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관련 알쓸잡

[상담 심리] I- Messag를 배운 날의 체험

복음의 능력 2020. 6. 21. 14:52
반응형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상담 심리 중에서 나 대화법을 통해서 변화된 자신만의 생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I- Messag를 배운 날의 체험

 

우리 아이들은 남매로 75살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행복한 자녀와의 대화법훈련'을 받게되어 참으로 기쁘다. 자아가 강한 두 아이를 어떻게 지도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 줄 것인가 나름대로 퍽 고심해왔다.

부모의 권위로 제압하려 하면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자기 주장을 하며 반항을 하곤 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수용할 수 없을 때 '안 할 수 없니 ? ''그만두지 못 하겠어 ?''당장 치워' '빨리빨리 해' 등으로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엄마 마음만 있고 우리들 마음은 없나 뭐 ? 엄만 엄마 맘대로 해. 우린 우리 맘대로 할거야."하고 대든다. 그러면 더 야단을 치게되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뒤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나는 늘 마음에 남아 괴로웠다.

 

'나 전달법 '을 교육받고 돌아온 날이었다.

날씨는 유난히 덥고 짜증나는 날이었는데 집에 들어서니 집안 꼴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거실, 주방, 아이들 방 할 것 없이 발디딜 틈도 얼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현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발부터가 내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동네 꼬마들은 눈치를 살피며 꽁무니를 빼고 우리 아이들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막상 그 날 받은 교육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 지 막막했지만 감정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아휴, 아휴,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말하고는 안정을 찾을 방도로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할 말을 정리하면서 샤워를 마치고 나와보니 기대 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큰애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던 장난감과 책들을 이미 어느 정도 치워놓았고 계속 가지런히 치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우와, 세상에. 우리 어진이가 이렇게 집안을 치워주니까 엄만 너무 기분이 좋다."

어진의 긴장했던 얼굴이 활짝 핀 꽃이 되었다. 곁에 있던 작은 애도 '나는 장난감 치을 수 있는데. 누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하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재경이도 잘 할 수 있구나? 엄마가 그걸 몰랐네." 하니까 둘 다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들이 어지럽혀 놓은 집안을 말끔히 정리해주었다.

 

저녁 때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진아, 재경아, 오늘 엄마가 어떻든?"

"엄마가 변했어요. "

"전에 같으면 아까 처럼 되었을 때 막 화내고 야단쳤을 텐데 안 그랬잖아."

현판 밖에 석간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는 "신문 갖고 와"하고 말했을 테고 아이들은 싫은 것을 억지로 가져왔을 것이다.

"신문 좀 가져다줄 수 있겠니 ? "하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둘이서 가져오자며 신문 양쪽을 잡고 "영차, 영차."하며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아이들을 그동안 닥달한 것이 미안해서 마음이 아팠다.

행복한 자녀와의 대화법은 내게 기쁨을 주었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늦게 일어나는 아이, 학교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변화

 

초등학교 2학년인 정수는 아침에 학교가게 일어나라고 깨우면 엄마에게 욕을 하고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곤 했다. 억지로 깨워놓으면 세수도 안 하려고 하고 밥 떠 먹여줘야 먹고 책가방을 챙겨주고 학교에 가라고 하면 집이 안 보일 때가지 엄마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며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는 얌전하게 있고 말 잘 안하며 무서워한다.

 

대화법을 받으면서 어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권위로 아이를 다루니까 아버지 앞에서는 순종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이의 감정이 불안정하거나 욕구불만으로 가득 차게 된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엄하다 보니 자연히 할머니와 엄마는 아이에게 허용적인 태도로 대하여왔다.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아버지 눈에 안 뜨이면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의논하여 대화법에서 배운대로 하기로 했다.

아침에 정수를 깨울 때면 으레 떼를 쓴다.

그전 같으면 '정수야 일어나. 빨리 안 일어나면 아버지가 오신다'하고 걸림돌을 막 썼겠지만 이제는 공감적 경청을 하였다.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구나. 조금 더 자고 싶지?

그런데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어떻게 하니? ' 하면 부시시 일어난다.

