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잠언 21장 성경 좋은 말씀] 의, 별거, 구제(잠 21:1-31)

복음의 능력 2022. 6. 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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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서 21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해 보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행실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의, 별거, 구제(잠 21:1-31)

 

1-4, 왕의 마음, 정직, , 교만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보의 물이라는 원어(팔게-마임)수로(水路), 물길이라는 뜻이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는 물길 같다. 세상에서 통치자인 왕의 마음, 곧 그의 계획, 소원, 의향, 의도, 판단은, 온 우주의 통치자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섭리하셔서 그의 원하시는 바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왕의 모든 일을, 세상의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날 동안 놓아보내지 않게 하셨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9번 기록한다(4:21; 7:3; 9:12; 10:20, 27; 11:10; 14:4, 8, 17). 하나님께서는 파사 왕 고레스를 감동하셔서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게 하셨고(1:1-3), 또 아닥사스다 왕을 감동하셔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총독으로 보내어 그 성곽을 건축케 하셨다(2:5-6). 시편 115: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달아보시느니라].

행위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걸음과 행위를 가리킨다. 인생은 하루하루 길 가는 나그네와 같다. ‘심령이라는 원어(립보스)마음들이라는 말로서 마음의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본문과 비슷하게, 잠언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한다. 거기에서 심령이라는 원어(루코스)영들이라는 말로서 영의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가리켰다고 본다. ‘감찰한다는 원어(타칸)‘(길이나 무게를) 측량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고 깨끗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여러 가지 활동들, 영의 여러 가지 활동들을 감찰하신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깊은 생각과 의향과 뜻을 다 드러내지 않지만,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살피시고 재어보시고 달아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가짐, 즉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의향과 판단이 착한지 그렇지 못한지, 겸손한지 교만한지, 진실한지 거짓된지, 사랑의 마음인지 미움의 마음인지, 거룩한 마음인지 불결한 마음인지, 순수한 마음인지 아니면 불순하고 이욕적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마음인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하는 마음인지 혹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의 낯을 보고 그의 비위나 맞추는 마음인지를 살피시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재어보시고 달아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다.

[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실제의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지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바르고 의로운 삶, 곧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마음과 실제의 삶이다.

제사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그것은 상징적 행위이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성도의 경건과 회개, 속죄 신앙, 헌신과 순종과 감사 등이다. 의로운 삶은 참된 경건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은 의로운 삶을 동반하지 않는 형식적, 위선적 행위로도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런 일에 대해 강하게 책망하셨다. 이사야 1:12-15,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의식보다 의로운 삶을 원하신다.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높은 눈과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잠언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등이라고 말한다.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요구하신다.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11:29). 시편 131편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라고 말하였다(131:1-2).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바이다.

본문은 또 악인의 형통한 것은 죄라고 말한다. ‘형통한 것이라는 원어(니르)(1) ‘경작하는 것’(KJV, 델리취), 혹은 (2) ‘등불(BDB, LXX, Vg, Syr, NASB, NIV)이라는 뜻이다. ‘등불이라는 말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킨다. 물론, 악인의 기쁨과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후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셨으나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먹고 마셨다고 책망하셨다(22:12-13). 예수께서도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6:25). 악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우리는 왕의 마음이, 아니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음을 굳게 믿자. 또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앞에서 선한 결심을 가지며 그의 계명을 힘써 실천함으로 그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향과 뜻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또 정직하고 바르게 살자.

우리는 단지 정통 교리에 대한 입술의 고백이나 종교 의식의 수행으로 만족하는 형식적, 위선적 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경건과 속죄 신앙을 가지고 실생활에서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높은 눈과 교만한 마음과 악인의 즐거움을 미워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눈을 낮추고 언제나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행하자. 또 우리는 결코 악을 행하면서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말자.

