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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 성경 주석 성경 좋은 말씀] 예정과 선택(롬 9:1-33)

복음의 능력 2022. 3. 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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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에서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입니다. 인간의 의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셔서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예정과 선택(롬 9:1-33)

 

9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증거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를 다루면서 이 진리를 말한다. 9장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는 것과 이 선택은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모든 동물의 세계도 그러하겠지만,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자매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는 일과, 친척들이나 같은 민족에 대해 더 친근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그만큼 가족들이나 친척들이나 동족들에 대해 일차적 의무가 있고 그 의무 중에 첫째는 그들을 구원하는 의무이다. 우리가 우리 가족을 구원하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4-5]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養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었고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영광의 표들이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언급한 후, 그의 신성(神性)도 증거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평범한 동족(同族)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온갖 특권을 누렸던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더욱 불붙는 심령을 가진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었던 민족이지만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고 또 예수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6-9]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 그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택된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그의 자손으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그 자손들이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난 여섯 명의 아들들과 그 자손들은(25:1-6) 아브라함의 언약의 복을 받은 자손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어서 내려온 언약의 자손들, 그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들만 언약의 복을 받은 자손으로 간주되었다.

[10-13]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는 특히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의 백성은 육신의 혈통을 따라 되지 않고 선행에 근거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드러났다. 사람의 구원은 그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64:6).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즉 그의 긍휼과 은혜의 선택으로 말미암는다(딤후 1:9).

[14-1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므로 구원하실 자를 임의로 선택하신다는 사실은 결코 부당하거나 불의한 일이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그가 모세에게 하신 말씀에서도 확증된다고 말하며 출애굽기 33:19을 인용한다. 구원은 사람의 소원이나 노력으로가 아니고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17-18]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바울은 또 출애굽기 9:16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유하게도 하시고 강퍅케도 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다. 그는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를 구원하신다. 구원은 사람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19-24]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말대답]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토기장이가 진흙 덩어리로 귀한 그릇이나 천한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에 대해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상, 악인들의 멸망은 그 자신의 죄와 직접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악인은 스스로 악을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악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셨다. 또 구원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받은 것뿐이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으로 말한다면, 우리나 저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로 우리에게 회개와 믿음을 주셨다.

[25-29]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이는 그가 그 일을 이루시고 의로 그것을 제한하실 것임이라. 이는 주께서 제한된 일을 땅 위에 행하실 것임이니라](전통본문)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오직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긍휼로 남은 자들이 있었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들이 있으며 오직 그들만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된 자들이며 구원은 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진다.

[30-3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의의](전통본문)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원인은 그들이 믿음으로써가 아니고 행위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행위로써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율법 행위로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며 멸망할 자이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써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행위로써가 아니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은 구약 이사야서에서도 암시된 바이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실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그 돌에 걸려 넘어질 것이나,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받음을 거절하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러나 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은혜를 받았다.

둘째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의 선택으로 말미암았다.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 죄인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동족부터 구주 예수께로 인도해야 한다.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 불붙는 마음이 있어 심지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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