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장에는 마리아 계열의 상향식 예수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에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하향식 족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에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는 완전하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담에서 예수님까지 족보(눅 3:1-38)
1-20절, 세례 요한의 사역
[1-2절]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 . . .
본문은 세례 요한의 활동 시대에 대해 증거한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位)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였다.
로마 황제 디베료 가이사는 누가복음 2:1에 언급된 가이사 아구스도 다음에 황제가 된 자이다. 그는 주후 14년부터 3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가 왕위에 있은 지 15년 되는 해는 주후 28년경일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파송한 유대의 총독이었고, 헤롯 안디바스는 예수님 탄생 때의 왕인 헤롯 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의 분봉왕(국토를 나누어 통치하는 왕)이었다. 그 동생 헤롯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이었고, 루사니아는 아빌레네의 분봉왕이었다.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는 대제사장들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였다는 것은 요한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선지자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레미야 1:2,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13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이전 직업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 곧 광야에서 요한에게 왔다. 광야는 먹고 입고 자는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다. 마태의 증거대로,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다. 그가 제사장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로 나간 것은 당시의 제사장 사회가 부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부패된 환경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 광야는 또한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많이 교제할 수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은 성도의 큰 특권이고 큰 복이며 특히 하나님의 일꾼 된 자들의 의무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의를 파악하고 성경에 정통해야 하며 그 심령이 그 말씀으로 불붙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시시때때로 광야나 조용한 골방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며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묵상해야 한다.
[3절]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 . . .
요한은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 그는 노방 전도 혹은 야외 설교를 하였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미워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 필요하다. 회개는 죄사함을 얻게 한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고서는 사람이 죄사함을 기대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주신다. 세례는 회개한 자에게 베푸는 의식이다. 물론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씻음받지만, 회개한 자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회개가 중요하고 죄사함이 중요하며 또 세례도 중요하다.
[4-6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 . . .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와 같았다. 거기에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고 하였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왕의 행차 시 길을 닦는 것과 같았다. 그 준비는 사람의 마음을 회개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골짜기는 불신앙과 의심과 낙망의 마음을 가리킬지 모르고 모든 산은 교만과 높은 마음을 가리킬지 모른다. 사람은 이런 마음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7절]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 . . .
요한은 세례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미혹되어 범죄한 후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마귀의 성질인 죄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와 같다(마 23:33; 요 8:44; 요일 3:8).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전쟁이나 지진이나 대형사고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곧 지옥 형벌이 있다.
[8절]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 . . .
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회개하는 겉모습만 가지지 말고 참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라는 원어(메타노이아)는 ‘생각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죄를 깨닫고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변화된 행위를 동반한다. 그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가 없이 마음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선민 의식은 헛된 것이며 도리어 큰 해가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이 아니고 회개의 열매이다. 회개 없는 구원의 확신은 오히려 그를 멸망시킨다. 하나님께서는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이방 죄인을 구원하신 것은 오직 그의 긍휼의 처분에 따른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니고 우리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이다.
[9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 . . .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불은 지옥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무가치한 악인들을 마지막 날 지옥불에 던질 것이다. 지옥은 사탄과 악령들과 회개치 않은 악인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
[10-13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 . . .
요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회개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질문에 요한은 대답하였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그것들을 서로 나누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회개는 구체적 선행으로 나타나야 한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이며 그것은 행동의 변화로 나타난다. 이웃을 돌아보며 없는 자들과 나누는 것이 회개의 증거이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자, 그는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강제로 징수하지] 말라”고 말했다. 세금 받는 자들은 나라에서 정한 세금 외에 더 무엇을 징수치 말고 정한 세금만 징수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14절]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 . . .
군인들도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묻자, 그는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거짓되이 남을 비난하지] 말고 받는 요(料)[봉급]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했다. 군인들이 칼의 힘을 의지하여 사람들에게 강포하거나 사람들을 거짓되이 비난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다. 그러므로 칼의 힘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또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것이 회개의 열매이다.
