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베소서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오직 성령의 은혜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구원에 관해서는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지 구원을 주는 기능이 아닙니다.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만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원받은 자는 오직 성령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계속해서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오직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복음의 말씀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오직 성령의 은혜로!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성경: 엡 2:1-9
요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이번 한 달을 개혁신앙을 생각하며 개혁의 구호였던
1. Sola Scriptura (Only Bible!) 오직 성경으로, 오직 말씀으로!
2. Sola Fide (Only Faith!) 오직 믿음으로!
3. Sola Gratia (Only Grace!) 오직 은혜로!
4. Solus Christus (Only Christ!) 오직 그리스도로!
5. Soli Deo Gloria (To God alone be Glory!)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Coram Deo = in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 앞에서(하나님의 면전에서)를 한 주제씩 매주일 묵상하고 있습니다. 첫 주일은 “오직 말씀으로(=성경으로)!”를 묵상했고, 지난 주일은 “오직 믿음으로!” 즉 이신칭의(以信稱義)을 묵상했으며, 오늘은 “오직 은혜로!”를 묵상하겠습니다.
이 다섯 솔라(Five Solas)는 기독교 개혁의 표어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 기독교의 기본적인 믿음 구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복습을 하면,
1,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말씀으로!) :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며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문체가 명료하여 바른 성경 번역인 안디옥 학파의 전통인 수용 원문(TR=Textus Receptus, 신약 사본의 5210개)를 보존하고 있는 킹 제임스 번역과 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1911년 구역의 전통을 회복해야 하며,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1938년 개역성경으로 바꾼 현대 역은 지양해야 합니다. 현대 역은 가톨릭이 변개한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AD 331)을 근거로 1881년 Westcott-Hort가 개혁자들의 성경을 대폭 가감한 것이 개역(Revised Version)입니다. 거의 9000 구절이 가감된 것으로 말씀의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전통은 오직 바른 번역의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하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정신입니다.
2.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속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며 구원을 받지 다른 어떤 방법으로 안됩니다.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으면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생 삶을 얻네” (찬송 544장, 통합 343장)
오늘은 Sola Gratia (오직 은혜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2:1-9를 합독합시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다음 주일에 살필 네 번째 표어를 예습하면
4.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죽은")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서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벌을 받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억조창생의 죗값을 다 받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이 Solus Christus의 내용입니다.
마지막 주일에 살필 표어를 미리 복습하면,
5.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던 가톨릭에 반대하여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로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Sola Gratia를 살펴봅시다.
우선 은혜란 말의 헬라어는 Charis (χάρις 카리스)인데, 그저 주시는 선물(free gift), 혹은 하나님의 호감/호의(favor)이란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헨(chen)입니다. 헬라어로 은사를 카리스마타(Charismata), 권위를 카리스마(Charisma)라고 합니다.
