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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 강해설교말씀] 이방인의 문제(딛 3:9-15)

복음의 능력 2023. 2. 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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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3장에서는 이단에 대해서 말씀한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다. 복음을 전해주어도 그들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거짓 이단들이 있다. 성도는 그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에 미혹되면 안 된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복음을 분별해야 한다. 복음을 모르면 이단들이 전파하는 말에 속아 넘어간다.

 

이방인의 문제(딛 3:9-15)

 

Ⅰ. 사도는 자기가 의도하는 바를 좀 더 명확하고 충분히 밝히기 위해 특히, 그레데의 당시 시대적인 형편에 맞게, 그들 가운데 유대 지향 주의자가 많음을 알고 디도에게 가르칠 때에 금해야 할 것들을 지시하고 있다(19절). 유익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선 토론하고 밝혀야 할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탐구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인간의 덕을 위해서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반드시 피하여야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비어있는 자이다. 유대교 학자들 가운데, 그리고 후대의 교사들 가운데도 그런 자들이 많았다. 그런 자들은 엉뚱하고 신앙에나 생활에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문제에 얽매여 있다.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한다. 족보 이야기와(어떤 주석자는 이를 신들의 족보라 보는데 이방인 시인들은 이를 가지고 소란을 피웠다. 아니면 유대인들이 상당히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족보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선 예언의 성취를 알기 위하여, 특히 메시아 그리스도의 조상을 알기 위하여, 이런 족보에 대한 유익하고 정당한 연구는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특히 유대인 교사들은 그리스도가 오신 후로 지파와 가문의 구별이 사라졌음에도 다시 그것을 일으켜 세우려는 듯 장황하게 족보를 이야기하고 헛된 말로만 가르침으로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쓸데없는 일에 바쁘게 만들고 근심과 걱정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디도는 이런 것들을 어리석고 쓸모없는 것으로 배격해야만 하였다.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모세의 의식과 절기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으로 중단되고 사라졌음에도 아직도 그것에 얽매여 교회 안에서조차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었다. 디도는 이런 자들의 뒤를 밀어줘서는 안 되고 그들을 피하고, 반대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도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과 마찬가지로 무익하고 헛된 것이다. 그런 것들은 거룩함을 세우고 교훈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일이며 오히려 이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다. 지켜져야 할 기독교 신앙과 선한 사업의 그것으로 약화되고 간섭받으며, 교회의 평화가 파괴되고, 복음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 목회자는 유익하고 선한 일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믿음을 혼란시키고 거룩함의 방해가 되며 선한 사업에 반대되는 일들을 피라고 금하여야 함을 명심하라. 그런 것들로 사람들의 귀가 현혹되지 말게 하며, 덕행에 도움 되는 바른 교훈으로 사랑하고 포용하도록 하라.

Ⅱ.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이교도와 이단에 속한 자들"이 있을 것이므로 다음으로 바울은 디도에게 그러한 경우에 어떻게 처리할지, 이단자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지시하고 있다(10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버리고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며, 신앙의 중대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파괴하려고 거짓 교훈을 선전하며, 그들이 속한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자들을 한두 번 훈계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추방시켜야 한다. "가능하면 그를 훈계하시기를 되풀이하여 그가 돌이킨다면 다시 형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그를 돌이킬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를 공동체 밖으로 추방시키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피하라고 경고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근본에서 떨어져 나가) 스스로 정리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훈계로써 교정되지 않고 자기들의 죄와 허물을 고집하는 자들을 "부패하고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주어야 할 벌을 그들 스스로 받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교회 밖으로 나가 성도의 교제를 벗어버림으로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 되었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진짜 이단자의 해. 누구도 그 해를 가벼이 여겨선 안 되며 모든 사람이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자는 "부패한 자" 혹은 타락한 자이다. 너무 황폐해져서 수리하여 다시 재건하지 않고는 세울 수 없는 건물에 비유한 말이다. 진짜 이단자가 진실된 믿음으로 돌아오기란 참으로 드문 일이다. 판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교만, 야심, 억지, 고집 또는 이와 비슷한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의지 때문에 힘들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겸손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그대로 행하라. 그리하면 저주받을 이단은 도망칠 것이다."

2. 가장 심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에겐 고통과 인내가 따라야 한다. 그들은 쉽사리 항복하거나 죄를 버리지 못하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방법을 써야만 한다.

3. 이단자를 대할 때도 교회의 태도는 설득력 있고 합리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을 훈계하고, 교정하고 경고해야 한다. 그래서 희랍어 본문에는 ‘누데시안’(3:10) - 즉 훈계라고 하였다.

