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에스더 5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대 전환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 전환점
에스더 5:1-6:14
3일 동안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금식기도를 한 에스더는 드디어 왕후의 의복을 갖추고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왕이 오라고 하기 전에 누구든지 어전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으면, 왕후든지 왕의 심복이든지 왕의 자식이라도 생명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았습니다.
왕이 에스더를 만난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에스더를 부르지 않았고, 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제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해있는 자기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금식 기도한 다음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왕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에스더의 위대함을 우리가 잠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위대한 여성이다. 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자연이 스며듭니다.
인간의 마음은 매우 간가한 것입니다. 더욱이 에스더와 같이 아주 신분이 낮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높은 위치에 올라앉아서 세상이 누릴 수 있는 영화와 영광을 다 누리기 시작하면 인간은 마음은 삽시간에 변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지가 몇 년이지요? 부모도 없이 태어나고, 나라도 없는 포로의 신세였습니다. 한마디로 장래의 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그저 인물이 좀 잘 났다는 것 때문에 대제국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그가 받았는데 기간이 얼마나 지났지요. 이제 6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화된 상황에 한 6년 동안 몸을 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도 변하고, 신앙적으로도 변하고, 사고로도 변하고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기가 십중팔구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변에 가난하게 살다가 갑자기 큰 집을 짓고 살게 되면 그 사람이 2년이 안되어서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아실 거예요. 말하는 투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심지어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사는 모습은 더 말할 것 없이 달라져 버립니다.
저 말단 공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어떤 백에 의지해 가지고 장관 자리에나 앉아 보세요. 그 사람 걸음걸이가 어떻게 달라지나. 인간은 정말 간사한 존잽니다. 그러므로 환경에 따라서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때에 가보아야 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냘픈 여성, 교육 수준도 대단한 것이 아니고, 그런 가냘픈 여자가 대제국 페르시아의 호화로운 궁중에서 시녀들을 거느리고 살았으면, 벌써 과거에 가졌던 신앙!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과거에 모르드개에게 가졌던 존경심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과거에 자기 민족에게 대한 참, 뜨거운 애착이나 애국심이 그에 마음속에 고요히 타고 있을까? 하고 물으면 아무도 마음을 열어 보기 전에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생명을 걸고 왕 앞에 서는 에스더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이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에스더가 갖는 위대한 점입니다. 포로 시대에 이런 환경에 전혀 변화를 받지 아니하고, 도도하게 자기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자기 인격을 지키고, 자기 민족을 사랑한 사람을 뽑으라면, 남자 중에서는 다니엘을 뽑을 수 있고, 여자 중에서는 에스더를 뽑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쌍벽이에요.
이렇게 정신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아 있으니, 자기 자신의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언제인가를 금방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를 금방 알아차렸으면, 자기가 이때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인가를 주저하지 아니하고, 바로 발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영적으로 어두워 있고, 정신적으로 부패해 있다면 에스더와 같은 이런 결단을 당장 내릴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이렇게 선명하게 찾아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의 그 지시를 과거와 같이 그대로 따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이와 같은 에스더의 모습에서 우리가 마음으로 깊이 결심하고 한 가지 마음으로 기도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 아무리 우리 주변에 문화와 주변 여건이, 또 사상의 조류가 변한다 할지라도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서는 나의 자세는 조금도 속화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부를 때 항상 준비된 사람, 위급한 일을 만나 인물을 찾으실 때에 하나님이 제일 먼저 찾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 자신이 다시 한번 다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에스더와 같은 고매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실까요? 이점을 우리가 우선적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왕 앞에 서는 에스더를 통해서 다시 한번 발견하고 우리 자신이 에스더와 비교할 때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를 찾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회개하고, 흩트러진 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좀 잘 사고, 좀 배부르다고 해서 해이해진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채찍질해서 다시 세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입니까?
