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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9장 강해 설교문] 처형된 유다 민족의 원수들(에9:1-32)

복음의 능력 2020. 7. 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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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에스더 9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처형된 유다 민족의 원수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처형된 유다 민족의 원수들

 

성경: 에 9:1-32 

 

 

<서론>

 

유다 민족이 말살될 수도 있었던 아하수에로의 조서가 마침내 철회됨으로써 유다 민족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뒤 사건(8)에 이어 부상에는 하만의 뜻을 같이 하여 유다 민족을 학살하려던 원수들이 오히려 도륙되는 대역전의 역사가 소개된다.

 

 

본장에는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던 그 날에 오히려 유다 민족을 살해하려던 자들이 도륙되는 역사(1-16)와 그 날을 기념하여 유다 민족의 승리의 기념일인 부림절로 제정되는 장면(17-32)이 소개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의 대반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재림으로 이루어질 최후 심판 날의 전경을 예표 해 준다. 실로 최후 심판 때에 는 이 땅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던 모는 성도들이 주 앞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고 즐거운 찬송을 부르는 대신 악인들은 처참한 멸망의 처소에서 슬피 이를 갈 것이다(계19:1-20:15). 여기서 믿음의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자.

 

 

<본론>

 

1. 성도는 거룩하고 신령한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10, 16).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대 학살일로 계획되었던 아달월(유대력 12월 양력 2-3) 13일을 기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 자신들을 죽이려는 주변 이방 족속들을 맞이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습니다. 물론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침략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생명을 해치리는 주변의 악한 이방인들에 대한 방어 전쟁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유대인들은 오히려 악한 이방인들을 철저하게 전멸하였습니다. 원래 이 날은 유대인들의 대학살 일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이 날을 승리의 날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 죽인 이방인들의 숫가 75 ,000명이나 되었습니다(16).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이들의 재산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로 이미 본분에서 두 차례(10, 16)에 걸쳐 강조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즉 유대인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단지 남의 개산을 약탈하기 위한 세속적 침략 전쟁이 아님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세상에서 싸워야 할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6:12). 그러기에 우리 성도의 싸움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세상적인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비난하고 성도들의 성결한 삶을 파괴하는 악하고 더러운 사단의 세력들을 상대하여 거룩하고 신령한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런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요, 십자가 군병임을 잊지 맙시다.

 

 

2. 악의 근원은 철저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13).

 

유대인들은 아달월 13일을 택해 자신들을 죽이려던 악한 이방 족속들에게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방 족속들을 죽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은 단지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만 허락되었습니다. 이제 이 날이 지나가면 유대인들은 자위권 발동이 금지되고 다시 악한 이방인들로부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당부하여 유대인들에게 자위권 발동을 허락한 날을 하루 더 연장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에스더의 이 같은 당부는 마치 피에 굶주린 마녀와 같은 잔혹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차제에 유대인들은 대적들을 완전히 진멸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원수들로 말미암아 지금과 같은 대학살의 음모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유대인 자위권 발동을 하루 더 연장토록 당부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악은 철저히 진멸하여 뿌리를 뽑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과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악과는 다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장에 그 자리에서 악은 철저히 진멸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보장하는 유일할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강한 어조로 명령하였던 것입니다(살전 5:22).

 

 

3.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자비와 자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22).

 

민족이 완전히 멸절될 것 같은 위기에서 벗어난 유대인들은 이 날을 부림절이라 명명하고 큰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부림절 이틀 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날에는 서로에게 선물을 하며, 또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실로 일순간에 전 민족 이 멸절되기 직전 이렇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생명을 건짐 받고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기쁨과 즐거움을 온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웃에게 선물도 하고 또 가난한 자들은 구제하였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환희의 날이 되었으니 아마 강제로 입을 막는다 한들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그 기쁨의 외침을 어찌 막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실로 주 안에서 구친티 은총을 입은 자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값없이 돈 없이 그서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니 그 기쁨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어찌 외치고 부르짖으며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이런 기쁨의 참된 소식을 방해하며 가로막을 수가 있겠샵니까? 우리의 구원의 날을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이 기쁨의 복음을 증거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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