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에서는 최후의 만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주심(요 13:1-38)
1-17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1-2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이 유월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네 번째 유월절이다. 본장에 나오는 식탁은 공관복음들에 나오는 유월절 식탁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 곧 자신의 승천 시간이 가까웠음을 아셨고,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또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마귀는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들을 범죄케 하여 멸망케 하는 자이다. 마귀는 악한 생각을 일으킨다. 택자들과 불택자들, 구원받은 자들과 멸망당할 자들은 생각부터가 다르고 또 말과 행동도 다르다.
[3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셨고, 아들 예수께서는 그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기 위해(요 6:39)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이루신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요 3:13), ‘하늘로서 오시는 이’로서(요 3:31) 하나님께서 계신 영광의 천국으로부터 오셨다가 이제 천국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4-8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은 당시에 종들이 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남을 섬기시는 행동이셨을 뿐 아니라, 10절이 암시하듯이, 특히 죄를 씻어준다는 뜻이 있었다. 시몬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감히 천한 죄인의 발을 씻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신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단순한 섬김의 행동이 아니고 더 깊은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죄사함의 상징이었음에 틀림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해주지 않으시면,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도, 천국 백성도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고 날마다 우리의 부족을 씻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끝까지 은혜 안에 거하다가 확실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9-11절]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시몬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가 주님과 상관없는 자가 된다는 말씀에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다. 온 몸을 깨끗케 하는 목욕은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받고 거룩케 된 사실을 상징한다. 그것이 바로 중생(重生, 거듭남)이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으시고 새 생명과 새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자도 때때로 범죄한다. 그러므로 목욕한 자들이 발을 씻듯이, 중생한 자들은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용서받는 것이 필요하다.
주께서 다 깨끗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제자들이 다 중생한 것이 아님을 보인다. 열두 제자들 중에는 불택자가 한 사람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죄사함을 받지 못했고 중생하지 못한 자이었다. 그는 주님을 배반하고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를 넘겨줄 자이었다. 이것은 교회 안에 가라지나 쭉정이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불택자들은, 비록 현재 교회 안에 있어 믿는 자와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중생치 못했고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다가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진리를 배반하고 떠나갈 것이다.
[12-17절]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제자들도 서로의 발을 씻기게 하기를 원하셨다. 이것은, 겸손히 서로를 섬기며 특히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남을 용서하되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교훈하셨다(마 18:21-35). 사도 바울도 “[너희는]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하였다(엡 4:31-32).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이며 성령의 역사로 중생한 자들이며 또 진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들이다. 주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 세상에는 환난과 핍박, 가난과 질병, 자연 재해와 사고와 전쟁 등이 있지만, 하나님과 주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둘째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다.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종의 일을 하셨다. 그것은 그의 겸손과 남을 섬김과 함께 죄 용서하심을 보여주신다. 자기의 온 몸을 씻은 사람이라도 조금 무슨 일을 하고 나면 다시 발을 씻을 필요가 있다. 목욕은 중생(重生)을, 발 씻음은 중생한 후 짓는 죄에 대한 씻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아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난 중생의 은혜를 받은 후에도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죄를 짓는데, 그 죄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야 한다.
셋째로, 주께서는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친히 모범을 보이심으로 제자들도 그것을 본받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부족과 잘못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잘못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주의 피로 죄씻음을 받지만, 사람 앞에서의 잘못은 자신의 부족을 말하며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그때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교훈이다. 우리는 우리의 편협한 마음이나 부족한 사랑과 이해심을 극복하고 주의 교훈과 본을 따라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자.
18-38절, 서로 사랑하라
[18-20절]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나와 함께 떡](전통본문)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시 41:9)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본장 10절에서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었다(11절). 본문에서도 그는 자신을 팔 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가 친히 택하신 자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 말씀은 그를 배신할 가룟 유다가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임을 뜻한다.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를 배신하였다.
또 예수께서는 그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가 그를 영접하는 것이듯이, 그를 영접하는 자가 그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나타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인가 아닌가를 나타낸다. 사람이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는가 여부는 그가 구주와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로 판단된다.
[21-30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괴로우셔서]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시몬의 (아들) 가룟인 유다](전통본문)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주여, 누구오니이까?”라고 물었던 그 제자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었다(요 21:20, 24). 예수께서는 빵 한 조각을 가룟 유다에게 주셨고 그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요 6:64), 돈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고(마 26:14-15), 무엇보다 사탄의 역사로 예수님을 배신하는 큰 악을 범하였다. 본장 2절은 사탄이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제 사탄이 직접 그 속에 들어가 그로 하여금 이런 큰 악을 행하게 할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주님을 배신하고 유대 지도자들에게 넘겨주려는 그의 악한 계획을 속히 행하라는 뜻이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었다. 유다의 영적 세계나 영원한 미래도 캄캄한 밤이었다.
[31-33절]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人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人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지금 인자(人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人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라는 말씀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그는 그 밤에 잡히셔서 날이 새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시는 죽음이요 그 일이 완성되면 그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내다보시면서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지금 주님과 함께 그의 죽음과 그의 영광에 동참할 수 없으나, 후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그 내용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옛날 모세 시대에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과 대조된다. 옛 계명도 그 요점은 사랑이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다(마 22:37-39). 그러나 이제 주께서는 단순하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주께서는 천국으로 돌아가실 것이나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 곧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제자들은 믿음으로 주를 섬기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본장 앞부분에서 교훈하신 대로 용서와 연관된다. 서로 용서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해야 서로 용서할 수 있다. 사랑은 형제의 잘못과 부족을 오래 참고 용서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선을 베푸는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 2:44-45). 사랑은 모든 계명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덕이며 교회의 일치의 덕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는 주께서 친히 십자가로 본을 보이셨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명하셨기 때문이다. 주께서 먼저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1-2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말하였다.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가 된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단과 적그리스도에 대해 경계할 것을 교훈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형제들에 대해 참된 형제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 서신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 증거이며 생명에 들어간 증거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36-38절]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가 되면 그는 주님을 따라 그가 가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를 위해 그의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였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사랑하였고 죽기까지 그를 따르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진실한 결심이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그는 그 날 밤에 닭이 울기 전에 주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인간의 결심이 얼마나 보잘것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가슴 아프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인지 아닌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 보아야 한다. 주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목욕한 자와 같이 죄사함을 받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를 팔 자, 곧 그를 배신할 자를 가리킨 말씀이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요 6:64) 돈을 사랑했다(마 26:14-15). 그는 마침내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요 6:70; 13:2, 27).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과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구원하셨음을 확증하자. 데살로니가전서 1:2-4,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둘째로, 우리는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을 힘써 실천함으로 주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도 그 중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었다. 주께서는 친히 본을 보이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특히 우리가 서로 사랑할 대상이 제한된 수의 택자들임을 암시하셨다. 주님께서는 천국으로 돌아가실 것이나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은 믿음으로 주를 섬기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앞에서 교훈하신 대로 용서와 연관된다. 서로 용서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해야 서로 용서할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선을 베푸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계명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덕이며 교회의 일치의 덕이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라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그의 제자된 표이며 참된 교회의 표이다.
[누가복음 18장 성경 주석 설교말씀] 낙망치 말고 기도할 것(눅 1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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