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알쓸잡

[에스라 3장 강해설교말씀] 다시 드려진 제사(스 3:1-7)

복음의 능력 2022. 11. 30. 03:38
반응형

에스라 3장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었다. 모세가 명한 율법대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성전 공사 준비를 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성도에게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다시 드려진 제사(스 3:1-7)

 

여기에는 다음의 내용을 볼 수 있다.

 

Ⅰ.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7월에” 예루살렘에서 총회를 가졌다(1절). 그들은 봄에 바벨론을 떠나 적어도 4개월 동안 여행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스라도 그의 동료들과 함께 여기까지 오는데 그 정도 기간이 걸렸기 때문이다(7:9). 그러므로 도착하자마자 7월이 되었다. 7월에는 여호와의 많은 절기가 들어있던 달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권위의 명령에 의해서라기 보다 그들 스스로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들에게는 이제 막 와서 자기들 일이나 자기 가족들의 일들이 태산같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제단에 나오는 일을 지체하는 구실로 삼지는 않았다. 많은 어리석은 자들은 세상 일에 안심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연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신앙에서 바른 신앙으로 새로이 돌아왔으므로 자기들의 종교에 대하여도 지극히 열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기 위해서 나라 안의 모든 업무를 제쳐 두었다. 그들의 이러한 경건한 열심이 한마음이 되어 “한 사람같이” 모여왔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종교적인 업무를 위해서 세속적인 업무를 지연시키라. 그러면 세속적인 업무도 더 번성하리라.

 

Ⅱ. 지도자들은 회중들이 참예할 제단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1.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 방백들의 제단이 서 있던 옛 장소(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을 세웠다(2절). 패트릭 주교는 성전이 세워지기 전 다윗 시대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는 성막이 모리아 산이 아니라 시온 산에(대상 9:23)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제단도 성전이 다시 세워질 때 바로 시온 산에다 건립해 놓고 사용해 왔으리라 추정했다. 여기에서 다음의 교훈을 배우자.

 

(1)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할 것. 가난과 고난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모든 길에서 항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려고 더욱 힘써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인도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예물을 드려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할 것. 그들은 즉시 성전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제단을 쌓을 수는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세웠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비록 우리가 설교라는 등대와 성찬이라는 진설병이 없다고 해도 기도와 찬양의 제물마저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예물을 성별 시켜 주는 제단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이 왜 제단 세우기에 급했는지 그 이유를 관찰해 보자. 그것은 그들이 “그 땅의 열국 백성을 두려워”한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과 자기들의 종교에 대하여 악의를 가지고 있는 원수들 가운데 있었다. 그들이 적의를 가진 것은 이들을 필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 “그러나” 그들은 제단을 세웠다(혹자는 이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들은 제단을 세움으로써 야기될 반대 때문에 두려워서 신앙 사업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것 때문에 이런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2) 저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제단을 쌓았다. 위험을 아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의무를 향한 열성을 일으키게 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원수를 대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삼고 그와 일치되도록 해야 할 좋은 때이다. 우리도 이렇듯 두려움을 선용할 줄 알아야겠다. 즉 두려움이 오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사울까지도 자기가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기 전에 적이 오면, 자기는 멸망될 것으로 생각했다(삼상 13:12).

 

Ⅲ. 그들은 제단에 제사를 드렸다. 제단은 사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제단을 사용했다. 제단을 세운 자들로 하여금 그 제단이 빈곤하게 되지 않게 하라.

 

1. 그들은 “7월 초하루에” 시작했다(6절). 그들은 모세와 솔로몬과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불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족장들이 했던 것과 같이 보통의 불로 제사를 드렸다.

 

2. 시작한 후부터는 “조석으로 계속해서 번제를” 드렸다(5절). 그들은 과거에 매일의 기도를 간구하기 위해 매일의 제사를 드리지 못한 것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제단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제사를 빠뜨리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매일의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형이다. 우리는 어린양의 의를 믿고 모든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3. 그들은 “여호와의 절기를” 모두 지켰고, 각 절기에 지시된 필요한 희생 제물도 드렸다. 특히 “초막절”을 준수했다(4, 5절).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나 큰 자비를 받았기 때문에 그 기쁨의 절기는 특별한 때에 맞는 절기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성읍에 정착하기 시작함으로써,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장막에 거하던 일을 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복음의 시대와 특별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이 절기는(슥 14:18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 절기가 가까워옴에 따라 특별한 방법으로 평가되었다.

이 절기에 대해서 보면, 그 기간은 칠일 동안 계속되었고, 지정된 특별한 희생을 드렸다. 그들은 “날마다 드릴 의무로서”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민 29:13, 17 이하를 보라). 일용할 말씀 혹은 양식(원문은 그런 뜻이다) 이것은 성경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격언이 된 말씀이다.

초막절이 점차적으로 세상을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관점에서 보아, 복음적 전환을 상징하는 모형이었다면, 그 사실은 “날마다 필요한 의무를 따라 날마다의 일”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즉, 우리는 매일 선한 일을 찾음으로써 시간을 선용해야 할 것이다.

(2) 오늘의 적절한 일에, 힘씀으로써 기회를 선용해야 할 것이다.

만사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제7월 제10일은 속죄일이었다. 이 날은 경건한 날이었는데, 지금이야 말로 대단히 때가 잘 맞는다. 그들은 아마 반드시 그날을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모든 구약성경에서 이 날을 준수한 데 대한 언급이 가장 적을 것 같다. 이것은 마치 레위기 16장에 기록된 것만으로 충분하고, 또한 그 절기의 주된 의도는 신약성경의 속죄에 대한 복음이기 때문이리라.

 

4. 그들은 “모든 사람이 즐거이 드리는 예물”(자원제)을 드렸다(5절). 율법은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희생의 비용을 감당할 만한 넉넉한 재산도 없었지만 그 요구 이상드렸다. 그들은 대단한 열심을 가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풍성하게 드리기 위해 자기들의 식탁에서는 절약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난의 용광로에서 이와 같이 거룩한 열심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Ⅳ. 성전 건축 준비를 했다(7절). 그들은 즉시 시행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행하는 동안에도, 그 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더욱 애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두로와 시돈은 옛날과 같이 당시에도 고레스의 조서대로 일꾼을 보내고 레바논 백향목을 보내주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거기에 필요한 물자까지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룻기 2장 성경 좋은 말씀]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룻 2:17-23)

 

[룻기 2장 성경 좋은 말씀]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룻 2:17-23)

룻기 2장에서는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보아스가 자기에게 선대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서 나오미에게 말했다. 나오미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며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라는 것을 알았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