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장에서는 아굴의 잠언에 대해서 말씀한다.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라고 했다. 아굴이 이디엘과 우갈에 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라고 했다. 성도의 방패는 예수님이다.
아굴의 잠언(잠 30:1-33)
[1-4절]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 . .
본문은,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고 말한다. 아굴은 알려져 있지 않은 경건한 선지자이며 이디엘과 우갈은 그의 제자들이었을 것이다. 성경의 인간 저자가 중요치 않고,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굴은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미련한 자는 자신을 지혜롭게 여기지만(잠 26:12),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다. 아굴은 특히 자신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을 고백하기를,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손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세운]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늘에 계심, 바람과 비를 주관하심, 온 땅을 건립하심, 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신비한 세계에서 산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마 11:27), 사도 바울도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21). 우리는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조금 알 뿐이다. 우리는 인간의 무지함, 특히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무지함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자. 우리는 신구약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자.
[5-6절]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 . . .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말한다. ‘순전하다’는 원어(체루파)는 ‘제련되다, 순결하다’는 뜻이다. 시편 12:6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고 말한다. 시편 18:30도,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精美)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고 말한다. ‘정미하다’는 원어는 바로 ‘순전하다’고 번역된 그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버릴 것이 없고 오류가 없다. 시편 19:7-8은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 곧 성경은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하다고 성경의 네 가지 성격을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이시다. 방패는 원수의 공격을 막는 도구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방패라고 말씀하셨다(창 15:1).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방패라고 말했다(시 18:2).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죄, 불신앙과 의심, 낙심과 절망을 막아주신다.
그러므로 본문은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인간의 생각과 말을 더해서는 안 된다. 만일 누구든지 성경에 무엇을 더하면, 인간의 말을 섞는 것이며 성경을 변질시키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 말씀처럼 말하며 의와 진리가 아닌 것을 의와 진리처럼 말하는 것이니, 그는 거짓말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실 때부터 “너희는 가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신 4:2; 12: 32), 성경 맨 마지막에도 그것을 엄히 말씀하셨다(계 22:18-19).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임을 알고 성경을 주야로 읽고 가감치 말고 믿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도 되실 것이다.
[7-9절]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로 . . . .
하나님의 사람 아굴은,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요긴하다고 깨달은 두 가지를 그가 죽기 전에 계속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그가 구한 첫 번째 소원은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소서”라는 것이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우상숭배이든지 거짓말이든지 하나님께서는 헛되고 거짓된 것을 다 미워하신다. 잠언 6:16-19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육칠 가지 중에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을 포함하였다. 에베소서 4:25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교훈한다.
아굴은 두 번째 소원에 대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부해질 때 마음이 교만해지고 해이해져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다. 그러므로 신명기 8:12-14는,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은 가난해도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 쉽다. 그러므로 아굴은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고 지혜롭게 기도한 것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주셨고(마 6:11), 디모데전서 6:8은 “먹을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교훈하였다. 우리도 이 요긴한 두 가지, 즉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고 진리의 사람, 진실의 사람이 되고, 또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며 살기를 늘 기도하자.
[10절] 너는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본문은, “너는 종을 그 상전에게 훼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남에 대한 거짓된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참된 비난도 다른 이에게 안 해야 한다. 특히 그의 주인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를 매우 해치는 것이다. 우리는 실상 남의 상황을 정확히 잘 모른다. 또 모든 일을 판단하실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우리는 다 율법을 지키는 자일 뿐이다. 종의 잘못이 있으면 그에게 직접 충고하는 것이 좋다.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1, 14는,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말한다.
남을 훼방하고 비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시편 15:3은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자의 자격에 그 혀로 참소치 않고 그 이웃을 훼방치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다윗은, 시편 101:5에서,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교훈하셨다(마 7:1, 3). 로마서 1:29-30은 죄악의 목록에 수군수군하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에베소서 4:31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교훈하였고, 디모데전서 3:11은 장로나 집사의 아내의 자격으로 참소하지 말 것을 포함하였다. 디모데후서 3:2-3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의 풍조의 특징들 중에 훼방하며 참소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남이 잘못했을 때 그를 다른 사람에게, 특히 그의 윗사람에게 비방하지 말고, 직접 그에게 충고하든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11절]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 . . .
본문은,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무리’라는 원어(도르)는 ‘세대’라는 뜻이다. 본문은 부모를 저주하며 축복하지 않는 불효하는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디모데후서 3:1-2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리라”고 말했다. 사람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가? 그것은 자신을 낳으시고 기르신 은혜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혹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잘 기르지 못했을지라도 낳으셨다는 이유만으로도 공경해야 할 것이다. 또 그것은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부모 공경은 인간 윤리의 기본이며 사회 윤리의 기본이다.
무엇보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레위기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성경은 부모를 저주하는 것을 사형에 해당하는 악으로 정죄한다. 출애굽기 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잠언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기쁨과 행복]이 유암[어두움]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우리는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않는 이 시대의 풍조 가운데서 부모 공경을 실천하고, 또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치자.
