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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담]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전인 건강

복음의 능력 2020. 6.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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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심리 상담 중에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전인 건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올바른 가치관 정립이 안 되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힘들어집니다.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과 전인 건강

 

 

지나간 캠퍼스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삶의 새로운 의욕을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역시 캠퍼스는 꿈과 사색, 도전과 창조, 탐구정신과 공동체 의식의 실험장이요, 무엇이든 흡수하겠다는 무서운 흡입력을 가진 젊음의 용광로가 아니던가.

 

 

"25세까지는 진보주의자가 되고 25세 이후에는 보수주의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 젊음의 특성은 경직성이 아닌 유연성이요, 보수성이 아닌 진취성이다. 현상유지가 아닌 '끊임없는 변화에의 열망'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들이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틀(세계관)' 속에 전개되지 않는다면 이는 인생의 낭비요, 허공을 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른 가치관, 즉 바른 세계관의 정립은 인생을 인생되게, 젊음을 젊음되게 하는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 가지 측면에서 바른 가치관을 생각해 보자.

 

 

1.신체적 적합성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는 말이 있다. 현대는 관리의 시대다. 기 자신을 관리할 수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자기 관리란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시간을 질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 최근에 와서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켜 '신체적 적합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즉 주어진 일과 시간과 건강을 효율적으로 배합하여 현 상황에 맞는 '상의 적합성(fitness)'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요즈음 미국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최적 건강(Optimum Health) 이라는 개념은 여기에 기인한다.

 

 

운동이 좋다고 해서 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학자에게 역도선수의 근육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소식이 좋다고 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육체노동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무직에는 사무직에 맞는 적합성이 요구되, 주부에게 맞는 적합성이 요구되듯, 학생에겐 학생에게 맞는 적합성이 요구된다.

 

 

이 적합성을 유지하려면 영양, 운동, 체중관리, 질병관리(정기검진)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연구하며 무섭게 파고드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철저히 무지하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할 길 없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방치하고 마음대로 굴리는 관리 부재의 젊은이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건강이 성공의 밑천이자 행복감의 원천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 지적 합리성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 이성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최상의 선물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무기라 할 수 있다. 젊은이는 마땅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물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고 도덕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분석능력과 아울러 통합 능력을 갖추어야 균형 잡힌 시각을 소유할 수 있.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흡입력이 있다. 비전이 명확한 사람에게 사람과 정보와 물질이 따르게 마련이다. 온 세계와 만물이 자신의 꿈을 위해 재편성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High Thinking, Simple Living" 이라는 말처럼 이상은 높게 생활은 단순하게 해야 한다.

 

 

요즈음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만연되고 있는 젊은이의 퇴폐향락은 말할 것도 없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뉴에이지 운동' 등은 사람의 생각하는 기능을 마비시키고 퇴화시키는 주범이다. 이러한 천박한 사상에 의해 세뇌되지 않으려면 무디어진 이성의 칼날을 끊임없이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3.정서적 풍요로움

 

필자가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소설가 임옥인 선생님의 저서에 나오는 "인생은 사랑하는 이의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온 세상은 사랑에 목말라 있. 아이들의 신경질도 사랑을 달라는 신호요, 펑크족의 젊은이의 모습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애교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행가의 주제는 사랑임은 사랑의 샘에 말랐다는 증거가 아닐까.

 

 

현대는 상처의 시대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낸다. 행복한 사람이 없다. 두가 욕구불만을 가지고 있다.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상처를 호소하는 사람은 많아도 상처를 싸매어 주는 사람은 없다.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없는 셈이다. 정서의 구석구석에 흠이 있고, 썩은 부분이 많다. 말라 비틀어진 데도 한 두 군데도 아니다.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은 '섬김'과 '사랑'이다. 물론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함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서로의 정서적 필요를 먼저 채워 주는 결단만이 서로를 살린다. 내가 먼저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사랑할 수 있는 것부터 사랑해 보라. 한 대상에게라도 전인격을 걸고 사랑해 보라. 쏟아부은 사랑이 낭비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청년은 마땅히 풍요로운 인간성을 길러야 한다. 사랑의 사람, 겸손의 사람, 유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찌든 인격을 새롭게 꽃 피워야 한다. 학습능력에 의해 인간을 평가하는 잘못 형성된 가치관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

 

 

4.빛나는 의지

 

사고는 행동을 낳는다. 행동은 습관을 낳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일과성에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그때 그때마다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옳은 일을 습관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의지를 훈련시켜야 한다.

 

 

훈련은 질서를 낳고, 방임은 방종을 낳는다. 그리고 어떤 일을 빨리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몰아부치는 사람은 제풀에 지치게 마련이다. 'slow and steady'(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의 원칙을 고수하라. 인생은 포기하지 않는 자의 것이다. 고집도 고집 나름이다. 좋은 일에는 고집이 필요한 법이다.

 

 

5.바른 관계성

 

인간의 됨됨이는 그가 사귀는 친구로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에 교제하는 사람의 범위는 대략 250명이라 한다. 그의 일생은 그 250명이 어떤 수준의 사람인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단순한 일의 성취에 얽매이지 말고 인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개인의 삶이 단순히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좋은 싫든 우리는 선과 악의 전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스탠리 무니험은 '한 인간 생명의 무한한 가치',' 한 인간의 무한한 감화력' 등의 구호를 내걸고 세계적인 복지법인 선명회를 창설한 바 있다. 젊은이들이여, 단순히 사적인 삶에만 머무르지 말라. 공적인 삶을 살아라. 인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바른 관계의 형성에 힘쓰라. 어두움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불을 밝혀라.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조약돌의 파장처럼 개인의 주변에서 시작하여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국가, 나아가서 세계를 향해 점점 사랑의 동심원을 확대하라. 자신이 먼저 철저히 변화되지 않고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회변혁은커녕 오히려 세상에 의해 변질되어가는 기성세대의 전철을 밟지 말라.

 

 

6. 바른 영성

 

위의 다섯 가지 요건을 완벽히 갖추었다고 해도 인생의 궁극적 목적과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정신이 들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하는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이때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질문, 정직한 답변을 해야 한다. 이 검증과정을 철저하게 거쳐야 새로워질 수 있다. 이때 어물어물 넘기는 사람은 생을 포기한 자나 다름없.

 

 

인간이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절대자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생의 무의미'라는 종착역에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처해 있는 본질적 딜레마는 영적 불건강에 있다. 즉 절대자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문제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의는 때 묻은 의복과 같고, 하나님 없는 인간의 힘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우주의 미아나 다름없.

 

 

바른 영성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남을 말한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통합되고 인생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함으로 영적 건강을 회복하라. 그리고 전인 건강을 추구하라.

 

 

불란서의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인생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든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또한 죄의식과 생의 무의미에 몸부림치던 성 어거스틴 역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주여, 당신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창조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내겐 평안이 없었나이다."

 

이 글은 사랑의 치유일지(국민일보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심리 상담] 분노는 해지기 전에 풀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인간의 성격 중에서 분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이 화가 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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