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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동사 성경공부] עני(6041, 아니) 가난한, 비천한, 억압 받는

복음의 능력 2024. 3. 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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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어 동사 성경공부 중에서 오늘은 가련하고 가난하다.라는 단어 중에 아니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가난한, 비천한, 억압받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의 가난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가난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했습니다.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가 가난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사회적 약자입니다.

 

가련하다

 

עני(6041, 아니) 가난한, 비천한, 억압 받는

아니(형용사)는 아나(6031)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poor, 비천한 humble, 낮은 lowly, 억압(압제) 받는 oppressed'을 의미한다(레 19:10, 삼하 22:28, 욥 29:12, 시 10:9, 사 3:14 등).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7회 나온다.

아니는 억압하는 자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과 동의어가 된다. 이와 같은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해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님이 이 단어가 재산이 아니라 폭력과 대조되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응당 지불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고용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그가 압제당할 경우 그는 하나님을 옹호자로 요청할 것이다.

'아니'한 자들은 재정상으로 매일매일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압제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단어는 물질적인 소유의 결핍에 따르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에브욘'과 함께 빈번히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아니'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받는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아니'가 심지어 담보물이나 저당물로 삼을 물건이 겉옷 밖에 없다 하더라고 돈을 꾸어 줄 것이며, '아니'한 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옷이 꼭 필요하므로(이 옷은 그의 유일한 겉옷이다) 그 옷을 밤새도록 돌려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출 22:25-26).

레 19:10에서 '아니'한 자들은 타국인과 나란히 밭의 이삭을 주울 권리를 지니는 자로 분류되어 있다. 아니는 잠 22:22에서 달(가난한 자[한글개역에는 "약한 자"])과 구별된다. "약한 자(달)를 약하다(달)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아니)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의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묘사되며, 그는 그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곤고한 자들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자들은 경건한 자로 간주되고(겔 18:17) 그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로 간주된다(욥 24:9, 잠 14:21, 사 58:7).

많은 경우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경우에 가난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들도 있다. 그들은 심판받을 때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잘못으로 과부가 되지 아니한 과부의 보호자이신 것과 같이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셨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어떤 사회적 조건을 가리키기보다 특정 사회적 계급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입증하기가 어렵다.

물질적 상실과 그로 인한 어려움은 사회적 압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 역경은 사 3:14과 겔 18:17에서 분명히 고려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아니'한 사람들(사 10:2)을 공정하게 다루라고 명하신다. 특히 왕은 그들의 권리를 영원히 감독할 책임이 있다(시 82:3).

이 단어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하여(사 51:12) 혹은 질병으로(시 88:15, H16) 육체적 고통을 받는 자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시 22:24, H25에서와 같이 종종 육체적 고난은 영적 고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외적 고통은 내적 고통을 야기시키고 그 결과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게 된다(시 25:16, 시 34:6, H7, 시 69:29, H30).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는 자로 자주 묘사된다(시 68:10, H11).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시 9:18, H19, 시 74:19).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사 49:13) 구원하시며(시 34:6, H7) 건지시며(시 35:10)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시 72:2, 시 72:4).

끝으로 이 단어는 겸손한 (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슥 9:9에서 메시아를 묘사한다. 이 단어는 조롱하는 자(잠 3:34, 참조: 약 4:6), 오만한 자(시 18:27, H28, 삼하 22:28)와 대조된다. 이러한(겸손한) 자는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으며(사 66:2),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며(시 74:19),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이며(시 14:6), 구원을 확신하는 자이다(삼하 22:28).

아니(고통받는)는 종종 아나우(6035: 겸손)와 혼돈되기도 하며, 이 두 단어는 서로 바뀌어 표기되기도 한다(혹은 ASV와 RSV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바뀌어 번역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는 유명한 요드 와우(yod-wow) 상호 교환에 의한 것일 수 있으나(GKC, sec. 17c; Ernst wurthwein,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p. 72)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교환 현상은 복수형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사야는 아니와 아나우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참조: C. BROW; L. J. COPPES).

[동의어] (관련성구)

(2603, 하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

1.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은혜)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회 나온다.

