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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성경공부 성경말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족장시대

복음의 능력 2024. 11. 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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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성경공부 성경말씀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족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족장시대

 

1. 개 요

창 12-50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네 사람의 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를 가리켜 보통 족장 시대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족장 시대는 단순히 아브라함이라는 평범한 인물로부터 시작되는 한 가문의 역사에 불과하며 또한 등장인물도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을 포함한 그의 12명의 아들이라는 적은 숫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장 시대는 성경에서 어떤 시대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족장 시대야말로 인간의 타락 이후 베일에 가려 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의 역사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족장 시대 이전의 원역사는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좌절과 파멸로 끝맺고 말았다.

그런데 족장 시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받은 민족의 형성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을 맺고 있다. 바로 절망 속에 있는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족장 시대의 중요성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타락과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 남기신 구원의 언약(3:15)이 실제 구원의 대상인 인간에게 주어지고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된 언약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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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족장 시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인물들의 일생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이야기이다. 또한 족장들은 구원의 전체 대상인 모든 인간들의 표상이며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깨닫게 하는 표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주고 있다.

2. 주요 인물

1)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 출신으로 이교적인 생활에 익숙해 있었고 당시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인 우르와 하란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이교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데라가 하란에서 죽은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삶을 언약의 장소인 가나안에서 지냈으며 175세에 죽어 아내 사라가 묻힌 막벨라 굴에 매장되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한마디로 순종과 언약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얻은 후손과 땅의 축복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언약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삶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구속 사건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역사의 현장에서 드디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 증거로 부름 받았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삶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이삭

이삭은 네 명의 족장 중에서 가장 평범한 일생을 산 사람이다. 그래서 이삭에 관한 성경의 기록도 매우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구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그의 출생 때문이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출산할 수 없는 노년에 낳은 아들이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자신의 본처인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는 것을 포기하고 첩 하갈의 몸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통해서 후사를 잇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본처인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시고 적자로 대를 잇게 하셨다. 따라서 그의 출생은 기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은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후손의 번창이라는 약속이 하나님에 의해 실현되고 있음을 증거 하는 언약의 증거였던 것이다. 그 후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였으며 특별한 사건 없이 대부분의 생을 언약의 땅인 가나안에서 살다가 180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그의 삶이 다른 족장들에 비해 평온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의 삶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보여주는 모델과 같다.

3) 야곱

성경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이스라엘의 세 번째 족장인 야곱이다. 그는 끊임없는 범죄와 회개, 그리고 시련과 하나님의 은혜 사이를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는 간계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거짓말로 부모를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챈 자였다. 또한 외삼촌을 속이고 재산을 가로챘으며 평생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그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결국 그는 누구보다 더 많은 축복을 얻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야곱의 생애는 결코 야곱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성격과 노력을 통해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의 편협하고 삐뚤어진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를 후손의 번영에 대한 언약 성취의 지렛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사적인 섭리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는 그의 출생에서 미리 예고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게 쌍둥이를 잉태케 하시면서 이미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창 25:23). 즉 야곱이 에서를 제치고 언약의 적자가 된 것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하셨다는 바울의 예정 신학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통해 이기적이고 거짓으로 가득 찬 그를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도록 인도하셨다.

그의 선택과 구원의 자리까지 견인하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도 야곱도 자신의 노력과 공로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고 그들을 통하여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오던 하나님의 언약이 민족이라는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성취되었던 것이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 시대보다 좀 더 진보하고 확장된 계시의 역사 속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4) 요셉

야곱못지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족장이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으나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를 받고 타국 땅인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비운의 인물이었다. 거기서도 요셉은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인 삶을 살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 당대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의 총리가 되고 기근으로 인한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가족을 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셉의 일생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는 점이다.

정당하지 못한 형제들의 시샘으로 인해 종으로 팔려가고 그곳에서도 온갖 고난을 당하였지만 결국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고 죽음에 처한 가족을 구한 요셉의 모습은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배반을 당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다. 둘째는 세속사까지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까지 구속 계시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전까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섭리하시고 구원 공동체의 기초를 마련하신 하나님께서 애굽이라는 당대 최강의 나라까지 동원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거대한 선민 공동체를 만드시려는 계획을 시작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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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나님의 섭리 영역이 자기 백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애굽으로 대표되는 세속사 전체를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역사가 구속사를 향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야곱이라는 개인의 가족 단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단위로 확대되는 매개 역할을 하며 후손의 축복에서 땅의 축복이라는 새로운 언약의 성취를 드러내는 시작점이 되었다.

3. 주요 사건

1) 아브라함을 부르심

바벨탑 사건으로 끝이 나는 원역사에 이어 족장시대를 연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에 이어 인간과 행위언약을 맺음으로 시작되는 인류의 역사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족장시대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는 행위언약으로 시작된 원역사가 인간에 의해 완전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행위언약을 파기되었고 그 후 아벨의 후사로 주신 셋의 자손들마저 가인의 후예들과 동화되어 버렸고 그 결과 홍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인류를 보전하셨다. 하지만 번성한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 바벨탑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언어와 민족이 분열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었던 것이다.

