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에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 이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처음으로 베푼 기적입니다. 그러면서 성전 정화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행하신 표적(요 2:1-25)
요절: “예수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시어 그 영광을 나타내시니 제자들이 그분을 믿으니라.”(요 2:11)
주제: 하늘나라의 혼인잔치의 그림자(예표)가 되는 가나의 첫 번째 기적이다.
매년 10월 첫째 주일은 세계적으로 세계성찬주일(World Communion Lord’s Day)로 지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모든 지상 교회들이 성찬식을 실시함으로 하나의 교회임을 확인하는 주일입니다. 세계성찬주일은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과 서로 간의 연합을 기리기 위해 성찬예식을 중심으로 예배의식이 시행됩니다. 오래전 1936년에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시의 한 교회(Shadyside Presbyterian Church)에서 장차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한 식탁에 둘러서서 한 음식과 한 음료(성찬)를 마시는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기간(Great Depression)이어서 매우 어려운 때입니다. 자기 교회도 챙기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 시선이 전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운동을 시작한 목사님은 탁월한 영적 지도자였고 설교자였고 시민운동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의 이름은 휴 톰슨 커(Dr. Hugh Thomson Kerr)였습니다. 1913년에 그 교회에 부임하여 1945년까지 32년 동안 담임목사로 섬겼습니다. 그분의 지도력에 따라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과 함께 세계성찬기념주일 제정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제안은 미국 장로교단(PCUSA)의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의 많은 교회들과 교단들이 이 주일을 기념하여 지키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도 모두 이 주일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2장을 강해하겠습니다. 1장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안드레, 요한,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바돌로매)을 제자로 삼으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일을 읽겠습니다.
1.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영생수를 만드심(요 2:1-12)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2)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에게 부탁하기를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님.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제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6)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항아리 아구까지 채우니(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니 갖다 주었더니(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11) 예수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니 제자들이 그분을 믿으니라(12)그 후에 예수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1-2절. 안드레와 요한이 맨 처음 예수님을 따랐던 날부터 세어서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Cana)에서 한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의 고향이 가나입니다. 가나는 나사렛 북동쪽 약 7Km에 위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흘 되던 날이란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식이 보통 안식일 지난 후 사흘 째 열렸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셋째 날은 바다와 육지를 나누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또 육지(뭍) 위에 각종 풀과 채소와 열매 나무들이 나게 하심을 보시고 좋았더라 했습니다. 두 번 좋았더라 하신 날이 셋째날이어서 화요일 저녁에 결혼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이 결혼식에 이미 와 계셨습니다. 누가 혼인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방금 도착하신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걱정하며 하인들에게 무엇을 지시한 것을 보면, 그 집은 예수님의 어머니의 형제나 가까운 친척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혼인 잔치는 인간사 중에서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그리고 요한도 그 혼인에 청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예식을 존중하셨습니다. 그분은 부모님에게 순종하셨고 그들과 함께 절기를 지키셨고 또 며칠 전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셨고 이제 혼인 예식과 잔치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3절. 모친 마리아의 말씀이 이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오셨다든가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흥과 즐거움이 깨어질 처지에 있었습니다. 당시 결혼 잔치에 포도주는 기쁨과 행복의 상징이었기에 연회장이나 잔치를 베푸는 집안에 사실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그 어려운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 즉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에 대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아마 예수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천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에게 잉태되어 나실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다윗의 위를 잇는 왕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눅 1:32-35). 또 그가 아기 예수를 출산했을 때 그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찾아와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그리스도이신 구세주가 나셨다고 했다고 말했고,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기억하였습니다(눅 2:11, 17, 19). 그는 예수님이 소년 시절을 거쳐 자랄 때 줄곧 그를 주목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간직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4-5절.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님,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제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여기서 '어머님'이라는 원어(귀나이 guναι)는 당시에 여성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가진 호칭이었습니다(마 15:28; 눅 13:12; 요 4:21; 19:26). 우리말 번역으로 “어머님” 혹 “어마 마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말씀은 그분의 공적 전도사역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부터 공적으로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것입니다(마 4:12, 17; 요 3:24).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은 확고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그 어려움을 도와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어야 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을 100%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듣고 배우기를 사모하며 성경 읽는 것과 설교 듣는 일을 금은 보화를 얻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6절. 그 집에는 유대인의 결례[정결 의식]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waterpot) 여섯이 놓여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손발을 씻거나 몸을 씻었습니다(막 7:3-4). '두세 통'이라는 말에서 '통'(메트레테스)이라는 단위는 약 40리터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는 약 80 내지 120리터 정도 물을 담을 수 있는 김장독 같은 꽤 큰돌 항아리입니다.