이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공의와 선함과 진실의 행위들이다. 오늘날 정치가나 법조인이나 공무원이나 교육자나 사업가나 모든 사람에게 공의와 정직, 선함과 진실이 요구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 등에서 공의와 정직과 선함과 진실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회개하였고 구원을 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도덕적 삶을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이다.
[15-17절]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 . . .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많은 정치적 불만족과 육신적 질병들과 경제적 가난이 있었다.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회복자와 구주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파하시고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와 육신적 건강까지도 주실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모든 사람들은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이신가 하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가 오실 것을 분명히 말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보다 능력이 많으시며 자기는 그의 신발 끈을 푸는 종의 역할도 감당치 못할 것이다. 요한과 그리스도는 그 능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과 비교할 수 없이 능력이 많으실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자이시다. 세례는 죄씻음을 상징한다. 물세례는 단지 죄씻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는 실제로 죄인들의 심령을 새롭게 한다. 그것은 중생(重生)의 은혜를 가리킨다. ‘성령과 불로’라는 말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불은 용광로에서 금을 제련하는 데 사용된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죄인을 깨끗케 하신다(고전 6:11; 딛 3:4-6).
셋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셔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키’는 타작할 때에 곡식을 까불러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는 기구이다. 그의 타작마당은 세상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는 세상의 소유주이시며 또한 심판주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심판주로 세우신 자가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실 것이다. 알곡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쭉정이, 즉 회개치 않는 자들과 위선자들은 꺼지지 않는 불 곧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막 9:48).
[18-20절]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 . . .
요한은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 곧 불륜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라는 말은 악인들의 회개치 않는 모습을 잘 나타낸다. 악인들은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그를 미워하고 오히려 그에게 해를 끼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자. 회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것을 미워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요긴한 진리는, 죄가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세계의 불행과 죽음의 원인이며, 죄사함이 이 불행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요 해결책인데, 사람이 죄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메시지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 없이 사는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섬기며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회개하고 믿은 자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한 자는 실제의 삶이 변해야 한다. 선한 열매가 없는 나무는 불에 던지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성경의 법과 규칙대로 행해야 한다. 우리는 강포하지 말아야 하며 거짓되이 남을 비방하지 말아야 하고 또 탐심을 품지 말고 항상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롭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고 자족해야 하고 탐심을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알곡 같은 신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신적 능력의 구주이시다. 그는 우리를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실 수 있고 우리의 악성과 악습으로 망가진 마음과 인격을 변화시키실 수 있다. 그는 우리를 성령으로 중생시키시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주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한 마지막 심판자이시다. 그는 쭉정이들을 마지막 날에 지옥불에 던질 것이다. 우리는 천국을 준비하고 지옥을 피해야 한다.
21-22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심
[21-22절]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 . . .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때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났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더불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인들의 구주로서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모든 죄 짐을 짊어지심을 나타내신 것뿐이다. 그것은 메시아의 준비의 한 과정이셨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일어난 광경은 신비한 일이었다. 우선, 하늘이 열렸다. 하늘은 항상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때때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세계가 계시된 때가 있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그를 모시고 섰는 광경을 보았다(사 6:1-2).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하였다(행 7:55-56). 사도 요한도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고 그 문으로 들어가 하늘의 영광스러운 광경과 그 외에 많은 것들을 보고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을 썼다(계 4:1). 이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도 하늘이 열리는 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보인다.
성령께서는 형체로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비둘기는 거룩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후에 열두 제자들을 전도자로 보내시며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16).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요 4:24) 하나님과 성령께서는 본질상 동일하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세상에서나 인간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는 오늘날 모든 성도 속에 거하시고 일하신다. 요한복음 14:16,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처음 내려오셨을 때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양으로 오셨다(행 2:2-3). 그것은 능력의 영이심을 상징하신 것 같다. 그 후, 그는 믿는 자들 속에 거하시며 그들의 성화를 이루시고 그들의 봉사의 사역을 도우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다. 로마서 8:14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도사역을 시작하려 하실 때 성령께서 그에게 내려오셨다. 그는 성령의 특별한 충만하심 속에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성령께서 내려오셨을 뿐 아니라, 하늘로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났다. 하늘로서 난 소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친히 증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예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한번 더 그에 대해 증거하실 것이다(눅 9:35).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그에게 내려오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구별되게 나타나셨다. 그러나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면, 그 세 구별된 인격은 한 하나님이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神性)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건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증거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실 때에 일어난 사건도 이것을 증거한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의 증거이다. 마가복음을 쓴 마가는 그 복음서의 서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썼다(막 1: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사복음서와 신약성경 전체가 공통적으로 증거하는 바이다.
