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6편 히브리어 원어성경 강해설교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길을 자기에게 보여주셔서 주님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인생을 살면 영혼이 기뻐하고 육체가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찬양(시 16:1-11)
성 경: [시16:1] 미케탐 레다비드 솨메레니 엘 키 하시티 바크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 다윗은 보호를 위한 간구로써 본시를 시작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그가 특별한 위기 중에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9-11절에서 죽음(음부)의 위기로 더욱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주께 피하나이다 -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저자의 확신을 보여준다. 여기서 '피하나이다'는 완료형으로서 이는 그가 새롭게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다(Lange).
성 경: [시16:2] 아마르트 라아도나이 아도나이 아타 토바티 발 알레이카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 '내가...아뢰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테'는 문법상 2인칭 동사이다. 그러므로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당신이...아뢰되'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이 주석가들은 '타우' 뒤에 '요드'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본 동사가 본래 1인칭 형태인 '아마르티'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70인역(LXX)도 이런 동사의 형태로 번역했다.
주는 나의 주시오니 - 문자적으로 이는 '당신은 나의 주시오니'이다. '나의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이며 이는 '주인'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 말은 종을 부리는 주인을 가리킨다(창24:9). 따라서 이말은 '내가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한편, 본시 저자가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된 데는 특별히 배경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저자는 그 주위의 우상을 섬기는 자(4절의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로부터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라는 유혹의 말 또는 혐오스러운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우상을 섬기는 자는 여호와를 모르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여호와를 알면서도 다른 신을 섬기는 혼합주의자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그의 견고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 저자는 참된 행복이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확신했다(Kraus, Hengstenberg). 이러한 확신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9절) 저자는 유혹자들에게 큰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확신의 말은 저자가 십계명 중 제1계명을 굳게 지켰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불 수도 있다(Kraus, Craigie).
성 경: [시16:3] 리케도쉼 아쎄르 바아레츠 헴마 베아디레 콜 헤프치 밤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 '땅에 있는 성도'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 또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의미한다(Kidner, Kraus). 그리고 여기서 '존귀한 자'란 이 세상의 권세나 영화를 누리는 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신령한 세계에서 영광과 존귀를 차지하는 자를 말한다(Delitzsch)
성 경: [시16:4] 이르부 아체보탐 아헤르 마하루 발 아시크 니세케헴 미담 우발 에사 에트 쉐모탐 알 세파타이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 혼합주의자들은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에게도 예물을 드렸다. 이것은 제1계명을 범한 행위이므로 형벌이 저들에게 임하여 영육 간의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奠祭)를 드리지 아니하며 - 여기서 '피의 전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 구절에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혹자는 이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피 흘리는 살인적 행위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Briggs). 그러나 본 문맥은 분명히 예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피의 전제'는 사실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Calvin). 따라서 이 '피의 전제'는 이방 종교에서 행해진 하나의 제사 의식으로 제물을 드리는 중에 피를 마시는 의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혹자의 견해대로 어린아이를 제물로 삼아 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Baethgen). 왜냐하면 이스라엘 주변 이방국가에서는 국가신에 대한 제사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 여기서 이름은 물론 이방신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율법은 우상의 이름만이라도 부르지 못하게 금하고 있다(출 23:13;신 12:3). 따라서 다윗은 본 구절을 통해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만 섬기며 그 명령을 준수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성 경: [시16:5] 아도나이 메나트 헬키 베코시 아타 토미크 고랄리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 이는 한마디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다윗의 신앙 고백이다. 이러한 내용의 신앙 고백은 아마도 제사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의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민 18:20). 다윗은 이 약속대로 오직 하나님만 자기의 기업으로 삼은 것이다(Kidner, Rawlinson). 한편, '잔'이란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분복을 상징하는 말이다.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 이 말은 다윗에게 주어진 기업과 잔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말이다.