5-8, 근면, 속임, 강포, 범죄자의 길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원문에는 확실히라는 말(아크)이 두 번 사용되었다. 다시 번역하면,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확실히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확실히 궁핍함에 이르리라.”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확실히 풍부함에 이를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많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하고 개발하는 자, 또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철저히 준비하고 인내하며 시행하는 자는 성공할 것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그런 자만이 좋은 결과, 유익한 결과를 풍성히 거둘 수 있다. 부지런한 자의 계획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조급한 자, 즉 마음이 조급하고 발이 조급한 자는 확실히 궁핍함에 이를 것이다. 그런 자는 무슨 일을 할 때 많이 생각하거나 많이 연구하거나 많이 준비하지 못한다. 그런 자에게서는 도전 정신, 개발 정신, 그리고 인내와 끈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또 그런 자에게서는 좋은 결과, 유익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나 돈이나 힘만 낭비할 뿐이다. 그러므로 잠언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 하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옷을 입을 때 급하다고 첫 단추를 잘못 끼어나가다가 다시 풀고 처음부터 바로 끼어 더 더디게 된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 바쁠 때 서두르다가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다. 사고가 나면 일이 많이 더디어지고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급할수록 침착히 그러나 끈기 있게 행해야 함을 배운다.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수증기]니라.

속이는 말은 거짓말, 불신실한 말, 일구이언, 약속을 지키지 않는 말, 과장된 말 등을 포함할 것이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의하고 부정직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그런 행위는 탐심과 죄성(罪性)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자체가 죄이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만 죄요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죄가 결국 다 사망에 이른다. 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려 다니는 수증기와 같다. 수증기는 방금 전까지 있는 것 같다가 금방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다. 불의하고 거짓되게 번 돈은 쉽게 없어지고 만다. 잠언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고 말하고, 또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수천만원을 모으기는 힘들어도 날리기는 쉽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종종 본다.

우리는 성실히 일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가르쳤다(살전 4:11; 살후 3:12). 또 그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증거하며(살후 3:8), 그 자신이 손으로 일하여 그의 필요를 해결하는 모본을 보였다(20:34-35).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거절함이니라].

악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악인은 대체로 강포하다. 악인은 말이 거칠다. 남을 쉽게 욕하며 부당하게 비난한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 남을 중상모략한다. 악인은 행동도 거칠다. 그는 강압적이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행패를 부리고 남을 해친다.

악인의 강포는 결국 자기를 소멸시킨다. ‘소멸한다는 원어(가라르)끌고 가버린다’(drag away)는 뜻이다(BDB). 어디로 끌고 가버리는가? 더욱 잘못된 길로, 마침내 멸망의 길로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한 사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지만, 죄만 자꾸 짓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고 말았다. 다니엘의 동료들은 충성된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 계획하고 마침내 그를 사자굴에 처형시키는 일에 성공한 듯하였으나, 도리어 자신들과 자신들의 처자들이 그 사자굴에 던지워 죽임을 당하였다. 아하수에로의 최고위 신하이었던 악한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유다 민족을 다 죽이려고 계획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죽고 말았다.

악인이 멸망하는 까닭은 공의 행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 사랑은 강포하지 않는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겸손하다. 그러나 악인은 평소에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그 계명 순종하기를 거절하였고, 그래서 그는 악하고 강포하게 되었다. 그는 점점 더 잘못된 길로 나아가며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죄를 크게 범한 자라는 원어(와자르)죄를 범한 자라는 뜻이며, ‘심히 구부러지다는 원어(하파크파크)구부러지다는 뜻이다. 죄를 범한 자의 길은 죄를 범한 자의 행실을 가리키며 또 그의 가는 길, 그의 삶의 여정도 포함한다. 죄를 범한 자의 길은 구부러져 있다. 그 길은 우선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에서 떠나 있다. 물론 어떤 때는 일치하게 보이기도 할지 모르나, 어떤 때는 조금, 또 다른 때는 매우 멀리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해 있는 것이다. 악인의 삶은 매우 주관적이며 감정적이고 변태무쌍하여 종잡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악인의 삶의 여정은 구부러져 있다. 그 길은 평탄치 못하다. 그의 길에는 가시덤불과 재앙이 많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파멸과 고생이 죄인들의 길에 있고 그들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3:16-17).

