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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주석 성경말씀] 학대 시기 친구가 없음(전 4:1-16)

복음의 능력 2021. 9. 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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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4장 주석 성경말씀 중에서 학대 시기 친구가 없음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위로자가 없는 학대받는 것도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억울하게 학대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로자가 없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전도자는 말합니다.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데 이것도 헛되다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것도 결국 인생의 허무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명예와 권력도 때가 되매 사라지니 허무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복음입니다. 진리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헛되지 않습니다. 인생을 헛된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인 예수님께 투자하면 영원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학대 시기 친구가 없음(전 4:1-16)

 

[1-3]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 . .

전도자는,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학대받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다.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학대받는 자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다.

전도자는,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라고 말한다. 세상에 불의, 학대, 억울함 등이 있음을 볼 때, 현세는 분명 이상적이지 않고 살 만한 좋은 세상이 못된다. 이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죽은 자가 더 복되며, 아니, 아예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또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대로, 내세(來世)가 있다. 의인에게는 복된 천국이 있고 악인에게는 심히 두려운 지옥이 있다. 또 이 세상에서도 고난 중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점에서 우리에게 본이 되신다.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 위로를 받았고 위로하는 자가 되었다(고후 1:4). 성경은 위로의 책이다(15:4). 그러므로 초대 성도들은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소망 중에 담대히 살았다(10:34-35).

우리는 학대가 있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의 심판과 그의 약속하신 내세를 굳게 믿고 위로를 받고 우리의 할 일을 담대히 행하자.

[4-6]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 .

본문은,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교묘한 일이라는 원어(콜 키쉐론 함마아세)는 ‘일의 모든 성공’(BDB, KB)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모든 수고를 하고 일을 성공해도 오히려 그로 인해 이웃의 시기를 당하니, 그것도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좋은 인간관계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은 생존경쟁과 시기 질투의 싸움터와 같다.

그렇다고 게으름이 행복이라는 뜻이 아니다. 본문은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고 말한다. ‘손을 거둔다는 말은 손을 접다, 손을 모은다는 뜻이다. 그것은 게으른 자의 모습을 묘사한다(6:10; 24:33). 우매자는 게으르고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한다. ‘자기 살을 먹는다는 말은 우리말에 제 살을 깎아 먹는다는 말과 같다.

본문은 또,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소득이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이 헛수고이며 마음고생뿐일 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잠언 15:16-17,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보통]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적은 소득이라도 평온함이 있는 것이 더 낫다. 행복은 소득의 많음에 있지 않고 마음의 평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다.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시다(살후 3:16). 또 계명을 순종하는 의로운 삶에는 강 같은 평강이 약속되어 있다(48:18).

우리는 물질적 소득에 큰 가치를 두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구하여 누리자. 인생의 행복이 거기에 있다.

[7-8]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 . . .

본문은,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쉬지 않고 수고하여 돈을 번다. 그는 번 돈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쓰고 즐길 줄 모르고 계속 수고만 한다. 그에게는 돈을 버는 목적이 없다. 그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낙을 누릴 줄도 모르고 일만 한다. 그러므로 그의 수고는 참으로 헛되다. 인간은 돈을 버는 기계인가? 무엇을 위해 수고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가?

인간은 삶의 바른 목표가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사야 43:7, 21,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둘이 삶의 바른 목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돈을 쓰는 데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해,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쓰는 것이고, 둘째, 나를 위해 적당히, 근검절약하여 쓰는 것이고, 셋째, 이웃을 위해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고를 위해 수고하고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허무한 사람이 되지 말자. 우리는 삶의 바른 목표를 정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자.

[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 . . .

본문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면 무슨 일이든지 더 잘 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본문은,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친구]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말한다. 둘 중에 하나가 혹 실수하거나 낙심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그를 붙들어 주고 그를 위로 격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은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고 말한다. 두 사람의 친근한 교제는 서로에게 기쁨과 힘이 될 것이다. 본문은 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단합하면, 어려운 일이 올 때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본문은 친구들 간의 교제와 협력의 유익에 대해 말한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것은 서로에게 해를 줄 뿐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교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께서 명하신 선한 일들에서 일심 단합하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듣기를 원하였고(1:27), 또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교훈하였다(살전 5:11).

그러려면 우리는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한다(2:2-3).

우리는 주 안에서 생각의 일치와 겸손의 덕으로 좋은 친구들과 좋은 동역자들이 되자. 그래서 일심 단합하여 주의 일에 협력하며 힘쓰자.

[13-16]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 . . .

본문은,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낫다”고 말한다. 늙은 왕은 교만하고 완고하고 미련하여서 바른 조언과 충고를 받을 줄 모르나, 그런 왕보다는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이 더 낫다는 뜻이다.

본문은,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음이니라”고 말한다. 그 소년은 그 나라에서 가난한 자로 나서 자랐고 고난을 받아 옥에도 들어간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요셉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였다.

본문은 또, “내가 본즉 해 아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매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다”고 말한다. 백성들은 늙은 왕 대신에 왕이 된 소년을 지지하고 그의 통치받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본문은, “[그러나]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말한다. ‘후에 오는 자들은 다음 세대 혹은 다른 세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본문은, 한 때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던 그 왕이 얼마 후에는 사람들의 배척을 받기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의 여론은 변화무쌍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자기 몸을 그들에게 맡기지 아니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2:23-25).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순종하는 지혜자가 되자. 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자.

[마태복음 3장 강해설교]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세례식(마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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