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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장 주석 성경말씀] 유다 지도자의 심판의 통고(사 3:9-15)

복음의 능력 2022. 12. 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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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장에서는 예루살렘의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이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백성들을 괴롭히면서 학대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심판하겠다고 경고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안 된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 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유다 지도자의 심판의 통고(사 3:9-15)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의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의 논쟁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투시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다. 그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로 하여금 더 멀리 내다보게 하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슬프다 그들의 영혼이여!" (이렇게 탄식하는 어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이 재앙을 초래하였도다" (9절). 죄인의 처지는 두렵고 매우 비참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한 죄로 인하여 손해를 입고 위험을 당하는 것은 바로 영혼이라는 사실을 역시 기억하자. 죄인들은 외적으로는 형통할지도 모르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영혼에는 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화가 죄인들에게 임하든지 간에, 그것은 그들 자신이 자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자(렘 2:19). 여기에 그들이 책망받는 이유가 나와 있다.

1. 그들이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견제했어야 했던 수치심이 완전히 떠났고, 그들은 점점 경망스러워졌다는 것이다(9절). 이러한 사실은 그 어느 것 못지않게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회개치 못하게 하며, 그들의 멸망을 무르익게 한다. "그들의 안색이" 그들의 마음은 허망하며 비열하며 사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 한다." 그들의 눈은 "범죄 하기를 쉬지 아니한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벧후 2:14).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들 마음속에 극도의 사악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그 죄를 공표함이 소돔과 같다." 즉 그들의 욕망이 매우 격렬하고 매우 긴급하며 조금도 참을 수 없고 조급하여, 덕의 섬광은 일 투도 없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소돔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공표한다. 그 죄악이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창 13:13) - 그 죄가 크면 하늘에 부르짖게 된다(창 18:20) - 가장 수치스러운 죄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창 19:5). 유다와 예루살렘도 바로 그렇게 행했다. 즉 그들은 죄를 숨기기는커녕 오히려 덕에 대한 대담한 도전과 또 양심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승리를 자랑한다. 그들은 창녀의 낯을 가졌고(렘 3:3), 조금도 부끄러움을 몰랐다(렘 6:15). 죄에 대해 점점 뻔뻔스러워지는 자들은 멸망을 향해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수치를 우리들의 속담대로, 넘어선 자들은 은혜를 넘어선다. 그리고 나면 소망도 없어진다.

2. 그들을 올바른 길로 지도해야 할 그들의 인도자가 그들을 빗나가게 한다(12절). "너의 인도자(방백과 제사장과 예언자)가 너를 잘못 인도한다. 그들이 너를 유혹한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그릇되고 잘못된 것을 가르쳤거나 아니면 그들은 참되고 선한 것을 가르쳤다 할지라도 행실로는 그것을 부인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좋은 권유보다는 나쁜 본보기를 더 빨리 따르려 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한 손으로 세워 놓은 것을 다른 한 손으로 허물어 버리면서, "그 다닐 길을 훼파하였다." 너를 복되다 일컫는 자들이 너를 유혹한다(어떤 사람들은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의 제사장들은 마치 그들에게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고, 마치 그들에게 위험이 없는 것처럼 "평안이라, 평안이라" 하고 외쳤다. 이리하여 그들은 백성들이 계속 죄 속에 거하게 했다.

3. 학대당하는 자들을 돌보아 주고 보호해야 할 그들의 재판관들이 그들을 가장 학대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14, 15절).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은 학식이 있었고, 보다 좋은 것을 알고 있었고, 큰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주위에 있는 자들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유혹을 받을 만큼 궁핍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포도원을 삼켰다."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손질하고 지키기 위해서 임명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단어가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그 포도원을 불살랐다. 그들은 가장 악한 원수들처럼 악행을 했다(시 80:16).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듯이, 가난한 자들의 포도원을 빼앗거나 그 과실을 삼켜 버렸다. 궁핍한 가족들의 필요한 양식이 되어야 할 것으로 자기들의 욕망을 채웠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것이 그들의 집에 가득 쌓여 있었다. 하나님께 도난당한 물건을 찾으러 갔을 때, 거기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그것은 되돌려주어야 했던 것이요, 또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요직에 앉은 자들과 변론하신다(19절).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느뇨? 무슨이유로 그렇게 하느뇨?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핍박자들과 학대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하는 피해와 모욕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명심하자. "너희가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는도다. 너희는 마치 그들을 맷돌로 갈듯이 큰 고통과 두려움을 주며, 연속적인 학대의 행위로 그들을 필연코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 하는도다." 또는 "그들의 얼굴을 쳐서 상처를 입혔고 짓이겼다. 너희는 그들의 가산을 파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신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도 "얼굴을 맞으셨다" (마 26:67).

Ⅱ. 이 투쟁(변론)의 과정을 보자.

1. 하나님 자신이 고발자이시다(13절).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신다" 고 했다. 즉 하나님이 친히 이 문제를 거론하신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을" 심판하시려고, 학대당하고 혹사당하는 자들을 위해 "심판하시려고 일어서신다." 그리고 그는 "방백들을 국문하실" 것이다(14절). 아무리 높은 자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심문과 판결을 면제받거나 피할 수 없으며, 하늘의법정의 재판권에 대해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그 고발장은 악명 높은 사실의 증거에 의해 입증되어 있다. "학대하는 자들을 살펴보라.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고 있도다(9절). 학대받는 자를 살펴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의 얼굴이 어떻게 찌그러지고 능욕당했는가를 알 것이다(15절)."

3. 그 투쟁은 이미 직책이 변경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자기의 권력을 나쁜 목적에 남용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어떤 선한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12절). 즉 아이와 부녀처럼 판단에 약하고 감정이 강한 사람들이 다스리게 된다. 관할하는 자가 이러한 자들이 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고, 이것은 그들에게 심판이 되었다.

Ⅲ. 이 투쟁을 시행하는 중에서도 특정 사람들은 구별하신다는 것을 보자. 10, 11절).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말하라.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예언자는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다" 고 말했고(9절), 그 증거로써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으시리라"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의로웠다면 그들에게 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악했고 또 사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가인에게 진상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그가 화낼 이유가 없음을 납득시키셨다(창 4:7). 또는 그것은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즉 하나님은 민족적 심판을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그 심판도 민중의 유익을 파멸시킬 것이다.

1. 그런데 어떤 선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이 멸망에 포함될까 봐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그들을 그 두려움에서 위로해 주라고 명하고 있다. "불의한 민족은 어찌 되든, 의인은 죄인의 무리 속에서 버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라.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지 않을 것이다. 창 18 : 25). 아니 그(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확신시키라. 그 환란의 성질이 그에게는 바뀌어질 것이며, 그는 여호와의 노의 날에 숨기워 질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를 받을 것이며 그 환란이 심했던 것처럼 풍성한 복이 될 것이다."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이 제하여 질지라도 "기근의 날에 의인은 배불리 먹으리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을 그 전반적인 불의로부터 지켰다는 양심의 증거를 얻을 것이므로, 그 전반적인 재앙이 다른 사람들에게서와 같이 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불로 기름을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그들 자신도 그 불의 연료가 되지는 않으리라.

2. 어떤 사악한 백성들은 그 멸망을 피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그들의 헛된 희망을 흔들도록 명하고 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라(11절). 그에게는 그 심판이 쏘는 것이 될 것이며, 환난과 불행의 날에 쓴 쑥과 쓸개를 맛보리라." 악인에게는 화가 있다. 비록 그들이 법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화가 있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더 악화되고 마침내는 최악의 사태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받을 그날에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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