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1장 성경주석강해 말씀은 그다랴 총독의 피살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다랴는 이스마엘에 의해서 암살됩니다. 느다냐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였습니다. 이스마엘이 70명의 순례자도 죽였습니다.
그다랴 총독의 피살 사건(렘 41:1-18)
이스마엘이 그다랴 총독과 유다인들과 갈대아 군사를 죽임(1-3)
• 41:1 칠 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유다 총독 그다랴에게 이스마엘이 찾아왔으므로 그다랴가 환영 연회를 베풀고 같이 떡을 먹었다. 이스마엘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요하난의 밀고를 받고도(40:13-14) 그다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이스마엘을 이렇게 영접하였다. 그는 이스마엘이 왕의 종친이요 왕의 장관으로 있던 것만 생각하고 잘 영접하여 함께 온 열 사람과 같이 음식을 먹었다. 총독 그다랴가 자기 신변에 대하여 전혀 조심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 41:2-3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으며 교제하던 이스마엘이 갑자기 총독 그다랴를 찔러 죽이고 거기 있는 유다인과 갈대아 군사들을 다 죽였다.
이스마엘이 왜 이렇게 학살을 하였을까?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생각지 않고 자기 유익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암몬 왕의 말을 들으면 암몬 왕이 자기를 높여 줄 것만 생각하였다(40:14). 자기가 출세하기 위해 자기 동족을 죽이고 남의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은 악한 일이다. 자기 나라가 망한 다음에 남의 나라에서 대접을 잘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거나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다.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히 여기고, 그 나라를 세워 나아가는데 힘써야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교회)를 표준하고 귀중히 여기며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고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했다(엡6:20).
둘째,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했더라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가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바벨론을 섬겨야 된다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셋째, 총독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다. 이스마엘 자신은 왕의 종친이요, 군대장관이었으므로 자기가 왕이나 총독이 되어야 한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보다 못하게 보이는 그다랴가 총독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미워하여 죽인 것 같다.
넷째, 갈대아 군사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점령했으니 그 군대를 다 물리쳐 버려야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점령할 때에는 그 군대가 많았기 때문에 능히 싸우지 못하고 도망했으나 지금은 소수의 수비대만 남았으므로 그들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복수심을 가지고 그 수비대를 다 죽였다.
이때에 갈대아 군사에게 보복하는 것은 잘못이며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하는데 힘써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복수심으로 갈대아 군사들을 죽였기 때문에 도리어 큰 화가 미치게 되었다. 에베소서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분을 낼 때에 마귀가 틈타게 되고 분김에 하면 모든 일이 실패하게 된다. 바벨론의 수비대를 치면 바벨론 왕이 가만히 있겠는가? 재차 와서 말살(抹殺)시킬 것이다(18절). 이스마엘이 분김에 이렇게 했다가 결국은 자신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참는 자가 복이 있다. 성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참는 것이요, 둘째도 참는 것이요, 셋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자기의 믿는 일도 하지 못하고 교회도 망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다 잃어버리며 마귀의 일만 하게 된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마26:52; 계 13:10).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망친 것보다 이스마엘이 망친 것이 더 크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총독을 세워 놓고 이스라엘을 재건시켜 속국으로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 재건하려는 이스라엘을 이스마엘이 멸망시킨 것이다.
※ 그다랴 총독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를 지키지 못하였다. 나라가 어렵고 사람이 귀한 것만 생각하고 모든 유다인과 합력하여 나라를 세워 나가려는데 만 급급하였고 나라와 자기를 파괴하려고 들어온 사람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실패하였다. 나라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와 나라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키지 않으면 마귀에게 다 삼키어지고 만다.
그다랴가 자기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자기와 유다 나라가 다 망하고 말았다. 고린도전서9:27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 라”고 하였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자신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을 복종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건설하지 못하면 아무리 교회를 많이 세웠어도 자신은 망하게 된다. 성도들은 언제나 마귀의 궤계(詭計)를 깨닫고 자기 터 만들고 자기를 지켜야 한다.
이스마엘이 하나님께서 제사하러 온 70인을 죽임(4-9)
• 41:4 그가 그다랴를 죽인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틀이 지나도 그다랴와 그와 함께 있는 유다인들을 죽인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몰살당한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무자비한 사람들이었다. 그다랴 총독은 수비대나 측근에 아무도 두지 않고 무방비 상태였던 것 같다. 참으로 방심부주의 하였다.
• 41:5 때에 사람 팔 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경건한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해진 것을 애통해 하는 태도이다. 이 경건한 성도 80명은 겸비하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불에 탄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제물을 드리려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 각처에서 모여왔다. 비록 성전이 황폐해졌지만 불에 탄 제단에서라도 제물을 드리려고 소제들과 유향을 가지고 나왔다.
• 41: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울며 행하다가 이스마엘은 자기가 총독을 죽였으므로 두려워하는 가운데 이 무리(80인)들이 총독을 존경하는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총독을 미워하는 사람들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자기도 그 사람들과 같이 거짓으로 울며 행하고 총독을 존경하는 체하면서 총독에게로 같이 가자고 하였다. 참으로 가증한 행동이다.
• 41: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이스마엘이 하나님께 제사하러 오는 성도들을 70명이나 무자비하게 죽였다. 하나님께 제사하러 오는 그들이 이스마엘 자신이나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 아무 죄가 없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그 성도들과 한 패인척 하고 같이 울면서 가다가 그 사람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졌다. 이스마엘은 아주 잔학(殘虐)하고 무자비한 자이다.
