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6장에서는 이웃에게 범죄 했을 때 회개하는 개념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속건 제사를 드렸다. 남을 것을 도적질하고 착취했다면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웃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적질 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을 부인하고 거짓 맹세해도 죄가 있기 때문에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숫양의 속건제법(레 6:1-7)
본문은 속건제법의 후반부다. 전반부는 성물과 관계된 경우였으나, 여기에서는 일반 물건과 관계된 속건제를 다룬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Ⅰ. 범과의 경우에 비록 그 범과가 이웃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모두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이다(2절). 직접적으로는 이웃에게 상해를 끼쳤어도, 그로 인한 수치는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간다. “형제를 비방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그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약 4:11). 지극히 미천하고 보잘것없으며 열등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더라도, 결국 그 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 구체적인 범죄는 다음과 같다.
1. 물건 맡은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맡고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인데, 그 물건이 세 낸 물건일 경우는 더욱 악하다. 남에게 빌렸거나 저당잡았거나 위탁받은 물건을 자기 것인 양 주장하면, 그것은 인류의 유익을 위해 모든 재산과 진실을 보호하시는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이다.
2. 동료를 속이는 것이다. 동업을 하면서 그 사업이 자기 혼자 하는 사업인 듯이 주장하면 역시 범죄다.
3. 명백한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다. “강도질하고서(KJV에는 “폭력으로 물건을 빼앗고서”라고 되어 있음) 그 사실을 부인하는” 죄는 대체로 숨길 수 없다.
4. 거래를 속이거나 무고(誣告)하는 것이다. 이웃을 “늑봉하는” 경우로, 즉 당연히 치러야 할 것을 미루거나,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탈취하는 죄다.
5. 주운 것을 얻고도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다(3절). “남의 잃은 물건을” 얻으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말고 즉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 곧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특히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은 여호와께 범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의 증인이며 맹세의 대상이므로, 그 분께 거짓에 대한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은 그분을 크게 모독하는 일이다.
Ⅱ. 지정된 속건 제물.
1.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범죄자는 그 형제에게 보상해야 한다. 이 일은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마 5:23), 즉 자기 양심에 의해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4절)라 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았을 때, 횡령하거나 탈취한 모든 것은 5분의 1을 더해서 신실히 배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형제가 그동안 겪은 손실과 곤란을 배상해야 한다. 빚과 함께 손해도 계산해야 하는데,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항상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능력껏 최대한으로, 또 형제에게 해를 입힌 만큼 배상하기 전에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부당하게 취한 물건을 계속 보관하는 것은 탈취를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요, 그것도 역시 불의한 행동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잘못을 저지른 일을 원상 복귀시키는 것이다. 잘못 가지고 있는 것을 돌려주고 배상하지 않는 한, 결코 회개했다고 말할 수 없다. 회개는 삭개오처럼 해야 한다(눅 19:8).
2. 그런 다음 선물(예물)을 바쳐야 한다. 즉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와야” 한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6, 7절). 속건제 자체가 죄를 대속하거나 하나님과 죄인을 화해시킬 수는 없으나,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대속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그의 영혼을 죄를 위한 제물, 곧 속건 제물로 드리셨다(사 53:10).
여기서 다루는 범죄들은 그리스도의 법에서도 역시 범죄다. 그리스도의 법은 자연법이나 모세의 율법과 마찬가지로 정의와 진리를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비록 속건 제물을 드리지 않고도 여기서 언급한 죄들을 용서받지만, 참된 회개와 배상과 개혁,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겸손한 신앙이 없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범죄에 대한 속건 제물이라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러한 범죄를 더욱 대담히 자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요, 졸지에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신원해 주시는” 분이다(살전 4:6).
번제법(레 6:8-13)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제사에 관해 지시하신 율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제사장들에게 지시하신 율법을 다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하라고 말씀하셨다(9절). 제사장들은 하나님 집의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이 지도자 역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남을 명령하는 사람도 명령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교역자들은 아론과 그 자손이 모세를 통해 사명과 명령을 받았고 그것에 복종해야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는 제사장들에게 국한된 번제에 관한 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주로 아침저녁으로 회중을 위해 드리는 어린양의 제사를 다룬다.
Ⅰ. 제사장은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정중히 치워야 한다(10, 11절). 제사장은 매일 아침 번제단을 깨끗이 치우고, 그 재는 단의 동쪽, 즉 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두어야 한다. 단에서 일할 때에 항상 입는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이 일을 해야 하며, 그 일이 끝나면 다른 옷, 즉 평상복이나 다른 제사장복으로 갈아입고, “그 재를 진 바깥 정결한 곳”에 가져가야 했다.
1. 하나님께서는 이런 의식을 통해 당신의 제단과 그 위에서 드리는 번제를 존귀케 하셨다. 그 제물의 재까지도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번제는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일이요, 그러므로 그 “번제”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혹자는, 번제물의 재를 이렇게 잘 간수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장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그의 시체는 동산에 있는 새로운 무덤에 조심스럽게 안치되었는데, 그 곳이 곧 “정결한 곳”이다. 또한 그 제단을 항상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래야 단의 불이 제물을 잘 사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는 불을 피우는 단까지도 정결케 하는 것이 마땅하다.
2.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지키기를 원하셨다. 제사장이 직접 불을 붙이고, 단을 깨끗이 청소하고, 재를 치워야 했다. 하나님의 종은, 죄가 아닌 일은 어떤 일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명령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그 분의 제단을 위한 일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정중히 참예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Ⅱ. 제사장은 제단 위의 불을 잘 간수해야 한다. 제사장은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본문에서는 아주 강조한다(9, 12절). 그 명백한 율법은 이렇다.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13절). 아마도 특별한 제사가 없는 날은 하루도 없던 것 같다. 아침저녁에 어린 양으로 드리는 제사 사이에 늘 특별한 제사가 있었으므로 아침부터 밤까지 제단 위에 내내 불을 지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아침까지”(9절)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몇 가지 일이 필요했다.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늘 부엌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집도 그렇게 하셨다.
제단 위에 처음으로 지피는 불은 하늘에서 내려왔다(9:24). 그들은 끊임없이 연료를 공급해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했으므로, 그들이 드리는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열납 하셨다는 증거인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태웠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부주의로 불을 꺼뜨렸다 해도, 다시 그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제단 위의 불은 바벨론 포로 때까지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사 31:9).
우리는 늘 경건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행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거룩한 일을 염두에 두는 습관을 지녀야 하고, 그럼으로써 늘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딤후 1:6) 해야 한다. 늘 제사를 드릴 수는 없다 해도, 거룩한 사랑의 불길은 언제나 타오르게 해야 한다. 또한 늘 기도해야 한다.
[창세기 5장 성경주석말씀] 야렛의 아들 에녹에 관한 말씀(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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