(a) 칼형에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하난은 칼형으로 사용된 용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용례들, 즉 대략 41회 용례들이 여호와를 주어로 취한다. 청원의 말, '혼네니'(나에게 자비로우소서)는 시편에 19회 나온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 외로움(시 25:16, H17), 고통(시 31:9, H10), 죄과(시 51:1, H3)에 대하여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죄과에 대해서 그가 구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고발을 말소시켜 달라는 것이다. 사 33:2를 참조하라.

여호와는 자비롭게 야곱에게 자녀를 주시고(창 33:5) 그를 번영하게 하셨다(창 33:11). 베냐민에게 내린 요셉의 축복(창 43:29)과 아론의 축복(민 6:25)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아모스(암 5:15)는 청중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의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요컨대 여호와는 그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출 33:19).

(b) 니팔형에서 '불쌍히 여기심을 받다, 동정의 대상이 되다'를 의미한다.

렘 22:23,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c) 피엘형에서 '은혜(자비)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잠 26:25에서 말이 외적으로 친절하거나 동정적인 말에 대해 사용되었다.

(d) 포엘형에서 '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잠 14:21, 시 102:14).

(e) 호팔형에서 '은혜받다(입다)'를 의미한다(사 26:10, 잠 21:10).

(f) 히트파엘형에서 '은혜(자비, 은총)를 구하다'를 의미한다.

히트파엘 어간은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고 한 모세(신 3:23)와 성전 봉헌 때의 솔로몬(왕상 8:33, 왕상 8:47, 왕상 8:59, 왕상 9:3, 대하 6:24, 대하 6:37)과 시편기자(시 30:8 H9, 시 142:1 H2) 그리고, 야곱이 더불어 씨름한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을 인용한 호세아(호 12:4 H5)가 하나님께 탄원할 때, 사용하였다. 빌닷에게서 하나님께 탄원하라는 충고를 받은 욥(욥 8:5)은 비록 자기가 의롭긴 하지만, 이 방법만이 그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다(욥 9:15).

2.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싫다, 몹시 싫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욥 19:17에서 1회 나온다: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참조: E. YAMAUCHI; BDB).

[참고 - 하난(2603). 아카디아어 동족어로는 '호의를 베풀다' grant a favor라는 뜻을 지닌 에네누(en?nu), 하나누(han?nu)가 있고 우가릿어 동족어로는 '자비롭다' be gracious, '호의 있다' favor라는 의미를 지닌 hnn이 있고(UT, 19: no. 882), 아랍어 동족어로는 '동정을 느끼다' feel sympathy, compassion를 의미하는 한나(2584)가 있다.

이 단어는 칼 어간으로 56회, 힛파엘 어간으로 17회, 호팔 어간으로 1회, 피엘 어간으로 1회, 폴렐(Polel) 어간으로 2회, 그리고 니팔 어간으로 1회 사용되었다.

동사 하난(2603)은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야겠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반응을 묘사한다. 이 동사가 '굽히다' bend, '기울이다' incline, 즉 '겸손하게 굴다'라는 의미를 지닌 두 글자 어근에서 파생되었다고 한 압-토마스(Ap-Thomas)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플라크(Flack)에 의하면, 이 동사는 '윗사람이 자비롭게 대해 달라고 실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아랫사람에게 행하는 행동'을 묘사한다고 한다.

이전의 연구에 대해 반발하여, 노이바우어(Neubauer)는 그의 최근의 전공 논문에서 이 동사 의미를 신실한 종이나 민족을 구원하고 도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정의 내린다. 이때 그는 은혜와 사랑보다는 오히려 충성에 역점을 둔다.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것을 사회적 관계에서부터 신학적 관계에까지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하난(2603) 및 그 파생어들의 여러 용법에서 이런 의미를 읽어내려는 그의 시도는 결국 무리한 해석을 낳게 한다.

70인역본은 이 동사를 오이크테이레오(헬3627, 불쌍히 여기다 pity나 동정심을 갖다 have compassion), 엘레오(헬1653, 자비심이나 동정심을 보이다 show mercy or sympathy)로 번역하거나, 히트파엘의 경우 데이스다오(deisthao?, 탄원하다)로 번역한다.

