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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주석 성경말씀] 홍수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창 9:1-29)

복음의 능력 2024. 3. 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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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주석 성경말씀은 홍수 후에 하나님이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무지개로 언약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지개 언약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홍수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을 어기면 바로 심판과 저주를 받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가 있습니다.

 

홍수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창 9:1-29)

 

I.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심 9:1-7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1).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에 대한 자신의 선한 뜻과 은혜로운 의도를 확실히 알리셨다는 말이다. 우리는 앞 장에서 노아가 단을 쌓고 제물을 드림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을 찬미했는지'를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제 다시 수립되고 구체화될 이 새로운 자연 왕국의 '대헌장'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전 헌장은 벌로써 몰수되어 실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1. 이 헌장의 하사품(2)

그것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은혜로운 것들이었다.

(1) 광대한 토지의 수여와 사람들이 크게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향유하리라는 약속 : 처음에 사람에게 베풀어졌던 축복이 여기서 새롭게 되풀이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

1)하나님은 그들 앞에 온 땅을 펼쳐 놓으시고 그들에게 그것이 전부 그들의 것이라고, 다시 말해 '땅이 있을 동안에는' 그들과 그들의 후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그 땅이 낙원이 아니라 황무지였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리에게 과분한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땅이 지옥이 아닌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2)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을 만한 모든 땅 위에는 많든 적든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하셨다. 비록 지금도 여전히 죽음이 왕 노릇을 하지만 그러나 그때처럼 땅에서 사람이 멸절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오히려 땅에 사람들이 충만하여질 것이다(17:24-26).

(2) 열등한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의 수여(2) : 무죄 상태의 인간은 사랑으로 다스렸으나 이제 타락한 인간은 공포로써 다스린다. 지금도 이 능력의 수여는 유효하다. 그래서 여태까지 우리는 그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하나님은 선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도우심을 받는 가운데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섭리하신다. 그는 단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섭리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거절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딤전 4:4).

2. 이 헌장의 가르침과 규정 조항 (3-7)

그것은 이 헌장의 하사품에 못지않게 유익하고 은혜로우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신의를 잘 반영해 주는 실례들이다. 유대 학자들은 노아에게나 그의 아들들에게 하신 일곱 가지 가르침에 관하여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 가르침은 모든 민족들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유대 학자들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지 않도록 한다. 이 가르침은 첫째, 우상 숭배를 금한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불경스런 태도를 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할 것을 요구한다. 셋째, 살인을 금한다. 넷째, 근친 상간과 모든 부정을 금한다. 다섯째, 도둑질과 약탈을 금한다. 여섯째, 공의의 시행을 요구한다. 일곱째, 고기를 피채 먹는 것을 금한다.

(1) 사람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어 자신의 생명을 손상시켜 서는 안 된다(4). 사람은 음식 먹는 일에 탐욕을 부리거나 조급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자기보다 열등한 피조물들에게 야만적이거나 잔인해서는 안 된다. 제사법에서 피는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는'(17:11)것으로서 단 위에 뿌려졌다. 이 말은 제물의 생명이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여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제사법이 계속되는 동안 피는 예사로운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었고, 오직 '여호와께 부어져야'했다(삼사 23:16). 그러나 이제는 크고 참된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에 그 제사법을 더 이상 지켜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2)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라'(5). 우리의 생명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우리 마음대로 그것을 끊어 버릴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3) 짐승들이 사람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이 점은 모세 법에 의해서 확정되었다(21:28). 내가 보기에 이 법은 오늘날까지도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이같이 살인죄에 대한 그의 미움을 보이심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를 더욱 미워하게 하시며, 그 죄를 벌할 뿐만 아니라 미리 예방하고자 하셨다.

(4) 고의적인 살인자들은 반드시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곧 이 죄는 여기서 형벌의 두려움으로써 억제되도록 의도되었던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살인자들을 처벌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 혹은 저 세상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숨은 살인자들을 밝혀 내실 것이며 사람의 힘으로써는 처벌하기 힘든 공공연한 살인자들을 처벌하실 것이다. 둘째, 관원들은 마땅히 살인자들을 처벌해야 한다(6). 이러한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일군이 있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이 되고 죄 없는 자들에게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공연히 칼을 가지고 있어서는'안 된다(13:4). 이것은 '여호와께서'왕한테서도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신'죄이다(왕하 24:3,4). 그러므로 왕은 자기 백성이 이런 죄를 지으면 용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법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처음에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그의 창조주를 따라 지어진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 영광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을 멸시하지 말자. 타락한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부당하게 사람을 죽이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하나님께 욕을 끼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계와 언약을 세우심 9:8-11

1.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계에서 세우신 언약과 그 언약의 범위(8-10)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게도 언약의 방법으로써 사람과 관계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 언약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의무와 복종을 크게 장려하신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우시는 모든 언약은 하나님 자신이 제안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세우리니'라고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은 하늘의 기둥이나 땅의 기초보다도 더 확고하게 세워지므로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넷째, 하나님의 언약은 계약자들과 또한 그들의 후손과 더불어 세워진다. 곧 그 약속은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미친다.

