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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강해설교말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1-21)

복음의 능력 2021. 7. 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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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일서 4장 강해설교말씀 중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에 영을 다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거짓 선지자가 나왔기 때문에 영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고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거짓 복음이 너무나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거짓 복음이 많으니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복음에 노출되어 영혼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시인하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시인하여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목: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요일 4:1-21

 

요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주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항상 서로 사랑하자.

 

오늘은 대강절/대림절(Advent) 넷째 주일로 사랑(Love)의 촛불(흰색)을 켜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기억되는 카드가 있습니다. 아이가 예수님께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주님께서는 두 팔을 활짝 벌리시고 이 만큼 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본문말씀은 요한일서 4장을 강해하겠습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전체 내용입니다.

 

1. 영들을 시험하라(요일 4:1-6)

1) 영들을 시험하여 거짓 대언자를 가려내자(요일 4:1)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우리는 영들을 다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영은 정신이요 사상이며 신앙 사상, 교리 사상입니다. 그것은 그의 말과 교훈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사상과 가르침들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였나’라는 원어(에이 에크 투 데우 에스틴 εἰ ἐκ τοῦ Θεοῦ ἐστιν)는 ‘하나님께로서 나왔는가’라는 뜻입니다. 즉 어떤 사상, 어떤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상과 교훈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고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거짓 목사들과 교사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 사상과 아무 교훈이나 따라간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영들, 정신들, 그들의 사상들과 말들과 교훈들을 시험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시인함(요일 4:2-3)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요,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시인하느냐 부인하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이라는 말은 요한복음 1장에 증거 된 대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 곧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육신이 되셔서 곧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일을 말합니다(요 1:1, 14).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고 때가 되어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신 독특한 인격이십니다(Vere Deus, vere homo). 요일 5:20에서 그분의 신성(神性)을 증거 하기를,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 즉 원어의 뜻대로 하나님께로서 난 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 즉 하나님께로서 나오지 않은 영이며, 그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육신의 교리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이며 단지 그 교리뿐 아니라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영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며 거짓된 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의 근본 교리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거짓 목사들이 세상에 올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마 24:5, 11, 24), 그들이 사도 요한의 당시에 벌써 세상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그 당시를 이미 말세가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고 말세 의식을 가졌습니다. 앞에서 그는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말했습니다(요일 2:18).

 

3)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승리함(요일 4:4)

 

어린 자녀들(little children)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원어의 뜻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즉 그들은 중생(重生)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저 거짓 대언자들에게 미혹되지 않았고 그들을 배격하고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 안에 계신 분, 즉 성령님께서 세상에 있는 이, 즉 사탄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요 1:13), 거짓 대언자들과 거짓 목사들은 사탄의 일꾼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義)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4, 13-15).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8).

 

오늘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적그리스도의 영 즉 이단들은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통일교, 신천지 교회 등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과 가톨릭과 자유주의 신학 등이며, 교회연합운동과 신복음주의와 은사운동 등도 하나님의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혼란시키는 거짓된 사상들이며 운동들입니다.

 

4)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의 영을 안다(요일 4:5-6)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저 거짓 교사들은 세상에서 나왔고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온 혹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교회에 다니기도 하며 종교의식을 행할 수도 있으며 또 심지어 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고 교회의 직분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았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른 교훈, 정통 교리, 복음적 기독교를 듣지 않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곧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즉 중생한 자들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바른 말씀, 정통 교리, 복음적 기독교 교리를 듣습니다. 이로써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은 구별됩니다.

 

2. 서로 사랑함이 마땅함(요일 4:7-11)

1) 서로 사랑하자(요일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임이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을 계속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즉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육신적 사랑이 아니고 거룩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거룩한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정당성이 없는 미움과 싸움은 마귀에게 속한 죄악 된 성질이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거룩한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즉 중생(重生)한 표가 되며 하나님을 아는 표가 됩니다.

 

2) 독생자를 주신 목적은 우리로 서로 사랑하게 하심(요일 4:9-11)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9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일에서 밝히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은 두 가지 뜻이 있어 보이는데, 첫째는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으로 보내셨다는 의미 즉 성육신(成肉身)의 의미이며, 둘째는 십자가에 죽게 내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성육신은 신비 중의 신비요, 기적 중의 기적인데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시며 영원히 그러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영혼들을 위해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10절에 ‘화목제’라는 원어(힐라스몬 hilasmon)는 ‘화목 제물’이라는 뜻인데, 우리의 죄들로 인한 하나님의 불붙은 진노를 가라앉히게 하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힐라스테리온 hilasterion = propitiation)로 세우셨으니.”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힐라스모스 hilasmos = propitiation)이니.” 노아 홍수 심판 등에서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며 그의 심판을 가져옵니다.

 

11절에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이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1만 달란트 빚진 것 같은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마 18:23-35).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구원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형제들의 부족과 실수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요일 4:12-16)

1)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룸(요일 4:12-13)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분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딤전 6:16).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는 것은 큰 불행이며,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이런 복된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그 사랑이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우리 속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어주신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 성령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계심을 느끼며 체험하게 됩니다.

 

2)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해야 한다(요일 4:14-16)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구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요 3:16). 또 그 복음의 확실성은 사도들이 그 독생자를 직접 보았고 증거 하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눅 24:46-48; 요 21:24; 행 5:32).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구주로 시인하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복음입니다. 죄인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 진리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도의 신앙고백은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십니다(요 3:16; 롬 5:8).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실천하는 자가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은 참 신앙고백의 증거일 뿐 아니라, 구원의 증거 즉 하나님과의 연합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 쫓는다(요일 4:17-21)

1)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룬다면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요일 4:17-18)

17 이로써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7절 ‘이로써’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즉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믿고 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 사랑함으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형제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우리는 담대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3:21).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롬 13:8) 사랑 안에 담대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심판 날에 가질 담대함입니다.

 

18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린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그 품 안에서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 가면 웁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벌’이라는 원어(콜라시스 kolasis)는 ‘고통’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그 뜻이 본문에 더 적절합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요일 4:19-21)

 

19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9절에서 경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의무입니다(신 6:5; 마 22:37-3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0).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참으로 안다면, 우리는 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것입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으로 구원받은 자에게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형제 곧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그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1절의 ‘이 계명’은 후반부의 말씀,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요 14:21에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은 우리가 주의 계명대로 형제를 사랑할 때 담대함을 얻고 모든 두려움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리가 형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증거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며 그의 계명의 내용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성탄의 계절에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달아 독생자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이 사랑을 세상에 널리 전하게 하옵소서. 온전한 사랑을 주사 어떤 미혹, 미움, 두려움, 어둠이 물러나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사랑이 성탄의 최고 선물인 줄 믿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재림의 기쁨과 영광(살전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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