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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 하나님 말씀] 구원의 표증인 세례(벧전 3:21-22)

복음의 능력 2023. 3. 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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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장에서는 구원의 표식으로 세례를 받아야 함을 말한다. 성도가 먼저 받아야 할 세례는 성령 세례이다. 성령 세례는 속사람이 받는 세례이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제 교회에서 겉 사람이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구원받은 표식으로 받는 것이다. 물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물세례는 표증이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속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속사람이 구원받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

 

구원의 표증인 세례(벧전 3:21-22)

 

물 위에 있는 방주 안에서의 노아의 구원은 세례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방주에 의한 일시적 구원은 하나의 예표이었다. 그 대형(對型)은 세례에 의한 신도들의 영원무궁한 구원이며, 또한 사도베드로가 아래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 관한 잘못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Ⅰ. 사도 베드로는 구원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표명하고 있다. 세례란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물로 씻는 외적 의식이 아니다. 세례에는 성실한 대답, 혹은 결정적인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으며, 믿음의 서약과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전적인 헌신을 약속하며, 동시에 육신과 세상, 그리고 마귀를 포기함을 의미한다. 이루어지고 보존된 세례의 언약은 확실히 우리를 구원한다. 씻음은 볼 수 있는 상징이다. 이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Ⅱ. 구원에 대한 세례의 효력은 어떤 공로가 아니라, 죽음을 상기케 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존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기초가 된다.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함과 새 생명에 대해 다시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아래의 두 가지 점을 기억하자.

1. 옳게 받아들여진 세례 예식은 구원의 수단과 약속이 된다. "세례는 지금 우리를 구원한다." 하나님은 그의 의식 안에서 또는 의식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행 2:38; 22:16).

2. 세례의 형식적인 참예는 응답적인 선한 양심과 행실을 갖추지 못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응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례를 받을 수가 없다. 참된 할례는 마음과 영의 응답에 있었다(롬 2:29). 유아들이 이 대답을 지금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팔일이 되면 할례가 허락되었다. 기독교의 유아들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나타난 어떤 금지법에 의하여 할례를 금지당하지 않는다면 유대의 유아들처럼 세례가 허락될지도 모른다.

Ⅲ.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언급한 다음 그의 승천과 동시에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 신자들에 의해 주제라고 생각되는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22절). 그리스도의 증진된 삶이 그의 깊은 겸손 다음에 이룩된 큰 영광이라면 성도들도 그와 함께 놀라운 기쁨과 영광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서 배울 수 있는 세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의 그의 수고와 고난을 마친 후에 의기양양하게 하늘로 들리우셨다(행 1:9-11; 막 16:19). 그는 자신이 획득한 면류관과 영광을 받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셨다(요 17:5).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서 이룩하지 못한 그의 중보적 역사의 일부를 완성하기 위함과 그리고 그의 백성을 위해 중보를 이룩하며 당신의 만족이 충만함을 드러내고 그의 백성들을 위해 천국을 소유하고 그들을 위해 집을 예비하며 그리고 그의 중보의 첫 열매이었던 보혜사를 보내 주시기 위해 승천하셨다(요 16:7).

2. 그가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아버지 우편의 왕좌를 얻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앉아 계시다고 함은 모든 수고와 고난에서의 완전한 휴식과 단절을 그리고 가장 존엄하신 인격의 권위와 군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3.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복 하게 되어 있다. 지시하고 율법을 주며, 명령을 발포하고 최후의 선고를 하기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인 예수에게 위탁되었다. 이로 인해 그의 원수들은 영원한 슬픔과 혼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종들은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된다.

 

고난과 죄의 종식(벧전 4:1-3)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숙고함으로 새로운 논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사도 베드로가 전에 신자들로 고난을 견디어 내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논한 것처럼 여기에서는 죄의 극복을 들어 말한다. 주의를 집중해 관찰해 보자.

