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출애굽기 3:3-5)

복음의 능력 2024. 3. 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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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 중에서 구약을 사용한 복음 설교에서 출애굽기를 배경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대하면서 구속사 관점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발견하여 선포하는 것이 목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목사는 구약에 무슨 예수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분이며 이 세상을 창조할 때도 계셨던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구약에 없다면 성경을 기록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선포하여 성도가 구원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출애굽기 3:3-5]

 

제가 이 사건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 사건이 우리 주요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전체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위대한 교훈이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주 특별한 교훈 한 가지를 특이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복음에 접근할 때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복음 자체보다도 그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복음에 접근하는 방법, 즉 그 자세입니다.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니 그 외의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나오는 모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매일매일의 일과와 과업들을 수행하려고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을 것이요 또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모세가 이 타는 가시떨기나무에 사로잡혔던 것처럼-아주 평범한 오후였지만 가장 평범한 그 일과 속에서 어떤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그 뜻하지 않았던 일은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서서히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한 일은 이런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지만 그로 인해 회심까지 체험하게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지금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 대다수의 문제는 바로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 삼자 적인 자세로 성경을 조사하는 단순한 조사원이나 검사관이라면, 여러분은 절대 성경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호기심이나 불러일으키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사색하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그분을 연구 조사해 보십시오. 그러나 진노 안에서밖에는 하나님을 절대 알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그의 생명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 그렇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단계입니다.

왜 나 자신을 순복시킴으로써 접근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설교할 특권을 누리고 잇는 이 복음은 주로 계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가지 나오는 전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찾아오시는 하나님, 갑자기 침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 주어진 계시가 기이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 이제 보다 더 중요한 다음 요점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 복음의 전체 요점과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는 가시떨기나무,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일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불꽃이 아닌 한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에서 신을 벗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시키는 것,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지식-그것이 기독교 신앙과 그 놀라운 구원의 제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신학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위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이 기독교 복음은 어떤 관념이나 도덕 및 윤리에 관한 행동 원리와 관련이 잇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과 그 메시지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체험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성경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체험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영적 체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신을 벗고 순복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게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분을 "거룩하신 아버지"락 불렀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것 말고 도 첨언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메시지를 듣기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3: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대면하고 잇는 그 문제는 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이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8절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당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당,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하노라." "내가 내려와서 건져낸다"-얼마나 완전한 말씀입니까? 제가 처음부터 우리는 구약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것이 신약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성삼위 하나님의 복되신 두 번째 위격이십니다. 그 성자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여러분과 저의 고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위 조사와 검사라는 제삼자적인 객관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단순히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이것을 절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대로 죄의 노예로 남아 있을 것이요,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마침내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멈춰 서서 듣기만 하십시오. 여러분 발에서 신을 벗고, 자신의 지적인 교만을 버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낮추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사람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죄와 사탄과 악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 손으로 여러분을 잡아 마침내 흠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주실 것이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유일한 설명[3:8-9]

우리는 지금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중 하나인 창세기 3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장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가르치고 잇는 교리가 성경 전체의 중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창세기 3장에 나와 잇는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고 잇는 이 세상이 오늘날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곡 필요해진 이유를 보여 줍니다. 3장은 인간과 이 세상이 이렇게 잘못된 이유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꼭 내려오셔야만 했던 절대적인 이유에 대해 말해 줍니다.

문제는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창세기 3, 특히 인간에게 던져진 첫 번째 질문-"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을 공부해 가면서 이 질문 전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상 상태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주 흥미 있는 일이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은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에 불과하며, 이 세상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바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개개인의 상태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세상"이라 불리는 어떤 것으로 분리해 놓고는, 이 세상은 곧 우리 자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주제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성경이라 부르는 이 책 속에 소상히 설명되어 있는 대로의 견해요, 또 다른 하나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견해들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다른 모든 견해들은 진화 과정에 대한 일반적 신념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점과 본질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는 우리에게 주고 잇습니다.

창조 이전에 일종의 우주적인 타락?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생의 모습이, 그다음에는 타락한 후 변화된 인생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함께 고려하고 있는 그 입장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과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경이 이 두 가지 모습만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전자가 후자로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고 잇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소위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려 줍니다. 성경의 철학은 다음 두 가지 표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문제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둘째,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3장이 선포하고 잇는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겪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명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모두 다 죄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죄가 발생한 첫 번째 비극을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이 세상의 비극은 인간이 이와 똑같은 실수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우리가 아담이 그렇게 불행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이 오늘과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된 이유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들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생각입니다. 여기 하나님에 의해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어 완전한 주변 환경과 여건 속에 놓이게 된 인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계속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생기는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라고 명하신 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급히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무엇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행복하십니까? 우리의 문제는 아담이 오래전에 범한 이 오류를 우리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책에 비추어 인생을 직면하는 대신 인간의 생각들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문제는 환경 탓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철학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이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피해 나무 뒤로 숨어 버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가 이런 자기 성찰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계속적으로 고통당하는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심판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직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책임 잇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속성 중 일부를 인간에게 주셨기 대문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대문에 그를 법 아래 두셨고 그에게 책임을 물으셨으며 심판이 있을 거라고 공표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그렇게 비참한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그 대답은 번합니다!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비극은 인간이 그 고통과 비참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오히려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심판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자-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그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모든 비극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입니다. 그럼 누가 이런 인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설교 말씀] 예수님은 흥하고 세례 요한은 쇠하리라(요 3: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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