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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5장 성경 주석 설교말씀] 므낫세, 르우벤, 갓의 족보(대상 5:1-17)

복음의 능력 2022. 11. 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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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5장에서는 요단 동편 지파를 기록하고 있다. 요단 동편에는 르우벤 지파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갓 지파도 이 땅을 분배받았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동편의 땅을 받았다. 족보를 통해서 성도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깨닫게 된다.

 

갓의 족보(대상 5:1-17)

 

Ⅰ. 르우벤의 족속에 대하여, 여기에는 계보 발췌문이 하나 나타나 있다.

 

1. 이 족속이 이와 같이 뒤로 연기된 이유.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이다. 이것을 내세워 우선권을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첩을 더럽힘으로써 장자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것 때문에 그는 “탁월치 못하리라”는 선고를 받았다(창 49:4). 죄는 사람들을 왜소하게 하고, 비천하게 한다. 제7계명을 어긴 죄는 특별히 남자와 여자에게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게 하며, 시간이 그 죄를 씻어 낼 수 없다고 말한다. 르우벤의 씨는 마지막까지 르우벤이 지은 죄의 불명예를 지게 된다. 그러나 비록 그 족속의 지위는 낮아졌어도 이스라엘에서 단절되거나 상속에 참여치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명예 훼손이 그의 행복의 상실은 아니다. 르우벤이 장자의 권리를 상실했으나, 그 장자권이 순서상 그다음에 있는 시므온에게 양도되지는 않고 있다. 왜나햐면 그것은 한 모형적 사건이었으므로, 자연 과정이 아니라, 은총의 선택이 개입해야 되겠기 때문이다. 장자권이 가지는 이익이란 지배권과 재산상의 두 배의 할당 몫이었다.

르우벤은 이것들을 빼앗겼으므로, 이 두 가지 이익이 어떤 한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것은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나뉘었다.

(1) 요셉은 두 배의 할당 몫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두 부족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나왔고, 그들 각자가 한 아들의 몫을 가졌기 때문이다(그래서 요셉은 신앙으로 그들을 축복했다. 히 11:21; 창 48:15, 22). 그리고 이 각 부족은 유다 이외에 어떤 다른 부족에 못지않게 두드러지고 훌륭한 가문이 되었다.

 

(2) 그러나 유다가 지배권을 가졌다. 즉 죽은 조부에 의하여 홀이 그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창 49:10). 그에게서 지배자 다윗이 먼저 나왔고, 시간이 차매 만군의 왕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미 5:2). 이 영광이 유다에게 전해졌다. 비록 장자의 권리는 요셉의 것이었지만, 유다는 이것을 가짐으로써 요셉의 두 배의 몫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2. 이 지파의 두목들의 계보.

이 족속의 으뜸 가족(의심할 바 없이 많은 이름이 빠졌을 것이다)은 브에라였다. 그는 앗수르 왕이 그들을 사로잡아 갈 때 이 지파의 두목이었다(4-6절). 아마도 그는 그 당시에 르우벤 족속의 두목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포로 잡히는 것을 방비함에 있어서 자기의 임무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이 지파의 경계지의 확장. 그들의 인구는 증대했고, 그들의 가축도 무리를 이루었다. 비록 그들의 경계선이 유브라데 강은 넘지 못했지만, 그들의 이웃 족속인 하갈을 몰아내고 그들의 정복지를 광대하게 넓혔다. 그래서 유브라데 강과 접해 있는 광야에까지 넓혔다(9, 10절).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이, 그의 백성을 위해 싸우셨다. 즉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적을 조금씩 몰아내어 그 땅을 얻을 때가 되면 그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었다(출 23:30).

 

Ⅱ. 갓 지파에 관하여.

이 지파 중 어떤 훌륭한 가정의 이름이 실려 있다(12절). 아비하일의 족보는 아들로부터 조상으로 상향적인 족보인데(14, 15절), 그의 아들 일곱은 4, 5절과 같이 조상에서 아들로 내려온 하향적 족보로 기술되어있다. 이 계보들은 유다 왕국의 요담 왕의 치세 때에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Ⅱ세의 치세 때에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취하게 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그것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때는 열왕기하 15장 29, 31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앗수르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파국적인 타락과 반역 때문에 그들에게 임박하게 될 때, 그들은 자기들의 혈통을 자랑하여 자기들이 약속의 자녀들이란 것을 자랑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우리 주님의 때에, 즉 그들이 파멸의 열매가 무르익어 갈 때도 그들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자랑했던 것과 같다. 혹은 그 안에는 어떤 특별한 섭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즉 현재로는 그들이 추방되지만 영원히 떠나는 것은 아니라는 은혜스러운 암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맹세를 보존하는 법이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대상 5:18-26)

 

요단강 동편에 자리 잡고 있는 므낫세 반 지파의 족장들의 이름이 여기 나열되어 있다(23, 24절). 처음 그들의 몫은 바산뿐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의 부와 힘은 북쪽 멀리 헤르몬 산까지 확장되었다. 요단 건너편에 있는 이들 지파에 관하여 단 두 가지 사실만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실은 그들 모두에게 관련되어 있다.

