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3장에서는 엘리사의 남북 동맹군의 모압에 대한 승리 예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압을 치기 위해서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동맹을 맺었습니다.
모압을 이기게 하심(왕하 3:1-27)
[1-3절] 유다 왕 여호사밧의 18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 . . .
유다 왕 여호사밧 제18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2년을 다스렸다. 그 12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오래 참으시는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사람의 시간표와 다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 보기에 더딘 것 같다. 여호람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우상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 여로보암의 죄란 그가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 것이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었다(왕상 12:28-30). 모든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그의 진노를 받을 만하다. 여호람에게는 약간의 경건함이 있었던 것 같으나, 그의 믿음은 순수하지 못하였고 그의 순종은 불완전하였다.
[4-5절]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 . . .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로서 새끼양 십만과 숫양 십만과 그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쳤었는데, 아합이 죽은 후에 그가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다. ‘새끼양 십만의 털과 숫양 십만의 털’이라는 원문은 ‘새끼양 십만과 숫양 십만과 그 털’(KJV)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모압의 배반은 아합과 그의 아들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6-8절] 그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 . . .
그때에 여호람 왕은 모압을 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 군대의 인원을 점검하였다. 그는 또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유다 왕 여호사밧은 말하였다.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여호사밧의 문제는 악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와 그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왕과 그 백성과 일치가 될 수 있는가? 잘못된 교제와 악과의 타협이 그의 문제점이었다. 여호람이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라고 묻자, 여호사밧은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라고 말했다. 에돔 광야 길은 사해 서남부와 남부를 돌아 모압 땅으로 가는 길이다. 모압 남쪽에는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이 있었다.
[9-12절]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 . . .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과 에돔 왕과 함께 행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길을 둘러 행한 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었다. 이스라엘 왕이 말하였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한다(시 119:67, 71).
여호사밧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물었다. 여호사밧은 그래도 경건한 자이었다. 그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함을 알았다. 이스라엘 왕의 신복들 중에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사밧은 말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함께 엘리사에게로 내려갔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선지자에게로 내려갔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으로 간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기 때문이다(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한 말씀이다.
[13-15절]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 . . .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은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엘리사는 말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여호사밧은 아합이나 여호람과 교제하는 것이 잘못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었고, 엘리사는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는 엘리사를 감동하셨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음악을 사용하여 감동하셨다.
[16-20절]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 . . .
엘리사는 말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도랑]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이었다. 그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베푸신 긍휼이었고 또한 악한 여호람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긍휼이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21-25절]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 . . .
모압 모든 사람들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국경에 섰다.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말하였다.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그들이 이스라엘 진에 이르자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했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쳤고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했고 모든 샘을 메웠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었으나, 모압의 수도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겼다. 물맷군들은 두루 다니며 쳤다. 하나님께서 큰 승리를 주셨다.
[26-27절]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 . . .
모압 왕은 전세(戰勢)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였으나 능히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끔찍한 일이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였다”고 말한다. 다시 번역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큰 분노가 있었다”이다. 본문의 뜻은 주석가들의 일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노라는 말이 없으므로 이것은 모압 왕의 분노를 가리킨 것 같다. 이 구절은 모압 왕이 이스라엘에 대해 크게 분노하여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렸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실 만한 악한 일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동맹한 왕들과 군대들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모압 왕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본문은 기록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순수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을 가지자. 여호람의 문제는 순수하지 못한 믿음과 불완전한 순종에 있었다. 그가 부친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한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은 것은 잘못한 일이었다. 여호사밧이 아합이나 여호람과 교제를 계속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 사람은 다 부족이 많은 것 같다. 한가지 점에서 바른가 하면, 다른 점에서 잘못되곤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흠과 점이 없는 인격과 삶을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기”를 원하였다(빌 2:15).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였다(벧후 3: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대로 순수하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을 온전히 따르며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만 늘 사모하고 의지하자. 하나님께서는 악한 여호람과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또 그는 부족한 여호사밧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의 구원도, 생존도, 평안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거할 뿐이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고전 15:10). 또한 사도행전에 보면, 그는 새로 믿기로 결심한 자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하였다(행 13:43). 또 그는 신도들에게 편지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였다(롬 1:7 등). 우리는 우리의 우리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닫고 그 은혜 안에 거하고 그 은혜를 항상 더욱 사모하며 그 은혜만 의지하자. 그때 평강과 승리가 있다.
[사무엘상 19장 성경 좋은 말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함(삼상 1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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