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회개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심판하셔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도 저주를 받아 뿌리가 말라버렸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죄악의 길로 갈 때 하나님은 회개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가면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구원은 취소되지 않지만 징계를 받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함(눅 13:1-35)
1-9절, 회개치 않으면 망함
[1절]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 . . .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였다. 아마 이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나 다른 곳에서 제사하던 중에 로마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므로 그들의 피가 그들의 제물에 섞였던 것 같다. 그들은 어떤 큰 죄를 범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보통 죄 때문에 재앙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섭리자이시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도 느끼는 바이며 그래서 ‘천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의 재앙은 죄 때문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2-3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 . . .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나님께서 큰 죄인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벌하시는 경우들도 있으나, 참으시고 내버려 두시는 경우들이 더 많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당한 재난을 보고 저가 큰 죄를 지었다고 성급히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 사람만 큰 죄인이 아니고 우리도 큰 죄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당한 재난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교훈을 삼고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의 중심 내용이다. 회개는 죄를 깨닫고 버리는 것이다. 구원받는 믿음은 회개를 동반한다. 회개는 믿음의 표시이다. 회개는 구원에 절대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를 회개치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구원은 결코 회개 없이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장 3절은, “회개는 모든 죄인들에게 매우 필수적이어서 아무도 그것 없이는 용서를 기대할 수 없다”고 바르게 진술하였다.
[4-5절]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시온산 기슭에는 ‘실로에’ 혹은 ‘실로아’라는 이름의 작은 샘이 있다. 거기에 있던 망대가 무너지므로 열여덟 사람이 죽었다. 그들은 아마 샘물에 몸을 씻으려고 왔다가 그런 변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었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날에 자동차 사고, 열차 사고, 비행기 사고, 화재, 건물의 폭발과 붕괴 사고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그것도 다 그러하다.
우리는 이런 일들로 죽은 자들이 우리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러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그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교훈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필립 헨리라는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에 대해 많이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나는 그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강단에서 죽는다면 회개를 설교하다가 죽기를 원하며, 만일 내가 강단 밖에서 죽는다면 그것을 실천하다가 죽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은 다 회개해야 한다.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징벌과 재앙을 당할 것이다. 다윗은 시편 7편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라고 말했고(시 7:11-12), 시편 58편에서는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라고 말했다(시 58:11).
혹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를 다 징벌하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신다 할지라도, 그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과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는 복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 불못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회개치 않은 죄인들,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악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6절]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 . . .
예수께서는 또 한 비유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 이 비유는 앞에서 하신 회개에 대한 교훈과 연결된다. 무화과 열매는 회개의 열매를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보다 앞서 와서 회개의 세례를 전했던 세례 요한이 강조했던 바이었다.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모여 온 무리에게, 특히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말하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 . .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다(눅 3:7-9; 마 3:7-10).
회개의 열매는 죄악된 행실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보다 돈과 쾌락을 더 사랑하고 악하고 음란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지 경건한 말이나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생활의 변화이다. 좋은 열매는 경건하고 선한 삶을 가리킨다.
[7절]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 . . .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과원지기는 말씀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 3년은 하나님께서 각인을 위해 정해두신 기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 동안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3년, 즉 1,095일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그가 열매를 맺지 않을 때 땅만 버리도록 계속 그를 그냥 버려두지는 않으실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땅만 버리듯이, 회개치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살 자격이 사실상 없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악한 영향만 미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하시면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해 버리실 것이다. 그것은 회개의 열매가 없는 교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보인다. 열매는 포도나무 가지에게 필수적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13에서 “너희가 육신대로[즉 육신의 죄성에 이끌려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말했다.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나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죄를 멀리해야 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계속 죄 가운데 사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일 것이다.
[8-9절]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 . .
과원지기는 대답하였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과원지기는 1년의 기간을 더 허락해주시면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특별히 관리해보겠다고 요청했다. 그 특별 관리란 그를 위한 더욱 강력한 말씀의 교훈과 책망과 훈련을 가리킬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육체적, 환경적 시련도 포함될 것이다. 연장된 1년 후에는 두 가지 결과가 남을 것이다.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받고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영히 버림을 당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이 죄 때문에 재앙을 당한다는 일반적 진리를 알자. 그것은 율법의 진리이며, 또 하나님의 공의의 진리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반적 진리이다. 물론 예외가 있다. 그러나 예외는 예외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속에 살지 예외적 섭리 속에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사람이 재앙을 면하려면, 죄를 회개하고 멀리해야 한다. 죄 때문에 재앙이 온다.
