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10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동물의 제사를 통해서 일시적인 죄를 속죄했다면 신약에서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속죄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시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모든 죄가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은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목: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 (히 10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히 10:1~39
요절: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7~38)
주제: 예수님은 믿음의 시작(창시자)이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지난 한 주간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였습니까?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되었으며 성령님의 사역으로 우리는 구원의 서정(부르심, 중생, 회심, 믿음, 의인화, 양자 됨, 성화, 견인, 영화)의 축복을 받습니다. 계속적으로 성령님의 양육으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여름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방교회 전통으로 성령강림주일 다음 주일인 오늘 삼위일체 주일(Trinity Lord’s Day)로 지킵니다. 영국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연합 그리스도교, 감리교가 오늘을 삼위일체 주일로 지킵니다. 동방정교회는 성령강림주일을 삼위일체 주일로 지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에서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1절(엘로힘)은 성부하나님, 2절(하나님의 신=영)은 성령하나님, 3절(가라사대=말씀)은 성자예수님을 가리키나 삼위일체로 늘 한 분이십니다(신 6:4, 요 17:21). 성경에 나오는 첫 동사인 “창조하다”의 원어 Bara’도 B=Ben(아드님, 성자), R=Ruach(루아흐, 성령), ’=’Elohim(엘로힘, 성부)의 첫 자를 합친 단어입니다. 매일 아침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한 민수기 6:24~26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성부],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성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성령] 할지니라” 또한 이사야가 성전에서 은혜를 받고 만군의 여호와의 임재를 체험할 때 스랍(천사)의 찬송 소리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3)며 성호 삼창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신 말씀[지상명제 The Great Commission]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베풀고” (마 28:19) 하시며 성경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가장 확실하게 가르치는 구절이 요일 5:7~8로 신약사본 5780개 사본 중 가톨릭 계열 45개(바티칸, 소소, 알렉산드리아 사본)만 제외하고 대다수 사본(비잔틴, 다수, 안디옥 사본, 흠정역)에서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로 초대교회부터 사도들의 전통입니다. 또한 예배 마치면서 축도문이 고후 13:13(14)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합시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 히브리서 10장을 강해합니다. 앞으로 읽을 히 12:2에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author)요 또 완성자(finisher)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로 나오는데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시작(author), 1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의 완성자(믿음의 장), 12장에서는 예수님은 소망의 완성자, 13장에서는 예수님은 사랑의 완성자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토록 동일하신 분(13:8)으로 변증하는 내용을 앞으로 6월 한 달 동안 계속 살피겠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의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마 16:16)로 믿음의 기초가 되시며 출발점이 예수님이십니다.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즉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the just shall live by faith”가 기독교 신앙의 기초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앙이 여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구원의 서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신칭의로 16세기 유럽의 교회 개혁 구호가 되었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완성하셨으며 성령님께서 이 믿음 생활로 인도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신약성경은 이신칭의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이미 합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해 예고한 말씀이 바울신학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① 의인 (로마서 주제)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② 믿음 (히브리서 주제) 히 10:38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③ 살리라 (갈라디아서 주제)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히 10:1-18)
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결코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 후로는 그들과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 마음에 두고 그들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 죄와 그들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1~4절에 구약의 율법 제도는 부족하였습니다. 율법제도는 장차 오는 좋은 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대한 그림자 즉 예표이었고 참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참 형상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제도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증거는 제사의 반복성에 있습니다. 만일 제사가 사람을 온전케 하였다면 그것은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제사는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사람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상징적인 짐승의 피는 사람의 죄를 없이 하거나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하였습니다.