4. 계속 고집을 부리고 교정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해선 교회는 아래와 같은 조처를 취하므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즉 이와 같은 잘못된 교인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훈계를 통하여 회개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안 될 경우엔 자신의 정죄함으로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도록 버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Ⅲ. 추가된 몇 가지 지시사항(12,13절). 여기서 두 가지 개인적인 일을 지시한다.

1. 디도는 "아데마"나 "두기고"가 그레데로 오는 즉시 "니고볼리"(마케도니아 변경 지방, 드라스의 한 성읍인 듯하다)에 있는 바울에게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가 없는 동안 아데마나 두기고 중의 한 사람이 교회들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사도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도와줄 능력 있는 지도자 없이 어리고 약한 상태에 그냥 버려두려 하지 않았다. 디도는 그레데에 머물러 있는 지역 목회자 또는 감독이 아닌 복음 전도자였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디도를 자기의 의도대로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아데마에 관하여는 자세한 기록이 없으나 두기고는 그에 관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바울은 그를 "사랑하는 형제이며, 신실한 목사이며, 주안에서의 동역자"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헌신에 합당한 자였다. 바울이 디도에게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하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발문(跋文)이 암시하려는 것과 같이 바울이 디도서를 니고볼리에서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왜냐하면 바울이니고볼리에서 디도서를 썼다면 "거기서"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겠노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2. 다른 개인적인 지시. 디도에게 그의 친구 둘을 급히 먼저 보내는데 그들에게 궁핍한 점이 없나 자세히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예의일 뿐 아니라, 그들과 그들이 할 사업에 대해 존경하는 뜻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베풀어야 할 자비인 것이다. 그들은 아마 복음을 전하거나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도록 되어있었던 것 같다. "세나"는 "교법사"라고 지칭되었는데 언젠가 그의 전공이었던 로마의 법을 다루었는지 모세의 율법을 다루었는지에 관하여서는 잘 알 수 없다. 아볼로는 탁월하고 신앙 깊은 목회자였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각자 할 일을 분담시켜 주고, 그들의 사업이나 여행에 불편이 없도록 보살펴 주는 일은 거룩하고도 필수적인 봉사이다. 그리고 이 목적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사도가 앞서 디도에게 가르치라 명한 바를 더욱 확실히 마음에 새기게 하기 위해 그는 여기에 다시 반복한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14절). 하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들로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특히 목회자들을 도와 설교하고 복음을 전파함으로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요 3:5-8)된 이들은 이것을 배워야 한다. "저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기독교는 열매 없는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의의 열매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들이 해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악을 피하는 만큼 선을 행하는데 유익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람들로 정직한 수고와 사업을 수행하여 그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윤택하게 함으로 세상에서 유익함이 없는 짐이 되지 않도록 하라." 어떤 주석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기독교가 그들에게 안이한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라. 오히려 기독교는 그들에게 정직한 일과 소명을 찾도록 명령하며 그러한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도록 책임 지워 줌을 알게 하라. 이것은 좋은 평판이며, 신앙의 증거가 되고 인류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그들은 무익한 교인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을 주는 무익한 교인이 아니라 곤란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을 예배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다른 사람의 수고에 기대서 살지 말고 스스로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라.

Ⅳ. 인사와 간구(15절). 비록(적어도 몇 명이라도) 개인적으로는 디도를 모르지만 그래도 사도 바울을 통하여 모든 이들이 그에게 사랑과 선한 마음으로 인사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행적에 대한 표시이며 계속 그 일에 매진할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믿음 안에서" 혹은 "믿음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그들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 그리스도인들이다. 어느 누구든 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나 거룩함은 다른 모든 갇힌 자들에게 큰 힘을 주는 귀한 것이며 그것 자체로도 최상의 것이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구절은 끝맺는 간구이다. 이것은 비록 편지나 디도 개인의 이름으로 쓰였지만 이 간구는 그곳에 있는 교회들을 위한 것이며 그의 이름을 기록함으로 사도 바울이 그들을 모두 지켜보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그것의 열매와 결실과 함께, 필요에 따라, 특히 영적인 은혜가 너희의 영혼 가운데, 날마다 더욱 풍성히 내리기를 바라노라." 이것은 바울의 소망이며 기도로써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 그들의 선함을 바라는 그의 소원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려 주고 그들로 그것을 얻게 해 주려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은혜야말로 우리 자신이나 어느 누구든지 가장 바라고 구해야 할 중요한 것임을 명심하자. 그것은 간단히 말해 선한 모든 것이다. 아멘은 기도를 끝맺으며, 그렇게 되기를 원하노라, 또는 그렇게 되리라는 소원과 희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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