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재림의 기쁨과 영광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마지막 이루어질 예언이 재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재림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재림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사는 것에 중심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세상에서 쾌락에 빠져 산다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후회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다가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하여 기쁨을 만끽해야 하겠습니다.
제목: “재림의 기쁨과 영광” (살전 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1-20
요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 2:19-20)
주제: 주님의 재림 때에 받을 성도들의 영광과 기쁨을 기억하며 인내하자.
데살로니가 전서 2장을 강해합니다. “재림 때의 영광”에 대해 말씀 한 절 한 절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전문가인 말허비교수(Abraham J. Malherbe, 1930~2012, 예일대 신학부 신약 해석학 교수 1970-1994년, 남아공 출신)는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본 교회를 개척한 지 8개월 후 디모데를 파송하면서 종말신앙으로 권면한 설교 서신입니다. 교회 조직(organization of community, 1장) - 개척(planting, founding, 2장) - 교회 체계 세움(shaping, 3장) - 목양(pastoral care, nurture, 4장) - 종말적 훈계로 격려(eschatological encouragement, 5장)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식사회학적 분석입니다. [Paul and the Thessalonians: The Philosophic Tradition of Pastoral Care. Fortress Press, 1987].
1. 데살로니가 교회의 말씀 사역(살전 1:1-12)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거짓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이는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서 증언하심이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이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2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시장에서 만난 점치는 마귀 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준 이유로(행 16:16-18) 그 주인에게 고소당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를 맞고 투옥되었습니다(행 16:23).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정신을 차리고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며 죄수들을 매인 것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16:24-27). 그러나 바울 일행과 다른 죄수들도 한 명도 도망가지 않음을 확인한 간수는 바울을 한 밤중에 자기 집에 초청하여 철야기도회를 가지면서 온 집안이 복음을 믿고 침례[세례] 받았습니다(행 16:30-34). 또한 데살로니가에서도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결국 석주만에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행 17:5-9).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그들을 맞아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행 17:5-7) 유럽 선교의 시작부터 영적 싸움이 치열했으나 바울은 더욱 하나님을 힘입어 복음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힘입어’라는 원어(에파레시아사메샤 ἐπαρρησιασάμεθα eparresiasametha)는 ‘담대함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3-5절 “이는 우리의 권면은 거짓(플라네 πλάνη plane)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이는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서 증언하심이니라.” 바울 일행이 고난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말한 이유는 그들의 권면이 거짓이나 부정(不淨)이나 속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의 권면이 순수하지 않았다면, 평안할 때는 혹시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환난 중에는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환난 중에 담대히 거짓을 말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복음을 담대히 말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대로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환난 중에 할 말이 없었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담대히, 자유로이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은 현실의 어려운 환경을 거슬러 담대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거짓이나 불결한 동기에서 일하지 않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다는 증거는 그들도 알고 있듯이 바울 일행이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아첨의 말을 하지 않았고 더러운 이익을 구하여 탐심의 탈을 쓰고 거짓되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알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도 증거 하실 수 있는 바입니다.
6-8절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 일행은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는 사도이므로 존중함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는 그들에게든지 다른 이들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땅의 것이 섞이지 않은 그들의 순수함을 보입니다. 복음 사역자는 땅의 썩어질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므로,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의 상급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삯군들은 복음을 빙자하여 이 세상의 것들을 얻으려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영혼들을 위해 온유한 심령으로 자기들의 목숨까지 즐거이 줄 마음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모가 자기 자녀들을 기름같이 유순한 자들이 되었고 혼들을 사모하고 사랑하여 단지 말로만이 아니고 목숨까지도 주기를 즐거워하는 심정으로 봉사했습니다. 여기에 복음 사역자들에게 필요하고도 중요한 또 하나의 면모가 있습니다.
