이며, 또 필요하고 기회가 된다면, 정중하고 겸손하게 해명하면 될 것이다. 여하튼 권면을 듣는 자가 지혜가 있는 자이다.
[11절]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망령되이’라는 원어(메헤벨)는 ‘헛되이’라는 뜻이다(KJV). 헛되이 얻은 재물이라는 말은 성실하게 수고하여 번 돈이 아니고 게으르게 혹은 부도덕하게 번 돈을 가리킬 것이다. 불법적으로나 사기나 강탈로 얻은 재물이 그런 돈이다. 땅 투기, 집 투기로 얻은 소득이나, 부모에게 받은 많은 유산도 좋지 않다.
헛되이 얻은 돈은 줄어간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돈은 그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그런 소득은 예상치 못하는 지출이 많다. 그것은 사람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불의의 소득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된다”고 하셨고(학 1:6) 또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다(학 1:9). 또 쉽게 돈을 얻은 자는 재물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쉽게 얻는 자는 돈을 쉽게 쓴다.
그러나 손으로 모은 것 즉 수고하여 번 돈은 늘어간다. 돈은 수고하여 버는 것이 정상이다. 성실히 일하며 노동하며 수고하여 버는 돈이 바른 돈이며 복된 돈이다. 농사를 짓든지, 장사를 하든지, 사무실에서 일하든지, 이치는 똑같다. 잠언은 손이 부지런한 자가 부하게 되며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얻는다고 말했다(잠 10:4; 13:4; 21:5).
손으로 모은 것이 늘어가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수고하며 살고 또 조금씩 저축하여 여유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복 주실 것이다. 또 그는 재물이 귀한 줄 알아 절약하며 살 것이다. 근검 절약하는 자만 저축하며 살 수 있다.
[12절]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할 때 그것을 바라며 소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더디 이루게 되면 마음이 상한다. 청년들이 고시 준비나 취직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하기를 원하며 기다리는 젊은이의 마음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는 마음을 조린다. 시편 42편 저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하였다(시 42: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마음도 비슷하다.
그러나 본문은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고 말한다. 취직을 소원하는 자가 취직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할 것이며, 결혼을 소원하는 자가 결혼하면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성도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기쁨과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고대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고 우리가 사모하던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는 큰 기쁨과 힘을 얻을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진다. 우리는 등불이 꺼지는 악인으로 살지 말고, 진리의 지식과 의와 선과 진실이 점점 많아지고 기쁨과 평안과 형통의 복을 점점 많이 누리는 의인으로만 살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며 남의 권면을 듣는 자가 지혜자이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바른 권면을 잘 듣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간다. 우리는 쉽게 혹은 불법으로 돈을 벌려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작게 벌어도 우리의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또 근검 절약하며 저축도 하자.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기를 원하며 또 장차 천국과 영생의 소망의 성취를 보고 기뻐하기를 원한다.
13-16절, 말씀과 지혜
[13절]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불경건의 죄악이며 다른 죄악들의 뿌리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적 설교를 진지하게 듣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 대신에 자기 자신이나 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할 것이다.
‘패망을 이룬다’는 원어(예카벨)는 (1) ‘패망한다’고 번역되기도 하지만(KJV, RV, Gesenius), (2) ‘[그것을 지킬] 빚이 있다’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KB, NASB, NIV).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멸시한다고 멸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 도덕적 의무는 항상 그를 따라 다닌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죄이며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불행과 멸망을 포함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그러나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명, 곧 십계명은 삶의 지침과 기준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피조물로 인정하고, 계명 지키는 것이 사람의 의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증거는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들은 말씀을 힘써 순종하는 것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을 것이다. 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순종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더욱 사랑하시고 상을 주신다. 그는 평강, 건강, 물질적 여유, 존귀, 마침내 영생 등 모든 좋은 것들을 상으로 주신다. 경건했던 요셉과 다니엘은 그런 상을 받았다.
[14절]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이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 곧 지혜 있는 자가 가진 바른 지혜와 지식에서 나오는 교훈은 생명의 샘이다. ‘생명의 샘’은 생명수를 길을 수 있는 샘, 곧 사람을 살리는 교훈이라는 뜻이다.
불경건하고 악하고 거짓된 말은 어리석은 말이며 사람을 죽이는 말이다. 에덴 동산에서 뱀의 말이 그러하였다. 그것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케 만들고 죽게 하였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교훈이며 그것은 듣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버리며 의를 행케 함으로써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지혜자의 교훈을 듣고 생명을 얻는다. 잠언 4: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잠언 4:20-22,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생명은 건강과 평안을 포함한다.