Ⅰ. 하갈 족속들을 이긴 영광스러운 승리에 대한 기록. 이스마엘 자손들이 지금 이렇게 하갈 족속들이라고 불려지고 있는데 그들은 쫓겨난 “여종의 자손들”이었다. 우리는 이 승리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르우벤 족속들의 승리와 같은 것인지(그것은 10절에서 “사울 왕 때”라고 말한다) 혹은 이들 족속들 중 하나의 성공이 다른 원정 중에서 다른 두 족속에게 그들과 연합하도록 자극을 주었는지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비록 사울 왕 때에는 범국가적 이익의 관심이 빈약하고 낮았다 할지라도, 따로이 행동한 어떤 족속들은 자신들을 위해 잘 행한 것 같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1. 하갈 사람들을 대항하여 전장으로 나간 이들 변방 족속들은, 전쟁에 능숙하고 뛰어나게 강했고 용감했으며, 그중에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힘 있는 용사가 44,000이었다(18절). 만일 모든 부족이 연합하여 행동했다면 사사 시대 때보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더 강했겠는가!

 

2.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편을 들도록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의뢰하였다”(20절). 이제 그들은 참으로 이스라엘 자손들답게 행동했다.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그들은 “하나님을 의뢰했다.” 비록 그들의 군대가 강했다 해도 그것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뢰했다. 그들은, 기회가 오면 아주 바쳐진 민족 이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지경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치르라 하신 하나님의 위탁에 의존했다(신 20:15 참조). 그들은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했다.

(2) 기도하는 야곱의 자손답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특별히 그들이 위험에 처한 “전쟁에서” 그러했다(대하 13:14 에서 행한 것과 같은 예를 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중에서 그에게 부르짖기를 원하신다. 그는 이 공물과 지대(地貸)를 받기 위해 우리에게서 차압하신다. 우리는 정신적인 갈등 가운데서도 힘을 얻기 위해 하늘을 우러러보아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3. 그들이 얻은 승리가 어떤 것인지를 듣게 된다. 비록 필요가 그들을 그에게로 몰아 세우긴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탄원을 들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답하실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그들은 적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받았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께 의지하는 자를 넘어지게 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적의 군대를 패주시켰다. 비록 적의 군대가 숫자적으로 훨씬 우세할지라도, 그들은 적을 많이 죽였고(22절), 10만 명의 포로를 잡았고 전리품이 대단히 많았고, 그들은 원수의 나라에 거하게 되었다(21, 22절). 이 모든 것은 그의 두려움 가운데서도 그를 의지하는 중에 이루어진, 하나님이 싸우시는 “하나님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여호와의 싸움이라면, 그 전쟁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이유가 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만이, 어떤 사업에서나 번창을 바랄 수 있다.

 

Ⅱ. 그들은 마침내 불명예스러운 포로를 함께 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고 그들의 의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그들의 옛 할당 몫과 새로운 정복지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25절). 그들은 국경을 확장하여 이웃 민족들과 교류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우상 숭배의 관습을 배웠고, 그 전염병을 다른 부족들에게도 전해 주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과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신들을 쫓아 음란해지자” 하나님의 질투가 불같이 타올랐을 것이라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음녀에게 이혼 증서가 주어진다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들을 분발시키셔서, 이들 야망 있는 군주들의 손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먼저는 이들 반역자들을 벌하시기 위해, 또 그래도 그들이 겸손하게 되지 않을 때는 완전히 그들을 “뿌리 뽑아” 버리시기 위해 이용하신다(26절). 이 지파들이 가나안에 먼저 자리를 잡았었고, 또 먼저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좋은 땅을 소유했으나, 그 땅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이성과 신앙에 의하여 어떤 선택을 하기보다는 감정에 의해 선택하는 자들은 그것에 따른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신명기 5장 주석강해말씀] 이스라엘의 탄원과 하나님의 허락(신 5:23-33)

 

[신명기 5장 주석강해말씀] 이스라엘의 탄원과 하나님의 허락(신 5:23-33)

신명기 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모세가 중보자가 되었다.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이다. 예수님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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