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3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이스라엘의 이방인 결혼과 우상 숭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이방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우상 신을 섬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영육으로 타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이스라엘을 이방 백성을 통해서 징계하게 됩니다. 우리도 타락의 길로 가면 안 됩니다. 항상 복음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방인 통혼과 우상 숭배(삿 3:1-6)
1절 베엘레 하고임 아쎄르 히니아흐 아도나이 레나소트 밤 에트 이스라엘 에트 콜 아쎄르 로 야드우 에트 콜 밀하모트 케나안
성 경: [삿3:1]
삿3: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남겨진 열국(列國)]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 12:7;출 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戰後) 세대는 그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2절 라크 레마안 다아트 도로트 베네 이스라엘 레라메담 밀하마 라크 아쎄르 레파님 로 예다움
성 경: [삿3:2]
삿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이 활약]
주제2: [남겨진 열국(列國)]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 하나님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A.C.Hervey, A.E.Cundall,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 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 데에도 깊은 경륜(經綸)이 담겨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 역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 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3절 하메쎄트 사르네 펠리쉐팀 베콜 하케나아니 베하치도니 베하히비 요셰브 하르 하레바논 메하르 바알 헤르몬 아드 레보 하마트
성 경: [삿3:3]
삿3: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남겨진 열국(列國)]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인종학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에 속한다. 이들은 사사 시대는 물론(10:7 ;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13:19-22 ; 14:52)와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 사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로 알렉산더 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당했다(B.C. 332).
다섯 방백 -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스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또는 '타이라노스'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곧 블레셋 인들이 그리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 성경에서 '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 족속에게만 사용되었다(16:5 ; 수 13:3 ; 삼상 5:8 ; 6:4 ; 7:7 ; 29:3,9 ; 대상 12:19). 한편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 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 인들의 초기 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 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가나안 모든 사람 -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가리킨다. 1:1 주석 참조. 당시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 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 사람 -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B.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 이후에 이들은 베니게인(Phoenicians)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 15:3). 1:31 주석 참조.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 13:5에 근거해 팔레스틴 최북방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Commentary, 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75). 다음으로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갓의 맞은편 북동쪽에 위치한 '르보(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히위 사람 -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 대상 1:15)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된다.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 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히위'의 '와우'와 '호리'의 '레쉬'가 혼동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가 창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25) 호리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Age, B.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 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 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 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 '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들의 호칭이었다(IDB).
4절 바이헤이우 레나소트 밤 에트 이스라엘 라다아트 하이쉐므우 에트 미체오트 아도나이 아쎄르 치바 에트 에보탐 베야드 모쎄
성 경: [삿3:4]
삿3: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남겨진 열국(列國)]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 여기서 말하는 시험의 뜻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의 뜻과는 다르다. 1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시험'이란 2:22에서 의미하듯 열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2 주석을 참조하라.
모세로...명하신 명령들 -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5절 우베네 이스라엘 야쉐부 베케레브 하케나아니 하히티 베하에모리 베하페리지 베하히비 베하예부시
성 경: [삿3:5]
삿3: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이스라엘의 통혼 죄(通婚罪)]
마침내...거하여 -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주신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 진멸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통혼치 말며 우상 숭배치 말라는 것이었다(출 34:10-17 ; 신7:1-5 ; 수 23:11-26). 그리고 그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용납한 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6절).
가나안 사람과...여부스 사람 -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라 불리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렸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과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참조하라.
6절 바이케후 에트 베노테헴 라헴 레나쉼 베에트 베노테헴 노트누 리베네헴 바야아베두 에트 엘로헤헴
성 경: [삿3:6]
삿3: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주제1: [사사 옷니엘과 에훗의 활약]
주제2: [이스라엘의 통혼 죄(通婚罪)]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 과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조항을 이제 이스라엘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조항이란 곧 신 7:3,4에 나오는 이방인과의 통혼(通婚) 금지 명령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와 그것을 어겼을 경우의 결과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 먼저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돌연한 멸망이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 그들이 갖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 창 6:1-5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러서도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도(勸導)가 주어지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고후 6:14).
그들의 신들 -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트 문서, 즉 라스 솨마라서판(Ras Shamra)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이 있다. 그리고 일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린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 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taroth)신 등도 언급되어 있다(F. M. 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안 신으로서는 블레셋 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 성격이 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異名同神)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신을 '다곤 신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I.D.B.). 또한 라스솨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 등으로도 불린 암몬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 신들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과 본서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아무튼 이처럼 다양한 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도 한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 역(LXX)은 이 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예레미야애가 히브리어 원어 강해] 바벨론을 통한 예루살렘 멸망(애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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