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에서는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기름과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남겨야 합니다. 열심히 장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열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 비유(마 25:1-46)
마태복음 25장에는 열 처녀들의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 세 가지 비유들이 나온다.
1-13절, 열 처녀의 비유
[1절]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 . . .
주께서는,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신약교회, 신약성도들을 가리킨다. 천국은 신약교회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주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이다. 신약교회, 신약성도들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들과 같다.
유대 나라의 결혼 풍습은 밤에 신랑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맞으러 오면 신부의 친구들이 나가서 그들을 맞아 함께 잔치에 참여한다고 한다. 이때 어두운 길을 밝힐 등불이 필요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열 처녀들은 신약성도들을 가리킨 것 같다. 결혼 잔치는 영광스런 천국을 가리켰다고 본다.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묘사한다(사 54:5; 호 2:19). 신약도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맞는 정결한 처녀로 비유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말하였고(고후 11:2), 요한계시록 19:7은,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다”고 말하였다.
[2-4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 . .
주께서는,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라고 말씀하셨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졌으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고 지혜로운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넉넉히 넣어 함께 가져갔다. 등은 교인들의 신앙고백을 가리키고, 기름은 그들이 가진 내면적 은혜를 가리켰다고 본다. 성경에서 기름은 흔히 성령을 상징한다. 성도의 내면적 은혜는 성령의 활동이다.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거하시며 일하신다.
신약 교인들 가운데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과 중생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주의 계명에 순종하여 거룩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예수 믿는 모양은 갖고 있으나 성령의 내면적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중생하지 못한 자들, 즉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거룩과 사랑의 행실이 없다. 그들은 형식적 교인들이며 위선자들이다. 천국과 영생에 대한 그들의 소망과 확신은 헛되다.
[5-6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열 처녀들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다. 인간편에서 볼 때 주님의 재림은 더딘 것 같다. 지혜로운 다섯 처녀를 포함하여 열 처녀 모두가 졸며 잤다는 것은 주의 재림 직전에 기독교계 전체가 해이해질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도 죄성이 있다. 주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다(눅 18:8).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진실한 교인들과 종들이 있을 것이다.
밤중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났다. 밤중은 환난과 핍박의 때를 암시할지도 모른다. “보라,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는 아마 천사들의 소리일 것이다. 주의 재림이 더딘 것같이 보여도, 그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천사들의 음성을 듣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곧 일어나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혜로운 자들은 복되다. 신앙생활은 평소생활이다. 구원받은 새 생명을 가진 자는 평소에 믿음으로 살고 죄를 멀리하고 사랑을 실천한다.
[7-9절]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지혜로운 처녀들이 가진 기름은 미련한 자들과 나눠 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은 신자 개인이 받은 구원의 은혜는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나눠 쓰기에 충분치 않음을 보이는 것 같다. 구원은 각 개인의 문제이며 각 개인이 준비해야 할 문제이다. 개인의 구원은 다른 이의 은혜에 의존할 수 없다.
[10-12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신약 교인들 중에는 등과 기름을 예비하여 결혼 잔치에 들어갈 자들이고, 등만 있고 기름이 없어 결혼 잔치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뒤늦게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고 요청하였으나, 주께서는 그들을 단호히 거절하셨다. 그 두 부류의 분리는 냉엄하였다. 미련한 자들은 주께서 처음부터 알지 못하신 자들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주님의 택한 양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믿는 모양만 갖춘 형식적 교인들이며 위선자들이었다. 그들은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구원을 증명한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께서는 이 비유의 결론으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재림을 믿고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 여기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삶은 기름을 준비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기름은 성령의 내면적 은혜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것의 외적 증거는 진심의 신앙고백과 거룩과 사랑의 실천이다. 그것은 한두 번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평소의 생활을 가리킨다.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과 사랑을 행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이다. 그러나 무지와 죄악 속에서 육신적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은 영적으로 잠든 자들 혹은 죽은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우리의 구원을 증명해야 한다.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은 참 믿음의 증거이다.
