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요한복음 신약히브리성경강해]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8)

복음의 능력 2021. 1. 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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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신약 히브리어 성경 강해 중에서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빛으로 오셨지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쳤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빛 자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빛 되시는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빛을 알기 때문에 주님을 금방 알아보게 됩니다. 이 시간 요한복음을 신약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8)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4절은 엔 아우토 조에 엔 카이 헤 조에 엔 토 포스 톤 안드로폰입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 '생명'으로 번역된 헬라어 '조에''영원한' (아이오니오스)이라는 형용사를 수반하여 '영생'이라는 용어로 자주 등장한다(3:15, 16; 요일 5:12). 그런데 요한은 단지 '조에'라는 단어로써 영원한 생명을 묘사할 때도 많으며 본문의 경우도 그러하다. 한편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36:9) 생명의 주인(104:29, 30)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생명관이 반영된 것이 본문의 '생명' 조에)이다.

따라서 저자 요한은 '생명'이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이 영원한 생명(영생) 임을 명시한다(14:6; 17:3).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이 부여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본원적(本源的)으로 존재하고 있는 영생을 매개로 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2:19). 히브리어는 하임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했다. 장엄 복수형처럼 생명이 주님 안에 있음을 말한다.

사람들이 빛이라 - ''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자연현상인 빛을 가리키거나 빛과 어두움을 절대적 차원에서 대치시키는 이원론적인 종교 사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빛(the light, NIV)에 대한 개념은 구약성경의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1) 빛을 발하는 구름(37:15)이나 불기둥(78:14) 가운데 현현하시는 분 (2)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는(12:22) 빛나는 분(42:16) (3) 빛과 어두움의 주(5:8) (4) 이스라엘의 영원한 빛(60:1, 2)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이 곧 인류에게 임할 참빛이라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1:9).

그리고 본절의 두 개의 문장에서 '에이미'('존재하')3인칭 단수 미완료형인 ''을 두 번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생명과 빛은 창조되었거나 형성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로 하여금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9)라는 기쁨의 찬양에 이르게 한다.

 

5절은 카이 토 포스 엔 테 스코티아 파이네이 카이 헤 스코티아 아우토 우 카텔라벤입니다.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 빛과 대조되어 나타나는 '어두움'(스코티)은 앞절에 비추어 볼 때, 생명을 가로막는 죽임의 세력, 즉 사단의 세력과 그 세력 하에서부단히 죽어가는 이 죄악 된 세상을 상징한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고 빛이 어두움 안에서 비추고 있다'(카이 토 포스 엔 테 스코티아 파이네이)라는 뜻이므로, 본문은 이 죄악 된 세상과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적인 성육신을 통하여 죄악 된 세상인 이 세상 안으로 임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승천 후에 생명의 빛은 소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요한은 '비추다'의 헬라어 '파이노'의 3인칭 현재형을 구사함으로써 말씀의 빛이 쉼 없이 비추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명의 빛은 지금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16:13) 성도들에게 비추이며 생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빛의 군사로서 어둠의 세력과 끝까지 투쟁하는 능력을 공급하고 있(딤전 1:18;6:12).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깨닫지'의 헬라어 '카테라벤'의 원형 '카타람바노'는 본래 '굳게 잡다'라는 뜻으로서 본문에서는 (1) '이해하다', (2) '이기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는 '깨닫다', '이해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죄악 된 세상 속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처형했다는 것이 바로 본서의 전반적인 맥락이다. 히브리어는 나하그로서 빛이 도달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빛 자체를 모르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증거는 예수의 말씀에서 여러 차례 나타난다(4:5-26,31-38;5:10-47;6:25-65;7:14-36;8:12-59;9:39-10:18, 22-39;12:20-36;13:1-16:33). 라서 저자 요한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이 세상의 정체(正體)를 준열하게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어두움의 세력에 휘말린 세상이 이제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에 기록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동사 '카테라벤'은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1) 음을 '깨닫지 못하는' 죄악 된 세력의 실상을 깨우쳐 주며 (2) 이 죄악 된 세력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빛의 세력을 궁극적으로는 '이길 수 없는'는 사실을 보여준다(11).