[12절]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본문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도르 세대]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1:45에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세상에 아주 깨끗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不淨)함을 깨달았다. 이사야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선지자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고백하였다(사 6:5). 사도 베드로도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눅 5:8). 사도 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였다(딤전 1:15). 성도는 자신의 부정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것을 회개하고 씻음받는다.
그러나 위선자는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회개치 않고 고치지 않고 청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며 또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23:25, 28).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시대가 올 것인데 사람들은 거룩하지 않고 경건의 모양만 있고 그 능력을 부정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딤후 3:2, 5). 우리는 죄에 민감하고 자신을 깨끗이 하자. 더러운 것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고(엡 4:13),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자(살전 5:22).
[13절]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본문은, “눈이 심히 높으며 그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만한 세대’를 가리킨다. 다윗은 시편 101:5에서 눈이 높은 자들과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같은 부류에 두면서 그들을 용납지 않겠다고 증거하였다. 눈이 높고 교만한 세대가 있다. 디모데후서 3:2, 4에 예언된 말세에 올 고통하는 시대의 특징들 중에 자긍하며 교만하며 자고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다. 잠언 21:4는,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신다. 잠언 6:17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육칠 가지 중 교만한 눈을 포함하였다. 또 잠언 16:5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다윗은 시편 131:1에서,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고(마 11:29), 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다(마 20:26-27).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했다(빌 2:5-8). 눈이 높은 것 곧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며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14절] 앞니는 장검(長劍) 같고 어금니는 군도(軍刀)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본문은, “앞니는 장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삼키는 세대, 즉 그를 잔인하게 착취하고 짓밟는 악한 세대가 있다. 노아 시대가 그러하였다(창 6:11, 13). 또 구약시대의 어떤 왕들과 방백들, 심지어 어떤 서기관들도 그러하였다. 이사야 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마가복음 12:40, “저희는[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그들은 사랑이 없고 인정도, 동정심도 없는 자들이다. 신약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며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돈을 사랑하고 무정하고 사나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딤후 3:2-3). 우리는 말세에, 노아 시대의 모습과,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의 타락한 사회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구제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신명기 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가난한 형제에게] 구제할 것이요.” 이사야 1:17, “[너희는]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해 신원하라.”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로마서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우리는 가난한 자를 핍박하고 학대하고 착취하는 악한 사람들처럼 하지 말고,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피고 돕고 구제하자.
[15-16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 . . .
본문은,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陰府)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말한다. 거머리는 사람의 피부에 딱 붙어서 끈질기게 피를 빨아먹으려 한다. 그것은 족한 줄을 알지 못한다. 다음 몇 가지도 이와 비슷하게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첫째, 음부 즉 무덤 혹은 지옥이 그러하다. 무덤은 끝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옥은 바닥이 끝없이 깊은 무저갱(無底坑)이다. 둘째, 아이 배지 못하는 태가 그러하다. 그는 죽을 것같이 잉태를 사모하고(창 30:1) 아이를 낳기까지 만족이 없을 것이다. 셋째, 물로 채울 수 없는 땅이 그러하다. 땅은 그렇게 많은 물도 다 자기 속으로 스며들게 만든다. 넷째, 족하다 하지 않는 불이 그러하다. 불은 무엇이든지 다 태운다. 대형산불은 온 산림과 산에 있는 사찰이나 집들을 다 태운다.
인간의 욕심과 탐심은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사람의 물질욕은 끝이 없어 보이고 정욕과 명예욕도 그러한 것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제, 극기, 및 자족의 생활을 교훈한다. 갈라디아서 5:23-24, “[성령의 열매는]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빌립보서 4:11-12,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디모데전서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끝없는 욕심과 탐심, 즉 물질욕, 정욕, 명예욕을 버리고 경계하자. 우리는 범사에 절제하며 자신을 부정하고 자족하는 자가 되자.
[17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본문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말한다. 눈을 지목한 까닭은 눈이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선한 자는 선한 눈을, 악한 자는 악한 눈을 가진다. 교만한 자는 교만한 눈을 가지며(잠 6:17) 음란한 자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진다(벧후 2:14). 부모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는 그런 눈을 가진다. 부모를 경멸하는 것은 저주를 받을 미련한 일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잠언 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잠언 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출애굽기 21:15, 17,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부모를 조롱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나 독수리 새끼에게 먹힐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자기의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복된 일이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레위기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잠언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것은 부모들도, 자녀들도 유념해야 할 진리이다. 우리는 부모를 멸시하고 대항하는 어리석은 큰 죄를 범치 말고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고, 또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가르치자.
[18-20절]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 . . .
