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선교의 지상명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에 대해서 명령하셨습니다.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여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선택받은 백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오늘도 달려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목: 선교의 지상명제
설 교 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행 1:1-8, 창 18:16-19
요 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주 제: 복음 전파는 기독교인의 최대 사명이다. 복음을 부지런히 전하자.
오늘은 주님의 지상 명제인 선교에 대해 말씀을 전합니다. 선교(mission)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열방을 가르치며 teach all nations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님 the Holy Ghost의 이름으로 밥티스마[세례,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even unto the end of the world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이것이 마태복음의 결론이며 지상명제(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을 앞두시고 세계선교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과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53절에 의하면 베다니 앞 즉 감람산 위에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자인 누가가 쓴 사도행전의 시작에서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택하신 성도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3). 공생애 시작하실 때도 40일간 유대 광야에서 금식 기도 하셨고, 승천하시기 전에도 40일 동안 전도와 말씀을 전하시는 사역을 마무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계획을 가지시고 하십니다.
사도들과 함께 모여 있을 때 저들에게 부탁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신님의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밥티스마를 베풀었으나 저희들은 몇 날 못 되어 성신님으로 밥티스마를 받겠다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획복의 때를 묻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신님 the Holy Ghost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고 당부하셨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왕국에 가서 주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어떤 전도의 열매를 맺고 살았는지, 얼마나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는지 질문 당할 때 대답할 말이 있어야겠습니다. 행 1:8은 한마디로 제자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 최후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를 삼고 주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신자의 신앙생활이 무엇이냐 할 때 이 제자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신앙의 내용이고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제자도를 다했습니다. 약속의 자녀 이삭을 믿음으로 잘 교훈한 관계로 모리아 산에서 산 제물로 바쳐도 이삭은 순종한 것입니다. 창세기 18:17-18은 구약의 지상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약속의 말씀이 자여손에게 미치는 것이 바로 땅끝까지 말씀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온 족속이나 땅끝이나 수평적인 지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자녀, 손자, 증손, 고손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① 제자를 삼아라 하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며 그들에게 이 천국의 복음과 진리들을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 이전에 이 말 자체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와 주께서 주신 명령을 수행할 만한 모델이 될 수 있느냐, 인격적인 자세와 품격을 갖추느냐 하는 데 더 많은 초점이 있습니다.
② 가르치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이 그의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드신 인간에 대하여 어떤 가치를 인정하시고 어떤 대우를 하시는가가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고자 하는 어떤 일에 대하여 우리를 수단과 방법으로 부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제자도라는 것을 쉽게 나가서 전도하며 기독교에 대해서 증언을 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전도를 하고 교화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너무 쉬운 답은 더 깊은 신앙의 경지에로의 발전과 우리의 책임에 방해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 왕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여기 능력이라는 것으로 가장 뛰어난 세 가지 일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대언자, 귀신을 쫓아내는 일, 권능을 행하는 자. 만일 제자도가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이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일을 목표로만 삼고 끝낸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며 꾸짖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처음에 등장시킨 이유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왕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못을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능만으로 전쟁에서 전투를 잘하는 사람을 보고 용병이라고 합니다. 용병은 아무리 전투를 잘해도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투하는 것은 애국심이나 책임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 잘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투력은 인정하지만 그를 훌륭한 군인이라고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군인은 때에 따라 그가 전투에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그가 어떻게 힘을 다 썼으며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개인적인 것을 희생했느냐?로 가늠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란 군인이 전투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과 그것에 의하여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복음에 대한 강렬한 도전성을 놓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놓고 있으면 일단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훌륭한 성도라고 할 때 군인이 전투력만으로 인정받지 않듯이 그의 신앙생활이 전도라는 원색적인 전투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의 사랑과 사도행전 1:8의 그 구절이 하나로 만나는 것을 봅니다. 제자를 삼을 때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를 스승으로 하는 이유를 꼭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다른 사람이 나를 스승으로 본받을 때 나를 본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본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에게 녹아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 내용이 방법적. 능력적으로 일을 성취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술과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한 인격과 자세와 모습으로써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싸움은 언제나 이것이다. 억울함과 복수심과 경쟁상대로서 이웃을 만나지 말고 이웃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할 대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장 많은 요구는 이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또 이것을 다 행한 자는 율법을 다 이룬 자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싸움은 종교성을 띤 원색적인 싸움인 경우가 드물고 사실은 이 자세의 싸움입니다. 세계로 나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며 요 3:16의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독생자를 주심)를 전해주어야 합니다. 성신님은 삼위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인격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지, 정, 의로 역사하십니다.