그러나 깨끗한 자의 길은 곧다. 사람 중에 정말 깨끗한 자는 아무도 없으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받고 죄를 버리고 속죄신앙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오는 자는 주홍 같은 죄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1:18). 그런 사람의 행실은 곧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거짓과 위선이 없다. , 깨끗한 요셉에게 형통함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평강과 형통으로 인도하신다(39:2-3, 23).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른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조급한 마음으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히 많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행하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며 불려 다니는 수증기다. 우리는 결코 불의하고 더러운 이를 구하지 말고 탐하지 말자. 우리는 범사에 진실하고 정직하고 정당하게,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벌자.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한다. 그것은 공의 행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의와 악과 강포를 버리자. 혹시 실수했다면, 즉시 철저히 회개하자. 우리는 온유하며 겸손하고 정직하며 선하고 사랑하며 살자.

우리는 범죄치 말자. 범죄한 자의 길은 구부러질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바르게 살고 죄를 짓지 말고 깨끗하게 살자.

9-12, 다투는 여인, 악인, , 공의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함께 큰집에서라는 원어(베스 카베르)집에 함께라는 뜻이다. ‘움막에서라는 원어(핀나스-가그)지붕의 한 구석에서라는 뜻이다. 본문은 다투는 여인과 집에 함께 사는 것보다 지붕의 한 구석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조용하게 살고 싶어한다. 사람의 행복의 중요한 한 요소는 평안이다. 그것은 집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다툼은 사람을 피곤케 만든다. 다툼은 오해, 미움, 욕심, 시기심 등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 관용과 이해심이 있을 때, 평안도 있을 것이다.

성도의 덕은 사랑과 화평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치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참는다(고전 1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다(4:31-32). 그때 평안과 행복도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의 덕은 온유함과 조용한 심령과 순복함이다. 디모데전서 2: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베드로전서 3:1-4,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조용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가정의 행복은 남편의 아내 사랑과 아내의 남편 순종으로 인한 평안에 있다.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악인의 영혼은 악을 사모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악인은 심히 악하다. 가인은 악을 고집하였고 동생 아벨을 죽였다(4: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심히 강포하였다(6:11, 13).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심히 악하여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성폭행하려 하였다(19:5). 고라의 친구들과 이스라엘의 족장들 250명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심히 대적하였다(16:1-2). 이스라엘의 열왕들은 악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신약시대의 유대 종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어코 죽였다. 주님을 3년이나 좇았던 가룟 유다는 은 30개를 받고 주님을 배신하고 그를 넘겨주었다.

사람은 심히 부패되고 악하여 선을 행할 수 없다. 예레미야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10, 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베푸는 것이다. 레위기 19:18,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미가 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 하리라.

경성하다는 원어(카캄)지혜롭다, 지혜로워지다는 뜻이다. 잠언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고 말한다. 거만한 자는 자신을 높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이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 곧 순진해서 아무 말이나 믿고 따름으로 잘못된 길에 빠지기 쉬운 자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형제나 친구가 다른 신을 섬기자고 권하면 그는 참된 종교를 부패시키는 큰 악을 범하는 것이니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지 말고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돌로 쳐죽이라고 엄하게 명하신 후,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고 첨가하여 말씀하셨다(13:6-11).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지혜를 얻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 유익하다.