 

6절은 에게네토 안드로포스 아페스탈메노스 파라 데우 오노마 아우토 이요안네스입니다.

요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 1-4절까지 '말씀이신 그리스도'대해 함축적으로 서술한 저자는 여기서 잠시 1세기 초반 팔레스틴에 영적인 쇄신을 일으키며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위해 터를 닦았던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은 세 가지 단어를 실마리로 하여 그 인물의 특성을 보여준다. (1) 전치사 '파라'(...에게서')는 1절의 전치사 '프로스'가 서로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면, ''는 친근하기는 하되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나타낸다. (2) '보내심을 받은'(아페스탈메노스)은 '보내다', '파송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스텔로'의 주격 단수 남성 분사로서 70인역(LXX)에서는 메시지나 임무를 위임받아 파송될 경우에 쓰였다.

이는 주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 썼던 용어이다(6:8). 이러한 사실은 이 인물이 남성이며,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리스도의 선구자였음을 나타낸다(7, 8). 그리고 '아포스텔로'의 완료 수동형을 사용함으로써 이 인물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대로 사역했던 사람임을 보여준다. (3) '났으니'(에게네토)라는 부정 과거형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그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존재하는 말씀과는 달리 단지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이름은 요한이라 - 앞 문자에서 한 인물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관 복음에서 '세례 요한'(3:1;6:14, 25; 눅 7:20)이라고 명시한 것과는 달리 그저 ''이라고만 명명한다(25, 19, 20, 26, 28). 이는 공관 복음서 기자들이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에 사도 요한은 자신의 저작이므로 이를 구별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7절은 후토스 엘덴 에이스 마르튀리안 히나 마르튀레세 페리투 포토스 히나 판테스 피스튜소신 디 아우투입니다.

요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7

저가 증거 하려 왔으니 - 본절에서는 '증거자'로서의 세례 요한의 사역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다. '증거'(마르튀리안)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증언하다'라는 뜻으로서, 요한의 사역이 예수의 사역처럼 획기적인 신기원(新紀元)을 이룬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이는 세례 요한 자신이 스스로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23)비유한 데서도 드러났다.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 증거자 세례 요한의 증거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히브리어는 레하이드인데 히필 사역 능동형을 사용하여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증거 하러 왔음을 말한다. 부정사 연계형을 라메드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 하러 왔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 - 세례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될 대상들을 명시한 '든 사람'이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들은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란 유대 군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치 아벨이 비록 죽임을 당하였어도 오히려 믿음으로 증언한 말씀이 남아서(11:4) 그리스도를증거 하여 영접케 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처럼, 그의 증거는 시공의 범위를 점점 더 확산하여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까지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 '자기를 인하여'의 헬라어 '디 아우투'라는 표현은 3절의 '그로 말미암아'(디 아우투)와 같은 단어이나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한다. 3절에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창조 시의 중보적 사역을 나타낸다면,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예비하기 위한 중간 매개로서의 요한의 사역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 함에 있었다. 비록 방식에 대해 일말의 의구심을 표했던 적이 있었을지라도(11:2, 3). 요한복음에 언급된 바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 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했던 사람이다(15, 26, 27, 29-34;3:28-30).

 

8절은 우크 엔 에게이노스 토 포스 알르 히나 마르튀레세 페리 투 포토스입니다.

요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증거 하러 온 자라 - 6, 7절에 나타난 요한의 본질적 특성과 사역을 간략하게 요약한 본절은 전형적인 히브리적 표현 방법으로서 요한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定立)하고 있다. 저자 요한이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명시했던 이유는 세례 요한의 사역의 참뜻을 알지 못하고, 그가 죽은 후 하나의 당파로 고착되어 버린 요한의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 특히 저자 요한이 전도와 교육을 집중했던 에베소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19:2, 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계시를 소유한 초대 교회로서는 요한의 제자들을 복음의 빛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역이다.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복음을 전하여 주님을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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