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창세기 35장 은혜로운 말씀] 벧엘로 올라감(창 35:1-29)

복음의 능력 2022. 4. 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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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5장에서는 야곱이 디나 사건이 있은 후에 벧엘로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를 원했는데 세겜에 머물러 있다가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의로운 곳에 있지 않고 죄악에 자리에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벧엘과 같은 교회로 올라가야 합니다.

 

벧엘로 올라감(창 35:1-29)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세겜에서 디나 사건으로 인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죽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며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겜에 머물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하며 거기서 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그가 거기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바를 행하라는 뜻이기도 하였다.

[2-3]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야곱은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응답해야 한다. 야곱은 자기 집 사람들 즉 아내들과 아들들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사람 즉 종들에게까지 말했다. 그는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 하지 않고 자기 집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순종하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주실 때에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20:10). 우리는 가족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야곱은 그들에게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말했다. 그들 가운데 여전히 이방 신상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장의 하나님의 징책의 또다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방 신상을 가정에 두고서는 평안과 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먼저 자신들을 정결케 해야 했다. 의복을 바꾸는 일도 필요했다. 옷은 마음가짐과 관계가 있다. 평소에 입는 옷과 놀러 갈 때 입는 옷과 하나님께 예배하러 갈 때 입는 옷은 달라야 할 것이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려는 것은 그의 환난날에 그에게 응답하시며 그의 가는 길에서 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 단을 쌓기 위함이었다.

[4-5]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의 가족들과 그와 함께한 자들이 다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들을 그에게 주었고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실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우셔서 그 사방의 성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뒤쫓아오는 자들은 없었다. 우리는 실수와 부족이 많고 세상은 악하고 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의 삶은 항상 안전할 것이다.

[6-8]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은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도, 한 아들도 불순종하는 자가 없었다. 그것이 경건한 선조들이 가정을 다스린 모습이었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친 부모의 권위이며 남편의 역할이다. 성경은 교회의 장로의 자격에 대해 교훈할 때도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딤전 3:4). 야곱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 벧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그것은 그가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 하나님께서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었다.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본문은 갑작스럽게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다. 드보라는 죽어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되었다. 그는 이삭과 리브가와 함께 헤브론에 살고 있었을 것이지만, 어느 때, 아마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 세겜에 머문 어느 때, 야곱에게로 보냄을 받은 것 같다. 그렇다면, 드보라를 야곱에게 보낸 것은 아마 야곱의 모친 리브가의 배려이었을 것이다.

[9-1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고 그에게 복을 주셨다. 또 그는 그의 이름이 다시는 야곱이라 불리우지 않고 이스라엘이 그의 이름이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다. 얍복 강변에서 천사로 나타나 씨름하시면서 주신 그 이름을 다시 재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 이름은 그의 새로운 삶을 증거한다. 그는 더 이상 형을 속이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이다.

[11-15]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하나님께서는 또 그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시며 많은 백성이 그에게서 나고 왕들이 그의 허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과 같다. 그는 또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 곧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후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야곱은 그곳에 기둥(맛체바)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서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16-20]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그들이 벧엘에서 떠나 에브랏으로 가는 중에 라헬은 심한 해산의 고통 중에 아들을 낳고 죽었다. 그는 그 영혼이 떠나려 할 때 아들의 이름을 벤오니(슬픔의 아들)라고 불렀으나, 그 아버지는 그를 빈야민(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라헬은 죽어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다. 가나안 땅의 삶은 여전히 나그넷길이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도 죽었고 사랑하던 라헬도 죽었다. 또 후에는 그의 아버지 이삭도 죽을 것이다(29). 야곱은 라헬의 묘에 기둥(맛체바)을 세웠고, 창세기를 쓴 모세 시대에도 그것은 라헬의 묘의 기둥이라고 불리었다.

[21-26] 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이스라엘은 다시 그곳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다. 그가 그 땅에 거할 때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하였고 이스라엘은 그 일을 들었다. 아직 청소년이었을 르우벤은 부끄럽고 악한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온 야곱의 가족들 안에도 여전히 죄악된 일이 있었다. 지상에서의 가나안 땅은 여전히 불완전하였다.

[27-29]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나이 180세라.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야곱은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우거하던 헤브론이었다. 그런 후 여러 해가 지났고 이삭이 18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여 죽어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은 그를 장사하였다. 이삭이 죽었을 때 야곱은 120세이었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지 약 30년 후이었다.

창세기 35장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서원했던 곳이다. 야곱은 온 가족과 더불어 자신을 정결케 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그 주위의 이방인들이 뒤쫓지 못하게 하셨고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성경의 모든 교훈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이런 명령은 신구약 성경에 여러 번 반복되어 있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고(28:20) 성경말씀의 깨달음과 성령의 감동과 기도의 응답을 주실 것이다(요일 3:22).

둘째로,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이름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성도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고린도전서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우리는 이 새 이름을 귀히 여기며 감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 세상이 나그넷길임을 알자. 야곱에게 가나안 땅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있고 인간의 부끄러운 실수와 죄악이 있는 나그넷길이었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은 나그넷길이다(대상 29:15; 벧전 2:11). 우리의 본향은 여기가 아니고 장차 올 저 세상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의 열조들이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증거하였다(히 11:13- 16). 사도 베드로도 성도의 소망이 그를 위해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벧전 1:4). 우리는 이 세상이 나그넷길임을 알고 천국을 우리의 본향으로 삼고 사모하자.

[디모데후서 3장 복음 말씀] 고통하는 시대(딤후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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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말세의 타락에 대해서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되면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하여 비방하기를 좋아합니다. 부모의 말도 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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