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한 일서 1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성 경: 요일 2:12-17
1. 육신의 정욕
2. 안목의 정욕
3. 이생의 자랑
사도 요한은 교회 안에는 세 가지 형태의 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자녀와 같은 신자이다.
12절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자녀들과 같은 형태의 신자는 아직은 그 어떤 체험 같은 것이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초신자형이라 할 수 있겠다.
그저 이들이 경험하는 정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청년들과 같은 신자이다.
13절과 14절의 중반 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또 14절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교회 안에는 청년들과 같은 형태의 신자들이 있다.
이들은 매사에 적극적인 헌신의 사람들이다.
또 교회의 그 어떤 불의 같은 것을 용납치 못하는 정의의 사람들이다.
물론 맡겨진 일에 충성함은 물론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처신해 가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아비들과 같은 신자들이다.
13절과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음이요"
또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교회 안에는 아비 형의 노숙한 신자들이 함께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아비들에 관하여는 두 번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일을 알았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아이들과 청년기의 신앙기를 거치면서 때로는 많은 헌신과 충성도 했었다.
다시 말하면 충분한 경험을 몸으로 쌓으신 분들이다.
어떻게 보면 성숙이 극에 달한 사람들 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에겐 단점도 많다.
매사에 너무 신중한 나머지 일의 추진력이 없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계산적인 사람들이다.
신중한 것도 좋고 게산적인 것도 좋으나 이들만으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교회 안에는 아이들과 같은 형의 신자와 청년들과 같은 형의 신자와 아비들과 같은 형의 신자가 함께 조화가 되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교회 안에 이 세부류의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시험에 들기 쉬운 부분을 일깨우면서 권면하는 내용이다.
다시 말씀들이면 신앙생활은 믿음의 연조만으로도 되는 게 아니며 아울러 젊다는 혈기왕성만으로도 되는 게 아님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 전체적인 내용이 15절의 말씀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말이지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또 세상을 등지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차원이다.
우리들의 사랑의 대상은 오직 홀로이신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의 대상은 우리들의 형제라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분명한 선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택하든지 아니면 세상을 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택할 것인가?
1. 육신의 정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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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인간의 본능이다.
Calvin은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은 악의 제조공장이다"라고 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은 끝이 없는 정욕의 늪과 같은 것이다.
육신의 정욕은 단순이 육신의 생리적인 욕구만을 말함이 아니다.
벧전 1: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에 알지 못할 때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분명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살게 되면 주일날 교회 가려고 하면 돈 생길 일이 자꾸 생긴다.
또 오늘 빠지고 다음 주일엔 꼭 교회 간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것들이 나를 바르게 신앙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정욕들이다.
2. 안목의 정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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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안목의 정욕이다.
안목의 정욕은 보는 것 때문에 주어지는 욕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죄들은 어디서 시작을 하는 것인가?
죄의 시작들은 보는데서 시작한다.
보면 어떤 결과가 생기나?
보게 되면 그다음엔 상상하게 되다.
상상하게 되면 또 어떻게 되나?
상상한 것을 갖고 싶어 진다.
갖고 싶어 지면 어떻게 되나?
갖고 싶어 지면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짓지 않을 죄들이 많다.
자꾸 보니까 갖고 싶어 진다.
" 쾌락을 느끼게 된다.
" 유혹을 받게 된다.
여러분!
Crosby, Fanny Jane(1800-1915)을 아시는가?
무려 95세를 사시면서 찬송 시를 무려 8,000여 편을 쓰신 분이다.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무려 23편이나 실려 있다.
Crosby는 나면서 눈이 좋지 않아 받은 수술이 잘못되어 평생을 장님으로 살았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하였다.
"봉사가 되어 어둠 속을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만약에 내가 육신의 눈이 떠서 세상의 것들로 고통을 받았다면 내 어찌 그 많은 찬송가를 지을 수 있었으리오"
그녀는 봉사가 된 것을 감사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뜰 때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안목의 정욕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많이 유행하는 Fashion!
육신의 정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안목의 정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아마도 어린아이들처럼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을 텐데...
세상에 대하여 눈을 감고 하나님에 대하여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란다.
3. 이 생의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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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생의 자랑이다.
이 생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에 보여 줄 수 있는 생(Life)을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현재의 살림, 현재의 명예, 현세의 권력, 가문, 전통...
이런 것들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우리 안에 은근히 내재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또 가지게 되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지게 되어 있다.
자랑하는 방법도 가지 각각이다.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랑들이다.
우리는 이런 이 생의 자랑 속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죄인의 모습을 매일 나를 통해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출신학교를 자랑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문을 자랑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자식을 자랑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친척이 잘돼 있는 것도 자랑이다.
그리고는 그 자랑하는 자랑거리 옆에 자기를 은근히 앉혀 두고 싶어 함이 우리 모두의 심정이 아닐까?
집 자랑! 옷 자랑! 패물 자랑! 돈 자랑!
어떤 사람은 개를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뭐 순종이라느니 족보가 잇다느니 하면서... 흥분까지 한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헌금 많이 하는 것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은 다 이 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은 다 마귀가 가져오는 것들이다.
양파 껍질 같은 현대인들의 실상!
교만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의 실상!
이런 것들이 우리가 세상을 싫어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는 이유들이다.
이런 죄악들은 지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창 3: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결론
""""
16절 하반절을 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 다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고 말한다.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러분 모두는 지금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는 것을 아셔야 한다.
아이들도 지나가고 청년들도 지나가고 아비들도 다 지나간다.
누구도 남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 웃으면서 살자! 얼굴을 펴고 살자! 조용한 말을 하면서 살자!
사랑의 말을 하면서 살자!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자!
세상은 지금도 막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의 길에 지나가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사랑하시면서 지나가실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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