에스더가 이제 어전에 섰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궁궐입니다. 저 문 앞에 에스더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왕이 저 멀리 보이는 에스더를 보았을 때에 왕이 보니까 심이 사랑스러웠는지라.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아마 왕이 왕비를 간택할 때, 많은 처녀들을 만날 때에 에스더에게 홀딱 빠졌던 것 같은 과거의 첫사랑이 아마 피어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운 여건이 아니에요. 사흘 동안 굶고 나온 여자가 무엇이 그렇게 사랑스럽겠어요. 거기에다가 지금은 어디에서 칼이 날아와 목을 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잔뜩 속으로 떨며 긴장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리가 있습니까? 이렇게 여건을 보면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는데, 왕이 그날따라 보니, 심히 아름다운지라고 했습니다. 왕의 눈에 무엇이 하나 씌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것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누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역사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것을 일컬어서 섭리라고 그럽니다. 3일 동안 백성과 함께 금식하고 나온 에스더! 그 에스더를 바라보는 왕의 눈을 하나님이 그냥 둘리가 없지요. 무엇인가 홀딱 빠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까, 정신없이 빠지도록 섭리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얼마나 빠졌는지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했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나라의 절반까지도 떼어 주겠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과장법입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신약에도 이런 말을 썼던 사람이 있지요. 헤롯이라는 못된 왕이 딸의 춤을 보고, 너무 좋아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해서는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오게 하지요. 아무튼 아하수에로 왕이 굉장히 마음이 기뻐서 에스더를 끌어다가 자기 옆에 앉히고 나라의 절반까지 주겠다고 말합니다.
잠언 21: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요, 바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실 수 있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통치자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저 도랑의 물이 농부의 손에 의해서 마음대로 이리저리 흐르듯이 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신다는 말입니다. 자, 이것이 얼마나 진립니까? 지금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꽉 쥐시고, 에스더와 그의 민족을 위해서 아하수에로 왕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지요.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이 쥐고 계시는 줄 모릅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정치가들, 권세자들이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요. 그러나 대통령의 마음을 누가 쥐고 있습니까? 우리의 김대통령의 마음도 하나님이 쥐고 계신 것을 믿습니까? 북한의 김 씨의 마음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을 믿습니까? 미국의 대통령도 누가 움직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어떤 때는 암담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걱정도 합니다마는, 참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 이 사람들의 마음이 누구의 손에 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있구나.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나라의 정치를 맡은 사람을 위해서 여유 있게 기도해 줄 수 있고, 거기서 한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하수에로 왕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그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6장 1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밤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우연입니까? 천만에요.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에 의해서 잠을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궁중 일기를 읽게 하는데, 또 하필이면 모르드개 사건이 거기서 나올 것이 무엇입니까? 너무나 정확하게 하나님이 섭리를 하셔서, 한 가지 목적을 향해 하나하나 발을 내딛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배후의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 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때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여러분의 생에 큰 전환기를 가져다 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차를 타려다가 시간이 늦어서 차를 놓친 것이 그 사람의 생에 결정적인 어떤 돌파구를 열어 주는 계기도 인간사회에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몸이 아픈 것이 뜻하지 않는 생의 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에서는 偶然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립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고, 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나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걸음걸음 하나라도 헛되게 쓸데없이 의미 없이 내딛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아하수에로 왕, 우리가 만나는 세상 사람의 일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 여러분이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확신을 갖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에스더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지 않습니까? 왕이 자기를 기가 막히게 좋아하지요. 나라의 절반까지도 떼어 주겠다고 하니까 입만 열어서 자기의 소원을 말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이 때다 싶어 가지고 생각도 안 해 보았던 말까지 다 쏟아 놓겠지요.
에스더가 웬만한 여자들 같으면, 왕이여, 날 좀 살려 주시요. 내 민족 좀 구원해 주시요. 하고 그냥 뿌리를 뽑으려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에스더의 태도는 좀 다릅니다. 어떻게 하나요? 잔치에 초대를 합니다. 이미 잔치는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에스더는 믿음과 센스가 있는 여자였습니다. 왕이 설마 자기를 죽이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잔치 준비까지 철저히 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왕과 함께 하만을 데리고 오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그날 왕이 하만과 함께 왕비의 초대에 응합니다.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지자, 또 한 번의 소청이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에스더는 그 좋은 기회를 또 뒤로 미룹니다. 미루고는 왕이여 다음날 다시 한번 와 달라고 청합니다.