또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 할 것이다. 잠언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 9: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언 19:25,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과 진리를 아는 자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교훈, 성경 진리의 교훈을 받으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성경의 바른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고 더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한다.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의로우신 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들을 환난에 던지신다. 아버지의 행동은 그 가족 전체의 경건과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 가정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인 아버지 한 사람뿐 아니라, 그의 집 전체를 주목하시며 그 집에 내릴 재앙을 준비하신다. 시편 34: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본문에 환난이라는 원어(라아)재앙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재앙에 던지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이다. 신명기 32:35보수(報讐)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고 말한다. 마지막 날의 심판도 있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이 있다. 그것은 악인들에게 내려지는 무서운 질병, 경제적 파탄, 전쟁, 그리고 지진과 기근 등의 자연재해 등이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편 58:10-11, “의인은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붕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우리는 성도의 덕인 사랑과 긍휼과 관용, 인내와 화평을 가지자. 특히, 여성도들은 여성의 덕인 조용함과 온유함과 순종함을 가지자.

악인의 영혼은 악을 사모하며 그 이웃이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를 믿고 선을 행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참으로 그를 믿고 선을 행하는 자가 되자.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얻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 한다. 우리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와 겸손을 구하자.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징책으로만 가능하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재앙에 던지신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심판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악을 버리자. 성도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의 길을 걷는 것이다.

13-16, 구제, 선물, 공의, 명철

[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가난한 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고 입을 옷과 쉴 방이 없을 때, 또 몸이 아프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부르짖는다. 그러나 교만하여 남을 무시하고 사랑과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구제와 선행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인데, 그는 자기에게 손해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신명기 15:7-8,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 즉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사람들 중에도 돕는 자가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은 평소의 생활이다. 평소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행해야 하고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래야 환난 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

[14]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선물은 어떤 일의 대가로 주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로 그냥 주는 것이며, 은밀한 선물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존경의 진심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은밀한 선물은 흔히 상대방에 대해 가졌던 오해나 감정을 풀게 하고 노여운 감정까지도 누그러뜨린다. 잠언 18:16,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 뇌물은 개인적 이해관계의 목적이 있는 선물이며 보통 그 정도가 좀 지나친 것이다. ‘품의 뇌물곧 은밀한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 이것은 뇌물을 권장하는 말이 아니고 뇌물의 효능을 말하는 것뿐이다. 잠언 17:8,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 뇌물은, 물론, 좋지 않은 것이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우리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물질적 여유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로마서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디모데전서 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히브리서 13:1-2, 16,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5]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패망(메키타)[두려움, 당황함](BDB)이니라.

공의라는 원어(미슈파트)심판,’ 공의라고 번역된다. ‘공의를 행한다는 원어는 심판을 시행한다(KJV)는 뜻도 되고, ‘공의를 행한다(NASB)는 뜻도 된다. 그 두 뜻이 다 가능해 보인다.

의인은 하나님의 긍휼로 죄씻음 받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자이다. 의인은 심판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의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또 의인에게는 의를 행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기쁨과 즐거움이며 그것을 행하는 것도 그러하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즐거움이 되었음을 간증하였다. 24,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70,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7,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43,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62,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74,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그러나 심판을 시행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당황함이 된다. 그것은 공의의 형벌이 자신들에게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공의를 행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과 당황함을 주기도 할 것이다. 악인들은 자신들과 의인들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삶이 의를 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워할 것이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16] 명철의 길을 떠난[떠나 방황하는](KJV, NASB) 사람은 사망(르파임)[죽은 자들](KJV, NASB, NIV)의 회중에 거하리라.

명철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긍휼을 힘입는 삶이며 그의 계명대로 사는 지혜의 삶이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하며, 잠언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다.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이란, 한때 명철의 길에 있었으나 어느 날 그 길을 떠난 자, 곧 변절자요 배교자를 가리킬 것이다. 가룟 유다가 한 예일 것이다. 히브리서 6:4-6은 그런 변절에 대해 경고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죽은 자들의 회중에 거할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영적인 죽음, 육신의 죽음, 영원한 죽음을 다 포함한다. 참 교회는 산 자들의 회중이다. 그러나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살고 그를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이며 생명 없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원천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며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다.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도 들을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되, 특히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며 그 부르짖음을 외면치 말고 구제와 선행을 힘쓰자.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령한 분을 그치게 한다. 뇌물은 나쁜 것이지만, 선물은 좋은 것이다. 정당하게 선물을 사용하는 것은 지혜이다. 우리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물을 나누는 자가 되자.