지혜자의 교훈은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한다. 죄는 사망의 그물 곧 사람을 걸어 죽게 하는 그물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사망의 그물에 걸린 자요 회개치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교훈이므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15절]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지혜’라는 원어(세켈)는 ‘깨달음’(understanding)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선한 깨달음은 남을 이해하고 남을 유익케 하는 마음이다. 뱀과 같이 악하고 간교한 지혜는 남을 해치는 지혜이지만, 선한 지혜와 깨달음은 남에게 은혜와 호의와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다. ‘궤사한 자’(보게딤)라는 원어는 ‘배반하는 자들, 속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배반하는 자들은 남을 해치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런 자의 길은 험하다. 그 길은 거칠고 평탄치 않고 형통치 않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의인의 심령에는 평안이 있고 그의 길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좋은 결과가 있다. 또 그는 고난 중에도 믿음과 거룩한 인격의 단련을 받는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폐병과 열병으로 치셔서 그들의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하시며, 곡식을 거두나 대적들이 와서 빼앗아 가게 하시고 대적에게 패하게 하시고,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땅으로 놋과 같게 하셔서 흉년이 들게 하시며, 또 들짐승이 어린 자녀들을 움켜 가게 하시고, 전쟁을 보내시고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시고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셔서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줄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온 세계에 흩으시며 전쟁으로 그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성읍들을 황폐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레 26:16-17, 19, 22, 25-26, 33). 참으로, 악인들의 길은 험할 것이다.
[16절]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슬기로운 자마다 지식으로 행한다.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간다. 지혜와 지식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 둘은 같이 간다. 지혜 있는 자마다 참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사용한다. 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참 지식의 시작이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또 참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과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삶이다. 그것이 구원이며 또 구원의 열매이다.
사람이 참 지식을 가지고 행할 때 그것이 그에게 의의 열매가 되고 평안이 된다. 그것이 사람의 행복이며 생명의 길이다. 그것이 사람의 지혜이다. 모든 지혜 있는 자는 그 길, 즉 그 지식으로 행한다.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낸다. 미련한 것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 육체 중심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지와 불경건, 또 불결, 악, 거짓의 부도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그런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신의 미련한 것을 말로나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두려워하고 힘써 배우며 순종하자. 그것이 복된 길, 평강의 길, 영생의 길임을 알자.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의 조언을 듣지 말고 지혜자의 교훈만 받고, 또 자녀에게든지 다른 교우에게든지 지혜로 교훈하는 자가 되자.
우리는 선한 지혜를 가져서 이웃에게 은혜와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자.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참된 성도들을 배반하는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원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17-20절, 충성, 훈계, 미련, 동행
[17절]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사자’(使者)는 ‘임무를 받아 파송된 자’이다. ‘악한 사자’는 자기의 임무를 저버리거나 그 임무에 불성실한 자이다. 그는 그를 보낸 자에게 악을 행하는 자이다. 선지자 엘리사의 수종자인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악을 행했다(왕하 5:20-24). 가룟 유다는 사도의 본분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였다(마 26:14-16).
그러나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질 것이다. 그를 파송한 주인은 그를 벌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의 악에 대해 재앙으로 보응하실 것이다. 게하시는 몸에 나병이 들었고(왕하 5:27),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매었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죽었다(마 27:3-5; 행 1:18).
