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야고보서 5장 강해 설교말씀] 인내와 기도(약 5:1-20)

복음의 능력 2022. 6. 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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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에서는 불의한 부자에 대해서 경고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불의하게 돈을 벌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고 불법을 저지르면서 돈을 벌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내세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살아갈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세상 정욕에 따라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인내와 기도(약 5:1-20)

 

1-6, 부자들에 대한 책망과 경고

[1-6]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본문의 부자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교회 안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던 부자들이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야고보는 그들에게 고생이 임할 것을 경고하면서 울고 통곡하라고 말한다. ‘고생이라는 원어(탈라이포리아)는 ‘재난, 불행등을 가리킨다(KJV, NASB, NIV). 죄인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통곡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일들을 당하고 말 것이다.

부자들의 잘못은 몇 가지로 증거되었다. 첫째로, 그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 그들이 쌓아놓은 재물과 부는 썩었고 그들의 옷들은 좀 먹었고 금과 은은 녹이 슬었다. 그 녹은 그들의 잘못을 증거하고 불같이 그들의 살을 먹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 저축은 필요하고 좋으나 정도것 해야지 지나치면 악이 된다. 돈은 무조건 저축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전도와 구제를 위해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은 말세이다. 세상은 끝나가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돈을 자기를 위해서만 쌓아놓는 것은 책망받을 죄가 된다. 물질적 부요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고 신앙의 해이와 배반을 가져오며 결국 성도를 타락하게 한다. 그러므로 기본적 생활을 위한 약간의 저축 외에 물질은 선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돈은 전도와 구제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둘째로, 부자들은 경제생활에 불의함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밭에서 추수한 품꾼들에게 정당한 인건비를 지출하지 않았다. 그들은 품꾼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지체했거나 돈을 떼어먹으려 했다. 일꾼들에게 무슨 일이든지 시켰으면 인건비를 지체치 말고 즉시,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이 주어야 하고, 만일 외상으로 시키려 했으면 미리 약속했어야 하였고, 만일 줄 돈이 부족했으면 일 시키는 것을 연기했어야 했다. 인건비를 받지 못한 품꾼들의 우는 소리가 하나님께 들려졌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잘 들으신다.

셋째로,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요로 사치하고 연락(宴樂)하였다. 사치는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집이나 옷이나 자동차나 가구나 신발 등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 연락(宴樂)은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것 이상으로 쾌락을 구하는 것이다. 오락이나 운동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거기에 빠지면 나쁘다. 사치와 연락은 죄악이다. 부자들은 사치와 연락으로 그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두려움과 조심함을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 생활에 대해서도 판단하실 것이다. 우리는 사치하거나 연락해서는 안 된다.

넷째로, 부자들은 옳은 자들을 정죄하고 죽였다. 옳은 자들은 그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여기에 부요함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난다. 부자들의 부요함은 그들을 사치와 연락에 빠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옳은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게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악하게 사용되었는가! 우리는 물질적 부요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이런 죄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

7-11, 인내에 대하여

[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이는]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가까움이니라].” 악한 부자들이 의인들을 핍박할지라도, 진실한 성도들은 주의 재림하시기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 마치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바라며 추수를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같이, 우리는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이다. 재림이 임박하다는 의식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이다.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단지 모든 택자들을 다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이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 신자들은 서로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어려운 문제들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고난의 현실도 그가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겸손케 하시기 위해,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고난의 현실을 주셔서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원망하지 말자. 우리는 모든 현실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원망하는 것도 죄가 된다. 우리는 심판자 하나님께서 문밖에 서 계심을 알고 우리의 모든 일을 그의 의롭고 완전한 판단에 맡기자.

[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그들은 백성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들은 돌에 맞기도 하였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없고 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많은 고난 중에도 오래 참았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본이 된다. 인내하는 자는 복되다. 성경에서 인내의 한 대표적 예는 욥이다. 욥은 재물의 심히 큰 손실과 자녀들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의 상실이라는 감당키 어려운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인내하였고 마침내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후년에 같은 수만큼의 자녀와 배갑절의 재물을 복으로 주셨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악한 부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말세에 재물을 쌓거나 불의로 재물을 모으거나 사치하고 연락하거나 의인을 정죄하고 죽이는 것 등은 다 회개해야 할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아놓기만 하지 말고, 의롭고 정당하게 돈을 벌고 근검절약하게 그것을 쓰며, 특히 전도와 구제의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의 현실에서도 오래 참아야 한다. 마음을 굳게 하고 서로 원망하지 말고 선지자들이나 욥을 기억하면서 오래 참자.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도우실 것이다.