2) 이삭의 출생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함으로 땅의 축복은 그 모습을 어렴풋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는 후손은 축복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본처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메섹의 엘리에셀과 첩인 하갈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통해 후사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100세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적자인 이삭을 주셨다. 이는 적서차별의 사회제도에 따라서 적자인 이삭으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혈통으로부터 하나님의 혈통, 즉 언약의 적자를 구별하여 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세상의 혈통으로부터 언약의 백성을 구별하고 구원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언약의 성취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생산이 불가능한 100세의 나이에 이삭을 출생하게 하신 것이다. 언약 백성의 구원과 전권적인 하나님의 언약 성취가 바로 이삭의 출생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3) 야곱과 에서의 출생

서자인 이스마엘로부터 이삭을 분리시키고 그를 언약의 적자로 세우신 사건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의 세력과 하나님을 좇는 구원 백성들과의 분리라는 구속사의 근본적인 목적과 흐름을 계시하고 있다면 야곱과 에서의 출생은 선택과 유기라는 구원의 기준을 계시하는 사건이다. 사실 야곱이나 에서는 둘 다 이삭의 적손이며 특히 에서는 장자의 혈통 계승권을 중시하는 고대 근동에서 당연히 가계를 계승해야 할 장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혈통은 야곱이 잇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야곱의 간사한 행동이 있었지만 그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버리셨다.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야곱과 에서 개인의 자질이나 행동은 어떤 기준도 되지 못하였다. 단지 하나님의 결정만이 유효하였다. 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이고 택하심은 창세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바울의 예정교리는 이미 야곱과 에서의 출생 속에 계시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신의 주권을 만민에게 선포하신 것이다.

4)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발견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정착하고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이 벧엘이었다(12:8). 그런데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은 벧엘에서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온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35:1) 야곱은 여기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단을 쌓았으며 벧엘에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꿔 주셨다(35:15).

벧엘이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곳이 하니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벧엘은 이방종교와 같이 특별한 효험을 지닌 신성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건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며 그의 도우심이었고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계심을 보여주셨다. 이와 같이 벧엘에서 야곱이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곳이든지 언제든지 자기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4. 일반 세계사와의 관계

1) 정치, 경제적인 관계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족장시대는 b.c 2200-120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리고 족장들이 활동하던 무대는 주로 고대 근동, 즉 오늘날의 팔레스틴을 중심 한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집트까지 포함한다. 당시 세계는 중국의 황하와 인도의 갠지스,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애굽의 나일 문명이라는 네 개의 거대한 문명이 지배하고 있었다. 족장시대는 그중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애굽 문명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족장시대를 연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는 원래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반달 지역이라는 곳에 위치한 고대 도시였다. 이곳은 매우 발전된 곳으로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태어나면서부터 발전된 문화와 풍요한 경제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던 것이다. 이후로 족장들은 주로 팔레스틴과 애굽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당시 팔레스틴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지중해 건너편에서 건너온 블레셋 족속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이미 독자적인 세력이 아니라 애굽이라는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 정치적인 간섭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강대한 국가가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으로 초기의 유목 생활에서 어느 정도 정착 생활을 이룩하고 있었다. 특히 보리와 밀, 포도주, 올리브기름 등의 농업에 적합한 팔레스틴의 토질과 기후로 인해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양, 염소, 돼지, 소 등이 사육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멀리 타국 땅에서 온 히브리 민족이 그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방어도 용병이나 소규모의 자체 군사력에 의존하던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그들은 새로움 위협을 가져왔고 자신들의 농업 기반을 잠식하는 경제적인 경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장들은 항상 주위의 가나안 주민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농업을 통한 정착 문화를 지니지 못한 유목민인 히브리인의 특성상 한 곳에서 정착하기가 어렵기도 하였다.

그래서 족장들은 팔레스틴 내에서도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족장시대 말기에 히브리인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애굽이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과 팔레스틴 일대에 발생한 기근을 계기로 히브리인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언약대로 수백만의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는 터를 잡았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당시 애굽에서 발생한 정치적인 변화 때문이다. 즉 애굽은 토착민이 아니라 북방에서 침략한 힉소스족에 의해 정복되고 새로운 왕조가 건설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힉소스 왕조는 셈족 계통이었다.

