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사도행전 1장 설교말씀] 확실한 증거들(행 1:1-5)

복음의 능력 2020. 9. 18. 19:08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1장 설교말씀 중에서 확실한 증거들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 확실한 증거들

구 절 : 1:1-5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온갖 이단들이 기독교의 진리와 유일성을 음해하고 파괴공작을 계속했습니다만 그러나 기독교만이 지니는 유일성 때문에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이단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기독론 중심의 이단들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다든지, 아니면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도 있고,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가 하면 부활을 부인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에수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어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불교나 유교를 통해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도 존재할 수가 없고, 신앙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19:15를 보면 어떤 사건의 사실 여부와 진실 여부를 증언하려면 2-3명의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실 증명은 2-3명의 증인이면 성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 증거와 증인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증거가 너무나 많고 확실합니다. 몇 가지 증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도행전이 증거 합니다.

 

사도행전 1:1을 보면 사도행전을 받은 사람이 [데오빌로]라고 했습니다. 데오빌로는 그 당시 로마 정부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해서 데오빌로에게 보냈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생애를 사실대로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관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도미틸라(Domitilla)와 함께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AD 96년 도미티안 황제 때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당시 로마의 고관이었던 [데오빌로]에게 보낸 공식 문서이며 기독교 변증문입니다. 공식문서와 변증 문에 어떻게 거짓증거를 써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때 누가가 보낸 사도행전이 거짓말 투성이었다면 데오빌로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가끔씩 역사 기술의 오류나 왜곡 시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잘못된 역사기록이나 왜곡된 부분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경우 만일 위증이나 오류가 있었다면 그 당시는 물론 훗날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혹독한 비판과 평가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2천 년 동안 사도행전의 정경성과 정당성을 흔들리지 않은 채 초대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부활하신 주님 자신이 친히 나타나 보여 주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5:4-8을 보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에게, 그 500여 형제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 야고보에게, 그 후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니라"라고 했습니다. 주경기 카알(Carr)에 의하면 다시 사신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나타나나 자신을 보여 주신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에게 (28:9)

(2) 베드로에게 (눅 24:34,고전15:5).

(3) 글로바와 다른 제자에게 (눅 24:13-35).

(4)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16:14, 눅24:36, 요20:19).

(5) 도마가 함께 열한 제자에게 

(6)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21:1-24).

(7) 갈릴리 산 위에서 열한 제자에게 (28:16).

(8) 500여 형제들에게 (고전 15:6).

(9) 주의 형제 야고보에게 (고전 15:7).

(10) 예루살렘 부근에서 열한 제자에게..(막 16:19,눅24:50,행1:3-12,고전 15:7).

 

 

횟수로는 열 번 이상, 사람 수로는 600여 명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구약이 경우 사실 증거는 증인 2-3명이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의 부활을 증거 하시기 위해 계속해서 많은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본문 3절을 보면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라고 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40일 간을 세상에서 계시면서 부활하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기독교 2천 년 역사와 순교자들의 피가 증거 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의 역사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콩트(Auguste Comte)와 영국 시인 칼라일 (ThomasCarlyle)이 어느 날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콩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를 대신할 수 있는 완전한 종교를 창설하기 위해 구상 중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종교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유치한 신비적인 이야기들을 배제할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고 분명한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듣고 있던 칼라일이 대답했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수처럼 당신도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이 만들고자 하는 종교가 생명 있는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독교는 부활과 생명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 힘 때문에 2천 년 동안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를 셀 수없는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영국의 로지경 (Oliver J.Lodge)은 영국의 물리학자였고, 버밍엄대학의 창설자입니다. 그의 아들이 1차 대전 당시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전사하기 전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죽더라도 제 무덤엔 오지 마세요. 전 거기에 없을 테니까요."

어거스틴(Augustine)의 어머니 모니카도 어느 날 아들에게 '내가 죽거든 장지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아무 데나 묻어주기 바란다. 나는 바로 하나님께로 가게 될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떳떳하고 편안합니다. 이유는 죽음을 넘어선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300년 동안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습니다.

 

 

 

나병이 만연된 골짜기에 몰아넣기도 했고 사자굴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불속에 던졌고, 칼로 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게임은 기독교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예수가 로마를 이긴 것입니다. 생명은 강합니다. 예수의 부활 생명은 오늘 우리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증거이며 웅변입니다. 예수는 다시 사셨습니다. 빈 무덤과 기독교 2천 년 역사와 성경과 수많은 증인들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증인은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이유 역시 예수가 누구시며 어떻게 죽으셨으며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부활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감사할 조건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다시 사신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죽은 신, 대답 못하는 잡신, 우상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시 사신 예수, 무덤이 없는 예수를 믿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둘째, 건전한 교단, 건전한 교회에 소속돼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사이비 교단이나 이단 교회에 소속된 목사나 교인은 불행합니다. 그 집단이 잘못되면 교인도 낯을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다시 사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예수를 다시 살아났다고 위증해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사신 예수를 전하며 사는 것은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날 인도의 스테판 닐 주교가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서류를 내밀고 도움으로 요청했습니다. 대주교는 한참 동안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옆으로 밀어 넣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은 최근에 마지막으로 누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습니까"라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부탁을 드리는 우리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면서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나를 전했느냐"라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교회의 절대 과제입니다. 입을 엽시다. "다시 사셨습니다."

"믿어야 다시 삽니다"라고 아멘.

 

 

[창세기 4장 설교문] 가인과 아벨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4장 설교문 중에서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3장에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았다. 범죄 한 저들에게 일지라도 하나��

skh1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