심판을 행하는 것은 의인에게는 즐거움이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다. 우리는 공의를 행하고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자. 또 우리는 두려움과 당황함에 떨어지지 않도록 악을 행하지 말자.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은 죽은 자들의 회중에 거할 것이다. 우리는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지 말고 그 길을 붙들자.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붙들라, 부종[附從]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붙들고 지키며 살자.

17-20, 연락(宴樂), 악인, 다툼, 지혜

[17] 연락(宴樂)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연락이라는 원어(시므카)기쁨, 쾌락, 연락이라는 뜻을 가진다. 먹고 마시고 기쁘고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한다. 기름은 기름진 음식 즉 고기 종류를 의미한다고 본다. 잠언 23:20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필요 이상의 것을 사지 않고 먹지 않고 쓰지 않고 절약하며 살아야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할 수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쓰고 싶은 것을 다 쓰고 살면 낭비하게 되고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사는 것이 성도의 생활 방식이다.

성도는 육신적 쾌락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 지내는 중 이 세상의 염려와 돈과 일락(逸樂) 곧 육신적 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셨다(8:14). 또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한 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요일 2:15-16).

성도는 특히 술취함과 방탕함을 조심해야 한다. 로마서 13:12-1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자.”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8] 악인은 의인의 대속(代贖)이 되고 궤사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代身)이 되느니라.

대속’(a ransom)이라는 원어(코페르)대신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궤사한 자라는 원어(보게드)배신자, 변절자라는 뜻이다. 본문은 악인이 의인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해를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시편 7:15-16, “[악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바로의 마병들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와 홍해에서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홍해에 빠져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임을 당케 하셨다(14:27-28).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지키시고 그 대신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징벌하셨고(43:3),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 침공에서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쳤다. 또 아하수에로 왕의 악한 신하 하만은 경건하고 의로운 유다인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 뜰에 약 25미터 되는 나무를 세웠으나 왕의 명령으로 그 자신이 거기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7:9-10). 또 다니엘의 악한 동료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다리오 왕에게 한 명령을 내리게 했고 다니엘이 그 명령을 범했다고 고소하여 그를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건져주셨고 그 대신 그를 모함했던 자들과 그 처자들을 죽게 하셨다(7:24).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해치려는 악인에게 공의로운 보응을 내리셨다. 그는 의인의 원수를 갚으셨다.

[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했었다. 부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거기에서 가정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사람이 가족 관계가 좋으면 사회에서도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가족 관계가 나쁘면 사회에서도 대인 관계가 나쁠 것이다. 가정은 인간의 기초 훈련소이다. 그것은 인격의 훈련과 인간 관계의 훈련을 시킨다.

부부의 관계는 교제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어 외로운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남녀가 짝이 되게 하셨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와 동행하지만, 인간적 대화와 교제도 필요하다. 부부의 관계는 또한 협력의 관계이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며, 또 그래야 한다.

부부는 왜 성내며 다투는가? 사람은 무슨 일을 오해했을 때, 상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식어지고 불신과 미움이 생겼을 때, 또 마음이 교만하거나 참을성이 없는 조급한 마음이나 이기적 욕심을 품을 때 성내며 다툴 것이다. 즉 다툼은 마음의 문제 즉 성격과 인격의 문제이며 가치관의 문제이다. 너무 예민하거나 이해심이 부족하거나 육신적, 물질적 욕심에 얽매여 있는 여인은 남편과 잘 다툴 것이다.

그러나 평안과 화평은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모나 물질적 부요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잠언 17:1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肉饍, 고기)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20]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이다. 그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영육의 복을 누리고 또 그는 물질도 절약해 쓰고 저축함으로 유여함을 누린다. ‘기름은 식용, 약용, 미용에 쓰는 올리브유나 기타 향유들과 기름진 고기들을 가리킬 것이다.

