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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장 주일설교말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렘 3:6-11)

복음의 능력 2022. 12. 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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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장에서는 북 이스라엘의 죄를 따라가는 유다 백성을 책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 뜻대로 살아가다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하나님이 앗수를 민족을 사용하여 북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켰다. 하나님 말씀을 버린 대가가 컸다. 이런 와중에 유다 백성은 북 이스라엘의 죄악을 따라가고 있으니 하나님이 경고하고 있다. 성도는 복음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복음 말씀대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 복음을 버리면 하나님께 징계받는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렘 3:6-11)

 

이 설교의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이 설교의 시기가 관찰되어야 하겠다. 그 시기는 축복된 종교적 개혁이 발발했던 요시야 왕 때였다. 이때에 요시야는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여호와를 바랐으나, 그의 백성은 그렇게 진지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위선적 행위에 대해 그들을 경고하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의 내용이다.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경우가 여기에 비교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예루살렘 성전에 반기를 든 열 족속으로 되어 있었고, 유다는 나머지 두 족속으로, 다윗과 예루살렘 성전이 거기에 귀속되어 있었다. 이들 두 왕국의 대요만 볼 수 있다.

Ⅰ. 여기에는 이스라엘 즉 열 지파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아마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6절)라고 말씀하셨을 그때 방금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문서로 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 갔으므로 문서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서의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것을 읽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이 목격자가 된 것과 같이 우리를 교훈해야 하고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교회와 국가 양면에 있어서 처음부터 신의 제도인 다윗의 왕국을 반역하고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배역한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이제 예레미야는 그들을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보고 있다.

1.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비참하게 빠져 있었다. 그들은 모든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하였다(6절). 즉 그들은 그들의 산당과 숲에서 다른 신들에게 예배를 드렸다. 처음부터 그들이 단과 벧엘에서 금송아지 상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별반 이상할 것이 없다. 우상 숭배의 길은 내리받이 길이다. 만든 형상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가지고자 하는 자들은 곧 다른 신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또한 다른 신들을 가지고자 할 것이다. 첫 계명을 범한 자들이 어찌 제2 계명에 대하여 가책을 받겠는가?

2. 하나님은 자기의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초대하고 용기를 준다는 것(7절)이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즉 그것만 해도 마땅히 포기되어야 할 것이었지만 그러나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나는 말했다." 비록 그들이 논의의 여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가진 다윗의 집과 아론의 집을 저버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며 오직 그만을 예배하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다윗의 집으로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랐다기보다 아론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더 강요한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개혁자 엘리야도 그들에게 다윗의 집으로 돌아오라고 언제나 말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들이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예배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하나님이 그가 세우신 의식에 따르는 것 이상으로 더욱 바라는 것은 진정한 경건이다.

3. 이러한 자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 숭배를 고집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것을 보셨다. 즉 하나님은 그것을 아셨고 대단히 노하셨다(7,8절).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지 행치 않는지, 그리고 그가 자주 우리를 부르셨으나 우리가 얼마나 많이 거절해 왔는가를 헤아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4.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고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손에 버리셨다(7,8절). "내가 거기서 그들이 음란히 행하는 모든 행위를 보았을 때 그와 떠나야 했으며, 그에게 이혼 증서를 서 주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심에서 떠나서 그들로 하여금 누구든지 그들을 헤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쉽게 희생이 될 수 있도록 버려두심으로, 또 그들의 모든 희당을 흩으시고 모든 선지 학교들을 흩으시며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해 더 이상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 없도록 언약을 폐기하심으로써 그들과 이혼하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히 이혼당한 자들은 반드시 그와 대적의 관계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것의 실증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행하신 사실을 보라.

Ⅱ. 두 지파의 왕국인 유다의 경우는 어떠하였는지 살펴보자. 유다는 "패역한 자매로" 불려지고 있다. 자매로 불리어진 이유는 아브라함과 야곱이라는 같은 줄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타락한 것과 같이 유다도 타락하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유다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로 고백했지만(유다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들과 왕들을 따랐다. 그래서 유다는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 기대되었다) 유다 역시 패역하고 거짓되었으며 자신의 고백과 약속에 불충하였음이 드러났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유다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하였으며 그 결과가 무엇이며 어떤 경고를 받았는가를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포로 됨은 유다에게 충고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유다는 아무런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제사장들이 될 수 있는 레위인들이 있었고 왕이 될 수 있는 다윗의 자손들이 있으므로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거룩한 경외심으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어리석음이 분명하다. 유다가 여기서 받는 책망이 있다.

1. 그들이 그들을 미혹하게 하는 악한 왕을 세우고 오히려 그 악한 일에 왕을 진심으로 협력했다는 것이다. 유다는 그들에게 들어온 우상은 어떤 것이든 섬김으로써 음란을 행하였고 우상 숭배의 모든 관습을 따랐다. 그래서 행음함을 가볍게 여김으로(이것은 비루하고 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혹은 행음함으로써 악명이 높게 되어, 유다는 그 땅을 더럽혔고 이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혐오를 가지고 음란하여 하나님 앞에서 행음하였다.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때에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 온 백성이 또한 그렇게 되었고 온 땅이 그것으로 부패하였으며 아무도 이스라엘이 이것 때문에 그들에게 임할 파멸을 두려워할 줄 몰랐다.

2. 선한 왕이 위에 올라 그들을 개혁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이 개혁에 진심으로 마음을 같이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의 경우를 가져왔다. 하나님은 선한 통치 시대에 그들이 선하게 되는가 안 되는가를 시험하셨다. 그러나 그들 악한 본성은 여전하였다. 그들이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10절). 요시야는 그 이전에 어떤 선조들보다도 더 철저히 우상 숭배를 파괴하였다. 그 자신으로 볼 때는 과연 그는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향했다. 그의 이러한 사실을 열왕기 하 23장 25절에 기록되어 있다. 백성도 외적으로는 그와 함께 하도록 강요되었고 그와 더불어 대단히 엄격히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라는 강요를 받았다(대하 34:32; 35:17). 그러나 그들은 이것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바로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리라" (왕하 23:27)고 하셨다. 유다가 그들의 땅에서 이스라엘이 사로잡힘을 보고도 그들의 죄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선적이고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개혁이란 백성에게 재앙이 될 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척함으로써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진실성이 없는 신앙이란 있을 수 없음을 안다.

Ⅲ. 이 두 왕국의 상태와 이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에 대하여 볼 때 두 왕국 중에서 유다가 더 나쁜 것이었다.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즉 이스라엘은 유다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비교적인 의는 거의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실상으로 선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보다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이러한 비교적인 의도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되었다. 유다의 죄가 이스라엘의 죄보다 더 악한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그러했다.

1. 이스라엘에게서 보다 유다에게서 기대한 것이 더 컸다. 그런데 유다는 패역했고 이스라엘이 행한 것보다 더욱 엄숙한 약속을 거짓되게 했던 것이다.

2. 유다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 때문에 파멸당하는 것을 보고 충분한 경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 자신을 회개케 하는 일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더 크게 파멸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에 이와 같은 비교를 하고 있고(겔 23:11) 이스라엘과 유다를 비교할 뿐 아니라 이 셋 중에 가장 나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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