항상 아이한데 명령을 많이 했었는데 명령을 받는 아이는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허용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아이는 혼돈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선 걸림돌을 쓰지 않고 대화가 부드러워지니까 정수가 욕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갔다.

화만 났다 하면 욕을 하고 떼를 쓰던 아이에게 화낼 거리를 만들어 준 것은 부모였는데 부모의 대화가 부드러워지고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어른과 같은 인격체로 대하니까 정수는 점점 억지쓰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하루는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를 쓰길래 "정수야 학교 생활이 재미없니?

그래서 학교 가기가 싫구나?"하면서 아이의 반응을 들었더니 선생님이 어떤 애는 예뻐하고 저는 손을 들어도 잘 시켜주지도 않고 자기 그림은 뒤 칠판에 붙여놓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싫고 학교 가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정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엄마가 자기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정수 그림은 뒤에 붙이지도 않고 손을 들어도 잘 시켜주지 않아 굉장히 속이 상했나보구나." 했더니 정수의 얼굴이 좀 밝아지면서 "엄마, 책가방." 하면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하겠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대화법훈련은 부모가 어떻게 하라고 문제해결을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인가 보다. "학교 늦는다. 빨리 가."하면 욕을 하면서 겨우 집을 나가던 정수가 슬그머니 학교로 향하는 게 아닌가.

점점 정수는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하고 학교생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집안 분위기가 잡혀가는 것 같았고 큰소리를 치지 않아도 하루의 일과는 잘 진행되었다.

 

정수는 동생에게도 자상한 오빠가 되었고 동네아주머니들도 입을 모아 칭찬을 한다.

동네가 떠들석하게 욕을 하면서 학교 가던 정수가 너무 많이 변화되어 모범학생이 되었다고. 진작 부모역할훈련을 받았더라면 정수가 그런 아이로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아이를 소유물처럼 취급해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명령하고 위협했던 것이 아이의 성격을 반항적으로 키웠던 것 같다.

 

남편과 시어머님과의 관계에서도 '-전달법'이 아닌 '-전달법'으로 말하니 오해할 일이나 속상할 일이 별로 없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마음을 헤아리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니 우리 집은 날로 변화되는 가정이 될 것이다. 정수가 스스로 자기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앞으로도 모든 일을 부모 문제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우리 정수에게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나 - 전달법의 중요성

 

우리집 큰아들 상철이가 태어난 것은 딸만 계속 보시던 시댁과 친정에서 대단한 경사였다. 시어머니께서는 이제야 조상 뵐 면목이 생기셨다며 잠시라도 아이를 바닥에 내려 놓으시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키운 습관 때문인지 분가를 한 후에도 상철이는 업어주지 않으면 잠을 못자고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잠이 들었을 때 외에는 집으로 들어 올 수 없었고 김치라도 한 번 담그려면 밤 12시 이후에나 가능했고 그나마 깊은 잠을 못자기 때문에 서너번씩 방으로 건너가 다시 재워야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도 또 어떻게 보내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고 하루하루가 무척 피곤했다.

애아버지가 늘 해외에 나가있는 까닭에 둘째 아이는 상철이가 7살때 태어났는데 형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성격이었다. 배부르면 자고 잠이 깨도 울지 않고 놀고 있을 때에는 빨래도 할 수 있을 만큼 순했다. 애들은 다 상철이 처럼 크는 줄 알았다가 둘째를 보면서 큰애가 얼마나 나를 피곤하게 하며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 매사 작은 애와 대조하며 미워하기 시작했다. 상철이 역시 동생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당황하다가 동생과 엄마를 동시에 미워했다.

 

둘째 상민이가 사랑스러워서 닮은 애를 또 갖고 싶다는 욕심에 세째를 또 낳고 말았다. 아들 셋을 혼자 키우는 어려움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더구나 막내가 중이염을 앓아 병원을 4개월 정도 계속 다녀야 할 때에는 안타까움을 넘어선 후회의 연속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그 번거로움 속에서, 상철이가 둘째 애를 데리고 집에 있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과는 달리 그 애는 어느 곳이나 쫓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두부 한 모를 사더라도 아이 셋을 다 데리고 나가야했다. 혼자서 심부름을 보내는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셋째 애를 키우면서 큰애에 대한 미움은 더 큰 폭으로 늘기 시작했다.