5-7절에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은 구약의 시편 40:6-8의 헬라어 70인 역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구약성경 본문과 조금 다릅니다. 시편 본문은 메시아께서 번제물과 속죄 제물이 아니고 자신의 몸을 드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과 이것이 두루마리 책 곧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39). 구약은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8-9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번제와 속죄제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 인용된 말씀에 의하면, 메시아께서는 오셔서 그 첫 것 곧 율법 아래서의 제사 제도를 폐하시고 둘째 것 곧 자신의 몸을 드려 이루실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 제도, 제사 제도의 폐지와 그 대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 사역의 완성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께서는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0절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절 이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에 대해 증거 합니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고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 우리의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거룩함을 얻었다’는 동사는 완료 시제로서 우리의 거룩함이 시작이나 진행 중인 것이 아니고 단번에 이루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같은 표현이 고린도전서 1:2에도 나온다. 거기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라고 표현하였는데, 원문에는 역시 완료 시제이므로 ‘거룩하여졌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11-13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결코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구약 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들은 결코 죄를 없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 곧 속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영원한 속죄 제사의 행위이었습니다. 그의 피 흘리심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贖)하는 행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완전하였기 때문에 그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그의 원수들 곧 사탄과 악령들과 그 종들이 다 굴복하게 되기까지 거기서 기다리시다가 그때가 되면 심판자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온전케 하셨다’는 원어(테텔레오켄 teteleioken)도 완료 시제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거룩케 하심과 의롭다 하심이 완전하였음을 증거 합니다. 법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거룩과 완전한 의를 얻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4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말합니다.
15-18절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 하시되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날 후로는 그들과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 마음에 두고 그들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 죄와 그들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신약 성도의 삶은 율법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성령의 법으로 살고, 우리 마음에 심으신 법으로 삽니다. 그것은 종의 법이 아니고 자유의 법입니다. 성도는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와 불법을 기억지도 아니하십니다.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은 완전합니다.
2.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권면함(히 10:19-25)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9-20절에 ‘형제들아’라는 말은 천국 백성에게 합당한 명칭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자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有無識)을 막론하고 주 안에서 다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히 3:1). 이 두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해 권면하기에 앞서 권면의 근거를 말합니다.
그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9장에 말씀한 대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피’입니다(12절). 그 피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으나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자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소의 휘장을 찢듯이 자신의 육체를 찢어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누구든지 이 길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1-22절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권면의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 혹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이 이미 성도들 가운데서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0-2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큰 제사장이시며 우리의 크신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을 섬깁니다.
권면의 세 번째 근거는 죄사함의 사실입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는 ‘악한 양심이 깨끗케 되고’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악하고 더러웠던 양심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몸을 맑은 물로 씻은 바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 내포하는 중요한 내용인 죄 사함입니다.
권면의 근거는 이와 같이 세 가지 사실, 즉 첫째로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사실, 둘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는 사실, 셋째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의 피로 씻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죄 사함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믿음 혹은 충만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3-25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둘째로, 소망의 고백을 굳게 잡자고 권면합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는 뜻은 ‘소망의 고백’이라는 뜻입니다. 성도의 소망 가운데 중요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과 천국과 영생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이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약속하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우리의 소망의 내용들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셋째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고 권면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디도서 2:14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선행의 이 의무를 위해 우리는 서로 돌아보며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넷째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자고 권면합니다. 사람에게는 게으른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모이기를 폐하고 그것이 점점 습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본받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주님의 재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 영적으로 힘을 얻고 자라가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주 모여야 합니다.
3. 믿음의 담력과 인내가 필요함(히 10:26-39)
26 이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자발적으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을 것임이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이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앎이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34 이는 너희가 나의 갇힘들을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하늘에 있는 것보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해 인내가 필요함이니라. 37 이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26-27절에서 성도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더 굳세게 가져야 할 이유가 고의적 범죄가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임을 증거 합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라는 말은 ‘구원받은 후’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복음 진리이며 진리의 지식은 복음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믿음의 필수적 내용입니다. 죄 중에는 무지하여, 실수로 범하는 죄가 있고, 고의로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전자는 죄책(罪責)이 작으나, 후자는 죄책이 큽니다. 모든 죄가 다 지옥 갈 만한 죄이지만, 죄에는 죄책의 경중(輕重)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4:2, 22에 보면, ‘그릇, 부지중에’ 즉 ‘실수로, 무지하여’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수기 15:30에 보면, ‘짐짓’ 즉 ‘고의적으로, 도전적으로’ 범하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35:16에도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는 고살자(故殺者)[고의적 살인자]에 대해 말하는데, 그런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규정되어 있고, 시편 19:13에도 ‘고범죄’라는 말이 나옵니다.