7-8절.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확신대로, 예수님께서는 그 혼인 잔치의 어려움을 동정하셨습니다. 그는 혼인 잔치를 무시하지 않으셨고 혼인 잔치의 즐거움과 흥이 깨어질 처지에 있는 것을 동정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의 일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 공적으로 일하실 때는 아니었으나, 그분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신적 영광을 나타내실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항아리의 아구까지(to the brim) 채웠습니다. 가나 현장에 가보면 우물과 이 잔칫집 사이가 그리 가깝지도 않고 언덕이 있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에 성실히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말을 멸시하거나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하면서 불평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제는 떠서 연회장(宴會長 알키트리클리노스 arcitriklinos), 곧 잔치를 주관하는 총매니저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갖다 주었습니다.
기적은 믿고 순종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후에 자기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아니하므로 그곳에서는 아무 기적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막 6:5-6),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데 무슨 기적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사모하고 실천할 때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9-10절. 연회장[잔치 총 매니저]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나 물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연회장[잔치 인도자]이 신랑을 불러 말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보다 더 귀한 영생수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어느 포도주보다 더 맛이 좋은 음료입니다. 그것은 하인들과 제자들이 보고 확인했던 확실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공급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연법칙은 그분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신비한 법칙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고 우유를 내며, 포도나무가 비와 땅의 양분을 섭취하여 포도송이를 맺히며 사과나무가 똑같은 조건에서 사과를 맺히는 이치를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며 신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입니다. 인간으로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 자는 아무도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진짜 포도주일까 아니면 영생수일까요? 본문에 의하면 그것은 맛이 좋은 포도주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첫 번째 기적으로 술을 만드셨는가?는 것은 재미있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깨닫는다면 그것은 당황스러운 문제는 아닙니다. 성경은 완전 금주(禁酒)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술은 좋은 의미로서 쓰일 때가 있고 나쁜 의미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성경은 술을 한두 잔 마시는 것을 정죄하지는 않으나, 술취하는 것은 지옥에 던지울 만한 큰 죄입니다(고전 6:10). 그러므로 술취함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술은 몸에 나쁘고 재정 지출이 크고 중독성이 있고 술취함은 큰 죄이며 오늘날 술의 알코올 농도가 매우 높다는 것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술을 안 마시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완전 금주의 좋은 전통을 존중하며 오늘날도 그것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이 음료를 영생수로 이해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11절.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처음 표적이었습니다. 이 표적은 종말에 있을 하늘나라의 혼인 잔치(계 19:6)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갈릴리 가나에서 이 기적을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이 기적의 목적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또 그것을 통해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과연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잔치집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해피엔딩으로 마치는 것을 제자들은 깨달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기적은 믿음을 위한 도움물이며 보조물입니다(출 4:8; 막 16:20; 히 2:4).
12절.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 기적을 행하신 후, 예수께서는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의 남동생들과 누이들도 있습니다(마 13:55; 막 6:3). 가나는 산지에 있는 마을이며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여러 날 계시지 않으셨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요 2:1-12을 요약하면,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을 보고 믿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을 보고 믿고 확신하며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신약성경을 주셨습니다(눅 1:1-4; 요 20:30-31).
또한 우리는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확실히 깨달읍시다. 주님께서 행하신 병자 치료와 떡 기적 등은 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 기적도 기쁜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특별한 경우에 이루어졌습니다. 마리아는 포도주에 대해 요청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2. 성전을 청결케 하심(Jesus Cleanses the Temple, 요 2:13-25)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님께 말하기를 “당신이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는지요?” (19)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여러분들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0)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습니까?” 하더라(21)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2)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3)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24)예수님은 그 몸을 그들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25)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갈릴리에서 첫 번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이 부패된 것을 보시고 그것을 깨끗케 하시고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책망하신 사건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즈음에도 비슷한 일을 하셨습니다(마 21:12-13).
13절 그때는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가까웠습니다. 이 유월절은 예수님의 공적 전도활동 기간 중 세 번 맞이하는데 그 첫 번째로 맞는 유월절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이것 외에 세 번 더 유월절을 지나셨음을 증거합니다(요 5:1; 6:4; 11:55).