12, 맹세하지 말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맹세는 맹세하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자신의 주장이나 약속의 참됨을 판단하시고 증거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 외에 하늘이나 땅이나 어떤 다른 것으로 쉽게 맹세하고 쉽게 변경하는 당시의 잘못된 풍조를 정죄하는 것이라고 본다. 매튜 풀은 말하기를, “모든 맹세가 금지된 것이 아니고, 일상적 일에서 거짓되고 성급하고 헛된 맹세, 정당한 이유가 없고 습관적이고 빈번한 맹세가 금지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합법적 맹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당하다고 본다. 예수께서도 맹세하셨고 사도 바울도 맹세하였다. 마태복음 26:63-64,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린도후서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2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사람이 맹세해야 할 이름이며, 맹세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거룩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영광스럽고 두려운 하나님의 이름으로 헛되이 혹은 경솔히 맹세하는 것이나 어떤 다른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죄악되며 매우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중대한 일들에서 맹세는 구약 아래서 뿐만 아니라 또한 신약 아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보증되므로, 합법적 맹세는 합법적 권위에 의해 부과될 때 그러한 일들에서 행해져야 한다.”

13, 기도할 때와 찬송할 때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는 기도할 때이다. 그때 우리는 예배당이나 산이나 기도의 골방이나 어디든지 조용한 곳을 찾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고민하거나 낙망하거나 방황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찬송할 때이다. 삶의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우리의 건강도, 의식주도, 가정도, 사회적 환경도,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모든 복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14-20,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성도들이 병들면 먼저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을 청하여야 한다. 본문의 장로들은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과 치리 장로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목사와 장로는 교인들을 돌아보는 목자요 감독자요 인도자이다. 그들의 첫 번째 직무는 교인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든 이들은 목사와 장로들을 청해야 하며 그들은 병든 이들을 심방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사도 시대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마가복음 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기름은 당시에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든지 아니면 단순히 성령의 은혜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의술과 약품을 하나님의 치료의 도구로 감사히 사용한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목사와 장로들은 병든 교인들을 방문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요 사랑의 교제이다. 병의 치료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병을 주신 이도 치료하실 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아시며 그것의 완전한 치료 방법도 아신다. 그가 원하시면 우리의 병은 깨끗하게 치료될 것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죄와 병이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물론 욥의 경우와 같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대로, 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과 용서가 병 치료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이 병들었을 때 무엇보다 먼저 겸손히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의 죄와 부족이 깨달아지면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해야 한다.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죄의 고백은, 물론 공개적이지 않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지만, 때때로 공개적일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거리끼는 죄악들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야 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를 가리킨다. ‘간구라는 원어(데에시스 엔에르구메네)는 ‘힘있는 기도, 열렬한 기도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힘있는, 열렬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병 치료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범사에 기도는 능력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통로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방법이다.

[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야고보는 기도 응답의 예로 엘리야 선지자를 들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다른 초인적(超人的)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의 역사는 단지 그의 기도 생활에 있었다.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때 36개월간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그가 다시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늘이 비를 주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 . . .

야고보는 또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본문은 병자 방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때로는 진리를 떠났던 자들을 돌이키게 한다. 이 일은 참으로 귀하다.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귀하지만, 죄인의 영혼을 돌이키게 하는 것은 더욱 귀하다. 그것은 한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는 것이다. 우리는 병환자 심방과 기도를 통해 한 사람의 육신의 병 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12절부터 20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피조물로도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하고 또 맹세할 때는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신약시대에도 합법적인 맹세는 여전히 정당하고 유효하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 당할 때에 기도해야 하고 즐거울 때에 찬송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치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또 어떤 행복한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특히 병든 자는 목사들과 장로들을 청하여 함께 기도해야 한다.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이다. 또 그들은 기도할 때 믿음으로 해야 한다. 또 병든 당사자는 자신의 부족과 죄가 있으면 그것을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의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으나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과 그 내용들은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은 자들이다. 또 우리는 다른 이의 육신의 병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기도할 때 때때로 그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귀한 일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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