잠언 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그러나 미련한 자, 곧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복들도 다 낭비하고 소모한다. 누가복음 15:11-14,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미련한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의 소득을 규모 없이, 절제 없이, 계획 없이 다 쓰고 낭비하고 저축치 않는다. 그는 영육의 빈곤에 떨어진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도 그러할 것이다. 성도는 먹고 마시고 기쁘고 즐겁게 노는 것이나 술과 기름과 고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살아야 한다.

악인은 의인의 대속(代贖)이 되고 궤사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된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믿자.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낙심치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담대히 행하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의롭고 정직하고 선하게만 살자.

사람은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자족하고 사랑하며 참고 관용하는 좋은 인격자가 되자. 또 우리는 사랑과 순종의 좋은 부부 관계를 가지자.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린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지혜 있는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육의 복을 누리며 살자. 또 미련한 자처럼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말고 근검절약하며 살자.

21-24, 의와 인자, 지혜, , 교만

[21]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불의와 죄요 그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인자(仁慈)’는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선한 마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 구한다는 말은 따른다, 추구한다(pursue)’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롭게 살고 인자함으로 사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의롭게 살아야 한다.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6:25,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항상 선하고 인자하게 살아야 한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의와 인자를 따르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나 의는 생명 곧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 또 의를 사모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얻는다. 또 의의 길에 영광이 있다. 천국의 기쁨과 행복과 영광은 오직 이런 자들의 소유이다.

[22]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

용사들의 성에 올라가는 것은 실로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또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고 그 성과 그 성에 있는 자들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행한다.

전쟁에서 지혜는 힘과 용기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잠언 20:18,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고 말했고, 또 잠언 24:6,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여호수아 8장에 기록된 아이성 전투에서 하나님께서는 복병 전술을 쓰게 지혜를 주셨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거짓 패하여 적군들을 유인해낸 후 복병들로 그 성을 점령하였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귀와 악령들의 세력이 강할지라도, 또 세상의 악의 풍조와 세력이 크고 강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싸우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이며 그것은 사람 보기에 무지하고 무능하게 보여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고전 1:22-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혜이시다(고전 1:30). 기독교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영혼들은 이 복음으로 구원받을 것이다. ,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지혜이다(6:13-17). 우리의 개인적 신앙생활도 교회 봉사생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입과 혀를 지키는 자란, 말에 실수가 없는 자를 가리킨다. 사람은 말의 실수와 범죄, 즉 거짓말이나,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욕하는 말이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거친 말 등의 실수와 범죄로 하나님의 징책과 환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말수를 줄이고 말의 실수가 없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3:2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우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진실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또 성도는 선한 말을 해야 한다. 잠언 15:4,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4:29에서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하였다. 또 성도는 신중한 말을 해야 한다. 잠언 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하였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한다. 잠언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잠언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언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마태복음 12:36-3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조소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거만한 분노로 행하는 자는 그의 이름이 거만하고 교만한 조소자이니라](KJV).

거만한 마음에서 화를 잘 내는 자는 거만하고 교만한 자이며 남을 조소하고 조롱하는 자이다. 거만하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피조물 됨을 깨닫지 못하고 또 자신이 얼마나 죄악된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사람의 교만이다.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은 정반대이다. 그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며 남을 조롱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11:29).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2:5-8). 사도 바울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했고(4:31-32),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고전 13:4-5).

의와 인자(仁慈)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는다. 우리는 의와 인자(仁慈)만 따르자.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여 지키고, 또 형제를 사랑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한다. 우리는 악한 원수들의 견고한 성을 두려워 말자. 우리는 세상일에서나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생활에서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의 교훈을 받아 의와 선을 행함으로 지혜자로 살아야 한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한다. 우리는 말의 실수가 없고 말로 범죄치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항상 진실하고 선한 말을 하고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거만하고 교만하고 남을 조롱하고 화를 잘 내는 자가 되지 말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 사랑과 오래 참음을 본받자.