미움, 증오, 싫은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그 애는 마치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고 내가 편안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애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 애에게 나는 때리고 소리 지르고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악담을 다 퍼부었다. 상철이가 심한 상처를 받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철이는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변명을 전혀 못했으며 특히 어른에게 말하는 걸 꺼려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생각대로 따라 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셋째 애가 자라고 내 행동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상철이에 대한 죄책감이 강하게 나를 눌러오기 시작했다. 연민과 증오가 하루에도 수없이 교차했다.

어떻게 해야 상철이의 마음을 치료해 주고 나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 수 있을까? 마음은 간절했으나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설득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며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도 수없이 해 봤지만 그 애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한 미움도 가시지 않았다.

 

그 애가 6학년인 지금 나는 대화법을 알게 되었다.

그 방법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었다. 무엇인지 잘못되긴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너무 막연하게 절망감까지 느꼈던 내게 너무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먼저 공감적 경청을 함으로써 그 애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마음을 읽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첫 마디의 말을 시작하기까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가 동생들만 사랑하는 것 같아서 네가 가슴이 아프구나."

"동생들이 네 것을 빼앗아도 무조건 주라고 하니까 네가 속상하구나."

내가 장장 2시간씩 붙들고 설교를 하고 사정을 해도 전혀 들은 것 같지 않던 아이가 이런 한마디에 큰 반응을 보였다.

", 그래요." 하며 우는 것이었다.

그러한 내 노력이 있은 며칠 후, 동생에겐 어떤 작은 것이라도 절대 양보를 않던 아이가 "너 갖고 놀아."하며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선뜻 내주는 것이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 전달법'도 시도해 보았다.

"집안을 어질러 놓으니까 외출했다 들어오면 엄마는 짜증나고 다 치워야 되니까 힘들어."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반영적 경청이나 나전달법에 대해서 반신반의하였는데 이번에 그 효과에 대해서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때리고 소리질러도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잘막한 몇 마디의 말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의문을 늘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생을 고아원에 줘버리길 소원했던 아이가 그 동안의 적대감을 지우고 동생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모르는 문제를 애써 풀어주는 것이다.

나와 대화하기를 꺼렸던 아이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 친구, 컴퓨터 등 신변의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해대는 것이다.

갑자기 터진 봇물같은 그 애의 행동 변화에 나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철이는 미움의 화신이 아니었고 내 귀여운 아들일 뿐인 것이다.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연 그 순간의 가슴 뭉클함을 떠올리면 이제 상철이와는 따뜻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자신이 생긴다. 이제야 부모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자식을 키우는데 결연함이 싹튼다.

대화법 프로그램의 효과에 놀랄 뿐이고 성의껏 가르쳐 주신 분께 감사를 드린다.

 

"엄마는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도 이해 못하시는 것 같아요."

 

딸아이의 투정을 들으며 '수용과 공감'의 진실된 뜻을 마음 가득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된다. 잠시만 방심하면 의사 소통의 걸림돌이 되는 여러 표현들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3, 1, 두 아이의 엄마역할을 해온 지 15년이 되었다. 결혼 전에 교직을 가졌던 경험이 있어서 제법 자신 있게 아이들을 대해 왔다. 어쩌면 나 스스로의 생각이기보다는 이웃에서 평가 절상의 인정을 해 주었던 같기도 하다.

 

큰 아이는 엄마의 기준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잘 성장하여 주었다. 문제는 작은아이로 항시 언니 행동에 그림자도 못 따르는 형편이었다. 그 애의 인사성, 엄마 일손 돕기, 피아노 두드리며 심취해 부르는 노래실력 등이 내게는 전혀 장점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집 윤정이는 언제 봐도 인사를 반갑게 잘도 해요. 어제는 큰길 저쪽에서 나를 보더니 횡단보도를 건너와서까지 인사를 하지 않겠어요? 붙임성 있고 명랑하고‥‥

‥‥ 언제 보아도 애가 참 싹싹해요."