열 처녀들의 비유의 핵심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비록 더디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오실 것이다. 주께서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신 지 벌써 2천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그는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계 1:7; 22:20). 주께서는 한밤중에, 갑자기 오실 것이다. 물론 그는 대환난 후에 갑자기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혜로운 종들과 성도들이 되어 깨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형식적 신앙고백이 아닌, 참된 믿음을 가지고 계명을 순종하는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14-30절, 달란트의 비유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 . . .
주께서는 두 번째 비유를 하셨다. 그는,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타국에 가는 주인은 하늘로 올리우실 주님 자신을 가리켰고, 종들은 교회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소유를 맡기셨다. 특히 그는 우리에게 영혼 구원과 양육의 일을 맡기셨다. 이것은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 비유의 진리이기도 하였다. 주인은 품꾼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말하였는데, 포도원의 일은 교회의 일들이라고 보았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 . . .
주께서는 또,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바로] 떠났더니”라고 말씀하셨다. 주인은 그 소유를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주었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조건들, 즉 부모, 가정환경, 유산(遺産), 지능지수(IQ), 재능, 건강, 학력, 조국, 시대 등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여러 가지 은사와 직분을 주셨다(롬 12:6-8). 그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주셨지만(눅 19장의 므나 비유), 그러나 각 사람의 재능과 은사를 따라 서로 다른 일과 직분을 맡기셨다.
[16-17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은 열매를 맺는 일이다. 주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우리가 주 안에 거함으로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교훈하셨다(요 15:4-5).
그 열매는 우선 믿음과 순종으로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로마서 6:22는,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한다. 또 디도서 2:14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선한 삶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일, 즉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요 6:39-40). 그것은 교회에 주신 사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선한 일을 위해 열심을 다해 일하며 충성해야 한다.
주께서는 그가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만큼 열매를 기대하신다. 다섯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두 달란트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 충성되이 일함으로 열매를 맺으면 된다.
[18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 . . .
주께서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한 달란트를 사용하여 일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지도 않았지만,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는 게으른 자이었다. 그는 주께로부터 받은 직분에 충성하지 않았고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는 그 재능, 그 은사, 그 직분을 그저 묵혀 두었다.
[19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주께서는 또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주의 재림이 상당히 지체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회계하는 것은 맡기신 일에 대해 결산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 대한 심판이다. 고린도후서 5:9-10은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했다.
[20-23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믿고 존중하였고 그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하였다. 그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주인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았다. 교만한 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직 겸손한 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주인은 그들을 칭찬하였고 그들에게,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봉사와 선행과 충성에 대해 풍성한 것으로 보상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천국은 희락이 있는 행복한 곳이며, 충성된 종들과 성도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굳은’이라는 원어(스클레로스)는 ‘엄한, 완고한, 까다로운’이라는 뜻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엄하고 까다로운 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했다. 그러나 주인은 실상 그렇게 엄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주인이 자기의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주면서 장사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종들은 주인의 뜻에 충성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주인을 두려워했고 그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 그는 일하는 수고와 일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회피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주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해야 하고 선한 열매를 맺기까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26-29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取利)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을 두려워했고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게으른 자가 되었다. 사상은 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생각은 순종과 충성이 없는 삶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있는 자, 곧 바른 지식과 믿음, 충성과 열심, 성령, 거룩과 선의 열매가 있는 자와, 없는 자, 곧 바른 지식과 믿음, 충성과 열심, 성령, 거룩과 선의 열매가 없는 자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있는 자는 더욱 풍족해질 것이지만,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 . .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하였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하나님께도, 교회에도, 세상에도 유익이 없는 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구원과, 경건과 도덕성의 증진을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하지 못하였다. 그는 덕스러운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무익한 종이었다. 주인은, “그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했다. ‘바깥 어두운 데’는 지옥을 가리킨다. 악한 자들은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의 바깥에 거하게 될 것이며 그곳은 영원한 불못이라 불리는 지옥이다(계 21:8, 27; 22:15).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충성된 자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는 실상 다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청지기와 같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신 것이며 우리의 구원과 영생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믿고 존중하고 주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와 직분을 따라, 내가 받은 재능과 은사가 얼마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열심히 순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열심으로 주를 섬기며 주의 명하신 일들에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또 우리는 천국의 즐거움을 기대하자. 천국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자들을 칭찬하시고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자.