본문은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즉 놀랍고 알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한 자취며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말한다. ‘자취’라고 번역된 원어(데레크)는 ‘길’ (KJV, NASB, NIV)이라는 단어이다. 기이하여 잘 알 수 없는 것 서넛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길,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 바다의 배의 길, 남자가 여자(알마)와 함께한 자취, 특히 음녀의 자취 등이다. 그것은 잠깐 있다가 지워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감추어지고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본 잠언의 저자 아굴은 특히 음녀의 자취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모든 죄가 대개 은밀하지만, 특히 음란죄가 그러하다. 그것은 감추어져 있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은밀히 행하는 악을 징벌하신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고린도전서 4:5,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성도의 생활은 빛의 생활이다. 에베소서 5:8-9, 11,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우리는 은밀한 악을 행치 말자. 우리는 은밀한 악에 참여치 말고 도리어 책망하고, 오직 빛의 자녀답게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행하자.
[21-23절]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 . . .
본문은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즉 세상으로 깜짝 놀라고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서넛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고 말한다. 첫째는 종이 왕이 된 것이다. 종은 보통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고 덕과 통솔력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었으니 그것은 무자격자가 높임을 받은 것과 같다.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불의하고 부정한 방식으로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여하튼, 나라의 장래가 매우 걱정될 것이다. 왜냐면 그가 나라를 잘 다스릴 지혜와 힘이 있을지 의문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이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치 않는 자이다. 그는 악하고 게으르며,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자가 우연으로든지 혹은 불의하고 악하고 거짓된 방법으로든지 적잖은 소득을 얻고 배부르게 먹은 것이다. 그런 일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뜨린 기이한 일이다. 셋째는 꺼림을 받는 여자가 시집간 것이다. ‘꺼림을 받는다’는 원어(세누아)는 ‘미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외모가 나빠서나 성격이 나빠서나 도덕적 흠이 있어서 미움을 받아 결혼하지 못하던 여자가 어느 날 시집갈 때 사람들은 다 깜짝 놀랄 것이다. 넷째는 여종이 여주인을 밀어낸 것이다. 그 여종은 여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을 터인데, 아마 부정한 방법으로 여주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이것은 그 일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정당치 않은 불의한 방법으로 높아지려 하거나 돈을 벌려 하거나 권세를 잡으려 하지 말고, 지혜와 지식, 덕과 인품을 준비하자.
[24-28절]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 . . .
본문은, “땅에 작고도 가장[아주]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고 말한다. 개미는 힘이 없는 벌레이지만,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며 놀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한다.
사반(솨판)은 오소리나 바위 너구리(BDB, NASB) 또는 토끼(KB, KJV, NIV) 종류라고 한다. 그것은 약한 짐승이지만, 바위 사이에 집을 짓는 어려운 일을 해낸다. 메뚜기는 작은 곤충이나, 임금이 없어도 떼를 지어 나아가며 단결심이 있고 질서를 지키며 분쟁과 다툼과 분열이 없다. 도마뱀은 사람의 손에 잡힐 만한 약한 짐승이지만, 아주 재빠르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왕궁, 크고 좋은 집에 거처한다. 개미, 오소리, 메뚜기, 도마뱀 등은 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생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적 지혜가 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육신적으로 연약하고 세상적으로 천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받들 수 있다. 고린도전서 1:27-28,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연약하고 비천할지라도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선한 일을 힘쓰자.
[29-31절]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 . . .
본문은,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고 말한다. 사자는 짐승들 중 가장 강하며 동물들의 왕이라고 불린다. 특히 수사자는 위풍당당하며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않는다. 그것은 용기와 담대함의 상징이다. 잠언 28:1,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사냥개도 위엄 있고 당당하며 겁이 없다. 숫염소도 위풍 있고 당당하게 걷는다. 당할 수 없는, 무용(武勇) 있는 왕도 위풍당당하다. 위의 네 가지는, 낙심치 않고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담대함, 앞장서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투지 등 지도자와 봉사자의 덕을 교훈하는 것 같다. 이런 용기와 담대함과 투지는 건전한 생각과 지식, 건전한 판단과 확신, 그리고 의로운 삶에서 나올 것이다.
여호수아 1:7, 9,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디모데후서 4:3-5,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용기와 담대함, 투지와 충성 등의 덕은 건전한 지식과 확신과 의로운 삶에서 나온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에서 이런 덕을 가지자.
[32-33절]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대저 젖을 저으면 뻐터가 되고 . . . .
본문은,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고 말한다. 스스로 높은 체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요 교만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또 악한 일을 도모하는 것은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계획하는 것, 즉 의도적인 악이며 아주 나쁜 것이다. 이런 일을 한 자는 그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한다. 즉 그는 말하지 말고 잠잠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만하거나 악한 마음은 교만한 말이나 남을 비방하는 악한 말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떤 이가 이미 그런 말을 했으면,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본문은 “왜냐하면 젖을 저으면 뻐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만하고 악한 마음과 말에서 다툼이 생긴다. 그러므로 잠언 13:10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고 말한다. 또 야고보서 3:16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31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한다.
성도는 선한 말을 하고 서로 화목하여야 한다. 야고보서 3:17-18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한다. 또 에베소서 4:29, 32는,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교만하고 악한 마음을 버리고 또 그런 말도 하지 말자. 우리는 오직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하고 다른 성도들과 화목하며 살자.
[출애굽기 34장 설교말씀] 모세의 시내산 두 번째 40일(출 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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