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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8장 설교말씀]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 예언(사 48:1-22)

복음의 능력 2023. 2. 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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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사용하여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해방하여 예루살렘을 돌아왔다. 유다 백성이 해방되어 돌아오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 예언(사 48:1-22)

 

1-11, 내가 나를 위하여

[1-5]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 . . .

이사야는 말한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으며 유다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성실치[진실치] 아니하고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는 너희는 이를 들을지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로부터 특권 있는 은혜를 받았었다. 그들은 거룩한 성의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함이 없이 또 의로움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거짓되었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형식적이었으며 외식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실한 예배와 진실한 신앙고백과 진실한 기도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사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 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장래일을 미리 고하신 후에 홀연히 그 일을 행하시고 이루셨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들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완악하고 완고하며, 자기의 주관과 고집이 세었다. 물론 그것은 성경적 확신과는 다르다. 그들은 목의 힘줄이 무쇠와 같이 단단하였다. 그들에게는 겸손함이 없었고 순종심도 없었다. 또 그들의 이마는 놋이었다. 그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까지 있었다. 하나님께서 장래의 일을 미리 보이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신()의 행한 바라고 말했을 것이다.

[6-8]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 . . .

이사야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새 일은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일이었다. ‘궤휼하고 궤휼하다’는 원문(바고드 티브고드)심히 배신적이게 행하다, 심히 거짓되다는 뜻이다. ‘패역한 자라는 원어(포쉐아)범죄자, 반역자라는 뜻이다. ‘모태에서부터 범죄자라는 말씀은 인간의 원죄를 증거한다.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즉 나기 전부터, 죄성을 가진 죄인이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존재이다. 거짓, 외식, 완고, 고집, 교만, 뻔뻔스러움, 배신, 반역--이것이 모든 인생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생의 죄악된 모습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계획하셨고 오래 전에 미리 예고하셨고 또 그가 주권적으로 행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파사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의 구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죄와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도 그러하다.

[9-11]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인간은 심히 죄악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 죄악성 때문에 근심하시고 노하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영예를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실 것이며 택자들을 오래 참고 멸절치 않고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다. 그것이 택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알자. 이스라엘 백성은 성실함과 의로움이 없는 외식적 예배와 신앙고백과 기도를 잘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목의 힘줄이 무쇠이며 이마가 놋같이 뻔뻔스런 자들이었다. 그들은 배신적이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죄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심히 부패되고 무능력한 존재이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하고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오래 참으시고 아끼시고 구원하시되,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하시는 주권적 하나님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 의 안에서 의의 길을 걷고 그 거룩 안에서 거룩한 삶을 구하자.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가 되고 항상 하나님께 찬송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12-22, 하나님의 구원 계획

[12-13]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 . . .

하나님께서는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니라는 말씀은 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창조주와 심판자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손으로 땅의 기초를 정하셨고 그 손으로 하늘을 펴셨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내가 부르면이라는 말씀은 그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

[14-16]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느뇨?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주 하나님과 그의 영께서 나를 보내셨느니라](KJV).”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를 세우실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는 파사 왕 고레스를 가리킨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앞으로 행하실 일을 미리 예언하셨다. 그는 그것을 미리 알리시고 선포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다른 이가 없음을 증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예언하신 대로 고레스를 부르시며 확실히 인도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 섭리는 주권적 행위이다. 또 그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형통할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저항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는 성령으로 선지자들을 감동하셔서 자기의 뜻을 선포하며 예언하게 하셨다. 이사야도 그 중 하나이다.

[17-18]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행할 바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10:12-13; 28).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더라면 평강이 넘쳤을 것이며 그의 의가 그의 앞에서 빛났을 것이며 그의 자손들도 번창하며 복되었을 것이다.

[20-21]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갈대아 사람들에게서 해방되며 구속받는 일을 즐거운 소리로 외치며 땅끝까지 반포해야 한다. ‘사막은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로마서 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악인에게는 오직 수고로움만 있다. 그는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슬프고 불안하며, 양심적으로 죄책에 눌러 고통을 받는다. 그는 육신적으로도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경험하며,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당한다. 악인에게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 몸의 건강, 또 환경적 평안이 없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처음과 나중, 곧 창조자와 심판자이시다. 그 하나님 안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다. 하나님 안에 인간의 구원과 의와 평안이 있고 또 영생이 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깨닫자. 첫째, 하나님의 율법은 인생의 마땅한 길이다. 그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또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둘째, 율법은 인생의 유익을 위한 길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 생명과 평강과 행복을 누릴 것이나, 그것을 불순종하며 슬픔과 고난, 불행과 죽음을 체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순종하자. 그것이 인생의 마땅한 길이며 또 평강과 형통과 영생의 길이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음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만방에 선포하자. 인간은 죄악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원 계획을 이루신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속(救贖)하셨다(17, 20).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다 이루셨다. 우리는 그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구원을 감사하며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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