둘째로, 회개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다 멸망하고 만다. 하나님의 재앙은 이 세상에서도 있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대 앞에서도 있다. 회개치 않은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원한 지옥 불못의 벌을 피할 수 없다. 회개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일이지 선택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길 줄 모르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
셋째로, 회개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회개의 열매는 변화된 인격과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 없이 살던 무신론적이며 불경건했던 삶이 변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며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생활하는 경건한 인격과 삶이 되는 것이다. 또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며 욕하고 음란하며 도적질 하며 거짓말하며 각양 탐심을 품고 살았던 삶이 변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결하며 절제하고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자족하며 거짓말하지 않고 탐심을 버리는 인격과 삶이 되는 것이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말로 하지만, 회개는 변화된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10-21절, 사탄에게 매인 자를 푸심
[10-11절]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8년 . . . .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그는 아직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셨다. 장차 구약의 토요일 안식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폐지되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 신약의 주일로 바뀔 것이다. 또 그는 회당 집회에 참석하셨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에 생긴 유대인들의 예배당이었다. 예수께서나 사도들이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때는 아직 구약교회와 신약교회가 구별되기 전이며 아직 유대교와 기독교가 명확히 나뉘기 전이었다.
그때 거기에 열 여덟 해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프뉴마 에쿠사 아스데네이아스)[질병의 영을 가지고 있었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이것은 이 여인이 열 여덟 해 동안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한 것은 질병의 영 곧 귀신의 활동이었다. 악령들은 이 세상에서 불경건하고 악하고 불행한 일들의 배후에 역사하고 있다. 에베소서 2:2는,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한다. 이 여인은 오랫동안 귀신으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하였다. 그러나 이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고침을 받을 때가 왔다.
[12절]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 . . .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부르셨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느니라.” 그 여자가 소원하기 전에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부르셨다. 물론 이 여자가 마음속으로 자신의 병고침을 소원했을지 모른다. 또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병고침을 요청할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주셨던 경우처럼 요청받지 않으신 때에 긍휼을 베푸셨다. 많은 경우에는 그가 병자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셨으나 이 경우는 그가 말로 표현된 소원을 들음이 없이 긍휼을 베푸신 것이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느니라.” ‘여자여’라는 원어(귀나이)는 성인 여자를 부르는 일반적 호칭이었던 것 같다(요 19:26). ‘네가 네 병에서 놓였느니라’는 말씀은 병을 치료하시는 그의 권위 있는 말씀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권위 있는 선언이었다. 그 권위 있는 말씀은 곧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나타낸다.
[13절]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안수하실 때 그 여자는 곧 몸을 폈다. 열 여덟 해 동안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했던 그의 몸은 즉시 펴졌다. 하나님의 능력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났다. 예수님의 치료는 즉각적이었다. 예수께서 중한 열병을 앓았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을 때도 그가 곧 일어났었고(눅 4:39), 친구들이 데려왔던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을 때에도 그가 곧 일어났었다(눅 5:25). 이제도 그 여자는 곧 몸을 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을 보면, 그 여자에게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던 이 여인은 이제 그 매임과 그 질병에서 해방되었다. 이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이 드러났다.
[14절]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시는 것을 . . . .
회당의 책임자인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말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그의 태도는 겉보기에는 안식일을 존중하며 철저히 지키는 것 같았으나, 그에게는 무지와 완악함이 있었다. 그는 방금 예수께서 메시아이신 증거를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회당 예배를 인도하는 그의 수고는 무의미하였다. 사람의 종교적 직분과 활동이 그의 내면적 경건과 항상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5-16절]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 . . .
주께서는 대답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 여덟 해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그 회당장과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에도 자기들의 소나 나귀를 마구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면서 이 불쌍한 여인을 그 오랫동안의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흑암의 권세에서 살았다고 표현하고(골 1:13), 온 세상은 악한 자 곧 사탄 안에 처해 있다고 표현하며(요일 5:19), 또 교회에서 제명 출교 되는 것을 사탄에게 내어준다고 표현한다(고전 5:5). 그 여인은 소나 나귀보다 귀한 인간 영혼이며 더욱이 ‘아브라함의 딸’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으나 오랫동안 사탄이 준 질병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고침을 받았고 사탄에게서 놓임을 받았다.
