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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어성경]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서 치유(요 5:1-18)

복음의 능력 2023. 4. 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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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에서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다. 이 사람은 혼자 물이 동할 때 못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이 병자를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찾아오시는 분이다.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돌아다녀도 예수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서 치유(요 5:1-18)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유대인의 명절 무슨 절기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3월의 부림절(에스더 9:26-28) 4월의 유월절 5월의 오순절 10월의 초막절(수장절) l2월의 수전절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예레미야 23:3439에 초막절(수장절)을 큰 명절로 정하였고 요한 7:2에도 초막절을 명절이라고 한 것을 보거나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것을 보아 초막절인 것 같다.

5:2-4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않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양문 예루살렘에 성문이 여럿이 있으며 그 가운데 북동 편에 있는 문의 이름을 양문이라고 하였고, 그 안에 양의 시장이 있었으며 지금은 스데반 문이라고 한다.

그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 못에서 병자들이 병을 고치기 때문에 자비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같다. 이 베데스다 못은 가끔 물이 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간헐천(間歇泉)이다. 이는 천사가 와서 가끔 물을 동하게 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그러므로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그곳에 와서 물아 동하기를 기다렸고, 그 환자들을 위해서 행각을 다섯이나 지어 놓았던 것 같다.

5:5 거기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삼십팔 년 동안이나 병을 앓은 가련한 자가 있었다. 그가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사를 찾아가고 많은 약을 쓰며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낫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베데스다 못에서 병을 고쳐보려고 찾아온 것 같다.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이 오랜 줄 아시고 환자가 말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은 그 병자의 상태를 벌써 다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사정과 상태를 다 아시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다 아신다. 우리의 심령이 병들어 소경이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앉은뱅이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상태를 잘 아신다. 어떤 때는 믿는 일을 잘하고 어느 때는 잘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의 절름발이이다. 주일을 잘 지키다가 이따금 빠지고 십일조를 바치다가 가끔 바치지 않고, 새벽 기도 시간에 가끔 빠지는 사람은 신앙의 절름발이가 분명하다. 아예 십 일조를 바치지 않고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는 신자는 신앙의 앉은뱅이다. 혈기가 말라서 신앙의 힘을 쓰지 못하는 신자도 있고 전도하지 못하는 벙어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 신자도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자 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상태를 알라. 즉 나아야 될 자인 줄 알라.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 예수님에 소망을 두라. 말씀 한마디면 나을 줄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뜻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어보셨다.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 병자가 낫고자 합니다”고 했어야 합당하다. 이것이 믿음의 대답이요, 예수님은 이러한 대답을 기다리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어보셨다(6절 해석 참조). 그러나 그 병자는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지 못할 사정만 말한 것이다.

물이 동할 때에 삼십팔 년 된 중환자가 먼저 들어가 고침을 받도록 해야 옳을 것인데 경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기 때문에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할 중환자는 버림을 받는 상태였다. 베데스다 못가에 자비의 집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으나 공평하지 못하고 생존경쟁이 심하고 약육강식(弱肉强食)하는 곳이었다. 이 세상은 어디에서나 생존 경쟁이 치열하고 참된 자비가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이 자기 사정을 몰라주더라도 섭섭해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다. 세상 사람은 다 그런 줄 알고 소망을 주님께 두어야 한다. 나의 사정을 참으로 알아주시고, 참된 자비를 베풀어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이 세상에서 실패와 낙망을 당하여 소망이 없는 자라고 할지라도 주님께 소망을 주고 주님의 능력으로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면 주님께서 만능으로 낫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할 때에 하고 일어나면 병이 낫는다. 그 이유는 주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고 주님의 말씀도 만능이시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할 때에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자기 병세와 약해진 것과 다리에 힘이 없는 것과 걸을 수 없는 상태만 생각하고 나는 일어나지 못합니다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못 일어난다. 삼십 팔 년 된 병자는 주의 능력과 그 말씀의 능력을 믿고, “하고 일어났다. 그때에 단번에 병이 다 나아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을 때는 아무리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 일어나려고 애써도 일어나지 못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10:17),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이 산 믿음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는데 무조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迷信)이요, 맹신(盲信)이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병자로 누워서 앓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다. 신령한 뜻은 신자가 신앙이 병들어 병신 노릇하던 건전치 못한 사업, 직장, 환경, 분위기를 걷어치우라는 뜻이다. 그것들을 그대로 놓아두면 그 자리에 또 누울 생각이 나게 되므로 그 자리를 정리하고 없앨 것은 없애고, 떠날 것은 떠나고, 치워야 할 것은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지고 병신 노릇하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던 환경과 분위기를 떠나고 치워야만 다시 그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백성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이 났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홍해 바다를 막아서 그 환경을 떠나게 하셨다. 우리도 죄짓던 모든 환경과 분위기와 친구를 다 떠나고 걷어 치워야 한다.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순종하니 곧 나아서 걸어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우리 심령의 병을 고쳐주시려고 늘 찾아와 계신다. 그 예수님께 낫고자 하는 소망을 두고 일어나라 할 때에 순종하여 일어나면 일어설 수 있다(10:11-12 참조). 주님의 말씀에는 만능이 있으므로 단번에 다 나아서 삼십팔 년 된 병자가 벌떡 일어나서 걸어갔다.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이 병 나은 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힐책(詰責)하였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선행)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안식일(주일)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죄이다. 일어나서 걸어가려고 하니 핍박이 들어왔다. 딤후 3:12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하였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신앙, 영적인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핍박을 각오하여야 한다.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중에 예수님을 증거 하였다. 우리 신앙의 체험을 사실대로 말할 때 예수님의 권위가 올라간다.