25-28, 게으름, 구제, 악인의 제물, 증인

[25]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게으름은 미련함이며 근면함이 지혜이다. ‘정욕이라는 원어(타아와)소원, 욕구, 욕망, 정욕이라는 뜻이다. 게으른 자는 놀기를 좋아하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먹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오락을 좋아하고 잠자기를 좋아한다. 세상 재미와 육신적 즐거움과 쾌락을 좋아하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땀흘리며 힘들게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는 돈을 낭비하고 시간을 낭비하며 정력과 건강을 낭비한다. 그는 성도의 본분뿐 아니라, 인생의 본분에도 충실치 못하다. 그는 가난해지고 몸의 건강도 잃어버리기 쉽다. 그것은 죄악된 삶이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성도는 영적 생활뿐 아니라 육신 생활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에베소서 5:15-16,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1,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12,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하느니라.

어떤 자는이라는 말은 원문에 단순히 그는이라고 되어 있다(KJV, NASB). 그것은 앞절의 게으른 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게으른 자는 종일토록 무엇을 탐하며 가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는 물질에 대한 탐심과 명예에 대한 탐심과 육신의 쾌락에 대한 탐심이 있다. 그는 먹고 마시며 놀고 육신적 오락과 쾌락을 구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죽이는 죄악되며 낭비적인 생활이다.

그러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구제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인데,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 중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구제하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신명기 15:8, 10,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시편 112:5, 9,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꾸어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마태복음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7]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제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으로 바치는 것이다. 오늘날, 예배, 찬송, 기도, 헌금 등을 가리킨다. 악인들도 제물을 바친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만족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도 천국에 가고 싶고 또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것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교회 안에도 악인들, 가라지들과 쭉정이들, 즉 위선자들이 있고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 외식적 제물을 드린다.

그러나 악인의 제물은 그 자체가 가증하다. 악인의 제물, 즉 악인의 예배, 악인의 찬송과 기도와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도리어 미워하신다. 잠언 15:8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 .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1:11-13).

하물며, 악인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제물은 얼마나 더 가증한 일이 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교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과 사도 베드로를 속이며 드린 헌금을 심히 미워하셨고 그들을 즉시 죽게 징벌하셨다(5:5, 10). 만일 악인이 남을 저주하기 위해, 혹은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악하고 가증한 일이 되겠는가.

[2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듣는 자는 계속 말하느니라](KJV, NASB).

듣는 자는 진실을 듣는 자를 가리키며, ‘계속(라네차크) 말한다는 말은 그가 들은 바를 들은 대로 계속, 끝까지 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진실한 증인의 모습이다.

거짓 증인은 진실이 아닌 것을 증거하는 자, 진실을 왜곡시켜 증거하는 자, 진실과 반대되게 증거하는 자를 가리킨다. 거짓 증인은 패망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를 미워하신다. 거짓 증거는 십계명의 제9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그것은 잠언 6:16-19에 언급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6, 7가지의 죄악 중에 거짓된 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으로 언급된 죄악이다. 죄인은 망한다. 모든 죄인은 멸망한다.

그러나 진실을 들은 자는 그 들은 진실을 솔직하게, 담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참된 증인의 모습이며 의인의 모습이다. 사도행전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예수님의 사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순교의 피를 흘리기까지 그를 증거했다. 헬라어의 증인이라는 말(마르튀스)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죽었다. 참된 증인은 어떤 사실을 듣고 그 들은 바를 들은 그대로 항상 말하는 자이다. 성도가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적 덕목이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게으른 자의 탐욕은 그를 죽인다. 그가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을러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하며 육신적 욕심만 추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영적, 육적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게으른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지만, 의인은 아끼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한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와 권세나 육신의 즐거움을 탐하지 말고 어려운 교우나 이웃 사람을 돌아보며 선행과 구제에 힘써야 한다.