‘충성된 사신’은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자이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먼 곳에 갔던 아브라함의 나이든 종은 충성된 사신이었다. 그는 긴 여행으로 인해 배도 고팠겠지만,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했었다(창 24:33). 사도 바울도 충성된 사신이었다. 그는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고난도 견디었고 죽을 각오도 하였다(고전 4:9-13; 고후 6:4-10; 11:23-27).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된다. ‘양약’이라는 원어(마르페)는 ‘치료’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충성된 사신은 그를 보낸 자의 마음에 기쁨과 시원함과 위로를 줄 것이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것이다. 또 그 자신도 또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18절]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훈계는 교훈과 징계를 가리킨다. 훈계는 의와 평안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훈계를 저버리는 까닭은 무지와 죄성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의의 가치를 알지 못하므로 훈계를 저버리거나 또는 자신의 죄성과 세상의 악한 풍조와 마귀의 시험에 빠져 있기 때문에 훈계를 저버릴 것이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를 것이다. 땅의 모든 풍부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신 10:14; 시 24: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 그 모든 좋은 것을 거두실 권리도 있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전쟁이 오고 가뭄이 오고 경기 침체가 올 때, 그는 궁핍을 경험하며 수욕도 경험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때는 존귀해 보이지만, 병에 걸렸거나 기근으로 굶주림이 심할 때나 전쟁이 나서 헐벗고 방황할 때에는, 수욕을 경험하는 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는다. ‘경계’는 책망과 징계를 뜻한다. ‘경계를 지킨다’는 원어는 ‘책망을 주의한다’는 의미이다(KJV, NASB). 사람이 하나님의 교훈에 주의하고 징계를 달게 받으면, 회개에 이르고 의(義)에 이를 것이다. 그러면 그가 아무리 비천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존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바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셨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19절]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말의 뜻은 쉬우나 전반절과 후반절의 관계가 어려워 보인다. 소원의 성취는 마음에 달다. 소원의 성취 즉 기도 제목의 응답은 의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인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시편 145: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요한일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가진 선한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의 마음은 기쁨이 넘칠 것이다. 잠언 13:12,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요한복음 16:23-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본문은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의 악행은 그의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고 도리어 하나님의 미워하심과 진노와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니 그것이 그의 미련함이다. 혹 어떤 영어번역처럼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악인은 악한 소원의 성취를 위해 그 악을 떠나기를 싫어한다는 뜻일 것이다. 여하튼, 악인은 미련하다.
[20절]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누구와 교제하는가는 중요하다. 일생의 반려자를 취하는 결혼도, 친구 관계도, 또 교회 소속도 그러하다. 본문은 교제와 동행의 대상을 지혜자와 미련한 자로 구분한다. 잠언이 밝히 증거하는 대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이며,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계명들을 거슬러 우상숭배하고 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면 그의 인품을 대개 짐작할 수 있다. 지혜는 경건과 도덕성이며 그 결과는 평안과 형통과 행복과 영생이다. 그러나 죄는 미련함이며 그 결과는 질병과 기근과 불행과 죽음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한 교제를 경계한다. 고린도전서 15:33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가장 귀한 교제의 대상이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고 교훈한다(신 10:20). 옛날에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창 5:21-24).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이었다(창 6:9). 욥은 고난 중에 전에 하나님의 우정[친밀한 교제]이 그의 장막 위에 있었던 날들을 회상했다(욥 29:4).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한 자들에게는 그의 친밀한 교통이 있다(시 25:14; 잠 3:32).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된다. 우리는 성도로서 또 교회의 직분자로서 악한 사자가 되지 말고 충성된 사신이 되자.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실로써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자.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나,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책망과 징계에 주의하고 그것들을 존중하자. 우리는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는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힘써 지키자. 이것이 지혜의 길이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악한 마음과 언행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면서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고 응답받는 즐거움을 누리자.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또 경건하고 선한 지혜자들과 교제하고 동행하고, 악한 자들과는 결코 교제하지 말자(고후 6:14-16; 살후 3:14; 딛 3:10).
21-25절, 보응, 자녀 징계, 의인
[21절]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재앙은 죄인을 따른다. 그것은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각가지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폐병, 열병, 종기 등 각종 질병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극심한 흉년과 굶주림을 경험할 것이며, 들짐승들이 내려와 농작물을 해칠 것이며, 또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당할 것이다.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은 한 대표적인 예이었다(창 6:17; 7:21-23). 소돔 고모라 성의 유황불 심판도 그러했다(창 19:24-25). 또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심히 음란했던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멸망을 당해야 했다(신 7:1-2). 하나님께서는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을 치셔서 고칠 수 없는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고 2년 만에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하셨다(대하 21:18-19). 또 교만했던 웃시야 왕은 성전에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즉시 나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쓸쓸히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다(대하 26:19, 21).
그러나 의인에게는 선한 보응이 따른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사는 의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선한 보응, 즉 평안과 형통의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는 일을 가장 두려워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고(창 39:23)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구원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했던 다윗과 함께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고(삼하 8:6), 경건했던 히스기야와 함께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다(왕하 18:7).
[22절]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친다. 선인(善人) 곧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선과 의와 사랑으로 사는 자이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자이다.