개혁정신으로 오직 은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으로서 거기에 사람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으며, 사람에게서 근거를 찾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다“입니다.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라틴어로 그라치아 Gratia는 노예들이 점심식사와 저녁식사에서 가끔씩 제공되는 간식을 받을 때 ‘그라치아’라고 좋아라 합니다. ‘공짜로 받는 보너스’ 혹 ‘일의 대가가 아니라 주인이 베푸는 선물’ 혹 ‘덤으로 받는 선물’에 대해 고맙다는 말입니다. 스페인어(Spanish)로 ‘감사하다’는 인사말입니다. 신약의 키워드가 바로 은혜입니다. 축도문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주님의 은혜를 강복합니다. 대제사장의 기도문에서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5)입니다. 은혜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묵상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And of his fulness have all we received, and grace for grace.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슥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18세기 영국에 존 뉴턴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불량한 청년이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그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영국의 해군에 입대를 시켰습니다. 그는 군대의 엄격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탈영을 해버렸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실컷 매를 맞고서 영창에 갇혔습니다. 그 후 그를 아프리카 노예 선에 팔아넘겨버렸습니다. 그는 15개월 동안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섬에 갇혀서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영국 무역선에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바다 위에서 심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는 다 죽게 되었을 때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을 읽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40여 년 목회 후 은퇴 즈음에 그는 자신의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너무나도 감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가 305장 "Amazing Grace"에서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그는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죽는 그 시간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또 전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이다음에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첫째는 그곳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고, 둘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이 쇠퇴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이 한 가지만큼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인생을 복되게 살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기독교 개혁운동 당시 이러한 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에라스무스는 ‘자연인은 비록 타락하였지만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선한 양심으로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마련하시고 그것을 취하는 것은 사람 몫’이라는 합작설(synergism)입니다. 이에 대한 마틴 루터의 반박문이 그 유명한 <노예 의지론 (Bondage of the Will)>인데 거기서 그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단독설(monergism)을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루터뿐만이 아니라 당시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였습니다. 일찍이 어거스틴이 단독설을 주장하였고, 그것을 교회가 승인한 것이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 사건입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이 단독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 1:3)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Sola Gratia)의 자연스러운 결론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1-14)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중생(重生, born again),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영화(榮華, glorification)의 모든 단계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생 다음에 하나님의 자식답게 자라 가는 ‘성화’ 역시 오직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거기엔 우리의 의지력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을 뿐이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 3:2-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6-17)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4)
이처럼, 구원과 관련된 전 역사가 가톨릭이 주장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합작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Sola Gratia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동시에 자유의지에 의한 인간의 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Pelagianists)은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가 대표의 원리를 따라 우리에게 전가(轉嫁)된다는 진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인간의 의로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선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하나님께 협력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로마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격언으로 구원의 완성을 위한 인간의 선행을 힘써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오직 은혜로!”라는 성경적 구원의 핵심적 진리를 선언하였습니다. 요한 칼빈은 “구원을 전적으로 값없는 은혜에 의한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로 생각해야만 한다”(주석, 이사야 49:7)고 주장하였습니다. 가톨릭 로마교가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혼합하려는 것은 사실상 은혜를 폐기하고 참된 구원을 훼손하는 것일 뿐이며, “마치 사람이 포도주에 진흙투성이 쓴 물을 타는 것과 똑같다”(기독교강요 2.5.15)고 비판하였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인간 자신의 능력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그의 선행도 인간 자신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기독교강요 3.15.3).
루터도 인간의 타락과 무능을 그리스도의 대속을 이해하는 열쇠로 보았으며 당시에 로마교의 입장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에 대한 비방」(Diatribe on Free Will)에 대응하여 「의지의 속박」(The Bondage of the Will)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죄에 사로잡힌 노예 의지 상태에서 자신의 구원을 위한 그 어떤 선행과 공로도 행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절대 필요할 뿐 아니라 유일의 유효한 동인(動因)과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도르트 신경을 통해 확정한 소위 구원에 대한 칼빈주의 5대 교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한 성경적 구원의 진리를 천명한 것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총”(irrisistable grace)! 이처럼 “오직 은혜로”의 원리는 개혁자들의 신학을 모든 자력 주의의 도식으로부터 구별시키는 철저한 신본주의 즉 하나님 중심의 신학과 하나님 은총의 신학 위에 서게 해 주었습니다. 개혁자들이 전하여 준 복음대로 우리의 구원적 신앙과 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오직 은혜”의 원리를 부인하는 자들은 인간 구원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무능한 인간의 손에 넘김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복음의 가장 큰 대적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대속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지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 (롬 3:24)
그리스도께서만 홀로 영생의 선물을 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의 풍부함을 따라,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대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엡 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고, 중생하고, 성화하고, 회복됩니다.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고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으로 우리를 일으키심으로, 마침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끄신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사역이 아니며 인간의 방법과 기술과 전략 그 자체가 우리의 구원에 나타난 그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적 신앙과 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 Sola Gratia!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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