14-16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참고. 렘 7:10-11)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곳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처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주님의 일을 의논하고 교제하는 것 외에, 성전 안에서 세상적인 행사들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종교적 행위를 빙자하여 돈벌이를 하는 행위는 성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대신에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참된 경건과 너무 거리가 먼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지 않고 순수한 성전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환전을 하는 이유는 세상의 동전(가이사 동상이 새겨짐)으로 헌금을 드릴 수 없고 성전화폐로 환전해야 제물도 구입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환전상이 성전 안(기도의 처소)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17절.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본 제자들은 성경에 “주님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나이다”라는 말씀(시 69:9)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열심을 낼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37편 저자는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137:6). 예수님의 성전 청결의 권위 있는 행위는 성전을 위한 그의 사랑과 열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18-21절. 그러자 유대인들은 대답하여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당신께서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행위에 대한 권위의 근거를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너희들이 이 성전을 헐어 버리시오.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당신께서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습니까?” 지금은 죽었지만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시작한 성전 증축 사업이 46년 동안에 진행되고 있는 이 헤롯성전을 예수가 어떻게 삼일 만에 세우겠다는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전된 자신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이었습니다. 로마서 1:4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증거합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고 예표(豫表)하였습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는 번제단, 물두멍(물대야), 떡상, 촛대, 향단, 속죄소 등이 있었습니다.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대리적 형벌을 나타내었고, 물대야는 그의 성결케 하심을, 떡상은 그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촛대는 그가 세상의 빛이 되심을, 향단은 그의 중보 기도를, 속죄소는 그의 단번 대속(代贖)의 사역을 상징하고 예표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그가 그 몸으로 이루신 속죄사역을 예표하였습니다. 성전은 또 오늘날 예수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됩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엡 1:23,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그러므로 성전의 청결은 신자 개인의 성화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물론, 구약의 성전은 부수적으로 오늘날 예배당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신약교회의 예배당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위해 거룩히 구별된 건물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은 세상적인 일을 위해 사용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와 성경공부와 나눔과 봉사로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22절.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은 시 16:10입니다. “이는 내 혼을 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님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증거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사실을 확신합니다.
23-25절.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머무시면서 여러 표적들, 아마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기적들은 우리의 믿음을 위한 도움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추가적인 기적들이 없어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들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며 또 그분께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해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종들도 이 점에서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 연약하여 넘어지기 잘하고 변하기 잘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드온 3백명 용사 같은 신실한 일꾼들과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들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구약의 성전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을 상징하고 예표하였습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전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가리키는 뜻도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 2:13-25에서 몇 가지 실제적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성전의 청결은 성도 개인의 성화 뿐만 아니라, 성자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의 거룩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바른 말씀, 즉 바른 교리와 바른 생활교훈을 전파하며 가르쳐야 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과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선함과 진실에 어긋나는 모든 윤리적 죄악들을 용납하지 말고 다 버려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오늘날 교회들 안에 들어온 온갖 오류들, 성경을 부정하는 불신앙적 사상들, 자유주의 신학들, 이성주의,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증주의 사상들, 기독교 진리의 왜곡, 각종 이단들, 잘못된 신비주의, 체험주의, 은사주의, 기복주의, 병고침과 물질적 복의 추구, 인본적인 연합주의, 자유주의와 종교통합주의 포용, 잘못된 교제, 가톨릭 포용, 낙태 허용, 동성애 허용, 예배형식에서 세상 풍조 허용, 명상주의, 관상기도 등의 온갖 오류들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의 거룩함을 위한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모든 성경 말씀을 믿고 행하며 사랑으로 단합하며 복음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가지는 것은 기본적이지만,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성전 청결을 위한 열심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온갖 오류들로 더러워지고 혼란해져 있는 교계의 상황 속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건립하고 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점이 없는 깨끗하고 거룩한 교회를 원하셨습니다(엡 5:25-27). 우리는 단지 교인들의 숫자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바른 교훈과 훈련, 그리고 성실한 권징으로 바로 세우고 오늘날 교회들의 배교(背敎)와 타협과 혼란을 보고 통분하며 성경적 교제와 절교 혹은 분리의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예수님을 본받아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일에 동감하며 따른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또 사람들이 우리를 배척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일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성경 좋은 말씀] 면책, 충고, 목양(잠 2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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