[17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 . .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였고 모든 사람들은 그의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다. ‘그의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이란 방금 전에 그가 병을 고치신 일과 그의 바르고 지혜롭고 은혜로운 말씀들을 가리킬 것이다.
[18-19절] 그러므로[또 그는]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 . . .
그러므로[또 그는](전통본문)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정원]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세계이다. 그것은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가 없는 세계이다. 그것은 병고침을 받았던 한 여인과 같이 죄인들이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들어가는 세계이다. 비록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마귀의 시험과 장난이 없지 않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안에 있으며 신자는 그것을 능히 이긴다(롬 8:35-39). 천국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표이며 인류 역사의 종착지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소망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정원에 심긴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셨다. 그는 심긴 겨자씨 한 알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가 되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작은 세력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자라서 마침내 크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나라 곧 그의 피로 죄 씻음 받고 구원받은 영혼들로 구성된 신약교회는 매우 작은 무리로 시작하여 점점 자라 지금은 세계적인 거대한 단체가 되었다.
[20-21절]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또 누룩에 비유되었다. 누룩은 보통 악과 그 영향력을 비유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비유되었다. 뱀이 일반적으로 사탄을 비유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워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마 10:16), 그는 누룩을 ‘하나님의 나라’에 비유하셨다. 여기에서 누룩은 퍼져나가는 것, 즉 확장성을 가리켰다. 반죽된 가루 서 말속에 누룩을 두면 반죽 전체가 부풀게 되는 것처럼, 미미하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온 세계에 퍼져 가득하게 된 세계적 교회를 이룰 것을 보이신 말씀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을 자유케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 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그 여인을 그 매임에서 자유케 하셨다. 이 사건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 세상은 지금 사탄의 권세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관자이시지만, 그는 이 세상을 사탄의 권세 아래 두셨다. 요한일서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에베소서 2:2,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은 죄가 지배한다. 죄를 짓는 자는 죄와 사탄의 종이다(요 8:34). 그런데 주 예수께서는 죄사함을 통해 사탄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이시다.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자.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은 자들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어 죄와 마귀 권세에서 자유케 된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중생한 자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다. 그 나라는 겨자씨 한 알이 자라 큰 나무가 된 것과 같고 적은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것과 같다. 그 나라는 점점 자라고 확장되어 세계적인 거대한 교회가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사탄에게 매여 있는 택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오게 해야 한다.
22-35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22-24절]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 . . .
예수께서 각 성 각 촌으로 다니며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전도자는 교회에 모여 오는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기회 있는 대로 어디든지 가서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물었다.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그는 이 구절을 포함하여 본문 전체에서 몇 가지 진리를 말씀하셨다.
첫째로,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며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구원의 문은 좁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그의 속죄의 의만 믿고 모든 죄악된 행습을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창조하셨고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하신 구주이시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주가 없다.
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디모데전서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그의 계명대로 모든 죄를 버리고 바르고 선한 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고 결심이 필요하고 또 힘쓰고 애쓰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주께서는 “힘쓰라”(아고니조마이)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열심히 싸운다’는 뜻이다(BDAG). 세상에는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들이 있고 죄의 유혹들이 있고 신자를 낙망시키는 일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시고 은혜 주시는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를 수 있다.
둘째로, 구원에서 제외될 자들이 많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구원에서 제외될 자들이 많을 것인가? 그렇다. 많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7:13-14에서도 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구원받을 자들보다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보편 구원설 혹은 만인 구원설은 거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 노아 시대에 노아의 가족 8명 외에 모든 사람이 다 홍수로 멸망하였듯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다 멸망하였듯이, 오늘날에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믿고 모든 죄악 된 행습을 버리고 성경 교훈대로 사는 자들은 적은 것 같다. 많은 이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
[25-27절]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주여](전통본문),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셋째로, 구원의 문은 닫힐 때가 올 것이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을 때가 올 것이다. ‘집 주인’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켰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문 곧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계 3:7) 그 분이시다. 천국 문은 지금 열려 있으나 항상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이 닫힐 때가 있다. 문이 한 번 닫힌 후에는 아무도 그리로 들어갈 수 없다. 마치 노아 방주의 문이 닫힌 후에는 아무도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과 같다.