첫째로 성신님은 지적인 요소를 지니셔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고전 2:10)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요 14:28),
둘째로 성신님은 정적인 요소를 지니신 분이셔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십니다. (롬 8:26).
셋째로 성신님은 의지적인 요소를 가지신 분이시라 뜻을 지니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의지대로 성신님을 각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주십니다(고전 12:7-11).
우리도 조그마한 강이야 내가 노를 저어 건널 수 있지만 태평양과 같은 넓은 세상 바다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신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도, 그 외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기관도 성신님께서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시 한 편의 줄거리만 소개해봅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서 허둥지둥 둥지에 돌아왔습니다.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보았습니다. 발버둥을 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이 둥지를 떠나면 꼭 죽을 것 같아 안간힘을 썼으나 폭풍이 워낙 거세어서 둥지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날개를 펴고 폭풍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끝없이 날아갔습니다. 얼마 동안 날아갔을 때 폭풍은 멎었습니다. 조용해졌을 때에 땅을 내려다보니 넓고 푸른 초원이 있었습니다. 생전 보지 못한, 전에 살던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름다운 초원이 눈앞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새는 행복했답니다.
성신님 안에서 거듭난 삶을 산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길로 그대로 나를 맡기십시오. 날개를 펴십시오. 해묵은 전통과 고집을 버리십시오. 성공이라고 하는 허상을 버리십시오. 나라고 하는 우상도 다 버리고 묵은땅을 깊이 갈아버리고 새롭게 파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넓고도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구에 매인 닻줄을 끊어야 합니다.
찬송 302장(통 408장)에서
1)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데로 저 한가운데 가보라
후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 가라
(2)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닷속을 한번 헤아려 안 보아
(3)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마음 약하여 못 가네
(4)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거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고정관념에 집착되어있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듭나야 되겠다. 겐네테아노센."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원어대로 보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Born from above, 위로부터 태어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야 되겠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묵은땅을 갈고 다시 파종하고 주의 말씀의 씨앗을 우리의 가슴에 받아들이면 분명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입니다.
오늘날 니고데모가 가까이 멀리 많이 있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이를 거듭난 크리스천(born again Christian)이라 합니다.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여 거듭난 크리스천으로 돌아오게 하는 이들은 하늘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친다고 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렘 23:22)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6-17)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4:3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6-18)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19-20)
선교하시는 분들은 귀합니다. 보내는 선교사가 있고 가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기도와 물질로 선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문서선교, 교도소 선교, 학원선교, 방송선교, 나눔과 돌봄의 선교, 병원선교, 기도 선교, 교육선교, 치유선교, 상담 선교, 해외선교, 기관 선교 등 여러 방면으로 수고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2016년 한국교회 선교사 수가 “전체 0명 증가”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2017년 1월 9일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열린 정기총회를 통해 이를 발표하면서, 이는 사임 또는 은퇴 선교사 수와 신규파송 선교사 수가 동일하여 결국 전체 파송선교사 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06년 이후 10여 년간 한 해 대략 1200명의 선교사 수 증가를 유지하던 것이 2015년 이후에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한 결과로, 선교계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KWMA는 이번 통계 발표를 통해 한국교회는 전 세계 172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현재 전체 선교사의 수는 27,205명으로 지난 2015년 선교사 수와 동일하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도의 통계도 비슷합니다.
KWMA 발표에 따르면 연도별 선교사 파송 수는 이미 뚜렷한 하향세를 나타내고 있었는데, 2013년 1,003명 증가, 2014년 932명 증가, 그리고 2015년에는 528명 증가하였으며 2016년에 0명 증가하였습니다.
한때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였는데 지금은 6위입니다(고든콘웰신학교 글로벌 기독교연구센터 CSGC 발표). 1위가 미국인데 127,000명 파송하며 2위가 브라질로 34,000명 파송하며,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다음에 한국, 인도, 중국,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등이랍니다. 한국은 하계올림픽을 치루고, 동계올림픽을 이제 또 치루게 되는데 복음을 수출하는데 더욱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 때도 선수단과 임원단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선교해야 할 것입니다. 감람원 세계선교회는1988년부터 교육선교를 힘써 왔습니다. 자비량 선교를 해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4:35-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신님으로부터 오는 전인격적인 권능을 받아 세계 선교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주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며 자여손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추수할 일군들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에 적극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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