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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3장 은혜로운 설교말씀] 레위 지파의 기업(수 13:1-33)

복음의 능력 2022. 5. 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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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3장에서는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받은 지파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입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에는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레위 지파의 기업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천국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레위 지파의 기업(수 13:1-33)

 

여호수아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아직도 남은 땅이 많았지만(13:1),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했고 그 일은 상당히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여호수아에게 그 땅을 모든 지파에게 분배하라고 명령하셨다. 열두 지파 중,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이미 모세를 통해 요단강 동쪽의 땅을 얻었으므로, 요단강 서쪽의 땅은 나머지 아홉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나머지 절반의 기업이 될 것이다.

레위 지파는 땅 분배에서 제외됨

그런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레위 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일에서 제외되었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원문에는 그가’; 모세를 가리킴]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 기업이 됨이 그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음이었더라”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라고 오늘 본문은 기록한다.

민수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 광야에서 각 지파의 사람들의 수를 셀 때, 레위 지파는 모세의 명령대로 그 셈에서 빠졌었고,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야곱의 유언대로 두 지파로 간주되었었다. 레위 지파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과 그들을 도와 성막 봉사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이었는데 그들만 성막에 대한 책임을 가졌다.

숫자적으로도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들에 비해 적었다. 다른 지파들은 20세 이상의 남자들의 수가 평균 약 5만명 가량이었지만 레위 지파는 1개월 이상의 남자들의 수도 약 22천 명에 불과했다. 레위 지파는 숫적으로 많이 번창하지 못했었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땅의 분배에서 제외시키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이다. 본문 33절은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라고 기록한다. 민수기 18:2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하셨었다. 그 말씀대로, 레위 지파의 기업은 하나님이셨다.

 

오늘날 레위 지파는?

레위 지파에 대한 말씀은 오늘날 누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은 목사나 전도사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들은 세상의 일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자들이다. 또 교회의 일들을 돕는 유급 봉사자들도 레위인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들도 세속적 일과 구별된 하나님의 집의 일에 종사한다. 그들은 돈을 버는 생각보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정신으로 일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레위 지파는 그들뿐 아니라, 영적으로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요 천국이 그들의 본향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더욱이 성경은 성도를 제사장이라고 표현한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세상은 지나가는 곳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고 여행하듯이 지나가는 곳이다. 다윗은 인생을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고 묘사하고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고 사람의 일생이 없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였다(대상 29:15; 39:5-6).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일이 헛되다고 강조하였다(1:2-3). 야고보는 사람의 생명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표현하였다(4:14). 예수께서는 세상의 일들을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6:27). 성도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기업에 모든 마음을 두지 않는다. 지나가는 세상, 그림자 같은 세상, 안개 같은 인생의 삶, 썩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죽음 앞에 설 때 자신이 심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

세상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했다(39:7).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이시요 우리의 소망이시다.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시편 73편의 저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고백했다(73:25-26).

하나님과 그의 일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을 전도자로 부르시는 주 예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4:18-22). 주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던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교훈하며 격려하셨다(10:29- 30).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장 큰 보화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주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눅 14:26, 33).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라”고 고백했다(3:7-9). 이것은 하나님의 가치를 안 자만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천국은 우리의 본향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화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다.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참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도 사람에게 죽음 너머에 본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은 죽어 하나님께로 돌아가 선악간에 심판을 받는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열조들에 대해 증거하면서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말했다(11:15-16).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인 그 성이 천국이다. 사도 베드로도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지금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고 증거했다(벧전 1:4).

 

하나님의 뜻만 행함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기 때문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의 뜻만 행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증거하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다(14:7-8). 얼마나 놀라운 증거인가?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또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고후 5:14-15). 주를 위해 사는 삶,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예수님 자신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고(4:34),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교훈하였다(요일 2:15, 17).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며 이 세상의 일들을 하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일을 힘써야 하는 자들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레위 지파와 같다. 우리의 기업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게으르지 말고 성실히, 근면하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지나가는 세상이며 우리의 삶이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보화이시며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음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영적 레위인인 성도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레위 지파 사람이 되자.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레위인들처럼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보화로 삼고 천국만 우리의 기업으로 삼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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