악인의 제물은 그 자체가 가증하지만,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악을 회개하고 모든 악한 의도도 회개하고 바른 믿음과 거룩하고 선한 삶으로 하나님께 항상 참된 제사를 드려야 한다.

거짓 증인은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듣는 사람은 끝까지 그것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지 거짓을 증거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진실되게 항상 증거해야 한다.

29-31, 악인의 얼굴, 하나님, 승리의 길

[29]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자이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얼굴은 사람의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기쁜 얼굴은 기쁜 마음의 표현이고 슬픈 얼굴은 슬픈 마음의 표현이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직 때묻지 않은 그의 천진난만함을 나타낸다. 또 나이든 사람들의 얼굴은 그의 인생 여정과 그의 형성된 인격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이다.

본문은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한다고 말한다. ‘굳게 한다는 원어(헤에즈)뻔뻔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악인은 교만할 뿐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책할 줄을 모르고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으며 자신의 부족을 인정할 줄 모른다. 그는 남을 미워하고 악을 행하며 뻔뻔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나 반대로, 성도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자신의 부족을 항상 느끼며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본문은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간다고 말한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자를 가리킨다. ‘삼간다는 원어(야킨)견고케 한다,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NASB, KJV). 이것이 성경에 쓰여진 본문이다(케팁). 마소라 학자들은 이 단어를 살핀다, 분별한다는 단어(야빈)로 읽으라고 제안하지만(케레 NIV), 그 제안은 정당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뜻은 비슷하다고 보인다. 정직한 자, 곧 의로운 성도는 그의 길, 그의 행위와 삶을 조심하여 바르게 하고 견고케 한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이 범한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모든 악을 버리고 악을 행할까봐 조심하며 오직 의와 선을 택하고 그것을 행하려 힘쓴다.

[30]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인간의 지혜와 명철과 모략은 이 세상에서는 필요하고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는다. 머리가 좋고 아이큐(I.Q.)가 높은 사람은 공부도 잘 하고 사회의 각 방면에서 지도적 인물이나 참모나 보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혜 있는 것이 지혜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를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증거했다(고전 1:21, 25).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와 총명이 바벨론 온 나라의 지혜자들보다 열 배나 더 뛰어나게 하셨다(1:17, 20). 인류의 역사상,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며 모든 악한 자들을 사용했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또 실패할 것이다.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며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는 데 있다. 28:28,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시편 119편 저자는,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고 고백하였다(119:98-100).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국가는 전쟁의 날을 위하여 군대와 무기들을 준비한다. 세상 나라에는 군대도 필요하고 무기들도 필요하다. 옛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들과 사람들을 다 찾아왔었다(14:14-16). 성경은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도적이 밤에 침입해 들어올 때 그를 쳐죽이면 피흘린 죄가 없다(22:2). 합법적 전쟁은 인정된다. 여호수아와 사사들과 다윗 등은 다 용사들이었다. 선지자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에게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라고 말했다(왕상 20:22).

그러나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 소년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었다(삼상 17:47). 구약 역사에는 전쟁 사건들이 많았으나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유다 왕 아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스 사람 세라의 군사 100만과 병거 300승을 물리쳤다(대하 15:11-12). 히스기야 왕 때 하나님께서는 하룻밤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사 185천명을 죽이셨다(왕하 19:35). 그러므로 다윗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말했다(20:7). 우리는 전쟁에서 사람의 지혜와 힘이나 군대와 무기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악인처럼 얼굴을 뻔뻔스럽게 하지 말고 자신의 실수와 범죄가 있으면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오직 우리의 길을 바르게 하자.

사람들은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당치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힘쓰자. 그것이 인생의 성공의 길이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 국가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자.

[출애굽기 25장 하나님 말씀]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출 25:1-40)

 

[출애굽기 25장 하나님 말씀] 성막 건립 지시-법궤, 떡상, 등대(출 25:1-40)

출애굽기 2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성막에 들어가는 법궤와 떡상과 등대에 대해서 만들 수 있는 규례를 주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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