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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주일설교말씀] 현대인의 거짓말(창3: 1-6)

복음의 능력 2020. 10. 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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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3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현대인의 거짓말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 현대인의 거짓말

본 문 : 창세기 1-6

 

어떤 심리학자가 군중 심리가 개인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유사한 두 판이 있는데 하나는 검은색이고 하나는 회색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것이 검은색 판이냐라고 물으면 50명의 학생 중에 선생님과 미리 약속을 한 40명이 회색을 가리킵니다. 이때 나머지 열 학생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가 실험 내용입니다. 이와 똑같은 실험을 열 번에 걸쳐 실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열 명 모두 진짜 검은색판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한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회색을 검은색이라고 가리켰습니다. 이 실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를 좇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 가담하는 쪽으로 결정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종교 생활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현대는 탈종교의 시대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늘고 있고 사회는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저버리게 만들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이끕니다. 성경 말씀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른 사람도 안 믿는데 내가 뭣 때문에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과학의 발달이 이러한 사고 구조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는 과학으로 설명된 사실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 이론이 항상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 이론에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는 없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뒤집혔고 유클리트의 기하학은 뉴만의 새로운 학설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러한 보기들은 이 밖에도 여럿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심리학의 이름으로 철학의 이름으로 주장되는 거짓말을 믿으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을 부추기는 경향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요한복음 8장 4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잘못된 신앙을 부추기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본문은 거짓말을 진리인 줄 착각하고 믿게 된 그 최초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을 타락하게 하려고 사단이 뱀의 모습으로 위장해서 인간을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사단은 세 가지 거짓말을 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꾐이 에덴동산에서만 있었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현혹당하고 있는 거짓말이라는 점입니다.

 

* 하나님은 심술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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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말씀에 묘사된 뱀은 요한계시록 12절에서 사단으로 그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뱀의 모습을 한 사단이 최초의 인간을 유혹하면서 하나님은 마치 동산의 모든 실과를 하나도 먹지 못하게 만드신 분인 것처럼 말합니다.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사단은 하나님을 먹는 즐거움 소유할 수 있는 즐거움을 완전히 제한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첫 번째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누리는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신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별로 이득이 남지 않는 일일뿐더러 너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거야 지금도 사단의 거짓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C. S 루이스는 말하기를 마귀가 사람들에게 심어 주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늘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면서 사람이 어떤 것을 즐기려고 하면 쫓아가서 그 즐거움을 다 빼앗아 버리고 방해하는 심술궂은 할아버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하나님은 무엇이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6장 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시고 충만한 즐거움을 향유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과 기쁨을 우리에게 공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마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신나는 일도 다 빼앗기기쁨도 사라질 것처럼 말합니다. 사단의 꾐은 어린 아이나어른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 것이 기쁨도 즐거움도 없는 굉장히 삭막하고 따분한 일입니까? 오히려 저는 예수 안 믿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는 생각을 합니다.

 

철학자 키엘케골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과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캄캄한 시골길을 한 농부가 등불을 켜고 마차를 몰고 간다. 행히도 이 농부는 마차에 켜 놓은 등불 때문에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움은 그것이 고급한 즐거움이든 저급한 즐거움이든 간에 이 농부가 마차에 켜고 다니는 등불과 같은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 등불 때문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항은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기 위해 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움을 주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고 원천이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찬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명령이 아닙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깨달은 자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즐거움이 넘쳐 저절로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선교지에서 잠시 돌아왔을 때 한 사람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동안의 고생과 희생을 생각하면 선교사로 나간 것이 혹시 후회되지 않으십니까? 이에 리빙스턴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희생이라니요? 나는 이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선교 사역이 내게는 최고로 기쁜 일입니다. 제발 내 선교 사역에 희생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 주십시오저 역시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하며 목회하는 신앙생활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들이 교회 다니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그 속임수에 빠져 주일 하루 교회 나오는 데 애를 먹습니다. 그나마 겨우 예배에만 참석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칩니다. 많은 교회 교육 담당자들이 그렇게 주장합니다. 물론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발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주일학교 학생들을 즐겁게 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하나님을 즐길 수 있는 신앙을 심어 주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입니다. 예배가 신나고 흥분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주님을 섬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깨닫는다면 사단이 어떤 거짓말을 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참 기쁨을 소유할 수 있도록 당신의 신앙을 북돋우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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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요즈음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옛날 사단이 쓰던 속임수를 현대의 지성인들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단이 인간을 꾀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했는지 본문 말씀으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절에서는 일단 말씀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단은 질문을 사용하여 마음에 의심이 생기도록 만듭니다. 2, 3절에 여자의 대답이 나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는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말을 보태어 말합니다. 하나님은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2:17)고 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바꾸어 말했습니다. 정녕 죽으리라죽을까 하노라는 그 의미에서 큰 차이가 나는 표현입니다. 이는 인간이 말씀의 권위를 서서히 약화시키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절 말씀에 사단의 확실한 거짓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 에덴동산의 인간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녕 죽으리라 하시지만 사단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어떤 말이 옳은 것인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백한 거짓말을 현대인들도 믿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까지 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그 대가로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사단의 말을 믿고 하나님께 죄를 짓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단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가장하는 것입니다.고후 11:14 참조사단이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의 이름으로 인본주의의 이름으로 다가와 속삭이면 사람들은 쉽게 믿어 버립니다.

 

이 어디 있는가? 첨단 과학 문명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때에 천국과 지옥을 믿다니!라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심판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을 비웃습니다. 현대인들은 도덕 기준을 포기했습니다. 죄 된 행동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 하면서 도덕 기준을 무시하고 쉽게 죄를 짓고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입니다. 그분의 선언은 시대와 함께 소멸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과학이나 철학 같은 세상 학문을 심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면 진리의 절대 표준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믿음의 바탕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타락의 길로 이끌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의심하여 떠나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서서히 사단의 거짓말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오히려 사단을 진리인 양 착각하고 그를 좇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천 년 전 주께서 하신 말씀으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 인간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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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우리에게 다가와 당신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꼭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단은 인간의 능력이 무한함을 강조하며 신이 될 수 있음을 부추깁니다. 본문 5절 말씀에서 사단의 첫 유혹을 발견합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음성을 듣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 유혹에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반드시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내 의견이 절대로 옳고 모든 일을 내 뜻대로 하려 할 때 우리는 이미 사단의 그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타락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십시오. 이사야서 1413, 14절 말씀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자신을 신과 비기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아지려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또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인간이 피조물로써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수용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단의 전략은 놀랍게 성공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만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뒤부터 사단은 더욱 설득력 있게 인간을 속이고 미혹하여 타락의 길로 치닫게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거짓말을 믿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 한 인간은 결국 신이 되었습니까? 닙니다. 타락한 인간은 신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지 않는 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3:16 참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진 사건입니다. 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긴 은혜의 사건입니다. 나 대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인간은 진리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창조 목적에 맞는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온전히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에 힘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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