• 41: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마엘이 80명 중 70명은 죽였으나 나머지 열 사람은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받고 살려 주었다. 그 열 사람은 물질과 생명을 바꾼 것이다. 물질(돈)을 받고 그 열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 이스마엘이 얼마나 불의한 자인가를 알 수 있다. 이스마엘은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귀히 여긴 사람이다. 열 사람은 물질을 내주고라도 생명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16:26).
• 41: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해서 방비할 목적으로 팠던 것이다(왕상15:22; 대하16:1, 6). 선한 일을 위해 파놓은 구덩이가 후대에는 악한 일에 사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남아있는 모든 백성을 끌고 암몬으로 가려고 떠남(10)
• 41: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왕의 딸들 바벨론 군대가 왕의 아들과 유력한 남자들만 잡아갔으므로 왕의 딸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이스마엘이 그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남은 백성을 데리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고 했다. 이는 자기 동족을 암몬 왕에게 종으로 바치고, 자기가 출세하려는 의도였다 . 그는 왕의 딸들과 동족과 나라를 쏟아서 자기 한 사람 잘 되려고 하는 잔인하고 악한 사람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 하나만 잘 되겠다는 생각은 이기주의적인 악이다.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물리치고 모든 백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가려 함(11-18)
• 41:11-12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행을 듣고 요하난이 자기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거느리고 이스마엘과 싸우러 나아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만났다.
• 41:13-14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 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그 때에 이스마엘에게 잡혀서 암몬으로 끌려가던 백성들이 요하난과 군대장관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일시에 이스마엘을 떠나서 요하난에게로 돌아섰다. 이 때 그들이 요하난에게로 급히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암몬으로 끌려가 종살이 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자기 일을 자기가 해야 된다. 백성들이 용기를 내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요하난도 생명을 내어놓고 싸워서 승리하게 되었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이스마엘은 인심을 잃어버렸고 요하난은 인심을 얻었다. 이스마엘이 백성들을 강제로 끌고 갔으나 기회가 주어질 때에 백성들이 일시에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인심을 잃어버리면 언제나 실패한다. 그러므로 인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모든 면에 잘 해야 된다.
요하난은 전에 이스마엘의 음모와 계략을 알고 총독에게 보고한 것과(40:14-15), 그 불의의 세력과 싸운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그러나 요하난이 크게 잘못한 것 몇 가지가 있다.
① 총독을 지키지 않았다.
②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다(16-18절 해석 참조).
요하난이 총독을 잘 지켜야 할 위치에 있었다. 요하난이 악한 이스마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하난이 항상 총독을 보좌(補佐)하고 잘 지키고 있었더라면 이스마엘이 비록 열 사람을 데리고 왔다고 해도 총독을 죽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하난은 총독에게 이스마엘의 음모에 대한 보고를 했을 때 총독이 믿지 않은 것과 또 이스마엘을 제거하자고 청원을 했을 때 거절당했으므로 될 대로 되라 하고 뒤로 물러가서 관망(觀望)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의 의견이 옳은데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여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의 옳은 말을 오늘에는 믿지 않아도 내일 믿을 수 있고 지금은 진정이 아니라 하여 믿지 않아도 다음에는 진정이 밝혀질 날이 온다. 그러므로 그런 때에도 자기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기 사명을 다해야 한다. 자기는 불신임 당하고 쇠해도 좋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일은 실패하지 않고 잘 되어야 된다는 신앙으로 충성했어야 한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그다랴를 통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인데 총독이 살해당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다 망치는 것이 된다. 제일 좋은 방침을 안 들어줘도 둘째 방침이 또 있다. 요하난은 총독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이 다 죽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총독을 지키지 않고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결국 요하난은 마귀의 궤계를 알면서도 마귀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우리는 일이 다 틀어지기 전에 바로 해 나가야 한다.
• 41: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이스마엘이 처음에 열 사람과 함께 있었으나(1절) 바벨론 수비대와 싸우다가 두 사람이 죽은 것 같다. 이스마엘일 자기가 불리함을 알고 아몬 자손에게로 피하여 도망갔다.
• 41:16-18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요하난이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이스마엘을 쳐서 물리치고 돌아와 그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갈대아 군사가 다시 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기가 총독과 수비대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유다인(이스마엘)이 죽였으므로 갈대아 사람이 유다에 보복하러 올 것을 두려워하였다. 둘째, 황무지가 된 유다 땅에 있는 것보다는 풍부한 애굽나라에 가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만 나아갔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의 멍에를 메고 유다 땅을 떠나지 않아야 잘 되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42:10-12).
요하난이 잘한 면도 있다.
① 이스마엘의 음모를 잘 알고 그것을 제거하려고 했다(40:13-15). 요하난은 마귀의 궤계를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洞察力)이 있었다.
② 이스마엘이 많은 사람을 잡아 끌고 암몬으로 가려 할 때에 생명을 내어놓고 반격해서 백성들을 구출하였다(41:11-14).
③ 그 악한 무리를 암몬으로 쫓아버렸다(41:15).
그러나 요하난은 자기 갈 길을 잘 몰랐다. 유다에 머무를 것인가, 애굽 나라에 갈 것인가, 아니면 바벨론 왕에게 항복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요하난 일행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으로 기울어져서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이로 인하여 남은 유다 백성이 다시 패망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죄를 제거시키고 불의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갈 길을 바로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른 진리를 찾아 그 길로 가지 못하면 마귀에게 속아 실패한다.
[룻기 1장 주석 강해설교]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모압 이주(룻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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