본문에 ‘죄를 범한즉’이라는 원어는 현재분사로 ‘계속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즉 ‘만일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버리고 그와 정반대로 행하여 고의적으로 계속 범죄 한다면’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런 고의적인 죄 가운데 계속 머문다면, 그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까닭은 그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이 기다리는 심판은 마지막 불의 심판입니다. ‘맹렬한 불’이라는 말은 ‘진노의 불’이라는 뜻이며, 마가복음 9장에 기록된 대로, 주께서 강하게 증거 하신 지옥의 불을 가리킵니다. 이런 심판의 선언은 구원받은 자들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선언은 경고의 말씀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반드시 소유해야 한다는 강조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믿음의 세계에 들어와 있지만 사실상 중생하지 못한 자들입니다(히 6:4-8) 롬 11:20-22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참고. 마 7:21; 롬 8:13)
28-29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구절에서 구약시대에 비추어 그의 경고의 말씀을 강화시킵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에 의하면, 사람이 원한 없이 우연히 밀치거나 무엇을 던져 사람을 죽게 하였다면 그는 도피성으로 도망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고의적, 계획적 살인자는 두세 증인에 의해 확인한 후 반드시 사형시켜야 하였습니다(민 35장). 이와 같이, 실수의 죄와 고의적 죄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모세의 법을 어긴 죄들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을 부정하고 짓밟고, 자신들을 거룩케 한 언약의 피 곧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자들이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엄중한 것이겠습니까?
30-31절 “이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앎이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근거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십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복음 진리를 저버린 배교자들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까! 옛날 노아 시대에 심히 강포 했던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한 사실을 기억해보세요(창 8-10장). 또 심히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 성을 유황 불비로 심판하신 사실을 기억해보세요(창 19장). 또 광야에서 모세를 거역하다가 산 채로 땅 속에 떨어진 고라와 그를 지지하던 250명의 족장들의 죽음을 기억해보세요(민 16장).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참으로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32-34절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이는 너희가 나의 갇힘들을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하늘에 있는 것보다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빛을 받은 후’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라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예수 믿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경험하였고 그 싸움에서 잘 참았었습니다. 믿음의 길에 고난이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했고(행 14:22),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딤후 3:12). 바울 자신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고전 4:9-13; 고후 11:23-27). 고난을 받은 그들은 하늘에 더 낫고 영구한 기업이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옥에 갇힌 주의 종들을 동정했고 자기들의 재산과 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꺼이 당하였습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자는 고난을 참을 수 있다.
35-36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해 인내가 필요함이니라.” ‘담대함’이라는 원어(파르레시아 parresia)는 ‘담대함, 담력, 확신’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며 믿음의 담력과 확신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붙잡으라고 권면하고 격려합니다. ‘큰 상’이란 믿음의 결과로 얻게 되는 구원과 천국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믿음의 걸음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인내를 통해 온전케 됩니다. 특히 환난의 시대에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인내가 함께 필요합니다(계 13:10; 14:12).
37-39절 “이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잠시 잠깐 후’라는 표현은 인간 편에서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주님 편에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속히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주께서는 3번이나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세 번째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7, 12, 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성경의 원리입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로마서의 중심 주제입니다(롬 3장). 뒤로 물러가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은 멸망을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을 가져옵니다. 요한복음 3:36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삼위일체 신앙으로 살아가셔서 반드시 구원받고 천국에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삼위일체 주일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날마다 매 순간 승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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