9-10절 “이는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수고와 애쓴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그의 말씀 사역이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 합니다. 그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을 것이고 일하지 않고 편안히 섬김을 받는 자가 되려 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다시 간추려 말하기를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말씀 사역은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고 흠 없이 행한 사역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증인이요 하나님도 증인이 되십니다. 사도는 이렇게 자신의 말씀 사역에 대해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뒤를 따르는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과 봉사자들이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사에 거룩하고 정정당당하고 흠 없이 행하는 봉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11-12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7절에서는 목회자를 유모(nurse)로 비유하듯이, 9절에서는 노동자(labourer)로 비유하듯, 11절에서는 아버지(father)로 비유하면서 자녀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한다고 합니다. 자기 자녀들을 부르셔서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도 복음사역을 담당하는 목회자, 신학자, 선교사, 전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믿음 중심, 의와 선과 진실 중심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살전 2:1~12절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교회가 제대로 서기 위해 첫째로, 복음 사역자들은 거짓이나 부정(不淨)이나 속임으로 일하거나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고 일하지 말아야 하고, 또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거짓된 종들이며 삯군들일 것입니다.
둘째로, 복음 사역자들은 유모같이, 충실한 일군처럼, 신실한 아버지같이 영혼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심정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일해야 하고,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해야 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이 행해야 합니다.
셋째로, 복음 사역의 목표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며 경건하게 믿음으로 살게 하고, 또한 천국 백성답게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행하며 그의 계명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2. 바른 성도의 모습; 기쁨과 영광 (살전 2:13-20)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 이는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며,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님과 그들 자신의 대언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이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함이기 때문이라. 왜냐하면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라.
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인해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 진리 곧 오늘날 신약성경에 밝히 기록된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반복하여 증거 합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도의 일행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받았으며 그들이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며 또 그것이 옳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는 말은 그가 전한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이 그것을 그렇게 받은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에 범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깨닫지 못하는 곳에는 구원과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받는 심령마다 구원과 생명을 얻습니다. 구약의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신약의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오늘날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깨닫는 것은 인생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며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또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활동했다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글자들이 아니고 살아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렘 23:28-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夢事)를 얻은 대언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분별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14절 “이는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며,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교인들 속에 역사한 증거는 그들이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처럼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는 교회들의 위치가 지역적으로는 유대 지방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진실한 성도들의 주소입니다. 교회들은 또한 ‘하나님의 교회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하며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고의, 최종적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곧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입니다.
15-16절 “유대인은 주 예수님과 그들 자신의 대언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일부 유대인들의 죄악은 참으로 큽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 자신의 대언자들(선지자들)을 죽였고 바울 일행과 예수 믿는 성도들을 유대 땅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항한 매우 큰 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죄악을 항상 채우는 자들이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끝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17-18절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 교인들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곳으로 가려고 한두 번 시도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진실한 다른 성도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특히 주님의 목회자들은 그들을 통해 구원받고 양육(nurture) 받은 성도들을 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도들 간의 교제는 이 땅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기쁘게 누릴 교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바울 일행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의 방해와 시험들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장차 사탄과 악령들을 이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 때때로 우리의 삶과 봉사의 일들 속에 사탄의 방해와 시험들을 허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고난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부지런히 충성하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의 뜻하신 바들이 다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작정하신 열매들이 다 맺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9-20절 “이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분께서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님 앞에 너희가 아니냐? 함이기 때문이라. 이는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을 보기를 원한 이유는 그들이 바울에게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말씀 속에서 잘 자라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목회자의 기쁨이요 자랑입니다. 재림의 주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지금 교회들은 지상에서 여러 가지 싸움 속에 있고 불완전 속에 있으나, 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복음의 결실들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회복할 것은 재림 신앙입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곧 오실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말씀의 사역자들에게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물론, 실제로는 순종함이 없는 이름만 가진 교인들, 진심으로 회개치 않은 자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목회자들의 근심거리요 교회의 수치 거리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 비록 실수는 있어도 중심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하고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목사들의 기쁨과 면류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첫째로, 우리는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복음, 지금 성경에 밝히 기록된 내용과, 오늘날 참된 목사들을 통해 전해지는 성경적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읍시다. 이 지식과 믿음은 참된 성도들에게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표가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많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지킵시다. 초대교회는 많은 환난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많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 성도의 표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참된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를 만듭시다. 교회의 안팎에는 많은 환난과 마귀의 시험이 있으나, 참된 성도들 간에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들 간에, 또 성도들 상호 간에 아름다움 교제가 있고 사모함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재림의 영광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진리의 하나님, 이번 가을에는 교회가 교회답게, 예배가 예배답게, 신앙이 신앙답게 하옵소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님으로, 오직 바른 교회로 회복하여 날마다 개혁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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