특히 요한복음은 그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 요한복음 1:18에 보면,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독생하신 아들](전통본문)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였다. 또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독생하신 아들]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3:16).
또 예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에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1-2, 5).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쓴 목적을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요 20:30-3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그의 참된 신성(神性) 즉 그가 하나님의 본질을 가지신 분이심을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요 1:1), ‘크신 하나님’(딛 2:13), ‘참 하나님’(요일 5:20)이라고 부른다.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만 받으실 수 있는 신적 영광을 함께 받으셨다. 요한계시록 5:12는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찬송하였다고 증거하고, 또 5:13은 모든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찬송하였다고 증거한다.
23-38절, 예수님의 족보
[23-38절]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아람]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예수께서는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30세쯤 되셨는데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셨다. 요셉의 아들이라는 말은 실제상의 사실이 아니고 단지 족보상의 사실이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탄생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하였다.
누가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에 증거된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주신(눅 1:4) 증거의 책에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내용을 허용하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태복음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가 둘 다 정확한 내용임을 믿는다.
그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추측들을 해볼 수 있다. 첫째로, 족보의 어떤 부분들에서 같은 사람이 다른 이름을 가지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양자(養子) 제도나 수혼(嫂婚) 제도(신 25:5-6) 때문에 족보에 혼선이 있을 수 있다. 셋째로, 여러 주석가들의 추측대로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마 요셉의 족보가 아니고 마리아의 족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23절의 ‘헬리’는 요셉의 아버지가 아니고 그의 장인이 될 것이다. 랍비들의 글에 마리아를 ‘헬리의 딸’이라고 부른 곳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의 인성(人性) 즉 그가 사람이심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다. 그는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때가 되어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 그 이후, 그는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 되셨다. 그는 독특한 인격이시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우리는 그의 신성과 인성을 다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놀라운 구주이시다.
마태복음의 족보와 같이 누가복음의 족보도 예수를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연결시킨 것은 그가 구약성경에 예언되고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증거한다. 구약성경은 여러 곳에서 장차 메시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증거하였고(사 11:1, 10; 렘 23:5, 6; 30:9; 33:15; 겔 34:23; 37:24; 호 3:5), 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것도 예언하였다(창 12:2-3; 22:18).
더욱이, 누가는 메시아의 족보를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까지 언급한다. 구약의 메시아 예언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하신 선언에서도 나타나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것은 최초의 메시아 예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선언하신 대로 여인의 후손을 보내셨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또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의 자손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메시아를 보내셨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그는 신실하시다. 그는 신약 성도에게 하신 약속들, 즉 예수님의 재림,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에 들어감, 복된 영원한 생명을 누림 등도 반드시 지키실 것이다.
인간의 죄의 형벌은 인간이 받아야 했다. 그래서 구주께서는 여자의 후손인 사람으로 오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많은 사람들의 죄와 형벌을 대신하기 위하여 친히 사람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인자(人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마 20:28).
21절부터 3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신비이다. 세 인격의 구별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후 기도하실 때 잘 나타났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대로, 그 세 인격은 본질적으로 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성경에 계시된 대로 감사히 받고 감사히 믿자.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께서 그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이심을 친히 증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친 음성의 증거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직접적인 증거에 힘입어 신적 구주이신 예수님을 더욱 감사히 받고 믿자.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구주이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를 감사히 받아야 한다.
[역대상 6장 설교말씀] 레위의 자손들(대상 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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