이 동사는 신학적 문맥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혹은 세속적 문맥들에서도 사용된다. 이 동사는 종종 '빈궁한 자에게 친절을 보이다' show kindness to the poor and needy라는 의미를 지닌다. 욥은 친구들에게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라고 간청한다(욥 19:21).

히트파엘 어간은 요셉이 자기들에게 간청하였음을 형제들이 회상했다고 언급하는 창 42:21에서처럼, '탄원하다' beseech를 의미한다. 수리아의 두령은 엘리야에게 자기의 목숨과 자기 군사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왕하 1:13). 에스더는 왕에게 눈물로 간청하였다(에 8:3, 참조, 에 4:8).

렘 22:23에 나오는, 니팔형으로 보이는 '네한트'는 70인역본, 페쉬타역본 그리고 타르굼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동사 아나흐(584)에서 파생된 한 어형을 잘못 기록한 본문상의 오류인 것 같다. 현대 역본들은 70인역본의 카타스테낙세이스(katastenaxeis)에 따라서, '너는 괴로워할 것이다' you will groan로 번역한다.

이 단어가 칼형으로 사용된 용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용례들, 즉 대략 41회 용례들이 여호와를 주어로 취한다. 청원의 말 혼네니(나에게 자비롭다 be gracious to me)는 시편에 19회 나온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외로움(시 25:16 [H17]), 고통(시 31:9 [H10]), 죄과(시 51:1 [H3])에 대하여 자기에게 은총을 보여달라고 간청한다. 죄과에 대해서 그가 구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고발을 말소시켜 달라는 것이다. 사 33:2를 참조하라.

여호와는 자비롭게 야곱에게 자녀를 주시고(창 33:5) 그를 번영하게 하셨다(창 33:11). 베냐민에게 내린 요셉의 축복(창 43:29)과 아론의 축복(민 6:25)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아모스(암 5:15)는 청중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의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요컨대 여호와는 그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출 33:19).

히트파엘 어간은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고 한 모세(신 3:23)와 성전 봉헌 때의 솔로몬(왕상 8:33, 47, 59, 왕상 9:3, 대하 6:24, 37)과 시편 기자(시 30:8[H9], 시 142:1[H2]) 그리고, 야곱이 더불어 씨름한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을 인용한 호세아(호 12:4[H5])가 하나님께 탄원할 때, 사용하였다. 빌닷에게서 하나님께 탄원하라는 충고를 받은 욥(욥 8:5)은 비록 자기가 의롭긴 하지만, 이 방법만이 그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다(욥 9:15).

다후드(Dahood)는 시 77:9[H10],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AV-Hath God forgotten to be gracious?)에 나오는 한노트를 부정사로 보지 않고 실명사로 간주하여 라하마이우(창자 bowels)와 비슷한 뜻을 지닌다고 시사한다. 그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부분들이 말라 버렸는가" Have the inmost parts of God bried up?라고 번역한다.

하난(2603)이란 동사와 그 파생어들은 51명의 이름의 구성요소이다. 이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바알하난(Baalhanan), 엘하난(Elhanan), 하나넬(Hananel), 하나니(Hanani), 하나니야(Hananiah), 한나(Hannah), 하눈(Hanun), 헤나닷(Henadad), 여호하난(Jehohanan), 요하난(Johanan), 드힌나(Tehinnah). 푼족의 이름 한노(Hanno)와 한니발(Hannibal)을 참조하라.

여자 이름 한나는 우리에게 안나(Anna), 앤(Ann), 낸(Nan), 낸시(Nancy), 아니타(Anita, 스페인식 이름) 그리고 안네트(Annette, 프랑스식 이름)라는 이름을 제공해 주었다. 요하난은 우리에게 존(John), 즉 쟝(Jean, 프랑스식 이름), 지오반니(Giovanni, 이태리식 이름), 유안(Juan, 스페인식 이름), 요한(Johann), 그리고 한스(Hans, 독일식 이름), 쟌(Jan, 네덜란드식 이름), 그리고 이반(Ivan, 러시아식 이름)이란 이름을 제공해 주었다. 하난(2603) 등의 동의어들에 대해서는 특히 헤셋(2617)과 라훔(7349)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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