 

주위에서 들려주는 말이 공치사로 생각되고 아이를 학교 성적의 우열로 우선 평가를 했다. 그리고 내 기대가 어긋난 것에 대한 단호한 대가를 아이에게 요구하곤 했다.

"엄마가 특별히 너만 잘못 대해준 일 있니? 이렇게 공부 안 해도 되는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니?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네 방에 들어가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공부가 그 모양인지 생각해보고 엄마한테 얘기 해 ! "

 

그것은 엄마 역할을 교양있게 한다는 나의 표현이고 내심 엄마의 입장에서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딸애가 답답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어느 날 드디어 한계점에 왔다. 더 이상의 어떤 노력도 능력 밖이라는 허탈감으로 기진한 것이다.

 

그런 상황으로 딸아이와의 갈등이 있던 중 대화법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 내 모순이 있는가? 불가항력이라 생각하고 내 역할을 포기해 버리고 싶던 중인데 대화법을 배울 기회를 갖게된 것이다. 그 동안 교육을 시킨다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내 욕심을 가득 채우려 무익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는 자책이 몰려 왔다.

첫째 시간부터 一切由俄(모든 것은 나로 말미암아 있다)의 깨달음이 왔다.

작은애를 있는 그 자체로 바라보는 능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 아이는 본인 이상도 이하일수도 없으며 바로 그 아이일 뿐이라는 인식이 뒤늦게 인정되며 그 아이의 탁월한 장점들이 하나 둘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학교성적에 대한 만족여하로 아이에게 짐을 지우고 아이에게 인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던 가혹한 엄마였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자신이 느끼지 못한 오류는 또한 얼마나 많이 범하였을까 생각하며 반성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부모들 모두가 한번씩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시청각장애자는 아닌지, 꼭 봐야 할 일, 들어야 할 것을 회복 시켜주신 강사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사람들은 문제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죽은자만이 문제가 없다'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상대의 문제를 잘 듣는 것, 내 문제를 잘 표현하는 것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익혀질 수 있다고 보며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다음은 딸애와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이다.

"엄마가 윤정이 공부 못 한다고 마음 많이 아프게 했지 ? 지금은 이렇게 좋은 관계인데‥‥‥

"엄마 ! 지난 얘긴 하지 마세요."

"그래. 지난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엄마가 많이 야속하고 밉고‥‥‥‥ 그랬지?"

윤정이는 눈물을 글썽인다.

"얼마나 속 상했으면‥‥‥‥ 엄마는 너에게 상처 준다는 생각은 못하고 엄마 노릇하기가 힘들다고만 생각했구나. "

"한때는 죽고싶었어요. 엄마가 안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내 자신이 밉고‥‥‥‥

나는 딸애를 꼭 안으며 "윤정이를 가슴아프게 한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너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구나. 네가 이렇게 라도 얘기를 해주어 정말 고맙다. "

윤정이는 나를 더욱 꼭 껴안는다

 

요즈음 우리는 나날이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하루는 윤정이가 현관에 들어서며 "오늘 음악시간에 가창시험 봤어요. 그런데 엄마 ! 놀라지 마세요. 글쎄 선생님께서 더 이상은 줄 수 없는 점수라면서 98점을 주셨어요 ! "

나도 기분이 좋아서 "어머 ! 기분이 무-척 좋았겠구나. 반 애들 앞에서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점수도 많이 받았으니. 엄마도 기분 좋고 너무 너무 신난다. "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교육내용에서 '감사의 나 전달' 부분을 대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긍정적 나-전달'이라고도 하는데 문제 상황이 아닐 때 쓰는 자기표현으로 좋은 느낌을 받았다 평상시에 많이 사용하면 관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술인데 알면서도 사용을 제한하여온 것이 사실이었다.

끝으로 서두에 딸아이의 투정에 '반영적 경청'을 하며 글을 정리해 본다.

"엄마가 이해한다고 말을 하면서 네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많이 서운했나 보구나 ! "

 

 

[신명기 3장 설교문] 기도의 응답(신 3:23-29)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명기 3장 설교문 중에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기도의 응답 성 경: 신 3:23-29 <서론> 기도만큼 쉽고도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기도가 쉽다는 것은 형�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