5: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병 낫게 해 준 사람이 누구냐 묻지 않고 자리를 듣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물은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일이요, 생명을 살리는 것은 경히 여기고 남을 책(責) 잡아 정죄하려는 데만 급급한 일이다.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병 나은 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떠들고 복잡하므로 예수님께서 피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잡한 곳은 피하시고 은밀한 곳에 계신다(6:6 참조).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

병 나은 사람이 성전 생활을 하였다. 나은 후에 육신 중심으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성전생활을 한 것은 귀한 일이다. 그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집에 돌아갔더라면 못 만날 뻔했다. 우리도 심령의 병을 고침 받고 영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다음에는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지 말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고 아버지의 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때 예수님을 다시 만난다.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가 죄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병은 죄로 인하여 난다.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병이 혹시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죄로 인하여 병이 나는 줄 알고 병이 날 때 죄를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5:16 참조).

육신의 병이 전부 마귀 때문에 난다고 하여 마귀를 몰아내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 욥기서에 보면 마귀가 욥의 육체를 쳐서 병이 들게 했으나 이는 하나님께서 욥을 마귀에게 붙여서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욥을 환난 가운데 연단시켜서 더 좋은 욥을 만들고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이 죄 때문이고, 가난한 것도 죄 때문이라고 하며 예수를 잘 믿으면 무슨 병에나 다 낫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된다고 주장하나 성경에 맞지 않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산 사도바울이나 디모데도 병이 있었다. 또 욥은 연단시켜서 더 좋은 것을 주려고 병을 허락했다. 또 가난해야 그 사람의 신앙에 유익이 될 것 같으면 가난하게 하여 그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도록 하시는 것이다.

4:11-13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척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다. 바울이 예수를 잘못 믿어서 궁핍과 비천과 배고픔을 당한 것이 아니다. 로마 8:35에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고난을 이긴다고 했고 로마 8:36에는 구약 시대 성도나 신약시대 성도나 고난 받는 것은 상례(常例)이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딤후 3: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했다. 야고보서 1:2-4에 여러 가지 환난(시험)은 성도를 연단시켜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병 나은 다음에 죄를 지으면 전보다 더욱 심해진다. 다시 죄를 범치 않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를 복종시키고 성전생활을 하고 언제나 죄와 더불어 싸워서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5: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가 자기를 낫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았으므로 너무 감사해서 나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예수님을 증거 하였다. 은혜받은 다음에는 전도해야 한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했다(고전 9:16) .

5: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므로 그리스도의 빛과 권위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핍박하였다. 진리의 빛이 들어오면 반대하는 마귀의 세력도 강하게 역사한다.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핍박하는 그들을 향하여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증거 했다. 자신의 한 일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로 한 것이라고 했고 아무리 반대와 핍박이 신해도 아버지께서 시켜서 하시는 일을 아니할 수가 없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구원운동을 아니할 수가 없어서 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5: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하는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한 것이 하나님께 대한 큰 모독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친 일은 율법을 범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말세에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이렇게 신앙관과 성경관이 다르기 때문이다(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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