넷째로,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집주인은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두 번이나 말하였다. ‘어디로서’라는 말은 근원을 가리킨다. 물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므로 우리가 천국 가려면 거듭나는 일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3:3, 5). 거듭난 자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또 주인은 그들을 ‘행악하는 모든 자들’이라고 표현하셨다. 행악자는 천국에서 제외될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 영원한 멸망을 받는 이유는 죄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탐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욕하는] 자나 토색하는[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회개는 거듭남의 증거이다. 요한일서 3:9-10,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남의 증거를 가질 때 구원을 확신할 수 있고 천국을 확신할 수 있다.
다섯째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수 없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 간의 분리도 불가피하다. 시편 5편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라고 말하였다(시 5:4-6).
[28-29절]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여섯째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큰 불행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들, 그리고 동서남북에서 온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천국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밖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 더 이상 그의 작은 긍휼도 받지 못할 것이며, 그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이다.
[30절]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된 . . . .
예수께서는 또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일곱째로, 먼저 복음을 받은 자들도 멸망할 수 있다. ‘나중된 자’는 이방인을 가리키며 ‘먼저된 자’는 유대인을 가리키겠지만, 이 말씀은 또한 먼저 믿은 자와 나중에 믿은 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구원에는 순서가 없다. 복음을 먼저 들었으나 구원받지 못하는 자도 있고, 복음을 나중에 들었으나 구원받는 자도 있으며, 예수님을 먼저 믿는 것 같으나 구원에 실패자가 있고 예수님을 나중에 믿는 것 같으나 구원에 이르는 자가 있을 것이다.
[31절] 곧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 . . .
곧 그때에[그 날에](전통본문)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말하였다.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여기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 안디바인데 당시 갈릴리 지방을 관할하고 있었다(눅 23:7). 예수께서는 아직 갈릴리 지방에 계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피신시키려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도 예수님을 환영치 않으므로 배척한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헤롯이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다. 그러나 주를 진실히 믿는 자들은 그를 영접하며 가까이 할 것이다.
[32절]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 . . .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세상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는 선지자적 권위를 가지고 헤롯을 ‘저 여우’라고 부르셨다. 여우라는 말은 그 간교함과 잔인함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오늘과 내일’은 ‘명확하지 않은 얼마간의 기간’을 가리킨 것 같다. 즉 헤롯의 죽이겠다는 위협 속에서도 내가 얼마 동안 좀더 나의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뜻이다. ‘제3일’은 ‘얼마 있지 않아서 곧’이라는 뜻일 것이다. ‘내가 완전하여지리라’는 원어(텔레이우마이)는 ‘내가 목표에 이르리라’(NASB, NIV)는 뜻인데, 그것은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대속(代贖) 사역을 이루실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에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요 19:30).
[33-34절]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 . . .
예수께서는 또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실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는 그런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가셔야 할 사명의 길을 가셨다.
그는 또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유대 지도자들은 많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쳤었다. 이제도 헤롯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은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그는 여러 번 그들을 품으려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원치 않았고 거절하였다.
구약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약교회도 타락하고 배교적이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중세시대의 로마 천주교회는 하나님의 신실한 많은 종들과 성도들을 고문하고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는 단체가 되었었다. 오늘날 많은 개신교회들은 또다시 타락하여 배교(背敎)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이 포용하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들은 역사상 가장 이단적이다. 오늘날 다수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과 보수 신앙의 증언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다.
[35절]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장차 예루살렘 성은 멸망할 것이다. 이 예언은 주후 70년 로마 군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그들은 이제 주의 재림의 날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자. 우리는 영원 자존자, 창조자, 섭리자, 살아계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성경을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만 섬기자. 또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자. 그는 우리의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요 14:6; 행 4:12; 딤전 2:5). 또 그는 우리의 충족하신 구주이시다. 그는 그를 믿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롬 3:21-24; 10:4) 그 안에 사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또 우리는 모든 죄악된 행습을 다 버리자. 우리는 과거의 죄악된 습관을 다 버리고 모든 죄를 멀리하고 오직 성경의 모든 교훈들을 힘써 지키자. 또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 형벌을 두려워하자.
[마태복음 예수님의 말씀] 열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 비유(마 2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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