Ⅰ. 사도 베드로의 권고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스도가 "육체의 고난" 혹은 그의 인간의 본성으로서 당하신 고난이 전제 혹은 가설로 되어 있다. 또한 후제, 혹은 가정으로는 "같은 마음, 용기, 그리고 결단으로 무장하거나 자신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본문 전반부의 육체란 말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후반부에 나타난 육체란 인간의 부패된 본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이와 같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본성으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너희의 세례시 서약과 고백을 따라 자기 부정과 고행을 통해 죄의 육체를 죽임으로 너희의 부패된 본성이 고난을 겪도록 하라. 이는 너희가 이러한 고난을 받으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안위함을 얻고 또한 죄를 그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각종의 죄에 대한 가장 강렬한 최선의 논쟁점은 그리스도의 고난으로부터 비롯된다. 고난 받는 자로서의 그리스도께 대한 모든 동정과 친근함은 만일 여러분이 죄를 멀리하지 아니하면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없애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그가 죄악의 고난에 순복 했을지라도 그는 최소한의 죄악에도 결코 순복 할 수가 없었다.

2. 모든 참된 고행의 시작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육체적인 고행이나 단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세속적이요,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이해력은 어두워졌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유리되어 있다(엡 4:18). 인간은 성실한 피조물이 못된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고 성화되기까지는 그는 사악한 존재에 불과하다.

Ⅱ. 여기에 관하여 어떻게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가를 2절에서 살펴보자. 사도는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과 그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극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그의 육체의 남은 때를 사악한 인간들의 죄악 된 정욕과 부패된 욕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적극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 인간의 정욕은 그들의 모든 사악함에서 근원 된다(약 1:13, 14). 수시로 일어나는 시험이 어떻든지 간에 만일 인간들 자신의 부패가 없었다면 그 시험이 번창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2.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의 정욕이나 욕망, 또는 자신들의 삶과 행동의 기준을 설정하여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다.

3. 참된 중생은 그 중생함을 나누어 받는 모든 사람들의 심령과 생활에 놀라운 변화를 이룩한다. 중생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오래되고 유행하는 감미로운 정욕과 세상의 넓은 길과 악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으로 옮겨지게 한다. 중생은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판단력, 애정, 길, 그리고 행실을 변화시킨다.

Ⅲ. 어떻게 이러한 권고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자(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안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도는 공평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너희가 지금까지 너희의 이전 모든 생활이 죄와 사탄을 섬긴 것과 같이 지금은 너희가 마땅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고 공평하며 합당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도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유대인들일지라도 그들은 이방인들 중에 살면서 그들의 길을 배웠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을 주시해 보자.

1. 한 인간이 참으로 중생되었을 경우, 그의 지난날의 삶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생각해 보는 일은 그에게 있어서 대단히 서글픈 일이 된다. 곧 그는 많은 해를 운명의 장난으로 보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고,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행했으며, 손해를 유지해 왔다.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몹시 괴로운 것이었다.

2. 인간의 의지가 성화되지 못하고 부패되어 있는 한 그는 계속 사악한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사악한 것을 그의 선택과 기쁨으로 그의 일과 사업으로 삼는다. 그리함으로 그는 매일매일 악화 일로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3. 허용된 하나의 죄는 또 다른 죄를 이끌어 온다. 여기에 여섯 가지의 죄가 있는데 그 죄목들은 상호 간 연관과 의존의 관계에 놓여 있다.

(1) "음란" 다시 말해서 음탕은 외모와 몸짓 혹은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이다(롬 13:13).

(2) "정욕"은 매춘과 간음 같은사악한 행위를 뜻한다.

(3) "술취함" 즉 술 취함이 적다 하더라도 건강과 사업에 해를 끼치는 술의 무절제한 사용은 여기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4) "방탕" 혹은 사치스러운 잔치도 지나치게 빈번하며, 넘치며, 엄청난 값을 요구하는 잔치이다.

(5) "연락" 이는 과음과 과식을 의미한다.

(6) "무법한 우상숭배" 이방인들의 우상숭배는 간악함, 마취, 포식, 모든 종류의 잔인성과 야수성을 수반하였다. 이러한 간악 중에 사는 유대인들은 적어도 그들 중 얼마가 이러한 행실로 말미암아 타락되고 부패되었다.

4. 크나큰 죄를 금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죄와 악의 모양이라도 금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술 취함"이나 과도한 잔치는 정욕과 우상숭배와 같이 금지된 것이다.

[사도행전 12장 하나님 말씀] 이 말을 전하라(사도행전 1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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