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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어 요한복음 강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53)

복음의 능력 2024. 3. 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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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어 요한복음 강해 설교는 예수님이 생수의 상이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복음 말씀이 항상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53)

 

영생 교훈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37-49)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명절 끝날 초막절의 끝날 인데 절기 시작한 지 팔일째 되는 날이다. 초막절에는 밖에 나가 초막에 한 주간 있다가 칠일 째 되는 날에는 초막을 철거하고 집에 들어와서 그 이튿날 팔일째 되는 날에는 큰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큰 날 칠일간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고 제 팔일에는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날이므로 큰 날이라고 한다고 한다. 또 절기 끝 날은 많은 은혜가 있는 날이므로 큰 날이다. 아무 절기나 한 주간 전심전력으로 은혜를 사모한 결과로서 끝 날에는 큰 은혜가 있는 것이 상례이다.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심령이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로 오면 해갈할 수 있다. 또 물질에 목이 마르거나 고독하거나 세상에 목이 마른 사람들은 다 예수께로 와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적 새 생명을 얻으면 목마른 것이 없어진다(행3:3-8 참조).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생수의 강은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속에 이루어 놓은 생명의 역사이다. 즉 새 생명의 역사이다. 생수를 마시는 법은 예수께로 와서 믿는 것이다. 성령으로 아니하면 믿을 수 없다(고전12:3).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성령을 벌써 받은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 말씀에서 새 생명을 계속 얻어나가고 성도의 영혼이 날마다 소생하고 창성하고 자라나는 것이다. 이 생수는 계속해서 속에서 솟아 올라오는 것이다. 이 영적인 새 생명의 역사가 계속하여 전진해 나가면 심령의 목마른 것이 해갈되고 그 외의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 모든 목마른 것도 없어진다(마4:4 참조). 초막에 살거나 궁핍하거나 죽는다고 할지라도 이 생명의 역사가 있으면 만족하고 위안이 있고 부족함이 없다.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으로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야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므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생수는 성령과 진리로 신자의 영에 역사하는 영적 새 생명의 역사이다. 영광을 받지 못한 고로 십자가와 부활 승천이 예수님의 영광이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다.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니라 보혜사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요16:7 해석 참조). 그러나 제자들이 처음부터 성령으로 믿었다(마16:16-17, 고전12:3 참조). 목마른 사람은 예수께로 나가야 생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데 예수께로 나갈 때 몸과 마음이 가야 되고 영이 그와 더불어 교통하도록 까지 나가야 된다. 그렇게 갈급한 심령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해야 한다. 그러면 그와 만난 바 되고 성령의 감동을 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은혜와 사랑으로 권면하시고 위로하시고 책망하시어서 우리 영적 생명을 곤고한 자리에서 싸매시며 고치시며 바로 세워 위로와 평안을 주시며 만족을 주셔서 소생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게 해주신다. 이 역사가 우리 속에 이루어질 때에는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궁핍이나 칼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의 감격과 참된 만족이 있다(롬8:35-39).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를 받으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그것이 만족이요 영의 것을 소유한 부자이다. 이와 같이 영의 것으로 살고 거기서 참된 만족을 찾는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다시 목마름이 없고 기쁨이 충만하게 넘쳐 나는 생활이 될 것이다. 이 생수는 심령이 가난하여 목이 마른 자만 마실 수 있다. 심령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에 빠졌는데도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인(계3:17)과 같은 사람은 생수를 마실 자격이 없다. 자기 심령이 지금 곤고해졌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외부적인 것을 가지고 부요하다 하고 그것으로 만족을 삼고 나가는 자는 생수와 상관이 없는 자이다.

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예수님의 생수의 교훈을 들은 자 중에 예수님을 그 선지자 즉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생겼다.

7:41-42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어떤 사람들은 갈릴리에서는 그리스도가 나올 수 없으니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씨로 다윗이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미가5:2). 그런데 예수는 갈릴리에서 왔으니까 그 성경에 안 맞는다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이 좀 더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다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후 갈릴리 나사렛 동리로 가서 사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요, 이렇게 예수를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단편적 성경 지식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생명의 주를 버린 것이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겠다는 성구만 알고 마태 2:23에 인용된 그리스도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을 한편만 알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모르면 마귀에게 속기 쉽다.

마태 4:6에 마귀도 성경을 가지고 와서 시험했다. 그때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여 다른 곳에 있는 성경으로 이겼다(마4:7).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에 있는 성경 원리와 성경 전체적인 뜻에 맞게 알고 해석해야 된다. 또한 껍데기만 알지 말고 좀 더 상고해서 깊이 알아야 한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 가지고 전체적인 뜻을 그르치는 것은 소경이 코끼리 보는 식이다. 그렇게 가르치고 배운 자들은 미혹을 받아 신앙에서 떠나게 된다.

7:43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쟁론이 생겼다.

7: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이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예수를 잡고자 하는 하속들도 예수님의 권위에 눌려서 잡지 못했다.

7: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하속(하인)들에게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다고 책망을 했다.

7: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하속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인격과 성령으로 말하는 권위에 위압되고 참 진리를 말하는데 감동이 되었으므로 잡아가지 못했다. 이제까지 그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종교적 편견이 없는 자는 진리와 감동을 쉽게 받을 수 있다.

7:47-49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하속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감동을 받은 것 같으므로 너희도 미혹을 받았느냐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받는 자는 미혹 받은 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 저주받을 자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바리새인들 자기네가 의식주의에 미혹되어 있고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였다. 그 이 유는 율법 은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고(신18:15) 율법의 의문과 의식의 실체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골2:16-17). 그러므로 저주받을 자는 성경을 버린 그들이었다.

니고데모의 변증(50-53)

7:50-51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묻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그의 전하는 진리를 반대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여 말하기를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했다. 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보지 않고 행한 것도 알아보지 않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판결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정죄하고 있다. 사실은 저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고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저들이 예수님께 대한 분노를 니고데모에게 터뜨렸다. 니고데모가 예루살렘 시민인 줄 알면서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한 것은 갈릴리 지방을 멸시하는 평소의 심리가 분노와 함께 터져 나온 것이다. 이렇게 분노와 어떤 지방 사람들을 멸시하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무엇을 바로 할 수가 있겠는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이것도 구약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발언이었다. 왕하14:25에 의하면 선지자 요나는 갈릴리 출생이었다. 저들이 오히려 율법(성경)을 모르는 자라는 것이 드러났다.

7: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를 정죄하고 잡으려는 무리들이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갔으므로 별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

[룻기 3장 강해설교말씀] 기업무를 자 보아스(룻 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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