여러분, 참 여기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비상한 지혜를 주신 것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지금 왕과 하만의 관계는 굉장히 밀착된 관곕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지만, 이것은 웬만한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 수 없을 만큼, 깊이 밀착되어 있는 관곕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에스더가 왕이 마음이 좀 너그러워졌다고 말하라는 대로, 왕이여, 날 좀 살려 주십시오. 저 못된 하만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저 놈을 혼내 주십시오. 했다면 왕이 그 시간에 뭐라고 했을까요? 「아, 그러냐? 내가 하만을 데려다가 조사를 해 보겠다.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걱정 말아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후를 안심시키고 들여보낸 다음에 하만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네가 어떻게 이런 음모를 꾸몄느냐?」하면 그 여우 같은 하만이 호락호락 넘어가겠습니까? 왕의 마음을 얼마든지 뒤집어 놓을 만큼 달변을 가지고 왕을 설득시키고 남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거기다가 왕이 어인을 찍어서 공포한 법이 아닙니까? 어찌 감히 왕이라고 그것을 변개할 수 있습니까? 하고 나오면 왕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을 끄려다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가 있지요. 다리오 왕이 간신들의 꾀에 넘어가서는 우상을 세워서 절하라고 하는 잘못된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에 누가 걸렸습니까? 자기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 다니엘이 걸렸습니다. 다니엘을 구하려고 법을 바꾸려고 하니까 신하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할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만이 혼자 와서 왕과 만났다고 하면 에스더의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가 없습니다. 이건 상식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비상한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무슨 지혜를 주었느냐?
왕과 하만의 마음을 떼어 놓는 방법을 사용하게 하십니다.
처음에 4절을 보니까 오늘 내가 왕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이여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 했습니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왕은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하만이 워낙 중요한 위치에 있는 신하고, 내가 총애하는 신하니까 에스더 왕후가 하만을 같이 데리고 오라고 하는가 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속이 좁고 못된 왕 같으면 「한 달 만에 만나서 기분이 좋은데, 왜 하만은 데리고 오라고 할까?」 속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러나 일단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하만을 데리고 왕비의 궁에 가서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잔치에 초대할 때는 8절을 봅니다. 왕과 하만을 위해서 잔치를 베 풀겠습니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왕과 하만을 위한 잔치를 베풀겠다고 초청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 여러분, 왕의 마음이 편안할까요? 불편할까요?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어떤 분위기를 에스더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뭐 나쁘게 말하면 「에스더가 하만에게 마음이 있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왕의 생각에는 「야. 이거 내가 하만을 너무 높여 놓았구나. 너무 하만을 키워 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에스더가 조성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만을 다음날 데리고 오기로 했지요. 그리고 왕은 하만을 또 청하니까? 은근히 마음 한구석에 좀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에 결정적으로 못을 박아 버린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이제 내일 잔치에 또 나갑니다. 하만은 집에 가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아내와 친구들에게 자기의 영화와 왕과 왕비와의 긴밀한 관계를 떠벌립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 판에 모르드개가 눈 앞에 어른 거리니까 그를 죽이려고 장대까지 높이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필이면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일기책을 꺼내 읽게 하고, 모르드개가 한 번은 왕을 죽이려고 두 신하의 음모를 미리 알고 정보를 알려서 왕이 위기를 면했다고 하는 2장에서 나왔던 사건을 알게 됩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슨 상을 주었느냐?」 「아무것도 주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성격이 얼마나 성급한지 당장 밖에 누구 없느냐고 사람을 찾습니다. 한밤중인데도 그 시간에 하만이 밖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만과 왕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야밤중에 왕을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왕과 관계가 뗄 수 없는 정도로 친밀했습니다. 권력자들은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밤중에 접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청와대에서도 이런 사람이 한두 사람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만을 이처럼 하늘에 닿을듯한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 그날 밤에 밖에 섰다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하만에게 물었습니다.「내가 존귀케 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 주면 좋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만이 속으로 무엇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인간이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고 부귀에 눈이 어두우면 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지 누구겠느냐?」 틀림없이 자기라고 생각하고는 자기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욕심을 왕에게 술술 불어 버립니다. 왕이 입던 옷을 입히고, 왕이 타던 말을 태우고 최고로 높은 신하가 말고삐를 잡고 성중을 한 바퀴 돌게 하십시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만이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강했느냐? 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왕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야, 이 놈 봐라. 나를 위해서만 충성을 하는 우직한 놈인 줄 알았는데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큰일을 저지를 놈을 내가 옆에 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왕비가 자꾸 은밀한 잔치 자리에 하만을 자꾸 델리고 오리는 소리에 마음이 상해 있던 판인데 말하는 것 보니, 자기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이 그대로 들어 나고 있단 말에요. 만정이 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과 하만의 마음을 칼로 베듯이 완전히 떼어 놓았습니다.