31-46절, 양과 염소의 비유
[31-33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 . . .
주께서는 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라.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재림주를 ‘인자’ 즉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셨다. 그는 신성으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인성으로는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거기로부터 세상으로 다시 내려오실 것이다. 그는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것이며, 그는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다. 그는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시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셔서,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실 것이다. 열국 심판은 요엘 3:1-2 등에 예언된 바이다. 주께서는 그때에 모든 사람을 양과 염소의 두 부류로 나누실 것이라고 묘사된다. 양은 순종하는 의인들을 상징하고, 염소는 거역하는 악인들을 상징하였다.
[34-36절]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구원받은 자들은 이미 하나님께 복받은 자들이다. 그들이 받은 복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 하나님의 자녀 됨, 천국을 상속받음 등이다. 특히 천국은 창세로부터 준비된 나라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유산이며, 성도 개인과 신약교회 전체의 소망이다.
주께서는 천국에 들어갈 의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묘사하셨다. 그들은 주께서 주리실 때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실 때 마시게 했고, 나그네 되셨을 때 영접했고, 벗으셨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드셨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히셨을 때 와서 보았다. 주께서는 자신의 고난을 전제하시면서 의인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섬겼다고 말씀하셨다. 선행은 구원의 근거는 아니지만 구원의 증거가 된다.
[37-40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의인들은 주님을 직접 섬긴 일이 없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내 형제들’은 세상에 파송될 제자들 곧 전도자들을 가리켰다. 주께서는 마태복음 10:40, 42에서도 그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주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내 형제들’은 또 주를 믿는 모든 성도를 포함할 것이다. 주께서는 마태복음 18:5에서는 그를 믿는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결국 주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41-46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 . . .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주께서는 왼편에 있는 자들, 곧 염소와 같은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이유는 하나뿐인데, 곧 죄 때문이다. 죄를 회개치 않고 죄씻음을 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 저주받은 악인들이 들어갈 궁극적 장소는 지옥이다. 그곳은 ‘영영한 불’의 장소이다(막 9:43, 48; 계 20:10). 그곳은 마귀와 악령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지만, 범죄하고 회개치 않는 모든 사람들도 거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라고 했다. 그때 임금이 대답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부활 승천하여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 자신은 지금 고난을 당하고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제자들과 전도자들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것이다. 주의 관심은 그들에게 있다. 주의 제자들은 몇 일 후면 온 세계로 보내질 것이다. 이제 주께서는 일반 신자들이 주의 제자들과 전도자들을 영접하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전도자들을 영접지 않는 것은 천국을 상실하고 지옥에 던지울 큰 죄악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행위는 그의 믿음을 증거한다. 전도자들에 대한 태도는 주님께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그들이 참된 신자들이라면, 주의 종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겼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정한 자들은 주를 믿는 자가 아닐 것이다.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후,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들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중요한가? 주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사실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새 계명의 실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이다. 새 계명이 큰 계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죄는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에서는 서로 사랑함을 실천치 않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사는 자요(요일 2:9-11) 새 생명이 없는 자요(요일 3:14-15) 중생치 못한 자라고 말씀하셨다(요일 3:9-10).
본 비유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마지막 심판이 있음을 알자. 재림의 주께서는 열국을 모으시고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며 의인과 악인을 나누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자. 천국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의인들을 위해 예비하신 곳이며 하나님께 복받은 의인들이 들어갈 영생의 나라이다. 그러나 지옥은 마귀와 악령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며 저주받은 악인들이 들어갈 영벌(永罰)의 장소이다.
셋째로, 우리는 주의 이름을 가진 전도자와 작은 성도 하나도 귀히 여기자. 양과 염소의 비유의 주된 교훈은 주의 일꾼들, 즉 전도자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그를 영접지 않는 것이 주님을 영접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과 염소의 비유는 주의 종들인 전도자들에게 위로가 되며 성도들에게는 한 의무가 된다. 모든 성도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실천하되, 특히 가난한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대접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시편 9편 히브리어 주석 강해] 공의로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시 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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