선인은 갑자기 재산을 모으지는 못해도 서서히 조금씩 정당하게 재산을 모을 것이다. 잠언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성도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서 돈을 벌고 하나님께 십일조 이상을 드리고 나라의 세금도 정당하게 내고 남는 것을 쓴다. 그것이 그의 정당하고 복된 소득이다. 성도의 사업에는 소위 이중장부(분식회계)나 비자금 같은 것이 없어야 한다. 성도가 이렇게 경건하고 의롭게 사업을 하면 견실한 기업을 이룰 것이다. 또 성도가 이렇게 번 돈과 가꾼 산업은 자자손손에게 끼칠 것이다.
그러나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일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행하는 자이다. 그는 재물을 벌지만 불의하고 불법한 방식으로 또한 탐욕적이게 벌 것이다. 그의 모든 소득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물질적 이득을 위하여 뇌물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는 은밀하게 탈세도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주일성수나 십일조 생활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이렇게 모은 재물은 자신에게나 자신의 자녀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의인을 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집과 땅, 그의 회사와 사업장은 어느 날 의인의 것이 될 것이다. 또 그는 상속할 자녀가 없어서 자신의 후계자를 세울 때 양심상 악인보다는 의인에게 자신의 사업이나 유산을 맡기게 될 것이다.
[23절]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본문은 다시 번역하면, “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 많은 양식이 나오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느니라.” 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는 많은 양식이 나온다. 사람이 비록 가난할지라도 밭을 경작하면 많은 양식을 얻을 것이다. 밭을 경작한다는 말은 자기의 직장과 사업에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면 소득이 늘어나고 물질적 여유를 얻을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그러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여 양식이 많아진다 할지라도, 그가 불의하면 즉 죄를 지으면 모은 물질적 유여함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을 가져가 버리실 것이다. 의는 평강의 길이며 물질적 여유를 얻는 길이지만, 죄는 불행의 길이며 물질적 여유를 잃어버리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는 물질적 여유를 유지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존중하거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며 또 그들이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그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불어버리셨다고 말씀하셨다(학 1:4-6, 9).
[24절]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매를 때리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매를 때리지 못하고 그것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미워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자녀의 잘못과 악행을 책망하고 징벌하지 않고 그의 인격의 결함과 부도덕함을 내버려두는 것은 장차 부모의 매보다 훨씬 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 ‘근실히 징계한다’는 원문(쉬카로 무사르)은 ‘일찍, 부지런히 그를 징계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식 사랑은 단순히 그의 몸을 사랑함이 아니고 그의 영혼을 사랑함이어야 한다. 그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잘 되도록, 즉 그의 인격이 바른 인격, 경건하고 선한 인격이 되도록 교훈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잘못을 행할 때 그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적당한 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를 징계하되 근실히, 부지런히, 때가 늦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그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 좋은 인격이 되면, 그것은 자신에게 복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부모에게도 기쁨이 될 것이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하였고(잠 22:15), 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하였다(잠 23:13-14). 또 성경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하였다(잠 29:15).
[25절] 의인은 포식(飽食)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이며,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배부르게 먹는 것과 주리는 것은 영육에 다 해당할 것이다. 사람은 육의 양식이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도 필요하다.
의인은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시편 34:9-10,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어 누리게도 하시고 또 그것을 거두기도 하신다. 잠언 10: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또 사람이 양식을 배부르게 먹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음식 살 돈도 넉넉하고 음식도 넉넉하고 몸도 건강하여 식욕이 있고 소화기능도 좋아야 한다. 사람이 아프면 식욕도 떨어지고 소화기능도 약해져 양식이 풍부해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의 배는 주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악인에게는 음식이 부족할 것이며 그의 경제 여건도 매우 나쁠 것이다. 또 그의 몸에 병이 있고 식욕도 소화기능도 떨어질 것이다.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응을 알고 죄를 버리고 의(義)의 길에만 서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힘써 순종하자.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을 의인을 위해 쌓인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는 의인과 선인으로만 살자. 돈을 많이 벌려고만 하지 말고 적게 벌더라도 정직하게 벌자.
우리는 비록 가난할지라도 손으로 수고하고 부지런함으로써 물질적 여유의 복을 누리자. 또 그것을 잘 유지하기 위해 항상 의를 행하자.
자녀에게 매를 들지 못하는 자는 실상 그 자녀를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매 없이 키우지 말고 근실히 징계하며 키우자. 그래야 그가 좋은 인격이 되며 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참된 자식 사랑이다.
우리는 의식주의 문제 등의 세상의 일들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믿음으로 또 선을 행하며 살아가자.
[욥기 강해설교말씀] 욥--하나님께서 악인의 심판을 지연하신다(욥 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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