그날 밤 모르드개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을 다 잡아 죽이라는 왕명이 떨어져서 온 나라의 유대인들이 울고불고 금식을 하며 초상집 같아서 나라 전체가 술렁거리는 판에 갑자기 그 제일 우두머리 격이 모르드개가 갑자기 왕의 옷을 입고, 왕이 타는 백마를 타고, 제일 권세 높은 하만이 고삐를 끌면서 성중을 한 바퀴 도는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눈을 의심했을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을 한 것이지요.
모르드개를 데려다 놓은 하만은 집으로 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번뇌했다고 했습니다. 고민하고도 다른 것입니다. 한마디로 죽을 마음이었습니다. 또 머리를 움켜 싸고 울분을 참지 못해서 밤을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눈이 충혈되었고, 얼굴은 부어서 초췌한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왕과 함께 잔치에 갈 시간은 되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것이 아니라, 다 팽개치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자, 여기서 이런 상황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지혜를 주셨는데, 먼저 왕과 하만을 떼어 놓을 수 있는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보이지 않는 덫을 놓고 그 자리에 하만이 그대로 걸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기 때문이 하나님이 조금도 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밤중에 왕으로 불면증을 일으켜서 하만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심을 그대로 다 노출시키는 기회를 만들어서 이제는 왕이 하만을 잘 볼래야 볼 수 없는, 요주의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철저한 배신감을 갖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이와 같이 왕과 하만의 마음을 떼어 놓는데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왕에 문제를 내어 놓을 때, 하만이 그 현장에 있는데서 이야기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제2의 문제, 제3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다음에 7장을 보면 에스더의 전략이 얼마나 정확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내용을 놓고, 우리 자신들이 본받아야 할 한두 가지 교훈을 정리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먼저 어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에스더처럼 덤비지 말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백분 활용해서 차근차근히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하려고 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앞뒤 가리지 아니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것도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에스더와 같이 그 신앙인격이 조금도 더럽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관계가 조금도 잘못되지 아니한 사람은 어려운 문제 하나를 해결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과 깊이 의논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지혜를 가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문제 처리를 위해서 닦아 갑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신중히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배후에서 지원사격을 해서 그 문제가 틀림없이 해결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사실, 얼마나 성급합니까? 문제 하나를 놓고 얼마나 앞뒤가 없고 덤빕니까? 그러나 이 나약한 여성이지만, 에스더가 하는 행동을 보세요. 할 말이 있어도 금방 하지 않습니다. 결단을 내릴 문제도 또 시간을 두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틀림 없이 나갈 수 있는 계략을 가지고 문제를 처리해 나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우리가 살려면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언 3장 13-17절을 봅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이 지혜를 누가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마음이 깨끗하고, 그 인격이 흐트러짐이 없는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 지혜를 줍니다. 이 지혜를 누가 얻을 수 있습니까? 에스더처럼 문제를 놓고 덤비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들고 나오는 사람에게 이 지혜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 가려니, 마치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국의 그 속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날그날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뱀처럼 지혜롭게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도 에스더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실 때에 해결되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마다 에스더를 도와주시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도와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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