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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헬라어 강해]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 증거(요 4:27-30)

복음의 능력 2021. 5. 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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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4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 증거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에 물을 뜨러 왔다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항상 구원 때문에 고민했고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꿈에 그리던 메시아를 만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적인 물을 뜨러 왔다가 영적인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적인 물을 뜰 수 있는 양동이를 집어던지고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증거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했더니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만약 창녀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마리아 여인은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났으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예수님 증거(요 4:27-30)

 

27절 카이 에피 투토 엘돈 호이 마데타이 아우투 카이 에다우마산 호티 메타 귀나이코스 엘랄레이 우데이스 멘토이 에이펜 티 제테이스 에 티 랄레이스 메트 아우테스

요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4:27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 "제자들이 돌아왔다" 함은, 그들이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동네에 들어갔다 온 것을 말함이다(8).

대 랍비들의 예법대로는, 유대 남자가 거리에서 여자로 더불어 말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 아내와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말씀하심이 이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에 그것을 허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았다.

이때에 -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이것 위에 (KJV And upon this)’이다. 이는 통상 앞선 사건과 이어지는 또 다른 사건을 도입하는 문구로 쓰이므로 ‘이때에 (RSV then)’ 로 번역하여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 문자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여기서 지시 대명사 ‘투토’는 바로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이시라는 위대한 자기 계시를 하신 사실을 가리킨다.

여기에 ‘~위에’ 란 뜻이 있는 ‘에피’ 란 전치사가 붙은 것은 이어지는 내용도 예수의 메시아 되심과 관련되어 어떤 사건이 보다 진전될 것을 암시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이 암시하는 바대로 이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개별적 대화는 앞의 26절로 끝나고, 본절부터 42절까지는 그 여인을 통해 예수의 메시아 되심이 보다 널리 전파되며 사마리아 사랍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회심하는 내용이 기록된다.

28절 아페켄 운 텐 휘드리안 아우테스 헤 귀네 카이 아펠덴 에이스 텐 폴린 카이 레게이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 그때의 물동이는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그것을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갔다. 그 여자는 그처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열중하였다. 그는 급히 동네에 들어가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인간 예수가 아니라 구원자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녀가 보인 반응을 나타내는 이 세 동 사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며 오늘날 진정으로 구원 얻은 사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먼저 ‘버려두고’에 해당하는 ‘아페켄’은 부정 과거 시제로서 그녀가 즉시로 이와 같은 행동을 취했음을 알게 한다. 그녀가 우물에 온 것은 물을 걷고자 함이었는데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하고는 이것을 그 즉시 포기한 것이다. ‘아페켄’의 원형 ‘아피에미는 ‘버리다’는 뜻 이외에도 ‘포기하다’, ‘돌보지 않다’는 의미로도 종종 쓰인다. 진정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한 사람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세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던 생각을 즉시 버리게 되어 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옛 생활에 머무는 이들은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들어가서’로 번역된 ‘아펠덴’도 역시 부정 과거 시제이며 그녀가 즉시 예수님을 떠나 동네로 간 것을 나타낸다. ‘아펠멘’의 원형 ‘아페르코마이’는 ‘가버리다’, ‘떠나가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한 이들이 보인 공통점이 그녀에게서도 발견된다. 안 드레가 그러했고(요 1 :41), 빌립이 또한 그렇게 하였다(요 1 :45). 그녀는 예수님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이 놀라운 사실을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그분 앞에서 떠나간 것이다. 오늘도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얻은 이들은 그녀처럼 행하게 된다. 이런 행동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그리스도와 진정한 만남이 없음을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르되’에 해당하는 ‘레게이’는 앞선 두 동사가 부정 과거로 사용된 것과 다르게 진행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이다. 이는 그녀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현장감 있게 매우 생생하게 나타낸다. 좋은 소식은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영적 사망에서 놓임 받는 구원의 기쁜 소식은 가능한 대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하며 이것은 성도의 의무이기도 하다.

29절 듀테 이데테 안드로폰 호스 에이펜 모이 판타 호사 에포이에사 메티 후토스 에스틴 호 크리스토스

요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 여자는, 자기의 과거 생활을 알아맞히신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식 때문에 그를 믿었. 그는 이제 그 사실에 대하여 증거 한다.

‘와 보라’에 해당하는 ‘듀테 이데테’가 문장 서두에 나와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음에 주목하자. 이 여인은 위대한 분을 만났다는 흥분과 감동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경멸받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별다른 설명도 없이 무조건 ‘이리로 와서 보라’라고 외쳤다. ‘듀테’는 ‘보라’는 뜻의 2인칭 복수 ‘이리로 오라 (come here)’
는 뜻의 ‘듀로’의 복수형으로서 명령형으로 ‘보라’란 의미를 지니는 ‘이데테’와 함께 쓰였다. 

이 두 단어는 모두 부정 과거형으로 쓰여 ‘당장 와서 당장 보라’는 매우 촉급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예수께서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메시아적 권위를 가지고 참된 예배에 대하여 말씀하신 사실 때문에 그분에 대하여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녀의 마음에 항상 따라다니던 수치심은 말살되어 사람들 앞에 과감히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자기가 만난 그분을 얄리겠다는 사명감이 그녀를 움직였다.

그녀가 취한 행동은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신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게 모른다. 왜냐하면 ‘아니냐’로 번역된 ‘메티 ... 에스틴’에서 의문사 ‘메티’는 부정적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에 주로 사용되는 불변사이기 때문이다(마 7: 16). 

이는 질문하는 자가 그 내용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질문에도 나타나며 ‘혹시(perhaps)’라는 뜻을 갖는다 (W. Bauer). 따라서 이 부분을 원문대로 고쳐서 읽으면 ‘혹시 이분이 그리스도일 수도 있지 않느냐’ 가 된다. 그러나 당시 이 여인이 이러한 어법을 사용한 데 대해서는 그녀가 최종적인 판단은 수가성 사람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았다는 견해도 일리가 있다. 즉 그 여자는 자신의 나쁜 평판과 유대인에 대하여 가지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감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직접 전하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직접 보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30절 엑셀돈 운 에크 테스 폴레오스 카이 에르콘토 프로스 아우톤

요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4:30

저희가 나와 오더라 - 여자의 말을 전해 듣고 그 도시의 사람들이 취한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이며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증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잘 알게 한다. 그들은 먼저 그 도시에서 나왔다. ‘엑셀돈’은 부정 과거 시제로서 그들이 즉시 행동에 옮겨 나왔음을 알게 한다. 미천한 한 여인의 증거가 그들의 마음을 그토록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확실한 증거는 이와 같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 만난 사실을 선포하면 사람들은 가만히 주저앉아 있지 못하고 움직이게 된다. 복음 자체가 지니는 역동성 때문이다.

그리고 ‘오더라’로 번역된 ‘에르콘토’는 미완료 시제로서 과거에 계속 혹은 반복된 동작을 지시한다. 즉 수가 성 사람들은 계속하여 예수께 나아왔던 것이다. 자신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한 여인의 확신에 찬 증거와 변화된 모습은 그들을 예수께로 이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본장 1절에 나오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예수를 질시하고 배척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장차 복음이 유대인의 범주를 벗어나 이방 세계까지 왕성히 전파될 것을 시사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이처럼 본서 앞부분에서부터 이방인을 향한 예수의 복음 전파와 이방인들의 긍정적 반응을 기록함으로써 이방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과 그들 역시 복음의 주역임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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