성 경: [시16:6] 하발림 나펠루 리 바네이밈 아프 나할라트 솨페라 알라이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 혹자는 '아름다운 곳'이 다윗의 거주지였던 예루살렘과 그 근방이라고 주장하나(Rawlinson) 오히려 이는 다윗의 행복한 삶의 경험을 비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Calvin, Craigie). 즉,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자기의 기업을 삼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5절). 이러한 다윗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떠한 환경적 요인을 아름답게 보았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곳'이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땅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신 그의 삶이 행복한 것이었고 이러한 행복한 삶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별하여 정해주신 기업이었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 여기서 '기업'이란 5절에 언급된 산업, 또는 잔의 소득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이 기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성 경: [시16:7] 아바레크 에트 아도나이 아쎄르 예아차니 아프 렐로트 이세루니 킬료타이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아름다운 기업(행복한 삶)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지금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 누려온 이 하나님의 기업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 '훈계'란 말은 바로 하나님의 내적인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칼빈(Calvin)은 이를 '성령의 내적 조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결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한없이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다 - '심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킬랴'는 본래 콩팥을 의미하며(출 29:13,22;레 3:4, 10, 15;4:9;7:4;8:16, 25;9:10, 19) 구약에서는 이곳에서 인간의 영혼의 내면적인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73:21;렘 17:10).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이 밤마다 영감을 받은 사실을 보여준다(Calvin). 한편, 다윗이 밤마다 받은 영감은 감사의 느낌(Rawlinson)과 영원한 즐거움(11절)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의 허영을 밝혀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영적인 깨우침이었을 것이다(Calvin, Kraus).
성 경: [시16:8] 쉬비티 아도나이 레네게디 타미드 키 미미니 발 에모트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항상 임재하여 계신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교제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지속되었을 것이다(119:, Craigie).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항상'이란 표현이다. 이 말은 지금 다윗이 고난 가운데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그는 평안할 때뿐 아니라 고난 받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해 변치 않는 신앙을 유지할 것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Rawlinson, Calvin).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 본구절은 문자적으로 '나의 오른손에'로 번역된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도우실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임재하여 계신다는 말이다(Briggs). 특히 우편은 하나님의 권세를 상징한다(110:5;121:5). 따라서 본구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강력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Kraus).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 가까이 계신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성 경: [시16:9] 라켄 사마흐 리비 바야겔 케보디 아프 베사리 이쉐콘 라베타흐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영광도 즐거워하며 - 이는 앞 구절과 평행대구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영광은 앞 구절의 '마음'과 동의어이다(Briggs, Rawlinson).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 영혼(마음)과 육체는 인간의 구성 요소이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이 기쁨과 안전함으로 충만해 있음을 묘사하기 위해 마음에 이어 육체에 대한 진술로 나아가게 되었다. 즉, 다윗에게 주어진 기업은 영혼만의 기쁨이 아니고 그 육체까지도 행복한 상태로 사는 것이었다. 한편, 본 구절은 다윗이 이제 막 죽음의 위기로부터 구출받았음을 시사해 준다(Craigie).
성 경: [시16:10] 키 로 타아조브 나페쉬 리쉐올 로 티텐 하시드카 리르오트 샤하트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생명', '자신'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본시는 죽음의 위기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출해 달라는 간구의 시이므로 우리는 이 용어를 '생명'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 베드로와 바울은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 성취의 증거로 인용하였다(행 2:25-29;13:35). 혹자는 이에 근거하여 다윗이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며 이 구절을 노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Kidner, Rawlinson).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여 다윗은 다만 죽음의 위기로부터 벗어난 그의 경험을 기술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본시가 부활을 주제로 하는 시가 아니고 죽음의 위기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간구의 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Craigie, Kraus). 여기서 어떤 견해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과연 구약에도 부활에 대한 사상이 존재했는가 라는 사실에 달려 있다.
어렴풋이나마 욥 14:14에서 부활 사상이 발견된다. 그렇다고 부활 사상이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뚜렷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윗은 부활에 대한 사상이 있었기에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다윗은 구약에서 영감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같은 사실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구절이 유혹자들의 말에 대한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앞 절과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두 가지 해석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 즉, 일차적 의미에서는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부활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시16:11] 토디에니 오라흐 하임 쇼바 세마호트 에트 파네이카 네이모트 비미네카 네차흐
주제1: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제2: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 '생명의 길'이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다윗이 다만 이 땅에서 불과 몇 십 년을 살다가 죽는 짧은 생명을 가리켜 '생명의 길'이라고 표현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다. 그는 궁극적인 구원, 곧 부활을 내다보며 이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Calvin, Kidner, Rawlinson).
영원한 즐거움 - 이 즐거움은 세상에서 잠시 잠깐 맛보는 그런 즐거움과는 전혀 다르다. 그는 궁극적으로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있기에 그 부활시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명기 19장 하나님 말씀] 도피성 제도의 규례 말씀(신 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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