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 알쓸잡

[로마서 4장 강해 설교말씀] 아브라함의 예(롬 4:1-25)

복음의 능력 2022. 1. 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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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에서는 바울이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할례나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는 개념을 버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예(롬 4:1-25)

 

1-16,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

[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실에 대해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창세기 15:6을 인용하였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는 이와 같이 구약성경이 증거한 바이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대로 믿고 성경에 교훈된 대로 행하며 살아야 한다.

[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라는 말은 행위를 가리킨다. 일하는 자가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의롭다 하심이 사람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하였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닐 것이지만, 의로운 행위가 없었을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믿음이 의로 간주되었으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이와 같이, 믿음과 행위는 서로 대조되고 구별된다. 믿음은 행위와 다른 무엇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그저 믿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에게 의로운 행위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다. 참 믿음은 경건하고 의로운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는 불완전하므로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6-8] 일한 것이 없이(코리스 에르곤)[행위들과 별개로]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사도 바울은 행위와 별개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증거한 다윗의 시를 인용하였다. 그가 인용한 말씀은 시편 32:1-2이다. 그것은 사람이 죄가 없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죄의 사함과 가리움을 받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을 보인다. 이와 같이, 칭의(稱義)는 사람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9-10]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할례 받기 전인가 후인가?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건이 나오고, 창세기 16장에는 그가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라고 증거하며, 창세기 17장에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이 99세 때라고 증거한다(17:24).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때는 그가 할례를 받기 13년 전이었다.

[11-13]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할례받을 뿐 아니라](원문)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後嗣)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할례는 그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받은 의를 확증하는 표이었다. 아브라함이 할례자의 조상이라고 할 때, 그 할례자는 단지 육신의 할례를 받은 자들을 가리키지 않고, 육신의 할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고 그 후손이 온 세계에 충만하리라는 약속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14-16]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後嗣)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카타 카린)[은혜에 의거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 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율법은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그로 하여금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만으로 라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율법과 은혜, 행위와 믿음은 다시 대조된다. 율법을 행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믿는 자는 율법에 순종하며 의롭게 행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 그 자체는 율법 순종의 행위와는 구별된다.

본문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진리를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또 다윗의 고백을 통해 증거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다윗도 행위로는 실수가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인정을 받았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진리는 할례자에게나 무할례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믿음과 행위는 구별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17-25, 아브라함의 믿음

[17-18]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믿음의 성격을 증거한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자이시다. 그는 무()로부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바로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라는 말은 소망을 거슬러 소망 중에’(against hope in hope)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아브라함은 인간적 소망이 없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붙들었다. 그는 인간적 소망을 거슬러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자신에 대한 부정과 하나님께 대한 긍정을 뜻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자기에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을 섬기다가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드러날 때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고 단지 자기 자신을 신뢰한 것이다.

[19-22]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 백세가 되어 자기 몸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 있었으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상태만 바라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이다. 믿음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은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며,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이다.

[23-25]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의 구원도 같은 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 때문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과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자는 참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내용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은 인간의 무엇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단지 전능의 하나님,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브라함처럼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믿음의 성격을 증거한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고 믿었다. 그는 전능의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자이시다. 믿음은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 죽으셨고 또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해 부활하셨다. 신약 성도들이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을 때, 그들은 바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것이다. 이것이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굳게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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