그래서 같은 셈족 출신인 요셉이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총리로 등용될 수 있었고 히브리인들이 애굽 땅에서 원주민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세계를 다스리던 애굽으로서는 소수 민족인 히브리인들의 성장에 대해 별다른 위협거리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소규모의 민족들이 할거하고 있는 팔레스틴의 정치적 특성상 히브리인들이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이런 점에서 야곱 가족의 애굽으로의 이주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2) 종교, 문화적인 관계

족장시대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은 다른 곳에 비해 문화적으로 일찍 발달하였다. 이는 당시의 세계 문화를 주도하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고도 질적으로 우수하였다. 이 당시에 이미 발달된 청동기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며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왕국의 영향으로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지정학적인 특성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양대 세력으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자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팔레스틴에는 거대한 민족국가가 아니라 소수 부족국가 형태가 발달되었던 것이다. 한편 상업과 더불어 농업이 매우 발달하였다. 이때는 이미 유목 생활에서 좀 더 발달된 정착 문화로 전환되었고 따라서 농업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농업이 발달하면서 동시에 발달한 것이 바로 팔레스틴의 종교이다. 농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이다. 오늘날과 같이 현대화된 수리 시설이 없는 당시로서는 전적으로 하늘의 기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연중 강우량이 많지 않은 팔레스틴의 기후상 파종과 수확의 시기에 적절한 비가 내리는 것은 한 해의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팔레스틴 족속들은 종교를 만들고 신을 섬기며 풍산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팔레스틴의 많은 부족들이 저마다 신을 섬겼지만 주로 바알과 같이 폭풍과 비를 주관하는 신을 섬긴 것은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팔레스틴의 종교를 살펴보면 최고의 신은 엘(El)로서 모든 신들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 엘신의 아내는 아세라 여신이었다. 성경에는 아세라 목상 또는 아세라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세라를 표시하는 것이 나무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창21:33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물론 아세라를 섬긴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 우르 지역에서 성장한 문화적인 습성상 자연스럽게 여호와를 상징하기 위해 거룩한 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틴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바로 바알이다. 바알은 엘신의 아들이며 후계자로 모든 신들을 다스리는 왕이며 하늘의 주라고 불렸다. 그리고 바알은 하늘의 비와 땅의 폭풍을 주관하는 신으로 섬김을 받았다. 이런 기후와 관계된 특성상 가장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세라와 더불어 삼대 여신으로 불리는 아낫과 아스다롯 여신이 있다. 이 중에서 아스다롯은 미와 유연성과 성적 매력을 상징하고 아낫은 정열과 흥분을 보여 준다고 한다. 따라서 바알과 삼대 여신의 숭배는 농업과 더불어 노동력의 원천인 자식 생산의 풍요를 기원하는 팔레스틴 족속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상 이들이 신들에게 제사 지낼 때 성적인 요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즉 신의 축복을 얻기 위해 풍성한 수확과 다산을 상징하는 성적 교합을 시행함으로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들의 기원을 신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외에 어린아이를 불에 태워 제사를 드리는 암몬 족속의 몰렉 숭배가 있었다. 이와 같이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팔레스틴의 다신 숭배는 여호와 유일 신앙을 고집하는 히브리인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켰고 성적 타락 또한 도덕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히브리인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팔레스틴에서 히브리인들은 영원히 외톨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교, 문화적인 갈등은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사방의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소수 민족 히브리인들에게 여호와는 유일한 보호자였던 것이다.

5. 구속사에서의 위치

성경이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전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족장시대는 구속의 문을 여는 출발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에 기록된 원역사가 인간의 기원과 타락을 보여주고 있다면 족장시대는 성경의 원목적인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시를 역사 속에서 직접 보여준 최초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원역사의 기록 목적도 하나님의 구속 계시 선포의 정당성과 필연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족장시대를 시작하는 첫 사건이 이방 땅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을 주신 것임은 족장시대의 구속사적 의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타락 사건에서 암시된 구원의 언약이 구원의 대상자인 인간의 눈앞에서 실제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모든 현상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구속 계시가 역사 속에서 직접 나타났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은혜 언약이 사실임을 증거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 행위 언약을 파기한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최초의 계약은 인간 스스로 파기하였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단지 유일한 희망이라면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암시적인 언약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언약의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다. 오히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도전하였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한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경험하였고 노아의 홍수라는 전대미문의 심판을 경험하고 말았다. 인간의 남은 운명은 하나님의 선포하신 대로 죽음과 멸망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간을 부르시고 그에게 직접 구원의 언약을 제시하시고 그를 통한 전 인류의 구원이라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행위는 비로소 과거의 은혜 언약을 회상하게 하였고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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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족장시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는 사실상 구원에 관계된 모든 섭리의 형태와 원리에 대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구원에 동참하는 모든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전권적인 부르심을 계시하고 있으며 각 족장들의 삶을 계획하시고 여건을 조성하셔서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그들만이 아니라 전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고 그의 뜻대로 결국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최종적인 승리와 축복으로 종결되는 족장들의 삶의 기록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최종적인 승리와 구원에 관한 확신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완전한 계시의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오심까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근본적인 면에서는 모든 것이 계시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족장시대는 죄로 덮여 있는 암울한 인간 역사 위에 하나님의 찬란한 구원의 서광이 비취는 구속사의 문을 여는 선구자적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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