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쓴 그물은 후릿그물입니다. 한 번에 모든 물고기를 잡아서 그다음에 구분하는 그물입니다. 현재 교회에도 모든 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말에 예수님을 이 땅에 재림하게 하셔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게 하십니다.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별하십니다.
그물의 비유
본문: 마 13:47-5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오늘은 우리가 그물의 비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그물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여러 비유들 가운데서 일곱 번째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물의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날 우리에게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은 지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좀 더 깨어서 경성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사람들의 유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가 눈을 떴습니다. 그는 자기가 정말 좋은 곳에 와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가 누워서 쉬고 있는 침대는 한없이 넓고 푹신했습니다. 또 거기에는 아침마다 자기를 깨우면서 출근하라고 닦달하는 아내의 성화도 없었습니다. 직장상사의 잔소리도 없었고, 일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또 그의 옆에는 하인 한 사람이 언제나 대기하면서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야, 천국이 정말 듣던 대로 너무 좋은 곳이구나!"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편하니까 실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하인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너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까 지루하게 느껴지네. 그러니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좀 말해주게나."
그러자 하인은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결코 안될 말입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원하는 것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한 가지만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손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기가 막힌 나머지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살란 말인가? 천국인들 무슨 소용이 있어? 차리리 지옥이 더 낫지!"
그러자 하인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당신은 지금까지 여기가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여기는 천국이 아니고 지옥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성경이 가르쳐 준 지옥이 그렇게 시시한 곳입니까? 이런 이야기에 우리가 미혹을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 가운데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식사시간에는 똑같이 아주 푸짐한 진수성찬이 차려졌습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다 윤기가 흐르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서도 모두가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얼굴이 빼빼 말랐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서 쓰는 젓가락은 엄청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 긴 젓가락을 가지고 음식을 집어서는 자기 입에 못 넣게 되어 있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긴 젓가락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마주 앉아서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그것을 식탁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의 입에 친절하게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배불리 맛있게 잘 먹고 만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자기 입에 넣을 수가 없는데도 그들은 욕심스럽게 자꾸 자기 입에만 넣으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다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옥에서는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서도 그것을 먹지 못해서 모두가 영양실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지옥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지옥을 그처럼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별다른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실체를 제대로 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기를 쓰고서라도 전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이웃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물의 비유를 통해서 마지막 날에 있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바르게 깨닫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비유 자체를 한 번 살펴봅니다.
47~48절의 말씀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베드로를 위시한 여러 제자들은 본시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물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들은 실감 나게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상 생활의 평범한 일들을 통해서 천국의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보시면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 떡 반죽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시면서 누룩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는 어부를 보시면서 오늘처럼 그물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를 보시면서도, 들에서 자라는 하찮은 들풀 한 포기를 보시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저 하찮은 참새 한 마리라도 잊지 아니하시고 먹이시는구나!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저 하찮은 들풀조차도 내 아버지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아름답게 입히시는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처럼 언제나 우리의 영도 맑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도 아무런 생각 없이 얼굴을 씻을 것이 아니고,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주여, 이 시간 내 마음도 주님의 뜨거운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길을 걸어갈 때도 아무런 생각 없이 걸어가지 말고,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오, 주여! 나의 손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발걸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당시에 고기를 잡는 방법이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낚시로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끝 부분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처음 낚인 고기의 입을 열면 그 속에 한 세겔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 나와 너를 위해서 그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여라."
낚시로 고기를 잡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둘째로, 그물을 던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그의 형제 안드레와 더불어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낚시를 던져서 잡는 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니라, 그물을 던져서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뒤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복음의 그물을 던져서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큰 그물인 예인망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그물의 한 쪽 끝을 해변가에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수십 미터, 때로는 수백 미터가 되는 아주 큰 그물을 배에 싣고서 일직선으로 펴기 위해 배가 바다 한 복판으로 노 저어 갑니다. 그물 위에는 부유물이 달려있습니다. 둥둥 뜹니다. 그러나 밑에는 무거운 추가 달려있습니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긴 그물이 벽처럼 일직선으로 펼쳐지게 되면, 배는 다시금 원을 그리면서 해변가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갇혀있는 고기들을 그물로 계속해서 쪼여 들어갑니다. 그물이 완전히 조여지면 어부들은 그물을 물가로 끌어냅니다. 그리고는 앉아서 그 속에 있는 고기들을 분류합니다.
상품의 가치가 있는 것들은 그릇에 담습니다. 가까이 가는 것은 소쿠리에 담기도 하고, 또 멀리 가는 것은 고기를 물속에 넣어서 보관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상품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지느러미가 없다든지 비늘이 없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먹는 물고기 가운데서도 그물에 찢겨서 몸뚱이가 날아가 버린 것은 그릇에 담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이 오늘 우리가 살펴본 비유의 내용입니다.
둘째로,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49절 말씀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이 말씀 가운데 강조되고 있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갈라내어."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는 악인과 의인이 함께 공존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끝에는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분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사실을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추수 때까지는 밭의 가라지가 곡식과 함께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절대로 가라지는 곡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 불사르게 됩니다.