2. 이 언약의 특별한 의도(11)

이 언약은 또 다른 홍수로부터 세상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었다. 다시는 모든 생활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그 이후로 세상이 홍수에 잠긴 적은 이제까지 결코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세상을 개선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때문이다. 옛 세상이 파멸되어 공의의 기념비가 되었듯이 이 세상은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54:9)는 하나님의 맹세에 의한 긍휼의 기념비로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바다가 매일 두 번씩 몇 시간 동안 밀려오듯이 단 며칠만 육지로 흘러넘친다면 세상을 얼마나 황폐시키겠는가! 그러므로 언약을 하시는 가운데에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서, 약속을 이행하시는 데에서 보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 언약의 증거 9:12-17

사람들은 계약을 체결할 때 대개 그 계약 문서에 날인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6:17)증거로써 언약을 보증하셨다. 이 자연에 대한 언약의 보증은 자연적인 것이면 충분하였다. 그것은 '무지개'였다. 이 언약의 보증에 관해서 다음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이 증거는 그 약속의 진실성을 되풀이하여 확언하는 말에 첨가되었다. 곧 이 증거는 그 언약에 대한 비준으로 의도된 것이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며(13.14). 이는 그것을 보는 자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고 신앙을 확증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언약의 증거(12.13)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언약의 증거(12.13)가 될 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15). 둘째, 무지개는 구름이 비를 막 내리려 할 때와 비가 다 온 후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비가 아주 많이 올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무지개로써 우리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신다. 셋째, 구름이 짙으면 짙을수록 무지개는 구름 속에서 더욱더 밝게 빛난다. 이와 같이 고난이 우리를 위협하면 할수록 우리를 격려하는 위로는 더욱더 넘친다(고후 1:5). 넷째, 무지개는 하늘의 한쪽 편이 맑을 때 나타난다. 이 사실은 긍휼이 진노 가운데서 기억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때 구름은 마치 무지개로 둘러싸이는 형국이 되어 하늘 가득히 퍼지지 못하게 된다. 무지개는 빗방울이 채색되었거나 구름의 끝 부분에 빛이 입혀진 것이다. 활은 공포감을 준다. 그러나 이 활(무지개)은 줄도 없고 살도 없고 활만 하지고서는 아무 일도 못 할 것이다. 이 무지개는 활이다. 그러나 그 활은 땅을 향하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언약의 증거는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주 위해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 노아의 죄와 함의 불손 9:18-23

1. 노아의 가정과 직업(18,19)

노아가 열심히 종사한 일은 '농부'의 일이었다. 농부란 히브리어로 '땅의 사람'이란 뜻으로서, 땅을 취급하는 사람, 곧 손으로 땅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노아는 땅의 소산물로 장사했었다. 그는 '농업을 시작하였다.' 즉 이 말은 그가 처음에는 방주를 짓는 일로 그리고 후에는 아마도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마른땅에 집을 짓는 일로 그만두었던 옛 직업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한 동안 구는 목수 일을 해왔으나 이제는 다시 농부로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2. 노아의 죄와 수치(20,21)

포도나무를 심었더니(20). 그리고 포도를 수확했을 때 아마도 그는 그날을 자기 가정의 잔치날로 정하고 그의 포도원이 커진 것뿐 아니라 그의 가족이 불어난 것을 함께 기뻐하기 위해 자기 아들들과 손자들을 불러모았던 것 같다. 또 그는 잔치가 끝날 무렵에 가서는 아들들에게 축복을 베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잔치날 는 '포도주를 마셨다.'그러나 그는 너무 무절제하게 마셨기 때문에 '취하고' 말았다. 그가 어떻게 이러한 과실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유의하라. 그것은 그의 죄치고는 아주 큰 죄였으며 그렇게 큰 구원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범하였다는 점에서 더욱더 악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두셔서 그의 이 같은 실수가 기록에 남게 하셨으니 그것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1) 아담의 타락 이후 아무리 순전한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기록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오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2) 신중함과 굳은 결의를 지니고서 하나님의 은혜로 시험 가운데서 자신의 순전함을 지킨 사람들도 때로는 시험의 때가 지나갔을 때 안심과 부주의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함으로 인해서 창졸간에 죄에 빠져들곤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한 것을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노아의 죄 지은 결과는 수치였다. 그는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의 아담처럼 벌거벗음으로 인해 수치를 당했다. 여기서 술 취하는 죄가 얼마나 악한가를 살펴보자. 첫째, 술 취함은 사람들로 본색을 드러내게 한다. 즉 사람들은 술 취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약점을 무심코 드러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은밀히 간직하고 있는 비밀들조차 쉽게 쏟아낸다. 둘째, 술취함은 사람들로 망신과 멸시를 당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술 취했을 때 사람들은 정신이 말짱할 때는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워할 일들을 말하거나 행동하기 때문이다(2:15,16)

