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1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팔팔 뛰었습니다. 자신은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죽을지언정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과 몇 시간 후에 베드로는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심문받을 때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여종이 너도 예수와 같은 도당이라고 하자 절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아니라고 합니다.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한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드로는 그때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울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을 부인한 적이 없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막 14:66-72)
66절 카이 온토스 투 페트루 엔 테 아울레 카토 엘케타이 미아 톤 파이디스콘 투 아르키에레오스
막 14:66 베드로는 아랫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절 카이 이두사 톤 페트론 데르마이노메논 엠블렙사사 아우토 레게이 카이 쉬 메타 투 나자레누 이에수 에스다
막14: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절 호 데 에르네사토 레곤 우크 오이다 우데 에피스타마이 티 쉬 레게이스 카이 엑셀덴 엑소 에이스 토 프로아울리온 카이 알레크토르 에포네센
막 14: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14:66-68
대제사장의 비자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임을 알아본다. 그 여자는 분명히 베드로의 신분을 파악하였으나 베드로는 그것을 부인하였다. 그는 자기 안전을 위하여 자기가 예수의 제자임을 부인했다. 더 이상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그는 길거리로 통하는 포장된 길 곧 앞뜰로 나아갔다.
이 사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멀리한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갔다 하였다(54절). 그리고 그는 지금 "아래 뜰에 있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멀찍이 따르다 그를 부인하게 된다. 즉 거룩한 의식에 참예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진실한 성도들과의 교제를 부끄러워하며 멸시를 당하는 경건한 무리들의 편에 서기를 싫어한다.
이 사실은 그가 대제사장의 종들과 함께 하고 그들과 동석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더불어 같이 있는 것이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도록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더불어 같이 있는 것은 더욱 위험스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시험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제자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67절). "이 사람은 그 당이라"(69절).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70절). 베드로가 이 일로 그들에게 도전을 받거나 그 일로 인해 죄인으로 기소를 당할 위험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그 일로 놀림을 당하거나 그것으로 어리석은 자라는 조롱을 당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주님을 욕보이고 있는 동안 그 종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주장이 멸시를 당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비류가 그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그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는" 것이다(시 35:15). 욥이 거름 덩이 위에 앉아 있을 때에 그는 "비천한 자의 자식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욥 30:8, 9). 그러나 모든 일을 고려해 볼 때에 시험은 무서워할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우연히 비자가 베드로를 바라보게 되고 베드로에게 어떤 괴로움을 주려는 생각이 없이 무심코 말하기를 "너도 그 당이라" 하였고 거기에 베드로는 어떤 대답을 하여야 했으며 거기에 대하여 "내가 그라 하더라도 나는 배신자가 아니기를 바란다"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69절 카이 헤 파이디스케 이두사 아우톤 팔린 에륵사토 레게인 토이스 파레스토신 호티 후토스 엑스 아우톤 에스틴
막 14: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절 호 데 팔린 에르네이토 카이 메타 미크론 팔린 호이 파레스토테스 엘레곤 토 페트로 알레도스 엑스 아우톤 에이 카이 가르 갈릴리아이오스 에이 카이 헤 랄리아 수 호모이아제이
막 14: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절 호 데 에륵사토 아나데마티제인 카이 옴뉘에인 호티 우크 오이다 톤 안드로폰 투톤 혼 레게테
막 14: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14:69-71
동일한 계집종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폭로하였다. 다시 그는 부인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고소하여 “확실히 너는 그들 중의 하나니 너는 갈릴리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람 방언을 말할 때 그 발음에 있어서 현저히 구별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단자인 예수의 제자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했다는 말은 그가 신성 모독적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며 법정에서처럼 부인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맹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죄는 대단히 켰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법정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으로 나서야 할 그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예고를 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이 임하자 그것은 베드로에게 전에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것처럼 큰 놀람과 두려움으로 임한 것이다. 전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자기를 위해 자주 고난을 겪어야 하며 십자가를 지고 그를 좇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하였음에도 베드로는 그 첫 번째 경보에서 그 고난을 몹시 두려워하여 그것을 피하려고 거짓말도 맹세도 어떠한 일도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따를 때에는 그는 쉽게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께서 버림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자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고 그와 아무 관련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72절 카이 에크 듀테루 알레크토르 에포네센 카이 아네므네스데 호 페트로스 투 레마토스 후 에이펜 아우토 호 이에수스 호티 프린 알레크토라 포네사이 디스 아파르네세 메 트리스 카이 에피발론 에클라이엔
막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14:72
두 시간이 채 못되어 베드로가 세 번째로 예수를 부인하자 그 즉시 닭이 정확히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통곡하였다.
베드로의 회개는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였는데 그중에서 세 번째의 부인은 대단히 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에 그는 자기의 부인을 더욱 굳히기 위해서 저주하고 맹세하였기 때문이다. 그 세 번째 타력이 그리스도를 대경실색케 하였을 것이고 그를 낙담케 하였을 것이고 놀라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에 닭이 두 번 욺으로써 베드로는 "여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경고의 말씀이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죄에 대하여 마음이 민감하여졌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을 때에 슬피 울었다. 어떤 사람들은 본 복음서 기자가 베드로의 지도하에 본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이 복음서에는 베드로의 죄를 자상하게 기록하였고 그의 슬픔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것은 베드로가 겸손하게 자기의 슬픈 획에 대해서 과장하지 않으려 함과 자기의 큰 과오에 대해서 그 회개가 넉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의 회개에 대한 표현이 ‘에피발론 에클라이엔’(생각하고 울었더라)인데 여기에 무언가 더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가 울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유대교식의 표현이다. 그는 울었다. 그리고 그는 과오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울었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서 울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의 샘이 터진 듯 울었다. 그는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져 울었다. 그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울었을 것이며, 그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을 것이다. 그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았다. 주께서도 얼굴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부딪친 것이다. 하몬드 박사의 설명이다.
그의 말은 추측이다. 또는 우리가 이해하여온 대로 그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울었다. 순간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겸손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서 살아야 한다. 만일에 그리스도의 이 말씀이 그 자신에게 짐이 되고 그 자신의 얼굴에 혼란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마치 세리가 자기 죄로 인해 가슴을 치며 슬퍼한 것처럼 슬퍼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심하게 울은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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