똑같은 사실을 예수님은 그물의 비유를 통해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거듭해서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지옥을 만드신 분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지옥에 들어가면 안 되겠기에 예수님은 거듭거듭 연민의 정을 가지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러 번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완악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너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예수님의 거듭된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였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무서운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원자탄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무런 경고 없이 원자탄을 일본에 떨어뜨린 것은 아닙니다. 히로시마에 투하하기에 앞서, 여러 날 전부터 크고 작은 전단지를 만들어 비행기로 공중에서 살포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광도 시민 여러분! 1945년 8월 6일 원자탄이 투하될 것입니다. 반경 50km 밖으로 피난 가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거짓말하고 있네. 세상에 그런 폭탄이 어디 있어? 자기들이 전쟁에서 질 것 같으니까, 일부러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그러는거야!"
그러면서 아무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945년 8월 6일 실제로 원자탄이 떨어졌습니다. "꽝!" 하는 순간에 반경 2km는 완전 쑥밭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피하지 않고 있던 20만 명 이상이 순간적으로 3초 내에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0만 명 넘는 사람이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다가 30만 명 이상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다에 친 그물이 계속해서 안쪽으로 쪼여져 들어갑니다. 그 안에 있는 고기들은 어리석게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 앞에 무한히 헤엄칠 수 있는 바다가 언제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따금씩 그물이 고기의 몸을 닿을 것입니다. 깜짝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헤엄쳐 나가면 언제라도 바다가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은 계속해서 안쪽으로 쪼여오고 있건만,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제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따금씩 복음을 받고 감동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 또 심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저 세상에서 영원토록 자유롭게 살 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조만간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이 완전히 조여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낼 것입니다. 철저하게 골라낼 것입니다.
셋째로, 마지막 날에 악인이 당할 고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50절 말씀입니다.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러분, 지옥이 상상으로 꾸며낸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저 죄짓지 말라고 겁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장소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D. L. Mood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우리는 구태여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찢어서 불태워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예배당을 건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있는 예배당들도 차라리 오락시설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지옥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어떤 선지자들보다도 신약의 어떤 사도들보다도 지옥의 고통을 생생하게 거듭거듭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은 어떠한 곳인지, 우리가 성경을 한 번 찾아보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본래 지옥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곳은 아닙니다. 마25:41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귀와 사자들, 곧 귀신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마귀를 추종하면 마귀와 더불어서 그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귀신들과 더불어서 영원토록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부르짖으면서 발광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귀신 소리만 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둘째로, 지옥은 불타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50절 상반부에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틀고 그 가스불에 엄지손가락을 대고서 약 5분 정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가스불 정도가 아닙니다. 풀무불입니다. 얼마나 더 뜨겁겠습니까? 거기다 엄지손가락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신이 들어가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또 5분이 문제가 아닙니다. 끝없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눅16:24의 말씀을 보십시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고통 가운데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와 같이 불타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옥은 흑암의 나라입니다. 빛은 전혀 없습니다. 천국은 빛과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옥에는 빛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세상의 불은 타오를 때 빛이 납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은 그곳에 있는 자들에게 고통만 줄 뿐, 전혀 빛이 나지 않습니다. 마22:13의 말씀입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지옥은 어둠의 나라입니다. 전혀 빛이 없는 곳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입니다. 어린 시절에 캄캄한 밤을 혼자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소름이 좍 끼칩니다. 이렇듯 어두운 밤을 걸어가도 무서운데, 지옥은 전혀 빛이라고는 없습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넷째로, 지옥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가면 안됩니다. 막9:43의 말씀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세상의 불은 재료를 다 태우고 나면 자동적으로 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불은 꺼지는 법이 없습니다. 몸에 고통만 줄 뿐, 몸 자체가 영원토록 존재하기 때문에 지옥의 불은 결코 꺼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 고통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벌입니다. 4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왜 구더기가 죽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시체가 사라지면 구더기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구더기는 사람의 몸을 괴롭게 만들 뿐, 사람의 존재 자체가 영원하니까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영벌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다섯째로, 지옥은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50절 하반부에 보면 "거기서 울며"라고 했습니다. 왜 웁니까? 뉘우침의 눈물입니다. 고통의 눈물입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고집 피우지 말고, 예수님을 믿었어야 하는 건데……"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거기서 영원토록 슬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 뉘우침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울러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왜 이를 가는 것입니까? 원망하면서 이를 가는 것입니다.
"내 부모 때문에 내가 믿지 못해서 이곳에 왔구나! 내 아내가 자기만 믿지 말고 기를 쓰고서라도 나를 믿도록 만들었어야지!"
그러면서 이를 가는 곳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저희 교회에 등록을 하셨습니까?"
그분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 사실은 제가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는 교회의 어떤 장로님의 삶을 한 번 보고, 그러고 나서 결정을 내려야겠다!' 그래서 그분 모르게 제가 그분의 삶을 한 번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은 일부러 제가 그 사람의 뒤까지 미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저 정도면 내가 믿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장로님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렇게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번 고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섬찟한 이야기입니까? 만일 그 장로님이 지나간 한 주 동안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고, 또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안 믿기로 작정을 내리고,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지옥에서 얼마나 그 장로님을 원망하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이 어린 소자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그 사람은 목에 연자 맷돌을 드리워 깊은 바다에 빠져서 죽는 것이 더 나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차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옥은 상상으로 꾸며낸 자리가 아닙니다. 끔찍한 곳입니다. 엄청난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기를 쓰고서라도 피해야 할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천국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끝이 반드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종말도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에게나 죽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받을 심판은 차등이 있습니다. 다릅니다.
우리가 매일 밤마다 잠을 잡니다. 따져보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주일이면 우리가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장차 천국 생활의 예행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이 우리를 잡아당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좋은 고기로, 하나님의 좋은 자녀로 나타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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