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 목: “주님의 뜻이 땅에도 임하소서”
설교자 : 윤사무엘 목사
본문 말씀: 마 6:9-13, 시 2:1-12
요 절: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주 제: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기도하자.
주기도문 강해 네 번째 시간입니다. “주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Thy will be done in earth, as it is in heaven”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관련한 세 번째 간구(petition)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세 가지 간구는 사실 모두 연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Olivet)의 철야기도 주제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마 26:39, 42). 쉬몰크(B. Schmolck, 1672-1737, 독일 루터교)목사님은 심방을 다녀오는데 사택에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화재가 난 것을 발견하고 급하게 달려와서 어린 두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검은 잿더미로 죽어있었습니다. 그는 몇일 동안 침식을 폐하고 괴로워하면서 주님께 회개 기도하며, 원망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보이고, 주님의 기도가 내 기도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 14:36) 기도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때(1704년)에 작사한 찬송이 549장(통 431장)입니다.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해방 후 1948년 10월 여수에서 좌익이 중심된 ‘제4연대 항명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이 여순반란사건으로 이어져 여수와 순천지역이 1주일 동안 좌익 세상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많은 우익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그중에 순천에서 공부하고 있던 손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희생되었습니다. 주일예배 도중 이 비보를 듣고도 침착하게 끝까지 예배를 인도한 후 현장에 달려갔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들을 살해하는데 동참했다가 체포된 좌익 학생 안재선의 석방을 주선하고 그를 ‘양자’로 삼겠다는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사랑의 원자탄 Atomic Bomb of Love’이라고 부릅니다. 그때부터 안재선은 양아버지의 폭탄적 사랑의 증인으로 손 목사의 부흥회에 동행하였고, 손목사님께서 그를 소개할 때마다 성도들이 박수로 환영하였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신 목사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는 두 가지 이상 악기가 연주될 때 항상 조율(tuning)을 먼저 해야 하는 것처럼, 내 심령이 하나님의 뜻(조율에서 “A"음)에 맞춰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의 뜻에 조율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항상 주님의 뜻을 먼저 물었습니다. 경건한 생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대로 행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간구와 소원으로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뜻대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과 뜻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성취하시는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것이고 마지막 날에 부활시켜 주심이요, 예수님께서 이를 위해 고난의 쓴잔(십자가)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소요리문답 103에 보니 주기도문의 이 간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리로 하여금 능히 기꺼운 마음으로 범사에 있어서 그의 뜻을 알아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하늘에서 천사들이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하게 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 103: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19:3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 구속사역, 주권적 섭리, 복음전파, 종말사역 등 전 분야에서 분명한 뜻을 보여 준 것을 모은 것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로마서 윤리 권면 부분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이 세대는 본받지 말고 진리와 성령으로 새로 지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변화되어서 정직하고 순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자기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세워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면 거룩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살전 4:3-9)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7)하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우리가 범사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 바울은 간증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 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행 20:24-27) 고 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을 포함하여 모든 주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이어야 합니다.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가이사랴에 바울은 방문합니다. 그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네 딸을 만나는데 모두 예언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번에 바울 선생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알고 울며 만류를 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13-14)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에는 할 수 없습니다. 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의 자리에도 가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단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후 7:5-11에 보니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간절하게 하며, 변명하게 하며, 분하게 하며, 두렵게 하며, 사모하게 하며, 열심 있게 하며, 그리고 벌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근심은 우리에게 많아야 할 근심입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 세상에 인간이 사는 날 동안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근심의 연속입니다. 세월이 우리를 늙게 하는지 아니면 근심이 우리를 늙게 하는지 착각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인생과 근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근심하며 병들고 근심하며 늙고 그런가 하면 근심하며 성장하고 근심하며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시편 저자는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38:17)라고 하였는데 인생을 살면 살수록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잠언에서는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 끝에도 근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잠 14:13). 비록 웃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슬픔과 근심이 숨어 있다는 말이요 그리고 웃고 있지만 곧 근심에 울 날이 올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무엇이 세상 근심일까요?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그 근심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둘째는 그 결과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내용에 의해서 나누어집니다. 근심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냐 아니면 세상 근심이냐가 나누어집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분명히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즉 해서는 안될 근심은 ‘먹을 것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일’에 대한 근심입니다. 성경은 이런 근심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의 근심은 대부분 이런 근심을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근심거리를 내어놓아 보면 대부분 먹을 것 마실 것 문제요 명예에 대한 문제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둘째는 결과에 의해서 나누어집니다. 어떤 것은 그것 자체가 세상에 속한 근심이지만 어떤 것은 그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에 속한 근심이냐 세상에 속한 근심이냐가 결정 난다고 봅니다.
사실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을 근심하게 해 놓았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을 때에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고린도 교회의 다툼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책망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파송한 디도마저 오지 않아 더욱 불안했습니다. 그러다 디도가 옴으로 기뻤습니다. 그것도 그가 가져온 소식은 더욱 기쁜 것이었습니다. 즉 그 책망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여 화해하였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무익한 근심을 많이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해도 그만하지 않아도 그만인 근심을 많이 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은 근심 자체가 더욱 일을 그르치고 나아가 자신을 해롭게 하는 근심일 때입니다. 근심이란 본전이라도 남겨 주고 가는 근심은 없습니다. 근심이란 것이 찾아오면 반듯이 손해를 끼치고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나 깨나 하나님의 뜻에 늘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내 심령에, 내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나라에, 이 지구촌에 꼭 이뤄달라고 늘 기도합시다. 집안에서도 어른들의 뜻을 먼저 물어보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찬송 540장(통 219장) 2절에 있는 대로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 소원이 주님의 뜻과 일치되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좋으신 하나님, 주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가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 뜻이 땅에서도 이뤄주옵소서. 주님의 뜻대로 저를 지어주시고 불러주시고 주관해주시며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의 뜻이 우리 교회에 이뤄주옵소서. 주님의 뜻이 우리나라에 이뤄주옵소서. 늘 일상 기도가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주옵소서”하며 주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는 매일매일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누가복음 3장 예수님 말씀] 아담에서 예수님까지 족보(눅 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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