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모범적인 교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기간 중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실한 믿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외부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붙잡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힘들고 지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모범적인 교회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성경: 살전 1:1-10
요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2 우리가 너희 모두를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살전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리스 반도의 남쪽 지방이 아가야 지방이고 북쪽 지방을 마게도니아 지방이라고 부릅니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최대의 도시로 현지 발음은 ‘데살로니끼’ 혹 ‘살로니카’라고 부릅니다. 마게도니아는 주전(BC) 2세기 중반이 되기 전에는 네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제2지역의 수도가 데살로니가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의 이복 누이동생의 이름이었는데 그녀는 알렉산더의 휘하 장군이었던 카산더(Cassander)와 결혼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자 부하 장군들끼리 권력 쟁취에 열을 올리던 중 카산더가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 대비를 죽였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알렉산더의 부인 록사와 왕비, 그의 아들까지 모두 죽였습니다. 민심이 그로부터 멀어지자 카산더는 수습책의 하나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자기 부인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였답니다. 로마 시대 때 마게도니아 지역의 정치적 중심도시였고, 비잔틴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에 버금가는 도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바울 당시에 유대인의 회당이 도시에 있어서 그는 세 주일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서쪽으로 1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이곳에 도착해서 본 도시는 상당한 중요성을 띤 번영하는 대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중 유럽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를 출발한 바울, 실라, 디모데 일행은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했는데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행 17:1). 암비볼리(Amphipolis)는 빌립보에서 50㎞ 떨어진 곳에 있으며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공회당과 말마차 경주장까지 있었던 큰 도시였으나 지금은 수백 명의 인구가 사는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마을에 바울 교회라는 작은 교회가 있어 바울의 자취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40㎞ 정도 서쪽으로 가면 큰 호수가 있고 뒤이어 호숫가 마을 아볼로니아(Apollonia)가 나오는데, 여기서 계속 서쪽으로 60㎞ 달리면 데살로니가에 이릅니다. 그래서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까지 160㎞이며, 아테네 공항에서 비행기로 50분 소요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 일행은 전도의 많은 성과를 거둔 반면에 유대인들의 반대와 저항도 심하게 받았습니다. 바울 일행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야손 일가는 큰 변을 당했고, 기독교인들은 황제 이외 다른 왕을 섬기는 자들로 고발을 당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신변을 걱정한 교인들은 밤중에 바울 일행을 서쪽에 위치한 베뢰아(보다 신사적이고 말씀 공부에 주력함)로 피신시켰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기간은 길지 못했지만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역사적인 교회들(1,000년이 넘음)이 20여 곳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410년에 건축된 ‘성 데메트리우스 교회’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를 기념하는 교회로 데메트리우스가 순교한 장소에 서 있습니다. 1917년 이 지역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교회가 크게 파손되어 현재 건물은 후에 복원이 되었으나 지하 부분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모자이크 성화 중에 데메트리우스를 그린 다섯 편의 작품은 이 교회의 자랑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설립된 기사를 사도행전 17장 1-9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부활의 믿음 위에 AD 50년에 세워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유럽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로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빌립보 교회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질 줄을 확신합니다(빌 1:6),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2)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모합니다(1:8)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림(1:11)
(4) 복음을 전하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게 된다 (1:18)
(5)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전제로 드리면 기뻐하고 기뻐하게 된다(2:5-18)
(6) 성도들은 사도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다. 주안에서 서라(4:1)
(7) 주 안에서 기뻐하고 기뻐하자 (3:1, 4:4, 4:10)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4:13)
이렇게 우리 교회는 빌립보 교회처럼 기쁨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쁨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갈 5:22-23).
신약성경 27권 중 가장 먼저 쓰인 책이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로 AD 51년에 보내진 종말 서신입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제일 먼저 정경이 된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었던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받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의 교훈을 주었던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절에서 발신자는 바울과 실루아노(Silvanus)와 디모데요 수신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입니다. 이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문안하고 있습니다. 은혜(Charis, grace)는 신약성경적 인사요, 평강(평화 Shalom)은 구약성경적 인사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카톡이나 이메일이나 문안편지를 쓸 때 주님의 은혜와 평화로 하시기 바랍니다.
살전 1:2-5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 안에서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 사랑의 수고(labour of love), 소망의 인내(patience of hope)가 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essence)입니다.
교회는 믿음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히 11:1-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교회의 터요 몸이요 머리이십니다(히 12: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롬 1:17)
믿음은 말로 끝나지 않고 행함과 실천함으로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For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lso.” (약 2:26)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거나 역사가 없는 것은 죄입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And he that doubteth is damned if he eat, because he eateth not of faith: for whatsoever is not of faith is sin.” (롬 14:23)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Therefore to him that knoweth to do good, and doeth it not, to him it is sin.” (약 4: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벧전 1:7)
세상을 이기는 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For whatsoever is born of God overcometh the world: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overcometh the world, even our faith.”(요일 5:4).
두 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My little children, let us not love in word, neither in tongue; but in deed and in truth.” (요일 3:18)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의 수고 즉 행함과 진실함으로 손끝의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계명인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요 13:34-35)를 가르치시기 전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먼저 씻어주셨습니다. 교훈하기 전에 먼저 솔선수범하심으로 사랑의 수고를 삶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사랑의 수고를 보이셨습니다(요 3:16).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9-13)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2:10)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9-21)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 13:1-3)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니라” (히 13:16)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 1:22)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되십시다.
세 번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3-5)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 12:12)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1)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0)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4-17)
만약 소망이 없다면 요셉은 이집트에서 인내의 한계로 중도에 포기하고 어릴 적 꾸었던 꿈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약하니 결국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소망의 인내를 이루어 믿음과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살전 1장 6-8절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성도의 삶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매일 매 순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452장(통 505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예수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후렴) 예수님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원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2.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3. 겸손한 예수 거룩한 주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살전 1장 9-10절은 “우상에 빠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헛된 믿음을 버리고 다시 강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지라는 권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영과 진리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으며,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 모범적인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주일설교말씀] 오직 성령의 은혜로!(엡 2:1-9)
[마태복음 신약 히브리어 설교말씀] 가라지와 겨자씨 비유 (마 1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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