3. 함의 불손과 불경건(22)

그는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제에게 고하였다'(22).

(1) 그는 그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았다. 어쩌면 함 자신도 때때로 술에 취한 적이 있었을 듯싶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잘못 발을 내디디는 것을 보기를 즐거워한다. 그러나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2)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의 형제들에게 천하게 보이도록 아주 비웃는 태도로 '그들에게 고하였다.' 죄를 희롱하는 것은 아주 그릇된 일이다(14:9). 또한 어떤 사람의 잘못을, 특별히 우리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부모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4. 가엾은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는 셈과 야벳의 경건한 행위(23)

여기 모든 사람의 허물을 덮은 사랑의 외투가 있다(벧전 4:8). 또한 부모의 허물을 덮은 존경의 의복이 있다.

V. 아들들에 대한 노아의 축복 9:24-27

(1) 노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가 술이 깨었다.'

(2) 임종을 앞둔 야곱처럼 예언의 영이 그에게 임하자 노아는 장차 아들들에게 일어날 일을 말한다(49:1).

1)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고한다(25). 이렇게 가나안에 대한 저주를 통해서 함 자신이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에 대한 특별한 저주는 '그가 종들의 종이 되며'(즉 가장 비천하고 비열한 종이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 형제의 종이 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점을 유의하자.

하나님은 종종, 자식들이 아비의 악한 성향을 물려받아 아비의 악한 행실을 본받고, 저주를 상속하지 않기 위해서 전혀 애쓰지 않을 때 아비의 죄악을 그 자식에게 물려주시곤 한다.

다른 사람들을 망신시키는 자들, 특별히 자기 부모를 부끄럽게 하고 슬프게 하는 자들이 치욕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노아는 셈과 야벳에게 축복을 빈다.

노아는 셈을 축복한다. 아니 그보다는 그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미한다.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살펴보자.

그는 여호와를 '셈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모든 축복이 바로 이 축복 안에 들어 있다. 이로써 자기 아버지에 대한 셈의 효성은 충분히 보답되었다. 즉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이러한 영광을 그에게 주신 것이다.

그는 셈이 행한 선한 행실에 대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사람들의 선한 행실을 볼 때 우리는 영광을 그들에게 돌리지 말고 '우리' 아버지께 돌려야 한다(5:16).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로 하나님께 쓰인다는 것은 명예요 은총이다.

그는 셈과 그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사실이 온 세계에 증거 되리라는 것을 내다본다.

이 사실은 교회가 셈의 후손 가운데에서 세워지고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아주 오랫동안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고백해 온 백성인 유대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아는 야벳을 축복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그의 후손들이 살 게 될 '이방의 섬들'을 축복한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27). 어떤 사람들은 이 축복을 전적으로 야벳에게 속한 것으로 보며 그것이 다음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의 외적인 번영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의 수가 많아지고 막강해져서 셈의 장막의 주인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셈족 중의 가장 탁월한 민족인 유대 백성들이 야벳의 후손들과 헬라인과 로마인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백성이 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니면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이때 우리는 그 구절을 '하나님이 야벳을 권유하사'(실제로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다)라고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가 그 권유를 받아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되리라,'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의 우리 안에서 함께 연합할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스스로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은 강압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권유함으로써 되는 일이다(110:3). 그들은 이성으로 권고함을 받아 신앙에 이르게 된다.

. 노아의 연수와 죽음 9:28-29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첫째, 하나님께서 노아를 장수케 하셨다. 이러한 장수는 그의 탁월한 믿음에 대한 보상이며 이 세상에 대해서는 커다란 축복이었다. 둘째,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생명을 종결시키셨다. 노아는 살면서 두 세계를 보았다. 그러나 죽었을 때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후사가 되어 그 두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기 위해 떠나갔다.

[민수기 11장 설교말씀] 다베라와 기브롯핫다아와 사건(민 1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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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장 설교말씀은 다베라와 기브롯핫다아와의 사건에 대해서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는데 불평했고 메추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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